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사님, 밀항시간이 앞 당겨 졌어요. 1시간 뒤에도 제가 연락이 안된다면 밀항장소에 지원팀 좀 보내주세요. 이유는 다음에 꼭 설명할게요. 부탁드려요, 제발. 」
“나한테 해줄 이야기 있잖아.”
.
.
.
“여 갇혀 있을라니까 답답해 죽겠어요. 뭔 3주나 병원에 있으라카는지. 원래 맞아서 아픈거는 그냥 파스 한번 뿌려주면 낫는긴데.”
그 마음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지.
오랜만에 찾는 다니엘의 병실은 그 간 혼자서 심심했을 다니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듯 여기저기 어질러져있었다.
마치 현실 남동생의 방안을 보는것 같아서 하나하나 치우기 시작하면, 그냥 앉아있으라는 내 말에도 뭐가 그리 불안한지 링겔을 꽂고도 나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다니엘이었다.
정신사나우니까 제발 앉아있으라고 강하게 말하면 결국 자기는 원래 이렇게 더러운 남자가 아니라며 꼬리가 축 쳐진 강아지마냥 말해오는 다니엘이었다.
그런 다니엘을 다시 침대에 강제로 앉혀두고 가습기에 물까지 새로 받아왔다. 그리고 그앞에 앉아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자꾸만 나도 몰래 다른 생각에 고개가 방향을 잃고 땅을 바라봤다.
“다니엘아...”
“뭔데, 말해봐요. 아까부터 그렇게 고민하지말고.”
늘 스스로 눈치가 빠르다고 자부하던 다니엘이 이번에도 나의 표정을 보더니 단번에 나에게 고민이 있음을 알아맞추었다.
“니엘아, 너는 다른 사람한테 꿈 이야기 해본적 있어? 그러니까, 꿈으로 보는 미래를 보는..”
“웬만하면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마요 누나.”
“왜..?”
내 초등학교 때 부터 진짜 친한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걔한테 마음 터놓고 처음으로 꿈 이야기를 했는데, 바로 미친 사람 취급 해버리더라. 그 뒤로 학교에서 관종, 정신병자, 미친놈 취급을 당했어요. 맨날 내 책에 꿈꾸는 미친놈 이라고 도배하듯 낙서 해놓고, 심심하면 때리는건 기본이었고. 그래가꼬 내 복싱 배운거잖아요.
또 있어요. 운동 하면서 만난 코치님인데 맨날 악몽같은거 꾸고 이러니까 자꾸 이상하게 생각해서 내 꿈 얘기 해줬거든요. 바로 돈으로 써먹을라고 내 몰래 별짓을 다 해논거에요. 그래서 바로 도망쳐지.
결론은 다른 사람들은 우리 이해 못해요. 그러니까, 웬만하면 말하지 마요.
숙여진 고개는 쉽게 들리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질문에 아까의 달달함은 온데간데 없었고 꾹 다문 입술에는 긴장감이 베여있었다.
"밀항시간 바뀐거 어떻게 안거야? 설명 기다리고 있었어."
여전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다정하게 물어오는 황형사님이셨지만 그에 비해 나는 어쩔줄 몰라하며 애써 손끝을 매만지고 있었다.
황형사님에게 내가 미래를 보는 꿈을 꾼다고, 많은 사건들을 그렇게 해결해왔고 황형사님도 꿈에서 봤다고 그렇게 이야기해야 맞는걸까.
그렇지 않다면, 다니엘의 말처럼 나를 이해해줄거라는 기대 따윈 갖지 않는게 맞는걸까.
고민하는 머릿속처럼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지만, 열심히 머리를 굴려봐도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적당한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느낌이 그랬어요, 라고 말을 하기엔 누가봐도 너무나 명확한 거짓말이고 그 밀항업자가 알려줬어요, 라고 하기엔 거짓이 쉽게 밝혀질게 뻔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걸까 초조한 마음에 아무 죄 없는 애꿎은 입술만 계속해서 뜯었다. 누가봐도 당황스러워 하는 내 모습이었다.
도저히 황형사님을 바라 볼 용기가 나질 않아 한숨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도 나의 선택은 후자였다. 다니엘이 그랬던것 처럼, 다니엘의 주변사람이 다니엘에게 그랬던것 처럼 황형사님과 멀어지게 될까봐, 황형사님이 나를 이상한사람 취급이라도 할까봐 겁이 났다. 그럴바에 나에게 실망할지라도 지금 입을 다무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황형사님..."
"여주야."
지금은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죄송해요. 라고 말을 하려고 하면 그보다 먼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내손을 따뜻하게 잡아오는 황형사님 이셨다.
"말하기 힘들다면 기다릴게. 언제든 천천히 이야기 해줘."
누구보다 예쁜 미소로 말을 건넨 황형사님은 이내 손목에 걸린 시계를 한번 보더니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로 "이만 들어갈까?" 하고 물어왔다.
그런 행동 또한 나에 대한 배려인걸 알기에 묵묵히 황형사님의 손을 맞잡고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내리쬐는 햇살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날 배려하는 황형사님 이셨지만 한번 무거워진 마음은 쉽게 가벼워지지 않았다.
물론 민현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건네주지 못한 예쁜 선물상자가 주머니 안을 빙빙 맴돌았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민현의 주머니또한 무겁게 짓눌렷다.
***
"사랑해, 여주야. 이제 서로 좋아하는 사이 말고, 사랑하는 사이 해도 될까?"
짧지만 강한 꿈이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 일찍 떠져버린 눈은 눈을 뜨자마자 반달처럼 웃음지어 휘어졌다. 마찬가지인 입꼬리도 머리가 베개에서 떼어지기도 전에 함께 휘어져 올라갔다. 그렇게 미친 사람처럼 눈을 뜨자마자 한참을 웃음지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말을 건네던 황사님의 아파트 문앞에 붙여져있던 도시가스 검사일이 바로 오늘을 가리켰고 그 작은 순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날이 오늘이구나.
오늘이 프로포즈 받는 날인걸 눈치 챈 여자들의 마음도 이렇게 설레였을까? 예쁘게 꾸미라고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진것같은 예감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최대한으로 멋을 냈다.
머리에 셋팅을 하면서도, 평소와는 다른 과한 화장과 옷을 입으면서도 흥얼거리는 콧노래는 죄다 사랑노래였다.
하루종일 들뜬 기분은 경찰서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무슨일이 있냐는 사람들의 물음에도 그저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고 평소 귀찮고 답답하게 쌓여가던 일들도 콧노래와 함께라면 못할이유가 없었다.
"점심먹으러 갑시다."
"오늘 야근 각인데?"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시간은 흘러가는데 황형사님은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최소한 오늘 약속있어? 집에 갈때 데려다줄게. 라는 말이라도 꺼내줘야하는거 아니냐구요.
퇴근할때 뭔가 있겠지, 같이 야근이라도 해야겠다 했던 마음은 내 눈앞에 놓인 블랙커피처럼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나에게 피곤하지 않냐며 따뜻한 커피를 건네는 황형사님의 모습이 괜히 미웠다.
'여주야, 잠시 탕비실로.'
씁쓸한 내 마음만큼이 쓰구나- 하고 커피를 홀짝이고 있으면 컴퓨터 메신저를 통해 탕비실로 나를 부르는 하형사님이셨다. 이렇게 남들 몰래 탕비실로 부를 일이 잘 없는데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하형사님이 먼저 들어간 탕비실을 조금의 시간을 둔 뒤 따라들어갔다.
"무슨일 있으세요?"
"여주야, 너 아직 민현이랑 사귀는거 아니지?"
"네..?"
"사귀는거 아니면 소개팅 한번만 나가주라 제발."
당황스러운 마음에 연신 되물으면 진심으로 부탁하는듯 무릎을 절반 꿇은 하형사님은 자신이 실수로 약속을 파토냈는데 그 벌로 소개팅을 주선해주기로 했다는거였다. 그리고 그 상대는 저번에 이야기했었던 다른 경찰서의 그 경찰.
아무리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닐지라도 늘 혼자 애타하며 소개팅에 나가지말라고 귀엽게 질투하던 황형사님이 떠올라 소개팅 같은거 한번도 나가본적 없다고 곤란함을 나타내면 결국 무릎을 꿇고 부탁해오는 하형사님이었다.
"진짜, 제발 부탁할게. 나 너 아니면 죽는다 여주야. 그냥 지금 저녁시간에 나가서 대충 저녁만 먹고 와주라, 그럼 내가 가서 사건터졌다고 너 불러낼게."
"그래도.."
"민현이랑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할게. 제발, 여주야. 응?"
***
"이런 소개팅 같은거 싫어하신다고 들었는데 오늘 나와주신다길래 조금 놀랬어요. 성운이를 협박한 보람이 있나봐요."
결국 저녁시간이 되자마자 경찰서 앞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밥보다는 시간이 덜 걸리는 카페가 조금이라도 함께 있을 시간을 줄일것같다라는 나의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10분 정도만 앉아있다가 긴급사건을 핑계삼아 빠져나올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와 붙임성 좋은 남자분의 성격덕에 대화가 조금 길어졌다.
"성운이 프로필 사진보고 깜짝 놀랬거든요. 강력반에 이렇게 예쁜여자가 있어도 되나 싶어서요. 진짜 100% 제 이상형이시거든요."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전혀 없어보였다.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시하고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편해지는 내 마음은 자꾸만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여주씨, 여기 뭐 묻었어요."
홀로 대화를 이어가던 남자는 소근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볼을 가리켰다. 남자가 가리킨 쪽을 따라 내손도 나의 볼로 향했다.
"거기말고 반대 쪽이요."
"여기요?"
"아뇨. 그... 잠시 실례 좀 할게요."
결국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대편에 앉은 나에게로 몸을 숙였다. 황형사님과는 다른 조금 무거운 향수냄새가 훅 들어왔다.
딸랑-
"어서오세요."
남자는 조심스럽게 나의 볼에 묻은 먼지를 떼어냈고 가까워진 거리에 민망한 나의 눈은 맑게 울리는 종이 달린 가게의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러면, 이 순간 가장 생각났지만 보고싶지 않던, 황형사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확히 나와 눈이 마주친 황형사님은 그대로 발검음을 멈추었고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갔다. 냉기가 서린 황형사님의 표정이었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정성스럽게 나의 볼에서 먼지를 떼어낸 남자는 홀로 뿌듯하게 "됐다"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멍하게 황형사님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더니 "여주씨?" 하며 몇번이고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럼에도 나의 시선은 황형사님에게서 거두어지지 않았고 결국 남자는 나의 시선이 닿는 곳을 바라보았다.
"어, 황형사!"
아, 그제서야 저번에도 황형사님이 이 남자분을 안다고 했던 말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래서인지 남자는 황형사님께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황형사님은 이 남자를 보자마자 몸을 돌려 빠르게 카페 밖으로 나가버렷다.
별 다른 수가 없었다. 이 남자에게 예의가 아니라는것쯤은 알지만 그까짓 예의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죄송하다는 말도 건네지못한채 반사적으로 가방을 챙겨들고 황형사님을 따라나갔다.
"여주씨, 어디가요!"
"황형사님, 오해에요."
"저번부터 너 소개팅 해달라던 그 남자잖아. 그 남자랑 소개팅한게 아니면 뭔데?"
"그러니까, 소개팅을 한건 맞는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하지. 분명 내가 잘못한건 맞았다. 하지만 나도 원치않았던 상황이었던 만큼 억울한 마음이 있어 해명을 하려 하면, 단단히 화가 난 황형사님은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앞서가는 황형사님의 팔을 잡아도 황형사님의 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 일의 원인이 되어버린 하형사님께 SOS를 청해야겠다 싶어서 하형사님께 전화를 걸려고 하면 먼저 앞서가던 황형사님의 걸음이 멈추었다.
"진짜 하형사님이 억지로 부탁해서 그랬어?"
"네, 하형사님이 막 무릎꿇고 부탁을 하는데..."
"그럼 오늘 왜그렇게 예쁘게 하고 온건데?"
"네?"
"평소랑 다르잖아. 옷도, 머리도. 하루종일 기분좋아서 들떠있었잖아. 그 이유가 소개팅이 아니라면 어떻게 설명한건데."
"그건....."
"거봐, 대답 못하잖아."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황형사님은 더 화가난듯 차가운 표정으로 다시 경찰서로 향했다. 그런 그를 더이상 잡을수도 없었다.
꿈에서 황형사님이 저한테 고백했거든요, 사귀자고. 이렇게 대답할 수가 없잖아. 황형사님 말대로 대답을 못하잖아.
분명 오해인데, 오해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멀어져가는 황형사님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점점 더 멀어져가는 황형사님을 바라보며 눈물이 뿌옇게 차올랐다.
그 무서운 일들도 울지 않고 견뎠으면서 바보같이 황형사님 일이라면 눈물부터 차올랐다. 결국 경찰서 주차장 한가운데 서서 차오르는 눈물을 꾸역꾸역 닦아냈다.
"야, 김여주. 너 진짜 민현이 만났어?!"
"........."
"뭐야, 너 울어?"
흐르는 눈물을 홀로 닦아내고 있으면 내 옆을 스쳐 달려가던 하형사님은 이내 나를 발견하고 나에게로 오셨다. 이미 모든 상황을 전해들은듯한 하형사님은 바쁘게 나에게 물어왔지만 이내 나의 눈물을 보고는 어쩔줄 몰라하셨다.
"내가 다 설명해줄게. 다 오해라고 내가 억지로 시켰다고 민현이한테 말할게."
하형사님의 큰 눈이 미안함으로 한가득 찡그려졌다. 우는 나를 달래듯 토닥이던 하형사님은 오해는 빨리 풀어야한다며 소매로 슥슥 나의 눈물을 닦아주고는 함께 경찰서 안으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앞서가는 하형사님을 따라 코를 훌쩍이며 사무실로 들어가면 예상과는 다르게 황형사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그에 당황한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민현이 어디갔어?"
"되게 무서운 표정으로 갑자기 퇴근한다던데?"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잡지도 못했..야, 김여주 넌 어디가!"
***
한순간 머리속에 드는 생각은 황형사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곧바로 경찰서를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지만, 아쉽게도 황형사님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낙심할 시간도 없었다. 술에 취해서 갔었던 황형사님의 집이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어렴풋한 기억을 가지고 택시에 올라탔다.
하지만 퇴근길에 꽉 막히는 도로와 제대로 된 주소도, 장소도 모르는 나이기에 결국 얼마가지 못하고 다시 택시에서 내렸다.
한손에는 황형사님께 통화를 걸고있는 전화기를 들고 익숙하길 바라는 길을 따라 열심히 달렸다.
그렇게 여기저기 달리다보면 무언가 낯이 익은 가로등과 아파트 입구였고, 그저 느낌이 가는대로 흐릿했던 이 기억이 맞기를 바라면서 엘리베이터를 올라탔다.
'901호'
오늘 꿈에서도 확실하게 본, 유일하게 정확한 나의 기억이었다. 가파른 숨소리와 함께 9층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빠르게 엘리베이터가 움직였고 그 안의 거울에 비친 내모습은 여기저기 흩날린 머리와 땀으로 지워진 화장, 낮과는 달리 차가워져버린 공기에 빨갛게 변해버린 코와 볼까지. 결국 하루종일 공들이고 신경쓴 시간들이 물거품이 되었다. 처음으로 미래를 보여준 꿈이 원망스러워졌다. 그 꿈만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거잖아.
이내 9층을 알리는 익숙한 여자의 안내 음성이 들려왔고 내 손은 빠르게 초인종을 눌렀다. 그 순간까지도 황형사님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띵동-
"누구세요-
여주야?"
이내 살짝 열린 문틈사이로 그토록 바라던 황형사님의 얼굴이 보였다. 이 상황을 오해하고, 끝까지 전화를 받지않는 황형사님이 너무나도 미웠지만 그런 얼굴을 보자마자 바보같이 또 눈물이 먼저 황형사님을 반겼다.
"일단, 들어와."
당황한 황형사님은 일단 나를 집안으로 안내했고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황형사님의 품안에 와락 안겼다. 조용한 집안에는 나의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아까보다는 조금 풀린듯한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차가운 황형사님은 나의 눈물에 결국 손을 들어 어깨를 토닥이셨다. 그 손길에 또 아이처럼 울음이 새어나왔다.
“다 설명할게요. 가지마세요, 황형사님...”
“화 안낼게. 그러니까 울지마, 응?”
고개를 들고 바라본 황형사님은 다시 원래의 따뜻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 따뜻한 눈빛이 다른 이야기를 듣는것보다 네가 우는게 가장 먼저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날 달래던 황형사님은 따뜻한 컵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한잔을 내밀었다. 쇼파에 앉아 두손으로 차를 들고 있으니 따뜻한 수증기로 인해 얼어있던 얼굴이 간질거렸다.
“이제 안울거지?”
끄덕-
훌쩍임마저도 멈추고 따뜻한 눈길을 보내는 황형사님께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로인해 옆 머리가 흘러 내리자 조심스럽게 머리를 쓸어넘겨주는 황형사님이었다.
“황형사님. 제 말, 믿어주실꺼죠?”
말도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미래를 보는 꿈을 꿔요. 꿈을 꾸면 반드시 그 일이 미래에 일어나요. 바보같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도 미래의 일들을 바꾸지 못했는데, 그러던 날에 황형사님을 만났어요. 앞뒤 가리지 않고 온몸을 던져서 아이를 구해내는 황형사님을요. 그렇게 그뒤로 황형사님 꿈을 자주 꿨어요.
부끄럽지만 꿈에서 보았던 황형사님과 저는 서로를 행복하게 바라봤고, 그런 황형사님을 만나기위해 경찰이 되었어요.
물론 경찰이 되고 난 뒤에도 여러가지 꿈을 꿨어요. 마약사건, 납치사건 등등에 관련된 미래를 보았고 밀항시간이 바뀐걸 알게된것도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오늘은 황형사님이 저에게 고백하는 꿈을 꿨어요.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더 예쁘게 하고 오려했어요. 이제까지의 꿈은 늘 맞았거든요.
지금 제 말이 믿기지않고 어이없는 말이라는거 다 알아요. 그래서 말할 수 없었어요. 황형사님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봐, 그래서 멀어질까봐 너무 두려웠어요.
잔잔히 그러나 막힘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았고 그랬기에 후회는 없었다. 다만, 황형사님의 반응이 무서웠을뿐.
다른 사람들은 우리 이해 못해요. 그러니까, 웬만하면 말하지 마요.
다시 한번 다니엘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황형사님도 그 사람들처럼 나를 이상한사람 취급하거나 이용하려할까, 그렇게 나를 떠나버릴까.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황형사님의 마음이 비춰질것 같아서 숙여져있던 고개를 여전히 땅에 대고 숙였다. 다른 일들에선 앞,뒤 재지않고 뛰어들면서 이럴때는 영락없는 겁쟁이였다.
그래, 사실 나는 겁쟁이였다. 매번 사건에 뛰어드는 모습에 쟤는 겁도 없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만, 사실 내가 여기서 뛰어들어도 다른 형사님들이, 우리 팀원들이 든든하게 옆에서 도와줄걸 알았으니까 가능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늘 그랬듯 두려움이 고개숙인 내 옆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차에 함께 식어간 내 손 위로 황형사님의 큰 손이 덮여왔고 나의 떨리는 어깨는 황형사님의 넓은 품안으로 들어갔다.
“혼자서 많이 힘들었지.”
그리고 거짓말처럼 나에게서 멀어질것 같았던 황형사님은 나를 품에 안고 처음으로 꿈에 대한 걱정을 건넸다. 미래를 본다는게 무섭진 않았냐고, 고민이 정말 많았겠다고. 누군가가 처음으로 내가 미래를 보기 때문에 위로를 건네왔다.
같은 능력을 가진 다니엘을 만났어도 서로 그 느낌을 공유할뿐 아픔을 어루어만질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황형사님은 그 말이 진짜야? 미래를 어떻게 봐? 하는 그 단순한 물음 하나 없이 그간 홀로 고생했을 나에게 위로를 건네왔다.
처음 받아보는 그 위로에 감동의 눈물도 나질 않았다. 그저 너무나도 쉽게 이 사실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황형사님의 모습이 그간 혼자 안절부절했던 나를 한심하게 만드는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어 멍하게 황형사님만을 바라봤다.
은은하게 반짝이는 불빛처럼 황형사님의 눈빛도 여전히 나를 향한 믿음으로 반짝였다.
***
어느새 조금 늦은 저녁에 황형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황형사님과 천천히 걸어 어느덧 나의 집앞까지 도착했다.
분명 걸어서는 꽤 먼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손을 잡고 걸으니 어떤 거리든 짧게 느껴졌다.
“진짜 갑자기 그 타이밍에 얼굴에 먼지가 묻은거라구요.”
“그래도 네 얼굴을 다른남자한테 그렇게 함부로 허락하면 어떡해.”
“그건... 죄송해요.”
“이리와. 나만 만질꺼야.”
그렇게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다 집앞에 다달랐고, 그러다 내 볼은 자신만 만질수 있다며 이내 큰손으로 나의 볼 양쪽을 감싸는 황형사님이었다.
“아, 하지마세요오-“
애꿎은 신발코만 계속해서 발로 찍어대다 이내 황형사님이 먼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여주야, 사실 전부터 나도 하고싶던 말이 있었어.”
벽에서 등을 떼어낸 황형사님이 한걸음, 두걸음 점점 다가왔다. 그럴수록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가 더 길게 늘어졌다.
“너한테 말을 듣기 전에 내가 했어야하는 말인데,"
"이제 서로 좋아하는 사이 말고, 사랑하는 사이 해도 될까?
많이 사랑해, 여주야.”
민현의 주머니 깊은곳을 맴돌던 예쁜 선물상자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예쁜 실크리본이 감긴 작은 선물 상자. 그리고 그안에 있던 마치 두사람을 내리쬐는 달빛을 담은것만 같은 예쁜 목걸이가 여주의 목에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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