에피톤 프로젝트 - 봄날, 벚꽃 그리고 너
하늘은 푸르렀다. 봄은 어느새 성큼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눈서리들이 모두 녹아내리고, 햇볕에 녹아내린 얼음들에 계곡에서는 물이 졸졸졸 흘러내렸다. 3월 말, 제주에서는 벚나무 몇 그루들이 벌써 꽃망울을 터트리고, 곳곳에서 샛노란 개나리들이 활짝 피어났다. 그리고 그것이, 학연은 싫었다. 모든 것이 따사로운 햇빛을 받고 있는데, 꼭 자신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행복하게 웃으며 길거리를 거니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고있자니, 학연의 굳은 입매가 뒤틀렸다.
왜, 왜 나만 불행한 걸까. 학연의 머리칼을 바람이 간지럽히며 흐트려 놓았다. 신경질이 났다. 뭐가, 무엇이 그리도 좋은걸까. 애꿎은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투덜대다, 학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하고, 처절해서. 이렇게 벤치에 앉아, 바삐 움직이며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한심해서.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제일 불행하다고, 내가 제일 불쌍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렇지만 학연은, 달랐다. 자신보다 불행하고 슬픈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학연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치만 이렇게 자신을 지나쳐 가는 사람들은, 보면 대부분 무언가를 하느라 바빴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어딘가에, 분명히 어딘가에 자신보다 가여운 사람들이 있을텐데,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하는구나. 학연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존나 인생에 회의감 들어.”
“미친년, 얼마나 살았다고. 아직 네 인생은 삼분의 일도 안 왔어.”
“…그렇네, 헤-.”
“아 웃지마, 못생겼어.”
학연이 좌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울상을 짓다가도 금세 깔깔거리며 웃는 여고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부럽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잠식했다. 저렇게, 옆에서 함께 예쁘게 재잘거려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부럽다. 학연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를 숙인 학연의 위로, 큰 인영이 드리워졌다. 학연이 재깍 고개를 들어올려 자신에게 그림자를 드리운, 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굵직한 선의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 학연이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남자는 학연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왜, 여기에 계속 있어요?”
“…….”
“누구, 기다려요?”
“…….”
“혹시, 나?”
“…아니요.”
“푸핫- 장난이에요.”
“…아….”
“그럼, 그냥 있는 거예요?”
무언가에 홀린듯이, 학연은 남자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곱게 휘어진 눈매가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뻗어 쓰다듬어보고 싶을만큼. 말 없이 학연이 남자를 바라보자, 남자는 학연에게 더욱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의 깊은 눈이 학연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학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손 한 뼘 정도의 거리에서 학연과 마주하고 있던 남자는, 다시금 환하게 웃으며 숙였던 허리를 피더니 손뼉을 쳤다. 학연이 작게 움찔했다.
“아!”
“……?”
“생각, 생각 중이였죠!”
“아… 네, 뭐.”
그런 셈인건가. 학연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학연을 내려다보며 남자는 흠, 하고 무언가를 고민하는듯 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삶이 힘들어요?”
“…….”
“막 지치고, 힘들고, 외롭고 그래요?”
분명히 불쾌할만한 선의 오지랖이건만, 학연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서, 전혀 불쾌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학연은 아까와 같이,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하얗고 얄쌍한 손 끝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그랬었어요.”
“아… 그랬어요?”
“응, 그랬어요. 나도 그럴 때마다 여기 와서 이렇게 지나치는 사람들을 쳐다보고는 했거든요.”
“…아….”
“꼭, 지금 당신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
“어때요?”
“…뭐가요?”
“수많은 사람들을 봤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 사람들을 지켜보고 나니까, 어때요?”
“그냥… 다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걷고 있는걸보니 좀… 부럽네요.”
“부러워요? 누군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게?”
“…네, 부러워요. 나도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저렇게 들어준다면 좋을텐데, 그러면 덜 힘들텐데, 싶어서. 그래서 부러워요.”
“글쎄요. 지금은 남들이 당신을 더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남자의 말에 학연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여고생들이 자신과 남자를 힐끔대고 있었다. 아…. 학연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지금 당신도 나누고 있잖아요, 당신의 이야기를.”
“…….”
“나처럼 잘생긴 사람하고! 사람들은 지금 당신이 엄청 부러울걸요?”
남자의 장난조의 말에 학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는 학연을 따라 해맑게 웃었다.
“나는 재환, 이재환이에요.”
“…나는, 나는 차학연…이에요.”
“학연 씨의 이야기, 내가 조금 더 들어줄까요?”
학연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제 옆에서, 예쁘게 재잘대주세요.
봄은, 어느새 우리의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리 겨울이 길지라도, 결국에는 봄날은 오고, 벚꽃은 필거야. 학연의 머리 위로 따사로운 햇빛이 내려앉았다.
살아가는 거야, 서로 사랑하는 우리
상처에서 짓이겨진 박하 향기가 날 때까지
박하 향기가 네 상처와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너의 가슴에 스칠 때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어디에선가 박하 향기가 나면
내가 다녀갔거니 해줘
-하수경, 소설 박하 中
자급자족 힐링글, 헷.
제가 요즘 약간 지쳐서 쓰는 힐링글! 은 거의 한시간도 안되어서 와..완성..ㅎ.. 그래서 망한 글이지만 ㅎㅅㅎ..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저는.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는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혼자 궁상을 떨었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 힘드시다면, 힘들어마요.
제가 힐링해드릴게요!
치유치유(~ㅇ△ㅇ)~
(하트) 레퀴엠 쓰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