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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야?"
크리스탈의 물음에 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찬도 그것이 궁금해서 상황을 유심히 살피는 중이었다. 제물은 자신과 크리스탈도 감히 앉을 생각을 못했던 의자위에서 아예 뻗어서 잠을 자고 있었고, 자신의 주군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찬으로썬 알 수가 없었다.
"엄청 울어대더군."
웅엉거리며 말을 하는 주군 때문에 찬과 크리스탈은 동시에 움찔해야 했다. 죽은 듯이 엎드려 있던 마왕이 꼬물꼬물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길 잃었다고 울고, 뭐 좀 기억 못한다고 울고, 울고불고 아주 난리를 쳤다고."
"깨, 깨어 계셨습니까."
"방금 너때문에 깼다."
주군은 잠을 제대로 못잔 것인지 표정이 아주 안좋았다. 등을 긁적이며 침대에 걸터앉은 주군은 크리스탈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오랜만이군, 크리스탈."
"주군을 뵈옵니다."
"주군? 누가 너의 주인이야? 설마 나? 아하-이거 황송해서 어쩌나."
누가봐도 비꼬는 듯한 말투에 크리스탈은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들지 못했다. 찬은 제 주군의 표정을 슬쩍 쳐다보다가 황급히 자신도 고개를 숙였다. 요 몇일 세 아슬아슬 하더니이번엔 정말로 빈정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래 좋다고, 크리스탈은 그렇다 치고. 찬 너는 죽을 때가 다 됐나보지? 마왕의 부름을 그렇게 간단히 무시하는 마족은 세상에 너밖에 없을거야."
"죄송합니다. 조사 차 천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아- 말을 했어야지. 나는 너가 크리스탈을 찾으러 가는 길에 노망이 난 줄 알았다고."
"...죄송합니다. 생각보다 일이 지연되는..."
"됐고, 빨리 애부터 자기 방으로 데려가."
주군은 '다 귀찮아'를 온몸으로 말하며 제물을 향해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인간 여자를 달래는게 천계랑 전쟁나는 것보다 힘들다는걸 너네가 알아? 제기랄, 왜 하필이면 어제 죄다 연락 두절이었냐고 천하의 쓸모 없는 것들아!"
"죄, 죄송합..."
"꺼져!"
뭐라고 변명을 하려던 크리스탈은 마왕의 고함 한번에 찍소리도 못하고 엎어져 있는 제물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여전히 잠들어 있던 제물은 크리스탈이 양 손으로 안아들자 미간을 찌푸리며 꼬물거렸다. 종종걸음으로 방문을 향하는 크리스탈의 눈짓이 바빴다.
빨리 따라오지 않고 뭐하냐는 뜻이었다.그 사이 주군은 '흐어어어...' 하는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며 다시 침대에 엎어졌다.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갔군.'
찬은 그렇게 생각하며 크리스탈의 뒤를 따랐다.
사실 매번 말뿐인 마왕의 위협은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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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어이없지 않냐? 자기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웃겨."
"..."
한참을 신나게 떠들어대던 크리스탈의 맹렬한 뒷담화가 끝이 나는 순간이었다
. 찬은 밤을 꼬박 샌 데다가 높은 톤의 목소리를 한참동안 들었더니 머리가 지끈지끈 울려왔다.
몇시간에 걸친 장황한 설명의 요지는 이거였다. 마왕의 성인식이 되자 마왕성을 호의하러 돌아온 카이와 원래 마왕성에 사는 크리스탈이 만났다. 카이는 마왕성 결계에 허점이 많다며 조언을 했다. 크리스탈의 빈정이 상했다. 끝
"...뭐야, 왜 아무 말이 없어? 넌 짜증나지도 않아?"
"별로..."
"뭐야?"
"카이의 말이 맞아. 마왕성 결계를 새로 할 필요가 있어. 너무 낡은게 사실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앞에두고 그렇게 무안을 줘? 자기는 마왕성 밖에서 탱자탱자 놀다가 주군이 부를 때만 겨우 돌아오는 주제에 감히 어따대고...!!"
"카이 말투가 원래 그런 거 알잖아. 카이가 마왕성 밖에 있는건 주군의 명령이고."
"그래도 엄연히 주군을 보필하는 마족으로써의 예의를...근데 지금 너 대체 누구 편을 드는거야? 내가 지금까지 한 얘기를 듣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지금 누구 편을 드는게 중요한게 아니..."
'찬.'
피곤을 억누루고 말하던 찬의 목소리가 뚝 멎었다. 머리속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 주군의 부름이었다. 익숙한 일이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보통 호위가 성에 머물 때 주군은 굳이 마력을 낭비해가며 부하들을 부르지 않았다. 차라리 큰 소리로 고함을 치는 편이었다.
'부름에 답하라 찬.'
'어서.'
'지금 당장.'
게다가 주군의 목소리는 꽤나 다급해보였다. 어젯 밤 성인식을 치룬 몸이었다. 혹시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걸까. 주군이 자신을 부른다면 크리스탈도 똑같은 부름을 받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크리스탈의 포정은 찬처럼 풀리지 않은 채 였다.
"편드는게 문제가 아니라고? 넌 지금 카이 편을 들고 있잖아! "
"잠깐만 크리스탈, 주군이 부르셔."
"대답 먼저 해. 우리를 싸잡아서 모욕한 카이가 진짜 옳은 소리를 한거라고 생각해?"
"일단 부름에 답한 다음에 얘기를...!"
"응, 아니, 대답하는게 그렇게 어려워? 몇시간이 걸려?"
"크리스탈"
날카로운 네개의 눈동자가 공중에서 마주쳤다. 둘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그렇게 한참을 서로를 노려봤다. 결국 살얼음판 같은 눈싸움이 끝난건 크리스탈의 눈가가 젖어들었을 때 였다.
"나는 너랑 나랑 서로 의지하면서 이 성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내가 속상한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모양이구나."
"......"
"나 없이 어디 한번 잘 해봐."
그 말을 끝으로 크리스탈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크리스탈이 서 있던 곳엔 수정 구슬 몇알이 서로 부딫이며 굴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크리스탈!찬! 빨리 와봐 빨리!"
마침내 들려오기 시작한 고함소리에 찬이 눈을 질끈 감으며 뒤를 돌았다. 그리고 천근같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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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할까요."
어제 밤에 마왕에게 바쳐졌던 제물을 오늘 아침에 또 만나게 될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찬이었다. 조사를 위해서 따로 방을 마련해 머물게 한다지만 마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는 썩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었다. 죽었어야만 했던 제물이 살아있는 것이 과연 마왕에게 이로운 일인지도 불분명했다.
그래서 찬은 이 공백이 의문스러운 것이었다. 아까부터 의자에 앉아 손가락 장난만 치고 있는 자신의 주군. 그의 머릿속엔 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 있길래, 가장 명쾌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걸까.
"...제가 알아서 처리 하겠습니다."
"아니."
무엇이 그를 망설이게 하는가.
"...이유를 밝힐 때까진, 살려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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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야..."
"뭐가?"
"주군 말이야. 시끄럽게 굴면 입을 막아버리면 될 일인데 왜 밤새도록 시달리게 내버려 두신걸까?"
크리스탈이 제물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제물은 여전히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채였다.
찬은 평화로워 보이는 그 얼굴을 바라봤다. 문득 그 모습이, 생전 데모나의 모습과 겹쳐보이는 것은.
"어머니 생각이 나신 거겠지."
".......데스데모나."
크리스탈의 입에서 나즈막히 그녀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90년 전 아들의 품에서 숨을 거둔 그녀의 모습을, 찬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달빛이 가득한 밤이었다. 고통스럽던 그녀의 지난 날은 거짓말이었던 것 처럼 평화롭고, 조용한 죽음이었다.
그 밤엔 마왕의 호의 7명 중 5명이 마왕성에서 떠나야 했으며, 또한 그 밤은 찬이 마왕의 눈물을 목격한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주군의 입으로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찬은 그의 깊은 슬픔을 알고 있었다.
남은 두명의 마족은 호위중 남은 수명이 가장 긴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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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보자보자....."
빽빽하게 꽂혀진 책들 사이로 첸의 동그란 머리가 불쑥 솟았다. 벨트릭의 신부름으로 창고에 오기는 했는데, 이놈의 자색 망토는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를 않았더랬다. 우연히 서재 맨 위에 있는 상자를 발견해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는 했는데, 제 다리가 짧은건지 사다리가 짧은건지 (물론 후자라고 믿고싶었다.) 아슬아슬하게 상자 안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 분했지만 아직 공중부양술은 익히지 못했기에 첸은 있는 힘껏 까치발을 들 수 밖에 없었다.
"어! 찾았, 다아아아아아!!!"
하지만 간신히 망토의 끝자락을 쥐었을 때 후들거리던 첸은 그만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 쓰러지고 말았다.
"추,추, 충격흡수!!충격흡수!!"
그러나 첸이 누구인가, 자칭 마법신동, 미래의 궁중대마법사 첸첸이 아닌가! 꿩대신 닭이라고, 공중부양 대신 충격흡수를 익혀둔 것이 불행중 다행이라 하겠다. 고통 없이 바닥에 닿는 순간 첸은 자신의 엄청난 순발력도 한몫 했다고 생각했다.
"으브븝브븝!!"
상자 안에 있던 내용물이 제 얼굴 위로 쏟아지기 전까진.
"으아, 퉤퉤퉤퉤."
덕분에 먼지를 잔뜩 먹은 첸이 연신 침을 뱉음 벌떡 일어나자 그의 얼굴 위에 있던 갖가지 잡동사니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먼지가 눈에도 들어가는 바람에 눈물도 뚝뚝 흘렀다. 에비,에비, 재수가 없으려니까.
"...어?"
이게뭐지.
한참을 그렇게 눈물콧물을 짜내며 얼굴을 털어내고 있는데, 우연히 제 무릎에 다소곳이 올려져있는 낡은 종이가 눈에 띄었다. 재빨리 남은 눈물을 닦아낸 첸은 그 종이를 집어들고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낡은양피지 조각엔 잉크로 쓴 글씨가 깨알같이 적혀있었고, 중간중간에 지도같은 그림도 보였다.
'하늘은 칠흙같이 검으나 두개의 달이 발광하여 길을 가기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들의 눈에 내가 띄일 것이 걱정되어 나는............'
".. 스승님의 소설인가."
첸이 중얼거리며 양피지 조각을 앞뒤로 살폈지만, 어딘가에서 뜯어져 나온 종이 같지는 않았다. 뭐야 이거.
"빨리 빨리 오지 않고 뭐해!!"
"지금 갑니다 스승님-!"
첸은 슬쩍 고개를 돌려 소리친 뒤 황급히 가까이 떨어져 있던 자색 망토를 줏어들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첸은 요상하게 그 양피지 조각이 눈에 밟히는 것이었다.
두고가자니 찜찜한데.....
"에라 모르겠다!"
스승님의 물건인 줄은 알았지만, 스승님이 저 구석에 쳐박아둘 정도였다면 그리 소중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안심시키면서, 첸은 그 양피지 조각을 작게 접어 제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꾸물거리지 마라 첸!"
"지,진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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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카/스무디킹/마지심슨/너구리걸/귤만두/종탁구/별별/두부/희수씽
감사합니다 땡큐
순전히 저의 즐거움을 위해 쓰는 글을 재밌다고 해주시니 저는 정말 황송할 따름입니다.
행복하세여^_^
+ 실수 지적해주신 익명의 가면에 감춰진 그분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 감사한 마음에 바닥에 이마를 쿵쿵 박고 있어요.
신알신 해주신 분들께는 지금쯤 엄청난 쪽지가 와 있겠죠. 다 저와 제 핸드폰의 불찰입니다.
핳핳하하하하 그런 실수를 하다니 저는 이렇게나 미숙한 작가랍니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