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전정국]
눈이 하얗게 덮인 날에는
"이젠 여름이까지 없어지면? 나 이 세상에 어떻게 살아가라고. 쓸데 없이 사람 감정만 이상하게 만들어버리는 음악을 버리는 게 더 나아.
"정현이가 연락 계속 한다는데.. 언제까지 무시할 거니?"
"……."
"집에.. 좀 와."
"형만 있으면 진작에 갔죠."
"……."
"내 반응이 궁금해서 그래? 그래서 계속 괴롭히는 거야?"
"……."
"나는 무너졌을지 몰라도, 그 애는 생각보다 강해서 그쪽이 뭔 말을 해도 안무너져."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계속 그렇게 짖어봐."
"……."
"누가 이기나."
나영희를 지나쳐 걸었다. 나영희가 몇년간 나에게 잘해준 것 따위 모두 다 기억속에서 사라진 게 신기하다.
그렇게 잘해줬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나는 아마 죽어서도 나영희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용서할 수 없다.
전화를 받지않는 노여름에 나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생긴걸까 싶어서 그 애의 집으로 향했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채수빈때와 같이 못된 사생팬들이 나타나서는 온갖 더러운 방법으로 괴롭힐까봐 두려웠다.
채수빈이 나에게 전화를 했던 날, 항상 나는 바빴고
항상 나중에 다시 얘기 하자며 전화를 끊은 것도 나였다.
이번에는 먼저 나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내가 노여름이에게 찾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스스로 강하다고 하지만, 노여름도 사람인지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빌라 앞에 주차하는데 빌라 문 앞에 옹기종이 태형이형까지 모여서 친구와 같이 있는 노여름에 조금은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보였다.
내가 갑자기 찾아와 놀랐는지 노여름이는 어? 하고 또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선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곧 바보같은 표정에서 웃는 얼굴로 바뀌며 나에게 달려오는 노여름에 조금은 웃음이 나오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서서는 머쓱한 표정을 하고선 나를 보기에 나는 그제서야 사태 파악이 되었다.
"형 여기서 뭐해."
"보면 모르냐? 낙서 지우지. 이거 잘 지워지지도 않ㄴ.."
"응! 낙서가.. 누가 썼는지.. 빌라 사람들도 다 나와서 지운.."
"그쪽 사생팬들이 와서 써놓고 간 거예요. 지금 한시간동안 이러고 있는데.. 지워지기는 커녕."
"노여름."
"아, 말 안하려고 한 게 아니라!.. 타이밍을.. 좀.. 화..났어?"
"……."
"화났구나.."
"화."
"……."
"안났어. 줘봐. 나도 하게."
손을 뻗어 노여름 손에 들린 것을 달라고 하자 노여름이는 아니라며 뒤로 그것을 숨겼다.
얼른 달라며 노여름을 똑바로 쳐다보자 노여름이는 한숨을 내쉬며 내 손에 하나 쥐어준다.
노여름을 지나치며 머리를 헝클어주자 노여름이는 또 금방 기분이 풀려서는 내 뒤를 쫄레쫄레 따라온다.
다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자국은 조금 남아 있었고, 태형은 더이상 못하겠다며 집에 가서 짜장면이나 시켜먹자했다.
화영은 무슨 짜장면이냐며 짜파게티나 끓여먹자했고, 태형은 그것도 마냥 좋다며 웃으며 화영을 따라 빌라로 들어가다가
곧 뒤 돌아 정국에게 담배피는 시늉을 해보인다. 담배를 피자는 뜻이겠지.. 정국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여름이는 정국을 한참 째려보았고, 정국은 그 모습에 작게 웃으며 입에 담배를 문다.
태형도 따라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곧 개구쟁이같은 표정을 짓더니 담배를 손가락에 끼우고선 정국에게 묻는다.
"여름이랑 만나는 거 진짜 티 안낸다."
"…뭐래."
"둘이 있을 땐 애정행각도 많이 하고 그러지? 우리 있어서 안 하는 거 아니지?"
"불 좀."
옙! 하고선 라이터 불을 켜 정국이 입에 물은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고, 정국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요즘 계속 날씨가 안좋고 난리네..
"내가 담배를 피는 이유가 뭔지 알아..?'
"뭔데."
"내 한숨을 볼 수 있잖아.."
"…참."
"네 반응이 재미없어서 드립 치지 말라고 애들이 그랬는데. 난 굴하지 않고 할 것이다."
"조금 웃겼어."
조금 웃겼냐? 너무하네.. 예전엔 뭐만 하면 같이 웃어줬으면서.. 뭐래 누구랑 헷갈리는 거야?
둘이 계속 투닥거리며 얘기를 하고 있었을까. 갑작스런 정국의 등장에 물건을 사와서는 골목길에서 나오지도 못한채 숨어있던 석진은
바닥에 내려놓았던 물건들을 보았다.
"사올 필요도 없었겠다.. 다 지웠네."
언제쯤 이 골목길에서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여기서 나가면 전정국은 또 날 원망하는 눈빛으로 날 보겠지.
내 차도 저기 있는데.. 됐다. 택시타고 가지 뭐.. 하고 도로 쪽으로 나오는데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석진이 놀래서 화면을 보았고
태형에게 오는 전화이기에 전화를 받았다.
"어. 태형아."
- 형
"나. 그냥 먼저 집에 왔어.. 할 일이 생겨서."
- 뭐라는 거야.
점점 태형의 목소리는 가까워지고, 벨소리를 듣고 따라왔는지 태형이 골목길 안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선 석진을 보았다.
"여기가 집이냐?"
"……."
"……."
담배를 바닥에 버려 발로 짓밟아 끈 정국은 곧 석진을 무시하며 빌라 안으로 들어섰고,
태형은 석진의 팔을 잡아 질질 끌며 말했다.
"라면 끓여준대! 다같이 고생했는데. 먹고 가야지! 왜 여기있냐?"
"됐어. 난.."
"고마워 할 거야. 그리고 이미 우리 다 지웠는데.. 형 이거 사왔잖아. 미안하게.."
"페인트점 문이 다 닫아서 다른 곳 찾느라.. 아니야. 뒀다 나중에 쓰면 되니까."
"에헤이! 형!"
문이 살짝 열려있자, 정국이 그 문을 열고 들어섰고 화영은 어허~ 하고 웃으며 정국에게 말했다.
"귀하신 분이 누추한 곳엔 무슨 일로~"
그 다음으로 들어오는 석진에 화영은 급 표정이 바뀌며 석진에게 말했다.
"누추한 분이 귀한 곳엔 어쩐 일로."
"에이! 다같이 지웠는데! 형이 부족할까봐! 저! 멀리 뛰어 갔다 오셨다는데!"
"나는 안 먹어도 돼. 별로 생각이 없어."
"아무것도 안 먹고 온 거 아니야..? 조금이라도 먹지.."
"나중에 알아서 먹을게."
혹시라도 정국이 석진 때문에 기분이 안좋을까. 여름이 정국의 눈치를 보았고, 정국이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아보이자
여름이는 안심을 하며 웃어보였다. 이렇게 다같이 있으니까.. 이상하잖아.
석진도 이 상황에 익숙해질 수 없는지 곧 신발도 벗지도 못한채 가만히 서있다가 손에 들린 봉지를 바닥에 내려놓고선 여름이에게 말했다.
"나 약속이 있어서."
"……."
"가볼게. 덜 지워진 것 같은데. 이거 필요하면 쓰고. 갈게."
"엥? 형!"
석진이 손을 흔들고선 나가자 태형이 따라나가려고 했고, 화영은 가지말라며 인상을 쓴채로 소리를 질렀다.
태형은 화영의 화내는 모습에 놀랐는지 멀뚱히 서서 화영을 쳐다보다가도 곧 섹시해! 하고 입을 틀어막는다.
그러다 정국의 갑작스런 질문에 태형과 화영은 굳었다.
"둘이 만나? 집에 몇 번 와본 것 처럼 자연스럽네."
"아니이.. 오긴 언제 왔다고? 처음인데!?"
"어! 처음일 걸?"
"걸은 뭐에요. 처음이면 처음인 거지!"
"……."
정국이 여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화영은 호오- 하고 그 모습을 보다가 곧 태형을 보았다.
저런 거 보면 참 설레는데.. 김태형이 나한테 저럴 거라 생각하면 토가 나올 것 같지 왜? 흐음..
태형을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자 태형은 왜? 하고 화영에게 다가간다. 둘이 작은 주방에서 투닥투닥 거리자 여름이는 그 틈을 타
정국의 손을 가져가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정국은 그 모습을 보며 뭐냐며 작게 웃어보였고, 여름이는 정국에게 웃으며 말했다.
"한시간이라도 안 보면 보고싶어."
"……."
"나는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마. 나 징징 거리는 거 잘하잖아. 힘들면 바로 말해."
"응. 장하다."
"진짜 안 먹어?"
"응. 나가보려고."
"어디 가?"
"집에."
"집?"
"응. 아빠 집. 형이 날 계속 찾네."
"아, 그래..?"
"몇년만에 가는 거라. 조금 기분은 이상해. 간 김에 내 물건들 몇개 챙겨오려고."
"형이랑은..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지?"
"그닥.. 그냥 그래. 예전부터 별로 좋지도 않았어. 아빠나, 형이나."
"아.."
"집에 있어. 나오지말고. 알았지."
"응. 일부러 집 앞에 편의점도 안 가려고, 어제 밤에 다 사왔어."
"잘했어. 예뻐."
"뭐야. 쟤 지금 예뻐..라고 한 거야? 잠깐.. 나 지금 손.. 손.. 손!!"
"봉지나 다 뜯어 빨리."
정국은 빌라에서 나오자마자 차에 올라타는 석진을 보았다.
솔직히 석진을 보는 건 아직까지 많이 힘들다. 오늘 이렇게 마주친 것도 많이 힘들다.
하지만, 너를 아직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너를 싫어하는 걸 티내고 싶지는 않았다.
너도 사람이니까. 너를 이해해주는 것도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정국은 몇년만에 집에 도착했다. 바꾸지 않은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가면 1층에서 티비를 보던 정현이 놀란듯한 눈을 하고선 정국을 보았다.
"너.. 연락도 없이."
"형이 바라는대로 왔잖아."
"…연락은 왜 다 무시해."
"형 만나봤자. 그 여자 편만 들을 거 뻔하니까."'
"그 여자라고 하지마. 인마.. 너 키워준 엄마야."
"형은 우리 엄마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
"뭔 소리야?"
"나영희가 아무말도 안했나보구나."
"무슨 소리냐고."
"내 방 안건드렸지."
정국은 그 말을 끝으로 2층으로 올라섰고, 자신의 방문을 열자 방은 깨끗했다. 마치 누군가 매일 청소를 하는듯 말이다.
정현은 의미심장한 정국의 말이 궁금한지 정국의 뒤를 밟아 방까지 쫒아왔고, 정현이 정국의 어깨를 잡아 돌려 세우며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물었어."
"우리 엄마. 내가 오피스텔 구해줘서 거기서 지내."
"…왜 엄마가."
"애초에 엄마랑 아빠랑 사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어. 나영희 때문에 이혼한 거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누가 그래?"
"못 믿겠으면 나영희랑 평생 놀아나. 형이랑 만나서 이런 얘기 해도 안 믿어줄 거 뻔하니까.
그래서 형이랑 만나기 싫었어."
"……."
"나영희한테 속고있어. 형은."
"네가 더 친했어. 엄마랑."
"친한 게 왜."
"……."
정국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려둔 정현의 손을 쳐내고선 곧 집에서 챙겨 온 작은 열쇠를 주머니에서 꺼내
책상 서랍에 걸린 자물쇠를 열었다. 그 안에 있던 엄마,아빠,형,그리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챙기려고 했을까.
그 옆에 한 번도 보지 못 한 이상한 편지가 있기에 그 편지를 집었다.
"간다."
"야.. 이러고 가? 너 엄마는 만나고!.."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그 여자 만나라는 소리가 나와?"
"……."
"나중에 마음 변하면 다시 연락해. 그땐 더 자세하게 알려줄테니까."
"……."
"갈게."
"……"
"오랜만이다."
"빨리도 인사한다. 새끼야.."
정국은 차에 올라타 편지를 펼쳐보였다. 아빠의 글씨였다.
자신을 형보다 사랑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길지 않은 편지를 정국에게 썼다.
이 편지는 다른 사람이 쓴 것일리가 없다.
서랍을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던 건, 가족 사진을 못 보게 한 아버지와.
몰래 열쇠방에서 열쇠를 만들어 온 정국 뿐이었으니 말이다.
편지를 한줄 한줄 읽던 정국의 눈엔 눈물이 고였고, 곧 고개를 숙인채로 손을 바들바들 떤 정국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