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재민과 사귀기로 했다.
가끔씩 그게 꿈은 아니었는지 잠시 헷갈릴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재민의 문자가 내게 사실이라는 걸 일깨워줬다.
'누나, 보고 싶어요. 아 20분 전에 봤는데도 왜 이렇게 보고싶지.'
'오늘은 누나랑 겹치는 수업 없어서 슬픔ㅠㅠ 이따 런치 때 봐요'
'보고싶다'
'보고싶다. 김여주'
10분에 한번씩 이런 낯부끄러운 문자를 보내는 통에 이동혁과 있을 땐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숨기는게 일상이 됐다.
혹시 몰라서 잠금도 해놓고 문자나 톡이나 미리보기도 해제 해버렸다.
동혁이가 이따금씩 뭘 그리 숨기냐고 물을 때 마다 등 뒤에 식은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내가 이동혁에게 우리의 연애 사실을 숨기는 이유는 하나였다.
혹시나 우리가 헤어졌을 때 중간에서 마음 고생 할 동혁이가 보였기 때문에. 물론 헤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만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냉정하게 말 해서 사람 일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거니까.
가장 친한 친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혈육이 남보다 못 한 사이가 된다는 건, 내가 생각 해도 꽤나 골치 아픈 일임이 분명했기에 나와 나재민은 숨길 수 있는데까진 숨겨 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나재민은 이유가 마음에 안든다며 입을 뿔퉁 내밀었지만.
"와. 김여주다."
"너 자꾸 누나 이름 막 불러라."
"이름만 불러도 좋아서 그래요."
"...어휴."
클래스룸 안으로 들어서자 나재민이 예쁘게도 웃으며 자신의 바로 옆자리를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미스터 윌로우의 음악 수업은 우리가 이동혁 없이 유일하게 함께 듣는 수업이었기에 우리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었다.
지루하고 유익함이라곤 하나도 없는데다 숙제만 쓸떼없이 많은 수업이었지만 교실 안은 거의 대부분 어두웠고, 미스터 윌로우와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세계에 빠져 다른 데엔 신경 쓰지 않았기에 우리는 그 시간 내내 손을 잡고 있거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등의 꽤 닭살돋는 애정행각을 몰래 벌였다.
"너 손 되게 크다. 운동을 해서 그런가."
"누나 손이 너무 작은거 아닌가? 와, 귀여워."
아까부터 조물조물 내 손을 잡고 놓지를 않는 나재민에 민망해져 아무 말이나 했는데 결과는 더 부끄러워졌다.
정말로 신기하다는 듯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내 손을 올려놓고 흔들던 그 애가 곧 부드럽게 깍지를 껴왔다.
"누나는 안귀여운데가 없네요. 너무 좋다."
...우리 둘이 한국말을 해서 다른 애들이 못알아 들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난 진즉에 부끄러워서 접시물에 코 박고 죽었을 것이다.
이곳 애들이 그런건지, 아님 나재민이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건지. 그 애는 표현을 하는데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어서 나는 꽤 자주, 두 볼을 붉혀야만 했다.
눈이 마주칠 때 마다 예뻐요, 귀여워요, 좋아해요, 보고싶어요 등등의 말을 늘어놔서 나는 나재민이 선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잠깐 했었다.
물론 곧 그게 아니라 재민이 자체가 원래부터 표현을 하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걸 알아챘지만.
학교 프로젝트를 구실로 가끔 나재민네 집에 가면 그 애는 내 얼굴 여기저기에 뾱뾱 가벼운 키스를 하며 너무 좋아서 살 수가 없다는 둥, 내가 지금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아냐는 둥의 얘기를 늘어놔서 결국 내게 잔소리를 들은 후에야 숙제를 하는 척 했다.
...숙제를 펴놓고 또 내 얼굴만 계속 바라봐서 나중에는 부끄러워진 내가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나재민은 부끄러워하는 나를 보며 귀엽다며 또 크게 웃었다.
이렇게나 내게 애정을 퍼부어주는 이는 처음이었기에, 나는 어쩔줄을 몰라하며 그 애정 안에서 부유(浮遊)했다.
나는 이만큼을 너에게 돌려줄 수 없을텐데 어째서 나를 이렇게나 좋아해주냐 물었을 땐, 나재민은 평소처럼 청량한 웃음을 터뜨리며 말 했다.
"사랑은, 무언가를 바라며 퍼주는게 아니랬어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보답을 바라고 누나를 좋아하는게 아닌걸요."
그래. 사랑이라는 범위 안에서는 나재민은 나보다 성숙한 사람임이 틀림 없었다.
당연히 무언가를 주면 그 만큼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익숙치 않은 일이기에, 나는 나 보다 어린 연인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는 중이었다.
내게 사랑을 말하는 나재민의 얼굴은, 더없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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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에 치여 조금 늦었습니다ㅠㅠㅠㅠ오랜만이여요 여러분ㅠㅠㅠㅠㅠㅠ
여주와 재민이가 알콩달콩한 모습을 얼른 가져왔어야 했는데 이래저래 밀려버렸네요...하...
기다려주셨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늘 감사합니다ㅠㅠㅠ 비루한 글을 이렇게나 좋아해주시다니...자급자족하자고 쓰기 시작한 글인디ㅠㅠㅠㅠㅠㅠ
감동 받아 울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
혹시 암호닉을 신청 해주실 분이 계신가요....? (궁금쓰)
계시다면 이 글에 달아주세요...! 안계시다면....(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