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남자는 언제나 그랬다.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닌 존재를 만들 어 놓은 후, 그 존재의 뒤에서 숨어 행동했다. 상식 밖의 행동을 사랑했으며, 아무에게도 믿음을 주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남자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아."
뭐야, 핸드폰 이잖아? 누구꺼지.
원식이 제 발에 걸린 물건을 집어 들었다. 학연이 나눠준 대포폰은 아닌 듯 싶은 모양의 핸드폰에 원식이 고개를 갸웃했다. 홀드키를 눌러 핸드폰 화면의 잠금을 해제시킨 원식이 배경화면 속의 조그마한 남자아이와, 여자를 바라보았다. 레오씨 핸드폰인건가? 내일 택운이 밖으로 나오면 돌려주면 되겠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제 주머니 속으로 넣으려던 원식이 실수로 화면을 건들였다.
"아씨.. 뭐야, 최근 통화 목록?"
최근 통화 목록 속에 가득한 B라 저장 된 이에게서 온 연락에 원식이 고개를 갸웃했다. 엔씨랑 통화한건가? 하긴, 레오씨라면 밖에 못나갈테니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핸드폰을 제 주머니에 넣은 원식이 부엌에 제가 가져온 고기 덩어리들을 내려놓았다.
"근데, 엔씨 번호가 뭐였더라."
남자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배신' 이었다.
-
홍빈과 상혁은 실로 오랜만에 학연의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혹여나 원식이 가져온 사람 고기를 또 다시 먹게 될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원식이 시체를 반쯤 남겨 둔 탓에 아이들에게 즐거운 놀이거리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홍빈과 상혁은 신이나 시체를 해집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 중에서 연장자인 홍빈과 상혁은 아이들에게 있어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아이들 중 유독히 어린 아이들은 홍빈과 상혁을 아빠라 부르기도 했다. 대게로 부모들에게서 버림 받거나, 도망쳐 나온 아이들의 집합체인 탓에 유독히나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이 많았다. 홍빈과 상혁은 그런 아이들에게 가족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대장! 이것 봐라-!"
"오, 이한빈 멋있는데?"
"진짜?"
"어? 대장 나도 나도! 이것 봐!"
"승현이도 멋있는걸?"
"아싸! 나 대장한테서 칭찬 받았어!"
아이들은 어렸다. 나이가 어리다기 보다는 마음의 연령이 어렸다. 그들은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했으며,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깨끗했다. 홍빈이 죽어가는 골목의 대장으로 남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홍빈은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상혁도 그래서 옆에 두는 것이었다. 상혁은 홍빈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동생이자, 가족이자, 영원히 함께할 소울메이트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어릴적 부터 아이들 중에서도 홍빈을 잘 따랐던 상혁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이제 더이상 상혁이 그때의 그 꼬맹이가 아닐지라도, 홍빈의 눈에는 언제나 상혁은 어릴때 그 모습 자체였다. 그렇다 보니 단 한순간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홍빈은 문듯 제 옆자리에 선 상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순간 키가 훌쩍 자라 저보다 커버렸다지만 아직까지 홍빈이 보기에는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일 뿐이었다. 홍빈은 손을 들어 상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런 홍빈의 스킨십에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상혁이 흠칫 놀라며 홍빈을 돌아보았다. 왜요, 대장? 하고 물어오는 상혁에 그저 홍빈은 웃으며 귀여워서. 라고 대답할 따름이었다.
"대장, 대장. 우리 노래 만들었는데 들을래?"
"노래? 너희가 만들었어?"
"응! 우리 만들었어! 대장이랑 부대장 없을 때 진혁이형이랑 만들었어!"
"진혁이랑 같이? 듣고싶다, 들려줘."
"응응! 하나 두울 세엣-."
이리저리 뿔뿔히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몰려와 입을 모았다. 화음이라도 만드는 듯이 한 아이는 낮은 음으로, 한 아이는 높은 음으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살점들이 흩날린다 사람들은 도망간다 아이들은 웃음 짓는다
우리들은 행복하다 우리들은 행복하다
죽어가는 골목은 언제든지 즐거웁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목소리들로 노래하는 아이들에 홍빈과 상혁이 밝게 웃음 지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이 한 아이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다음 소절을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오, 다훈이 솔로 파트도 있어?
사람들은 말했지 이곳은 더럽다고
한 아이가 한 소절을 부르자 다른 아이들이 화답하듯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아니지 여긴 놀이터야
다시 이번에는 또 다른 아이가 나오더니 노래를 이었다.
이곳은 죽어가는 골목 아니 우리들의 휴식처
벗어날 수 없는 매력의 장소
다시 한번 아이들이 입을 모아 불렀다.
벗어날 수 없는 죄의 구덩이
우리들은 행복하다
노래가 끝이 난 듯이 아이들이 만족 스럽게 홍빈과 상혁을 향해 웃음 지어 보였다. 홍빈과 상혁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 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쳤고, 아이들은 해맑게 웃음지었다. 홍빈이 습관처럼 아이들의 머리칼을 다정히 쓰다듬어 주면서 아이들을 칭찬했다. 정말로, 잘 만들었어. 홍빈의 칭찬에 신이난 것인지 아이들이 다시 한번 시끌 벅적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마치, 골목 이곳 저곳마다 노래를 알리는 것 처럼 행진을 해가며 노래를 불렀다. 우리들은 행복하다 우리들은 행복하다. 아이들의 노래소리에 골목은 금세 활기를 띄웠다. 시끌벅적한 소리에 학연의 집 문이 열리며 학연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고 홍빈과 상혁은 그런 학연에게 밝게 인사했다.
"노래 애기들이 직접 만든거야?"
"네, 엔씨. 노래 좋죠?"
"배우고 싶은 노래인걸."
홍빈과 상혁을 향해 밝게 웃음 지은 학연이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홍빈과 상혁은 거부하지 않고 학연의 집으로 들어섰고, 학연의 집 문이 다시금 닫기는 순간 까지도 아이들의 노래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벗어날 수 없는 죄의 구덩이 우리들은 행복하다
-
학연의 집의 풍경은 여느때와 다름이 없었다. 재환이 없다는 것 자체가 평소로 돌아온 것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었다. 홍빈과 상혁은 학연의 구박에 화장실로 가 손을 씻었다. 택운은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듯 싶었고, 원식은 평소처럼 쇼파가 마냥 제 침대라도 되는 듯이 길게 누워 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홍빈과 상혁이 그럼 원식이 누운 쇼파의 옆쪽의 작은 쇼파에 나란히 앉았다. 원식은 인기척에 슬쩍 시선을 올리더니, 홍빈과 상혁의 모습이 두 눈에 들어차자, 만지작 거리던 핸드폰을 내려 놓고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너희는 어째 떨어진 적을 본 적 없다?"
"떨어진 적이 없으니까요."
"진짜? 한번도?"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요. 대장?"
"그렇겠지, 뭐."
상혁과 홍빈의 대답에 참, 대단하다.. 하고 중얼 거린 원식이 다시 자리에 누우려다 원식의 옷 춤에서 무언가가 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원식은 제 핸드폰이 떨어졌나 싶어 인상을 구기고는 떨어진 물건을 들어 올렸다. 어? 아, 이거 맞다. 원식은 지난 밤에 저가 주웠던 핸드폰인 것을 떠올려 내고는 다시 누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 원식의 행동에 홍빈과 상혁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레오씨, 이거 레오씨 핸드폰 맞아요?"
"...?"
"레오씨 핸드폰 있었어요?"
"..아뇨."
"에? 이 배경화면 레오씨 부인이랑 아들 아니예요?"
"..딸 이었을텐데..?"
"뭐야, 레오씨네 애는 딸이예요? 그럼 이거 누구꺼야."
"라비씨, 그거 켄씨 핸드폰 아니예요?"
"켄씨?"
상혁의 말에 원식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제 손에 들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이게 켄씨 꺼라고? 레오씨께 아니라? 연신 알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좁힌 채로 핸드폰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는 원식에 학연이 가뿐히 그의 손에 들렸던 핸드폰을 낚아챘다. 아, 엔씨 왜요? 또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잔뜩 불평하는 투로 학연을 향해 말하는 원식과는 다르게 사뭇 굳은 표정을 한 학연이 핸드폰을 가져갔다.
"그거 켄씨한테 준 대포폰이예요?"
"아니요."
"그럼, 뭐야 저 핸드폰."
"라비씨 처럼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핸드폰인가 보죠."
"이상하지 않아요?"
"다른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이상한거면, 라비씨도 이상한거죠."
"아, 진짜! 엔씨 저한테 왜그럽니까?"
"제가 뭘요?"
정말 제가 뭔 잘못이라도 했냐는 마냥 고개를 살포시 갸웃한 학연이 아무렇지 않게 원식에게서 빼앗은 핸드폰을 제 주머니에 넣었다. 그걸 왜 또 엔씨 주머니에 넣어요? 켄씨한테 가져가라고 하지.
"...이거 켄씨꺼 아니예요. 제껍니다."
"아 뭐야, 아깐 켄씨 꺼라면서요!"
"그건 켄씨 꺼였을때의 얘기였구요, 다시 보니까 제꺼네요."
"엔씨가 언제부터 핸드폰을 여러개 사용했습니까?"
"라비씨를 만나기 전부터. 라고 해두죠."
"아 진짜!!"
"...엔씨, 다 됬는데."
"아, 진짜요? 라비씨, 배고프신 것 같은데 레오씨랑 같이 밥이나 드시죠."
"오, 밥이예요? 레오씨 저도 먹을래요!"
"안타깝지만 니들은 안먹는 사람 고기 음식이다."
"...아, 진짜 대장. 그냥 가요 우리."
"그러자. 엔씨 저희 갈게요."
"잘가요. 홍빈군, 상혁군."
홍빈과 상혁이 혼란스러운 학연의 집 밖으로 나가자, 학연은 자신의 대포폰을 꺼내 들어 재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켄씨, 어머님이 굉장히 미인이셨네요. ]
"엔씨, 안 드실꺼예요?"
"아, 레오씨 지금 갈게요."
학연은 굳었던 표정을 펴고, 웃으며 원식과 택운이 앉아있는 식탁으로 향했다.
=
약간의 표현력 고갈로 잠시동안 놔두었던 죽어가는 골목을 들고 왔습니다 헤헹
내 워더님들
♥ 요구르트님 ♥
♥ 에델님 ♥
♥ 사탕님 ♥
♥ 감독님 ♥
♥ 초코바나나님 ♥
워더님들은 언제나 환영해요 ☆★
신알신 해주시는 워더님들도 하튜하튜♥~♥
이번편은 그토록 넣고 싶었던 죽어가는 골목 아이들의 노래를 넣어서 너무 좋아요 뿌듯하다
저 노래는 후에 어떻게 될까요~ (의미심장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