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싶어서 쓰는 1
: 쇼트트랙 국대 배진영 + +
29. 동계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개막식은 화려했고, 선수들 경기 일정도 다 뜬 지 오래였다.
"야, 삐약이한테 전화 왔어?"
"아니."
"ㅇㅇ아, 배 서방한테 연락 왔었니?"
"아니."
"언니! 배한테 뭐 들은 거 없어요?"
"......"
"여주 언니?"
"없어! 없다고!"
"...언니...?"
"왜 하나같이 나한테 물어봐! 나도 몰라! 모른다고!"
30. 경기 준비로 선수들이 바쁜 건 알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고. 여주는 생각했다. 쇼트 모든 종목에 떡하니 진영 이름이 있는 걸 볼 때마다 속이 화끈거렸다.
"언니, 일단은 진정 좀 해요."
"......"
"아니 나는 혹시 언니한테 라면 전화라도 왔을까 했죠."
"......"
"나도 배 못 본지 꽤 됐고. 엄마아빠한테도 아예 생존신고 안 하는 거 같던데?"
"......"
"근데 이상하긴 하네요. 배가 이렇게까지 연락이 없을 애는 아닌데."
"...혹시, 저기..."
"어? 언니 잠깐만요. 나 전화!"
"......"
"네! 어머어머, 황제님! 무슨 일이시죠? 네? 지금요? 어, 지금은 조금..."
"...간다, 가. 잘 있어라 도움 안 되는 배진영 쌍둥이."
"언니 미안해요! 황제님! 저 지금 영통 키고 있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용안 영접 삼 초 전! 이 초 전! 꺄악, 일 초 전!"
31. 사실 여주는 쪽팔려 죽고 싶었다. 일전에, 잠에 취해 진영에게 고백 한 건 기억나는데 무슨 우연인지 그날 이후로 진영과의 연락이 뚝 끊겼기 때문이었다. 진짜 고백 피하려고 그런 건가. 마음이 복잡했다.
"야! 옹청아!"
"? 뭐야, 너? 왜 여기 있어?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왜긴 왜야. ㅇㅇㅇ 잡으려고 왔다, 얘 봤어?"
"걔를 왜 나한테 찾지? 하여주한테 물어보던가."
"하여주? 어디 있는데."
"저기 어디 봐. 실연당한 애처럼 죽상으로 늘어져서 재고 정리 하고 있을 걸."
32. 한껏 우울해진 여주에게 다가온 구세주, 분명 TV 속 올림픽 경기장 안에 있어야 할 다니엘이었다.
"뭐 초상났냐?"
"...꺼져. ㅇㅇㅇ은 나도 못 봤어."
"아이씨. 너도 몰라? 대체 어딜 간 거야. 신경 쓰여 죽겠네."
"그러게 있을 때 좀 잘 하지."
"? 파우더를 시럽이라고 체크하는 네가 할 말은 아닌 듯하다?"
"? 그러네. 파우더구나, 이거."
"...배진영 때문에 이러냐?"
"......!"
"표정 무슨 일이야 대체."
"너 배진영 알아?"
"왜 몰라. 나 쇼트에서 스스로 넘어간 거 몰랐냐?"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니? 너라면 알겠어?"
"이 새끼 공격적인 거 봐. 그래서, 정보 줘. 말아."
"사랑합니다. 다니엘님. 당신의 ㅇㅇㅇ은 본가에 내려갔습니다."
33. 결국 친구를 팔아 얻은 진영에 대한 소식에, ㅇㅇ은 곧장 평창으로 내려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삼십 분 뒤 다니엘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이게 과연 잘 하는 짓인가 모르겠다."
"나한테 발설한 죄로 매장당하지 않게 잘 말해줄게."
"진짜 장난 아니고 하나도 못 미더우면 어쩌냐?"
"그럼 믿지 말아야지 뭐. 야, 근데 많이 다치고 그런 건 아니지? 어?"
"왜 이래? 누가 보면 사귀기라도 하는 줄."
"......"
"어? 설마? 뭐야, 드디어 너희 사귀냐? 배진영 이 자식! 성공한 돌직구네!"
"아 뭐래. 그런 건 아니고, 다시 제대로 한 번 말해봐."
"뭘."
"뭐 때문인지 생전 안 그러던 애가 계주 연습하다가 돌연 넘어졌고, 그게 하필 얼굴에 큰 상처를 냈고. 그거 나한테 보이기 싫어서 일부러 전화 안 한다고?"
"...니가 다 말했네."
"아니, 근데 왜? 전화로는 얼굴 보이지도 않잖아!"
"멍청이냐? 목소리 들으면 당연히 얼굴도 보고 싶어지잖아!"
"...아?"
"배진영 성격에 퍽이나 목소리로 참겠다. 아예 누르는 게 낫지."
34.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을 열리는 곳은 넓고 컸다.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오늘 마침 네 사촌 예선 경기 있거든? 거기라도 가있어."
"너는?"
"나는 진짜 가봐야 해. 코치님한테 깨지게 생겼어."
"...하여간 너도 참 대단하다. 중요 경기 앞두고 무단이탈이나 하고."
"무단이탈은 아니거든? 생각보다 시간이 좀 많이 걸려서 그런 거지. 아 그리고 ㅇㅇㅇ, 얘가 전화 번호 까지 바꾼 걸 어떡하라고!"
"등신."
"? 너 지금 나한테 욕했냐?"
"잘못 들은 거야. ㅇㅇ이 바뀐 번호는 연락 오면 알려줄게."
"...왜 갈수록 애가 뻔뻔해지지? 옹성우도 아니고 무슨."
"진짜 기분 나쁜 소리 하네. 가라. 나도 간다. 혹시 너도 경기 있거든 잘 하던가."
"야! 피겨 경기장 찾을 수는 있지?"
"나를 뭐로 보고. 이 정도는 껌이지."
35. 그 말을 한지 세 시간. 여주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길을 잃었다. 아주 큰일이었다.
"...돌겠네. 여기가 어디야. ...아... 이건 누구한테 전화해도 설명 못하는 길목이잖아."
"저기요."
"? 저 불교 믿습니다."
"아니. 그런 거 아니고, 피겨 경기장 찾으시는 것 같은데."
"? 네?"
"저도 거기 가는 길이에요. 따라오세요."
"얼굴도 다 가리신 분을 뭘 믿고 제가...?"
"...믿을 만한 분께 전화하면서 오시면 되잖아요."
"......"
"잘 따라오세요. 여기 사람이 많아서 길 잘못 들어서면,"
"근데요."
"?"
"제가 피겨 경기장 찾는 건 어떻게 아셨죠?"
36. 호러인가. 공포인가. 보기보다 겁도 많고 의심도 많았던 하여주는 눈앞에 서있는, 고글과 마스크로 온 얼굴을 가리고 있던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누구세요?"
"......"
"저는 피겨 경기장 찾는다고, 제 입으로 한 마디도 안 했는데요."
"......"
"계속 대답 안하시면 신고할게요. 스토커라고."
"...알겠어요. 고글 벗을게, 벗으면 되잖아요."
"? 고글만 벗어서 될 게 아닐 걸요? 그리고 왜 반말하세요? 초면 아닌가요?"
"초면 아니잖아요."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어떻게 목소리도 못 알아들어. 나 조금 서운해요, 여주 누나."
"??? 왜, 왜 여기 있어요?"
"하도 안 와서 데리러 나왔어요."
37. 고글만 벗은 채 다시 보니, 그렇다. 여주가 신고하겠다고 겁박한 남자는 배진영이었다.
"다니엘 형한테 들었어요. 누나 여기 와있다고."
"......"
"피겨 경기장에 있을 거라 해서 가봤는데 없기에 찾으러 나왔죠."
"......"
"...많이 놀랐어요? 미안해요. 나는 그냥 진짜 경기장에 데려다 주고만 가려고."
"보고 싶었어요."
"네?"
"그 동안 잘 지냈어요? 나는 못 지냈는데."
"?? 누나?"
"얼굴 상처는? 괜찮아요? 다른 곳은 안 다쳤죠?"
"......!"
"...누누이 말하지만 대답부터 하고 설레는 표정 지으라고-"
38. 여주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진영이 그대로 여주를 끌어안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주 숨도 못 쉬게. 폭삭.
"아, 아. 진짜 이렇게 될 것 같아서 죽어라 피했는데."
"...?"
"나도 보고 싶었어요. 너무 보고 싶어서 아마추어처럼 계주 하다가 넘어지기나 하고."
"......"
"그래도 누나 걱정시키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참아야지. 경기 끝나고, 메달 따면 제대로 다시 고백 해야지 그랬는데."
"...아."
"다 망했어. 이게 다 누나가 여기에 와서 그래요."
"...갑자기 되게 미안하네요."
"맞아요. 이렇게 예쁘게 내 앞에 나타난 건 진짜 미안해해야 해. 누나 보니까 경기고 뭐고 그냥 누나랑 떨어지기도 싫잖아요."
"그래도 경기는 잘 마무리를 해야,"
"근데 누나."
"왜요?"
"인간적으로 나도 좀 안아줘요."
"네?"
"손."
"?"
"누나 손 내 허리에 두르라고요. 빨리."
39. 결국 여주는 진영과 함께 민현의 경기를 관람하게 되었다. 가봐야 하지 않냐는 말에 괜찮다며 계속 달라붙는 진영을 못이기는 척 받아주는 여주의 얼굴이 썩 밝았다.
"형은 오늘도 잘 하네요."
"그러게요."
"나도 되게 잘 타는데."
"알아요."
"진짜 알아요? 내 경기 본 적 있어요?"
"있죠. 왜 없겠어요."
"아 안 되는데. 4년 전에 나 되게 이상한데."
"귀여웠어요."
"?"
"경기 내일이랬죠? 잘 해요."
"......"
"왜 또 그렇게 봐요?"
"누나."
"네."
"이 타이밍에 정말 웃기고 뜬금없는 거 아는데."
"네."
"내가 500에서 금메달 따면, 나랑 사겨주세요."
"......"
"그리고 1000에서 금 따면, 존댓말도 하지 말고 그냥 진영아 그렇게 불러주세요."
"......"
"1500에서도 따면, 좋아한다고 다시 말해주세요. 잠결에 말고. 진짜."
"...그게 다에요?"
"네."
"그럼 나도 하나 조건 걸게요."
"?"
"계주에서 금메달 따면 지금 말한 거 다 들어줄게요. 그러니까 힘내요."
40.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 오오오오오, 이게 무슨 일입니까아앜! 배진영 선수! 우리의 자랑스러운 배진영 선수!! 또 서서히 치고 올라오는 스피드가 예술입니다! 저렇게 매끄럽게 인코스, 아웃코스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어요오!!!!
"배 서방, 이번에도 금 따겠네. 정말 잘 탄다."
"......"
"저거 1500이지? 저거 까지 따면 몇 관왕인 거야?"
"...삼관왕."
"와! 배 서방 벌써 두 개나 땄어! 500이랑 또 뭐였지?"
"1000. 아 근데 좀 조용히 해 봐. 경기에 집중 하자."
"...또 예민해졌어. 달리는 건 배 서방인데 왜 여주 네가."
- 그렇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배진영 선수! 지금처럼만 유지하시면 됩니다! 한 바퀴! 반 바퀴 후면 이제 우리나라의 다섯 번째...! 와아아앜!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대한민국의 천재! 빙상계의 보물! 우리의 배진영 선수가 기어이 삼관왕을 차지하고야 말았습니다!!!
"근데 여주아."
"왜?"
"눈에 그거 눈물이니?"
"하품해서 그래."
"아, 요즘에는 입도 안 벌리고 하품을 하는구나."
"시끄러워 구름 오빠."
- 아아, 자랑스럽습니다. 우리의 배진영 선수. 정말 자랑스러워요! 네! 태극기를 둘러맨 배진영 선수가 우승 세레모니를 하고 있군요! 그런데 저건 대체 어떤 의미일까요?? 매달 딸 때마다 하던데 오늘 인터뷰에서는 꼭 물어봐야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요!
"너희 또 밤새 통화하겠네. 여주야. 오빠는 먼저 자러 갈게."
"...어, 진영아.”
"여주야? 오빠 자러간다니까?"
"그래. 봤지. 축하해."
"...동생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진짜 가슴 아프네."
+ 보너스 인터뷰
"인터뷰하기에 앞서, 우선 삼관왕 축하드립니다! 무려 개인 종목에서! 그것도 나가기만 했다 하면 금메달을 가져오셨어요!"
"다 운이 좋았던 거죠. 감사합니다."
"사실상 계주도 은메달을 따셨으니까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석권하신 건데, 기분이 좀 어떠세요?"
"당연히 너무 좋아요."
"정말 역사상 참 이례적인 일이 아닌가 싶은데요. 뭐, 배진영 선수는 지난 올림픽에서도 활약이 대단하셨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 때보다 더 대단한 성적을 거두셨는데 4년 동안 뭔가 이거 엄청 열심히 했다! 이런 비결 있으신가요?"
"...글쎄요."
"어! 뭔가 있긴 있다! 그렇죠? 뭔지 저한테만 살짝 귀뜸이라도 해주세요!"
"아무래도 사랑과 응원이 아닐까요?"
"사랑이요? 아니, 응원은 둘째 치고 사랑이요? 제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사랑인가요?"
"네. 제가 이번에 딴 메달은 주인이 따로 있거든요."
"설마, 설마 완주하시고 계속 세레모니 하시던 그 딱딱이도 그럼...?"
"아, 들켰다. 누나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한 거라서 저 이제 큰일 났잖아요."
"와하! 심지어 연상의 그녀! 메달도 따시고 연애도 하시고! 축하드려요! 다 이루셨네요! 어떻게, 지금 영상 편지라도 남기실까요? 어떠세요?"
"조금 부끄러운데."
"여기 음악 깔아주세요!"
"이 쪽 보면 되나요?"
"네네! 그냥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여주 누나, 와. 이렇게 공개 고백하려니까 진짜 심장 떨리네요. 어, 일단 누나! 나 메달 다 땄어요! 계주는 못 땄는데 다른 건 다 땄으니까 내 소원 꼭 들어줘요. 특히 1500으로 걸었던 거 완전 기대하고 있을게요! 금방 봐요, 우리! 제 메달 다 누나 꺼 에요!"
"끝인가요? 더 할 말 없으세요, 배진영 선수?"
"아, 그리고 사랑해요."
"네?"
"하여주. 여주 누나, 진짜 많이 사랑해요. 이제 나랑 찐하게 연애해요! 사랑해요!"
"...어후, 순간 듣는 제가 다 설렜습니다! 고백 한 번 화끈하게 하시네요!"
"이거 마지막 말이 포인트니까 꼭 다 내보내 주셔야 해요!"
"걱정 마세요!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겠습니다."
"숨소리... 무튼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특종 감사해요! 연상의 그 분과는 예쁜 사랑 오래오래 하시구요! 지금 까지 쇼트트랙 천재, 빙상계의 보물! 동계 아이돌! 무려 배진영 선수와 함께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삼관왕 정말 축하드려요! 그럼 저희는 안녕! 4년 뒤에 다시 만나요!"
++) 간략한 인물관계도 |
1. 나이 배진영. 배너블. 박지훈 : 21살 강다니엘. ㅇㅇㅇ. 하여주. 옹성우 : 22살 황민현. 하성운 : 24살
2. 혈연 배진영 - 배너블 : 쌍둥이 오빠 동생 하성운 - 하여주 : 친남매 황민현 : 하성운 하여주 남매의 외사촌
3. 지연 배진영 - 박지훈 - 배너블 : 친구 강다니엘 - 옹성우 : 친구 + ㅇㅇㅇ - 하여주 : 친구 황민현 - 하성운 : 친구
4. 애정 배진영 - 하여주 (쇼트트랙 국대 배진영 이야기) 황민현 - 배너블 (피겨 황제 황민현 이야기) 강다니엘 - ㅇㅇㅇ (스피드스케이팅 국대 강다니엘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