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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별 전체글ll조회 599





소나기 1998
Couple 카이X디오/카디
Name Han Byeol
BGM 동방신기 ‘인사(Piano ver.)


 









03








 
 
 비밀 장소인 숲 속 오두막에 다녀온 건 종인에게도 오랜만의 일이라 피곤해서 그런건지 종인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나지 못했다. 점심 밥상을 다 차린 종인의 엄마가 종인의 방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종인이 꾸물꾸물 움직이며 인상을 썼다.
 
 

 “야, 종인아. 일어나라!”
 “몇 시인데 벌써 깨우나.”
 “해가 중천에서 놀고 있다. 학교 쉬는 날이라고 늦장 피우지 말랬지?”
 
 

 종인은 문득 스치는 생각에 눈을 번쩍 드고 누워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문을 열고 선 엄마의 등 뒤로 보이는 마당에 쏟아지는 햇볕이 예사롭지 않았다. 종인이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마루로 달렸다. 엄마의 잔소리가 몰아쳤지만 종인은 마루 한 가운데에 걸린 거울을 보며 까치 서너 마리가 집을 지은 듯 엉망인 머리를 급하게 헝클어뜨리며 짜증을 부렸다.
 
 

 “엄마는 왜 나를 이제 깨워!”
 “이것이 돌았나, 엄마한테 화풀이고? 아까는 벌써 깨운다 지랄하드만.”
 “돌겠다, 진짜로!”
 
 

 종인은 안되겠는지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 맨발로 달려가 물을 틀고 고양이 세수를 하면서 동시에 붕 뜬 머리 위를 물로 적셨다. 손바닥으로 젖은 머리를 꾹꾹 누르며 다시 마루 위로 올라온 종인은 맨발에 붙은 모래 알갱이를 마룻바닥에 문질러 떼어내었다.
 거울로 돌아와 제 모습을 비추어 보니 물에 젖어 가라 앉은 머리가 우스꽝스러운 걸 면치 못 했으나 까치집 보다는 훨씬 괜찮아보였다. 종인은 고양이 세수 때문에 미처 떼지 못한 눈곱을 떼어내고 양말 서랍을 열어 제일 깨끗한 양말을 골라 꺼내 신었다.
 밥상을 다 차려 놨는데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나갈 채비를 하는 종인에게 엄마가 말했다.
 
 

 “어디 가나?”
 “좋은 데!”
 “뭐라?”
 “나 다녀올게!”
 
 

 종인이 신발을 꺽어 신고 마당을 가로 질러 대문을 열고 나갔다. 경수네 집까지 지금부터 안 쉬고 뛰어 간다고 해도 빨리 가긴 힘들었다. 경수와 애써 약속한 일을 늦게 지키게 될까 종인은 뛰고 또 뛰었다. 뛰는 중간중간 돌을 잘못 밟아 넘어질 뻔도 하고, 웅덩이를 밟아 휘청거리기도 했지만 종인은 계속 달렸다.

 

 

 
 

 숨이 너무 차서 도저히 더 뛰지는 못할 것 같아 조금 걷던 종인의 눈에 마을 회관이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경수네다! 반가운 마음에 숨을 다 고르기도 전, 종인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 회관을 지나쳐 빨간색 지붕 이층집이 어제의 예쁜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경수네 앞에 도착한 종인은 바닥에 쓰러지다시피 쭈그려 앉았다. 하도 달려서 다리에 힘이 풀린 이유였다. 헉헉, 숨을 고르며 종인은 어제 처음 보게 된 예쁜 대문을 쳐다보았다. 봐도 봐도 대문이 참 신통하게 예뻤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하여 종인은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러고보니 경수네 집 앞에는 왔지만 경수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경수의 이름을 크게 불러 볼까? 그냥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두드릴까? 
 경수네 집 대문 앞을 서성이며 종인이 고민하다가 경수의 이름을 부르기로 결정한 그 때,



 “안녕.”



 책가방을 멘 채로 경수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어라. 오늘은 학교 가는 날 아닌데.”



 종인이 경수의 등에 메진 가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경수가 새초롬한 얼굴을 하고 대답했다.



 “알아.”
 “왜 메고 나왔는데?”
 “오늘은 어디 구경 시켜 줄꺼야?”



 종인의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경수가 가방을 조금 고쳐 메더니 물었다. 종인은 경수의 물음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다가 좋은 곳이 떠올랐는지 미소를 짓고 대답했다.



 “맛난 데.”
 “맛?”
 “따라 와.”



 종인이 먼저 발걸음을 떼었다. 경수도 종인이 가는 데로 따라갔다.





 종인은 가는 길 중간마다 만나는 동네 어르신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경수는 낯선 어르신들의 모습에 주뼛거리기만 하였다. 종인이 경수에게 너는 왜 인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경수는 대답을 회피하였다. 종인이 두어 번 더 길 가다 만난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자, 경수는 종인을 따라 대충 고개만 까딱거리며 인사를 하였다. 종인의 인사도, 경수의 인사도 마을 어르신들은 아주 반갑게 받아주었다.





 경수가 종인의 뒤를 졸졸 따라가다보니, 벼를 심어놓은 논밭이 나왔다. 정갈하게 심어진 벼는 살짝 부는 바람에도 고개를 숙였다. 경수가 수많은 벼들에 시선을 빼앗길 동안 종인은 논뚝으로 이어지는 조금 비탈진 길 아래로 내려갔다. 같이 가! 경수가 소리치며 조심조심 비탈길을 내려갔다.
 그렇게 넓은 논밭의 논뚝을 조금 지났을 때였다.



 “어?”



 정씨 아저씨네의 커다랗고 누런 개 금복이가 좁은 논뚝 길 위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서 있었다. 금복이를 발견한 종인이 반가운 체를 하더니 경수를 놔두고 금복이에게 쏠랑 달려가 버렸다. 갑자기 뛰어가는 종인 때문에 경수도 느닷없이 종인의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종인의 앞으로 있는 금복이를 보고 기겁을 하며 종인의 옷깃을 확 붙잡았다.
 종인이 붙잡힌 옷깃에 뛰던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경수를 쳐다보았다.



 “왜?”
 “저, 저 개 뭐야?”
 “뭐라?”
 “개 말이야. 앞에 있는 개.”
 “아─. 금복이.”



 종인의 옷깃을 잡은 채로 경수가 덜덜 떨며 금복이를 가리켰다. 종인이 금복이의 이름을 알려주고, 그 자리에서 손을 까딱 거리며 금복이를 불렀다.



 “금복아, 이리 와.”



 커다란 덩치를 한껏 내뿜으며 금복이가 종인의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경수가 또 기겁을 하고 놀랐다. 경수는 잡고 있던 종인의 옷깃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하지 마!”
 “뭘?”
 “부르지 마!”
 “이미 불렀는데.”



 어느새 다가온 금복이 혀를 내밀고 헥헥대며 앞발을 들어 종인의 바지 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한없이 반가움을 표현했다. 뒤에서 겁에 질린 경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종인이 양 손으로 금복이의 목덜미를 쥐고 쓰다듬었다.



 “아, 안 무서워?”
 “뭐가. 금복이가 얼마나 순하고 착한데. 우리 동네 사람들 다 금복이랑 친하다.”



 잠시동안 금복이와 인사를 나눈 종인이 금복이의 등허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



 “이제 엉아들 길 좀 가게 좀 비켜주라, 금복아.”



 종인이 금복이의 등허리를 서너 번 가볍게 두드리자 신기하게도 금복이가 몸을 돌려 논뚝을 걷기 시작했다. 종인의 등 뒤에 숨어있던 경수는 멀어지는 금복이를 보고 잡았던 종인의 옷깃을 천천히 놓으며 말했다.



 “개가 사람 말을 알아들어?”
 “똑똑하다. 가라 그러면 가고, 오라 그러면 온다. 다시 불러 볼까?”
 “아니!”



 경수가 목소리를 높이며 거절했다. 종인은 경수에게 살짝 웃어보이고는 원래 가려던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종인의 웃음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들어 경수의 양 볼이 복숭아 색으로 물들었다. 경수가 제 볼을 양 손으로 문지르다 이내 종인의 뒤를 따랐다.





 논뚝을 다 건너자 제법 평평한 길이 나왔다. 그 길을 따라 쭉 걷다보니 빨갛고 노란 빛을 띈 열매가 달린 나무들이 보였다. 그 곳은 금복이를 풀어놓고 키우는 정씨 아저씨네 자두밭이었다. 종인은 길가에 가깝게 심어진 나무에 손을 뻗어 잘 익은 자두를 자기 것 마냥 아무렇지도 않게 따더니 경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나무로 손을 뻗어 다른 자두를 따 옷에 슥슥 문지르고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종인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경수도 종인을 따라 자두를 옷에 슥슥 문질러보며 말했다.



 “함부로 먹어도 되?”
 “길가에 있는건 정씨 아저씨가 지나다니는 사람들 먹으라고 심은거라 상관없다. 엄청 달아. 먹어 봐라.”



 종인이 입가에 자두 즙을 묻힌 채 말했다. 종인이 자두를 먹는 소리가 꽤나 먹음직스럽게 들려와서 경수는 조금 고민하는 척 하다가 작게 한 입 베어물었다. 종인의 말처럼 아주 달았다.



 “맛있네.”



 자두를 다 먹은 종인이 손에 묻은 즙을 쪽쪽 빨아먹고, 잘 익은 것만 골라 자두를 몇 개 더 따서 경수에게 주었다.



 “혼자 먹으면  쓰나. 집에 가서 엄마랑 아빠한테 드려라.”



 경수는 입에 자두를 믈고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가져와 종인이 준 자두를 조심스럽게 넣었다.



 “안 깨지게 잘해라.”



 종인이 자두밭 안으로 들어갔다. 경수가 깜짝 놀라 들어가던 종인의 옷깃을 금복이를 만났을 때 처럼 붙잡았다.



 “맘대로 들어가면 어떻게 해!”
 “상관없다. 어차피 허락 받으려면 들어가야 돼. 아마 밭 어딘가에 정씨 아저씨가 일하고 계실거야.”
 “진짜 괜찮아?”
 “너 구경시켜 주려고 온거라 그러면 아마 맘대로 하라고 하실꺼다.”



 종인이 손을 뒤로 뻗고 제 옷깃을 잡은 경수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었다. 경수가 당황해 할 틈도 없이 종인이 성큼성큼 자두 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목청 터지도록 정씨 아저씨를 찾아 불렀다.



 “아! 저기 계신다.”



 저 멀리 나무에 기댄 사다리에 올라가 있는 정씨 아저씨를 발견한 종인이 냅다 뛰었다. 종인이 경수의 손을 깍지를 낀 채 꽉 잡고 있어서 경수도 종인을 따라 뛸 수 밖에 없었다.





 사다리 위에서 벌레 먹은 자두를 고르고 있던 정씨가 종인과 경수를 발견하고 사다리에서 내려와 반갑게 둘을 맞이해 주었다.



 “종인이 아이가. 오랜만이다. 학교 잘 댕기고 있제? 부모님 건강 하시고?”
 “예.”
 “옆에는 누고? 첨 보는 아가네.”



 정씨 아저씨가 쓰고 있던 모자의 넓은 챙을 살짝 들고 경수를 향해 물었다.




 “저기 이층집에 이사 온 우리 학교 전학생이에요. 같은 반이에요.”
 “아아. 그 집 서울서 누가 이사왔다 카더만. 아들 하나 있다는 것만 들었지 보는건 처음이네.”



 종인이 정씨 아저씨를 따라 웃으며 경수에게 작게 속삭였다.



 “인사 해라. 얼른.”



 경수가 종인의 눈치를 보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오냐. 아가, 니 이름이 뭐고?”
 “도, 도…경수…….”
 “도, 뭐라?”



 보다못한 종인이 경수 대신 대답해주었다.



 “경수요, 도경수.”
 “으─응, 도경수. 경수라, 이름이 참 좋네. 아, 너그들 자두는 따 먹었나?”
 “예. 경수가 맛있다면서 부모님 가져다 드린다고 몇 개 더 땄어요. 아참, 아저씨. 경수랑 여기 구경 좀 해도 되지요?”
 “하모. 구경 시켜 줄라고 여까지 왔나?”
 “예.”
 “기특허이. 잘 뵈주고, 어, 맞다. 윗집 순이 할머니 댁에 가 봐라. 그 집 순이 새끼 낳았덴다.”
 “예. 경수야, 가자.”



 정씨 아저씨가 다시 사다리 위로 올라갔다. 종인이 정씨 아저씨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경수도 뻣뻣하게 따라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종인이 이끄는대로 따랐다.





 자두밭은 넓었다. 나무가 높지 않아서 둘러보는 족족 가까운 곳에 자두가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자두밭 아래 난 파란 풀이 밟힐 때 마다 듣기 좋은 소리를 내었다. 자두 냄새가 향긋하게 퍼져있어 경수는 기분이 좋았다. 바닥에 떨어진 자두를 잘못 밟아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자두밭 구경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온 몸에 자두 냄새가 베인 것만 같았다.
 자두밭을 다 둘러보고 종인은 경수를 데리고 정씨 아저씨네와 가까운 연못에도 들렸다. 연꽃과 연꽃 잎이 연못 위에 떠 있었고, 작은 청개구리 몇 마리가 연꽃잎에 앉아 개굴개굴하고 노래를 불렀다. 개울물 만큼은 아니지만 연못의 물도 맑아서 속이 다 비추었다. 색깔이 고운 잉어 두 마리가 부드럽게 헤엄치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크지도 작지도 안은 연못 주변을 두세 바퀴 정도 돌고 종인은 정씨 아저씨가 말씀 해 주신 순이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순이 할머니 댁은 멀지 않아 금방 도착 할 수 있었다.



 “읍.”



 근처에 있는 소 외양간의 쾌쾌한 냄새가 경수의 코를 찔렀다. 경수는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래?”
 “……냄새. 지독해.”



 경수가 표정을 찡그렸다. 종인이 코를 킁킁 거렸다. 종인의 코에도 쾌쾌한 냄새가 묻었지만 종인은 태생부터 시골 사내인지라 냄새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종인이 제 코 끝을 슥 문지르고 말했다.



 “맡다 보면 익숙해진다. 참아라.”



 종인은 경수와 함께 초가집이라서 남들 집에 다 있는 흔한 대문조차도 없는 순이 할머니 댁 마당에 들어갔다. 마당에는 돗자리를 깔고 빨간 고추를 말리고 있는 순이 할머니가 있었다. 종인은 순이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빨간 고추를 조금 만지다 말했다.



 “순이 새끼 낳았다고 그래서 보러 왔는데 할매, 봐도 되지요?”
 “잉. 가까이 가지는 말어.”
 “예.”



 신이난 종인이 경수를 데리고 외양간으로 향했다. 또 다시 경수에게 역한 냄새들이 달려들었다. 자두  냄새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외양간의 쾌쾌한 냄새가 몸에 베일 것 같아 경수는 코와 입을 손으로 막았다.



 “순이가 누군데?”
 “누구긴. 보면 모르나.”



 종인은 좀 더 안으로 들어가 우리 안에 새끼와 함께 앉아있는 소, 순이를 가리켰다. 경수가 여전히 코와 입을 손으로 막고서 천천히 외양간 안으로 들어섰다. 살면서 처음 보는 송아지의 모습에 경수가 신기한 눈으로 순이 새끼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된 순이가 제 앞에 앉아있는 새끼를 혀로 핥아주었다. 커다란 눈망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순이가 핥아주는대로 순이의 새끼가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얌전한 모양새가 순이를 똑 빼닮은 듯 하였다. 
 어느 샌가부터 코와 입을 틀어막았던 손을 떼고 경수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순이의 새끼에게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귀여워. 눈이 참 예쁘다.”
 “그치.”



 고개를 끄덕이던 종인이 경수를 쳐다보았다. 경수는 갑자기 자신을 쳐다보는 종인에게 고개를 뒤로 살짝 빼며 물었다.



 “왜 쳐다 봐?”
 “니 눈도 순이 눈 같다.”
 “순이 눈?”
 “응. 예쁘다. 순이 눈처럼.”



 경수가 눈을 깜빡이다가 제 볼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반대 쪽으로 획 돌렸다. 목울대 까지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경수 마음도 모르고 종인은 혹시나 제가 한 말에 경수의 기분이 상했을까, 노심초사하며 물었다.



 “왜. 소 눈 닮았다그래서 삐졌나.”
 “나는 남자라니까. 예, 예쁘지 않아.”



 그렇게 말하곤 경수는 쿵쾅쿵쾅 발을 크게 울리며 외양간에서 먼저 나갔다. 종인은 순이와 순이 새끼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경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여전히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서 있는 경수의 시무룩하게 내려간 어깨를 쳐다보았다. 정말 삐졌나보다. 종인이 그렇게 확신하고 경수를 달래주기 위해 경수의 앞으로 가 서서 말했다.



 “난 너 보고 여자라고 안했는데.”
 “예쁘다는건 여자애한테만 쓰는 말이야.”
 “아니. 아까 금복이 봤지? 걔도 수컷인데 정씨 아저씨가 금복이한테 툭하면 예쁘다, 예쁘다 그런다.”



 그러더니 종인은 외양간 앞에서 경수를 데리고 나와 앞에 보이는 풀밭 사이사이에 핀 꽃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라. 꽃. 너는 저 꽃이 예쁘냐, 안 예쁘냐.”
 “…….”
 “예쁘지? 꽃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상관없이 사람들은 예쁘면 다 예쁘다그래.”
 “…….”
 “꽃이 남자라 그래서 안 예쁜 꽃이 어디 있고, 여자라 그래서 예쁜 꽃이 어디 있어. 꽃은 꽃대로 예쁜데.”



 종인은 풀밭에 난 꽃들 중 가장 키가 크고 예쁘게 핀 꽃을 꺾어와 어제처럼 경수의 귀에 꽂아주었다. 이번에는 경수가 표정을 찡그리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니까 니 눈도, 아니, 너도 그렇다고.”
 “…….”
 “너도 너 대로 예쁘다고. 알았나.”
 “……순이 눈 같아서 눈만 예쁘다며.”
 “아니. 가만보니 눈,코,입 다 예쁘게 생겼다, 너는.”



 경수가 다시 얼굴을 붉혔다. 종인이 귀에 꽂아 준 꽃을 만지고 싶지만, 땅바닥에 떨어질까 귀에 꽂아진 꽃 근처에 손을 두고 머뭇거렸다. 종인은 다시 풀밭에 있는 다른 꽃들 몇 송이를 더 꺾어 경수에게 주었다. 경수는 꽃 가까이에 코를 대고 꽃 냄새를 맡았다. 외양간에서 풍겼던 냄새와 달리 자두 밭에서 났던 냄새처럼 좋은 향기가 났다. 기분이 좋아진 경수가 조금 웃으며 손끝으로 꽃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종인과 경수는 순이 할머니 댁에서 내려와 정씨 아저씨네 근처의 연못과 자두 밭을 지나 맨 처음 도착했던 평평한 길로 돌아왔다. 종인은 허기가 졌다. 집에서 나올 때도 다 차려진 밥상을 한 번 보지 못하고 나왔기 때문에 먹은 거라고는 한참 전에 먹은 자두가 전부였다. 종인이 제 배를 살살 문질렀다. 그것을 보고 경수가 물었다.



 “배 아파?”
 “고파.”
 “고프다고?”
 “너는 안 고프냐.”
 “…….”



 경수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메고 있던 책가방을 앞으로 가져와 지퍼를 열었다.



 “자두는 됐다. 아까 먹었는데.”
 “자두 아니야.”



 부모님께 가져다 드리라고 따서 줬던 자두를 주는 줄 알고 종인이 거절하자 경수는 가방을 뒤져 무언가를 꺼내 종인에게 주고 책가방 지퍼를 닫아 가방을 도로 등에 메었다.



 “뭔데, 이게.”



 종인이 경수에게 받은 건 뚜껑이 닫혀있는 플라스틱 통이였다.



 “앉을 만한 데 없어?”



 경수가 묻자, 종인이 걸어왔던 논뚝을 보고 말했다.



 “저기 다시 건너가자. 여기엔 없다.”



 종인이 플라스틱 통을 들고서 먼저 논뚝을 건넜다.





 논뚝을 다 건너고 나서, 종인은 경수와 함께 동네에 있는 작은 정자로 향했다. 정자 가까이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어 햇빛도 잘 들지 않아 시원한 곳이었다. 그래서 지금같은 여름이면 정자에는 동네 어른들로 항상 득실득실 거렸는데 왠일로 오늘 정자에는 아무도 없었다.
 종인이 높지 않은 정자 계단을 올라가 신발을 벗었다. 뒤에 따르던 경수도 종인을 따라 신발을 벗었다.



 “이거 열어봐도 되나.”
 “응.”



 정자에 앉은 종인이 플라스틱 통을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어, 이건….”



 학교에서 점심시간 마다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고기 반찬이 가득한 도시락이었다. 도시락이라고 해봤자 밥과 볶은 고기가 전부였지만 종인은 아주 좋아하며 엄지 손가락과 집게 손가락으로 고기를 하나 집어먹었다.



 “맛있다.”
 “너 먹으라고 가지고 온 거야.”
 “나 먹으라고?”
 “응. 아, 잠깐만…….”



 경수가 가방에서 봉지에 쌓인 숟가락을 종인에게 주었다. 숟가락은 달랑 하나였다.



 “야, 사람이 둘인데 숟가락을 하나만 가지고 오면 어떡하냐.”
 “말했잖아. 너 먹으라고 가지고 온거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걸 나 혼자 먹냐. 어쩔 수 없지.”



 하나뿐인 숟가락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종인이 밥과 고기를 적당히 떠서 경수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경수가 고개를 뒤로 빼었다. 그러자 종인은 단호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아─아, 입 벌려라.”



 아기에게 밥을 떠 먹여주는 엄마마냥 종인이 경수의 입 앞으로 숟가락을 계속 들이밀었다.



 “네가 가지고 온 건데 너부터 먹어야지. 나 혼자서는 안 먹는다, 절대로. 빨리 벌려라. 팔 아파 죽겠다.”



 그제서야 경수가 찔끔찔끔 입을 벌렸다. 종인이 제 엄마를 따라하며 옳지, 옳지, 하고 말하였다. 종인이 떠준 밥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경수가 먹은 후에야 종인이 저도 밥 한 숟가락을 떠 먹었다. 그리고 또 한 숟가락을 퍼서 경수의 입 앞에 가져다 대었다. 경수가 이번에도 고개를 뒤로 조금 빼었다. 종인이 무섭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숟가락을 경수의 입 근처로 계속 밀었다.
 정말 종인만 먹으라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인데, 종인이 눈치없이 자꾸만 자신에게도 숟가락을 들이밀어서 경수는 곤란한 듯 말했다.



 “나 점심 먹어서 배 별로 안 고파.”
 “누구는 안 먹고 왔나. 나도 점심 먹고 왔다. 자, 입 벌려라. 옳지, 옳지.”



 결국 경수가 입을 벌렸다. 경수가 밥을 먹는 것이 뿌듯한 지 종인이 미소를 지었다.





 사이좋게 밥을 나눠 먹고, 종인이 숟가락을 플라스틱 통에 넣어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는 뒤로 벌러덩 누워 큰 숨을 쉬었다.



 “아─, 덕분에 잘 먹었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돼.”
 “안 될 거 뭐 있나. 너도 누워 봐.”
 “나는 괜찮…….”



 경수의 말이 끊나기도 전에 종인이 몸을 일으켜 경수의 어깨를 감싸안고 그대로 뒤로 누웠다. 어어, 소리를 내며 넘어가던 경수의 머리에 종인의 팔이 닿았다. 정자 바닥에 경수의 머리가 부딪히지 않도록 팔을 뻗은 종인 덕분이었다.



 “봐라. 편하지?”



 굉장히 가까이에서 종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베게처럼 본의 아니게 종인의 팔을 베고 누워버린 경수가 마른 침을 삼켰다. 종인의 숨소리도 목소리처럼 아주 가까이에서 들렸다. 경수가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돌렸다. 하얗지는 않지만 깨끗한 종인의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이어서 도톰한 그의 입술도, 야무지게 오똑한 콧날도, 진하게 쌍꺼풀 진 눈도, 아마도 잘생겼을 이마를 조금 덮고 있는 머리카락들도, 모두 경수의 눈에 들어왔다.
 경수는 사뭇 날렵해보이는 종인의 턱선을 보다가 어느새 종인과 눈이 마주쳐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의 일이라 경수가 고개를 돌리는 것도 깜빡하여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종인을 마주본 건 처음이라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서려왔다. 경수의 눈이 깜빡이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었다. 종인의 얼굴이 경수에게로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좀 더 가까이. 조금만 움직이면 서로의 코가 맞닿을 정도로 둘 사이가 아주 가까워졌다. 경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가까워진 종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리고 경수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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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어어우아우아 심장어택 뽜봥 작가님 ㅠㅠ 저 설레요... 하... 정주행은 역시 좋은 거네여 이 글 발견하길 잘한 거 같아요ㅠㅠㅠ 잘한 거죠 당연히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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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준] 남친이 잠수 이별을 했다_단편
08.01 05:32 l 김민짱
[전정국] 형사로 나타난 그 녀석_단편 2
06.12 03:22 l 김민짱
[김석진] 전역한 오빠가 옥탑방으로 돌아왔다_단편 4
05.28 00:53 l 김민짱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十一3
01.14 01:10 l 도비
[김선호] 13살이면 뭐 괜찮지 않나? 001
01.09 16:25 l 콩딱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十2
12.29 20:51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九1
12.16 22:46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八2
12.10 22:30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七2
12.05 01:41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六4
11.25 01:33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五2
11.07 12:07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四
11.04 14:50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三
11.03 00:21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二
11.01 11:00 l 도비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一
10.31 11:18 l 도비
[김재욱] 아저씨! 나 좀 봐요! -024
10.16 16:52 l 유쏘
[주지훈] 아저씨 나 좋아해요? 173
08.01 06:37 l 콩딱
[이동욱] 남은 인생 5년 022
07.30 03:38 l 콩딱
[이동욱] 남은 인생 5년 018
07.26 01:57 l 콩딱
[샤이니] 내 최애가 결혼 상대? 20
07.20 16:03 l 이바라기
[샤이니] 내 최애가 결혼 상대? 192
05.20 13:38 l 이바라기
[주지훈] 아저씨 나 좋아해요? 번외편8
04.30 18:59 l 콩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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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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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 17:53
[몬스타엑스/기현] 내 남자친구는 아이돌 #713
03.21 03:16 l 꽁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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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0 05:15 l 콩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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