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오랜만에 6명이서 모인 식탁에는 정적만 맴돌았다. 원식이 식탁으로 올라오는 라면에 반색하며 이게 뭐냐고 따지려 들다가 이내 잘먹겠습니다. 하는 말과 함께 젓가락을 드는 홍빈과 상혁의 행동에 탐탁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 자리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재환 역시 젓가락을 들었고, 학연은 어색하게 부엌 구석에 버려둔 차마 먹지 못할 야채국(학연의 비장의 레시피였지만 결과는 실패였다.)을 힐끔 거리다가 저 역시도 젓가락을 들었다.
"라면 엔씨가 안끓였죠?"
"왕바보면서 이런건 잘아네요."
"아씨, 왕바보 아니라니까요!"
"아, 네네-. 알겠습니다. 왕바보씨."
아, 진짜! 하며 차마 화를 내진 못하고 열이 올라 발만 동동 구르는 원식의 접시로 라면 면가닥이 덜어졌다. 원식이 의아한 눈빛으로 제 그릇에 덜어진 라면 면발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것을 덜어 준 장본인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조용히 하고 먹어요."
"아.. 네, 고마워요."
꼬들꼬들한 면발을 입에 문 채로 우물거리며 대답하는 택운에 머쓱하게 웃음지은 원식이 시선을 돌려 학연을 한번 쏘아 보고는 택운이 덜어준 면발을 한움큼 집어 들어 입으로 우겨 넣었다. 레오씨, 라면 잘 끓이네요, 누구와는 다르게. 왕바보씨, 그 누구가 혹시 저는 아니겠죠? 에이, 그럴까요? ...시끄러워. 도저히 못참겠었는지 제 젓가락으로 면발을 집어 원식의 입을 틀어 막아버린 택운이 앙칼지게 학연까지 노려보고는 다시 제 그릇으로 시선을 돌렸다. ..라비씨, 밥 먹을땐 개도 건드리지 맙시다. ...그래요. 입안 가득 찬 면발 때문에 잔뜩 뭉그러진 말투로 대답한 원식이 택운의 눈치를 보며 면을 우물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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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잔해물이 발견 됬을 텐데도, 아무런 말이 없다라."
"애매하죠?"
"그나저나, 이성욱이 뭡니까, 이성욱이. 켄씨가 지은겁니까?"
"왕바보씨는 진지한 얘기 중에 끼어들지 말아 주시구요. 켄씨, 부담스러우셨을 텐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뭘요. 제가 스스로 맡은 일인데요."
재환이 사람좋게 웃음지으며 말했다. 학연 역시 마주 웃음지어 주며 재환에게 따뜻한 우유를 건네주었다. 재환은 고맙다며 학연에게서 우유를 받아 들었고, 그런 둘의 모습을 얌전히 지켜보고만 있던 홍빈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엔씨네 아버지는 회사 직원 중 누가 엔씨 편인지 모르는거죠?"
"아마-. 그렇겠죠. 홍빈군."
"아... 네. 아마 그럴껍니다. 혹여 제 정체를 알고 있었다면야-.."
재환은 문듯 제게 속삭이듯 던져젔던, 그 소름 끼치는 낮은 목소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그 때의 생각을 지워 버리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음 지었다. 아직까지는, 아무 문제 없어요. 원식이 재환이 잠시 뜸을 들인것 같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학연에 의해 묵살 되고는 여섯명이서 모인 방안에는 왠지모를 정적이 맴돌았다. 어색하게 서로의 눈치만 살피며 섣불리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쯤, 원식의 핸드폰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울렸다.
"아. 죄송. 채팅으로 만난 오늘 사냥감."
"..여자?"
"네, 고기는 레오씨 줄게요."
원식의 말에 택운이 한번 고개를 끄덕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원식은 대충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겨 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저 먼저 갑니다? 다들 천천히 얘기들 나누세요. 평소와 그닥 다름 없는 화려한 복장으로 한쪽 소매에는 신문지로 감싼 칼을 집어 넣은 원식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연의 집을 나섰다. 원식의 뒷모습이 온전히 사라지고, 문이 닫히고 나서야 상혁이 말을 참고 있었다는 듯이 약간 조급하게 말을 뱉어냈다.
"엔씨, 설마 저게 또 우리 식사가 되는건 아니죠?"
"어...음. 글쎄요."
"..내가 먹을게."
덤덤히 말을 뱉어낸 택운이 지루하다는 듯이 기지개를 쭉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레오씨 어디가요? 하는 홍빈의 질문에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윗층을 가르킨 택운이 터벅 터벅 위층으로 향했다. 홍빈과 상혁도 슬슬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가보겠다며 학연의 집을 나섰고, 어느세 거실에 단둘이 남아 버린 재환과 학연에게는 또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켄씨."
"네? 네. 엔씨 말씀 하시죠."
"저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시간이 늦었네요, 저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켄씨, 앞으로도 부탁해요."
학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재환의 옆을 스쳐 지나가 일층에 있는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얼떨결에 거실에 홀로 남은 재환은 잠시간 제 입술을 잘근 잘근 씹어대다가 이내 자신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연의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재환의 표정이 딱히 밝지 않았다. 자신이 속한 그룹의 리더에게서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사람치고는, 꽤나. 좋지 못한 얼굴 빛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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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식은 아무리 봐도 의심스럽기만 한 재환을 떠올리며 미간을 좁혔다. 오빠, 어디까지 가야해요? 하며 투정을 부리는 여자를 다독이 듯이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남긴 원식이 이내 이제 거의 다 왔다며 여자와 함께 죽어가는 골목으로 들어왔다.
"여기는 그냥 골목이잖아요-. 좋은 곳 간다면서!"
"좋은 곳이지, 좋은 곳."
네가 죽기에 딱. 뒷말은 내뱉지 않고 삼킨 원식이 그대로 여자의 입술을 삼켰다. 밤이 깊은 터라 가로등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골목 안에서 원식은 여자에게 사랑 어린 키스를 하는 척 하며 제 소매에 넣어 두었던 칼을 꺼내 들었다. 아, 오빠 입술 말고-. 그래, 그래 알았어. 여자의 투정어린 듯한 말에 어린아이를 달래 듯이 낮게 속삭인 원식이 여자의 훤히 드러난 목을 쓰다듬다가 이내 얼굴을 묻었다. 여자가 간지럽다며 몸을 꼬았고, 원식은 슬쩍 얼굴을 떼어내는 듯 싶더니 다시 여자의 입술에 진득히 키스했다. 원식의 탄탄한 등판을 꼭 끌어 안은채로 키스의 열중하는 여자의 목덜미로, 원식이 칼의 방향을 틀었다.
"..후, 피 다 튀기고 있어."
대충 제 얼굴에 튀긴 피를 털어내듯이 손으로 닦아낸 원식이 붉게 젖은 칼을 다시 신문지에 감싸려다가 제 발 밑에 축 늘어진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맞아 레오씨 줘야지. 딱히 작은 칼로 완벽하게 뼈와 살을 분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에 원식은 우선 여자가 입은 옷을 찢어 바닥에 깔고는 천천히 살점들을 잘라내어 옷 위에 올려 두었다. 많이 가져가 보았자 택운도 다 먹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어느정도는 남겨둔 채로 든든하게 고기들을 챙겨낸 원식이 불쌍하게도 죽음을 맞이한 그녀의 입술에 작별의 입맞춤을 남기고는 칼과 고기를 챙겨 학연의 집 쪽으로 향했다. 근데, 내가 언제부터 남을 위해 고기를 토막 냈었지. 원식은 자신 역시 그들과 함께 함으로 조금은 미쳐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여유롭게 학연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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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편은 진짜 일찍 왔죠? 헤헹!
너무 쓰고 싶었어요... 요세 무서운 거에 꽂혀서 그런가 죽어가는 골목이 제 마음을 사로잡네요 ㅇㅅㅇ 헷.
다음편도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을까나... 그것 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헷...
내 워더님들
♥ 요구르트님 ♥
♥ 에델님 ♥
♥ 사탕님 ♥
♥ 감독님 ♥
워더님들은 언제나 환영해요 ☆★
신알신 해주시는 워더님들도 하튜하튜♥~♥
확실히 임팩트가 딱히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뭐.. 저는 쓰면서 재밌었어요 헤헹.
분량이 딱히 길지는 못하지만 (사실 분량이 길어지면 내용은 끝났을 꺼예요...으잌ㅋㅋ)
저번편의 왕바보 씨는 무서운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냥 저는 글마다 브금을 바꾸려구요 (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