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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떴다.
이제 D-6에서 D-5가 됐다. 하지만 성규는 내색하지않고 익숙하게 창문을 연 다음 에어컨을 끄고 시간을 확인하며 대자로 뻗어자는 우현에게 다가갔다.
" 우현아,학교... "
" 흐으음... "
우현을 깨우려던 성규가 잠시 멈칫했다. 방금...
" 벌써 아침이네...으으으으...가기싫다...너랑 계속 있고 싶은데..."
" ......"
" 표정이 왜 그래 ? 무슨 일 있어 ? "
" 아냐아냐. "
방금 우현에게서 어두운 기운이 확 뿜어져나왔었는데 잘 못 봤나 ? 우현이 기지개를 켜며 화장실로 향했고 잘 못 봤겠지싶은 성규가 서둘러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크으응...크으응... "
오늘도 역시 지각이다.
지각을 면하려면 적어도 7시에는 일어나 준비를 하고 나가야하는데 벌써 8시를 넘어갔다.
잠들기전부터 작정을 한듯 알람을 꺼두고 배터리까지 빼낸 명수가 성열을 꼭 끌어안은채로 자고 있었다.
학교 ? 아프다고 하면 되겠지,뭐. 지금 이 기분이 너무 좋다.깨트리기싫다.
밖에 비가 오는 듯 했다. 하긴. 7월 말. 한참 장마일때니깐.부슬부슬 빗소리가 들려오고 딱 늦잠자기 좋은 어두침침한 방안. 성열을 좀 더 껴안았다.
*
" 비나 잔뜩 맞아라."
우현이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수학여행을 가겠다고 한 아이들이 모두 오만상을 쓴 채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잠시후 버스가 교문을 빠져나가고 학교는 빗소리로만 가득찼다. 2반에서 수학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은 동우와 우현을 포함해서 4명뿐이었다.
자습 담당 선생님 말로는 수학여행 장소가 경주라는 이유로 불참한 학생들이 굉장히 많아 돈계산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 꼬르륵 잠수를 탄 채 자습에 나오질않았다. 조용히 자습하라는 말을 하며 담당선생님이 빠져나가자 우현이 당당히 가방을 다시 어깨에 맸다.
" 나가자."
" 진짜 가게 ? "
" 어. 대충 분위기 보니까 안 나와도 그냥 넘어가는 것 같은데 뭘 나와. 그냥 가자."
" 김멍수는 ? "
" 아까 전화해보니까 그냥 늦은김에 안 온다고 하더라."
우산을 챙겨든 우현이 눈치를 살피며 동우와 학교를 빠져나왔다. 아침 9시라 그런지 꽤 으슬으슬거리고 기분도 묘한게 딱히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일단 성규가
보고싶었기에 우현은 집으로 가겠다는 동우를 딱히 크게 말리지않았다.
*
" 이번주 마지막 업무야. 그 동안 수고 많이 했어."
" 네... "
호원이 조심스럽게 새 명부를 받아들었다.
꾸벅 인사를 한 호원이 인간세상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며 명부필을 집어들었다. 파르르륵 옷자락을 휘날리며 인간세상에 내려온 호원이 명부를 펼쳤다.
그리고 붉게 써있는 이름들위에 손을 얹은채 천천히 눈을 감는다.
" 마지막으로 수거할 영광스러운 혼이..."
일단 45년생 할머니 한 분과 80년생 아가씨 한 명. 그리고 ...
" ...!!!! "
갑자기 흠칫 떨면서 눈을 뜨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명부에 쓰인 이름을 몇 번이고 재확인하기 시작했다.
" ...남...우현 ? "
한자로 또박또박 적혀있는 세 글자는 남우현이 분명했다. 다시 눈을 감고 이름위에 손을 얹어봐도 천천히 느껴지는 생김새는 성규와 함께 지내는 그 남우현이 맞았다.
호원이 명부를 주머니에 대충 쑤셔넣고 빠르게 성규에게 향했다. 하늘 저 쪽에서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순간 어두침침한 세상이 잠시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책상에 앉아 창밖으로 가끔씩 쳐오는 번개를 바라보고 있던 성규가 저 멀리서 빠르게 이 쪽으로 다가오는 호원의 모습에 서둘러 반갑게 방충망을 열어재꼈다.
" 사자님이 이 시간에 어쩐일이세요 ? "
" 남우현.어딨어 ? "
" 네 ? 우현이는 갑자기 왜요 ? "
호원이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성규에게 명부를 내밀었다. 명부와 호원을 번갈아보던 성규가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며 천천히 명부를 받아들었다.
" 이걸 왜..."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로 느껴지는 불안감에 답답한 가슴을 꾹 움켜쥔 성규가 천천히 명부를 펼쳤다. 새 명부라서 그런지 첫장에 바로 여러개의 이름들이 적혀있
었다. 금방 찍어온 이름들이라서 그런지 검붉은 이름들이 조금씩 번져있었다.
" 마지막 이름 봐봐. "
" 네 ? "
" 남우현. 적혀있잖아."
눈동자가 파르르르 떨리는게 느껴진다. 호원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눈을 감았다.서둘러 마지막에 써있는 우현의 이름을 확인한 성규가 손이 하얘질 정도로 명
부를 꽉 움켜잡았다.
"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우현이가 갑자기 왜요. 우,우현이 무지 건강한데...잘 못 나온거 아니에요 ? 사관부 사람이 실수로... "
성규가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 내가 아까 몇 번이고 확인해봤어...혹시...최근에 남우현이 남의 명(命)을 건드린 적 있어 ? "
" 우,우현이가요 ? 우현이가 왜 남의 명을..."
" 내 말은 걔가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어떻게 했다는게아니라...남의 명에 간섭을 한 적이 있냐고. 누굴 구해줬다던가..."
" ...어,어제!! "
횡단보도앞에서 꼬마아이를 구해준 거 ? 고작 그거 때문에 ? 성규의 손에 들려있던 명부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옷걸이에 차분히 걸린 천상옷으로 허겁지겁 갈아입은 성규가 거칠게 창문을 넘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명부를 주워든 호원이 그 뒤를 따랐다. 평소와
다른 속도로 나는 성규를 간신히 따라잡았다.
" 일단 이틀동안 시간은 있어 !!!! 하지만 걔를 살리려고 또 다른 명을 건드렸다간..."
" 어떻게든 살릴꺼에요 !!!!! 사관부에서 뭐라 한대도 우현이는 꼭 살릴꺼에요. "
" 참나. 배짱 한 번 두둑하네. "
낯설은 성규의 모습에 호원이 피식 웃으며 조용히 성규를 뒤따라날았다.간신히 기억을 더듬거려 간신히 학교 운동장에 내려앉자마자 몸을 나타낸 성규가 서둘러 학교안
으로 달려들어갔다. 하지만 우현이 몇 층 몇 반 교실에 있는지는 모르는 성규가 이리저리 방황하자 자습 담당 선생님이 비에 쫄딱 젖어 정신나간사람처럼 돌아다니는
성규를 붙잡았다.
" 너 이 자식 몇 학년 몇 반이야 !? 옷은 또 이게..."
" 저...저 우현이...우현이..."
" 우현 ? 남우현 ?! 도망간 남우현은 왜 찾아 ! 이 자식. 너도 자습 도망가려고 했지 ?! 이리와,딱 걸렸어."
" 아아 !!! 저 이거 놔주세요 !!! 급하단 말이에요 !!! 지금 당장이라도 우현이를 찾지않으면...아악!!!! "
성규의 귀를 비틀어잡은 선생님이 교무실로 끌고 가려는 듯 성규의 귀를 잡아 끌기 시작했다.
" 아이씨,진짜!! "
" 이게 어디서 선생님한테...큰...소리..."
갑자기 눈 앞에서 스르륵 사라지자 얼굴이 하얘진 담당 선생님이 뒷걸음질을 치더니 이내 소리를 지르며 교무실로 달려갔다. 뒤에서 몸을 숨긴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원이 물었다.
- 어쩌려고 그래. -
- 우현이 지금 도망갔대요. 집으로 가고 있나봐요.-
- 혹시 모르니까 난 동우한테 가볼께.넌 얼른 집 쪽으로 가는 길로 가봐.-
말을 마치기도 전에 순식간에 날아오른 성규가 저멀리 사라지자 감탄을 뱉은 호원이 서둘러 동우에게 향했다.
*
출근시간이라서 그런지 우산을 쓴 사람들이 장난아니게 많다.
그 사이에서 우현을 찾기란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찾기어려웠다. 자꾸만 눈물이 나와 시야를 가리자 신경질적으로 눈을 비벼댔다. 어딨는거야,우현아.이미 집에는 수십
번을 다녀왔다.우현이 자신을 봤으면 하는 마음에 몸도 숨기지않고 거리에 내려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정신없이 우현이의 이름을 불러댔다.
모두들 성규를 미친 사람 보듯이 피하며 지나갔지만 성규는 신경쓰지않았다.
그러던 도중 문득 자신이 서있는 거리가 어제 탱탱볼을 가지고 놀던 꼬마아이가 차에 치일 뻔 했던 걸 구해줬던 횡단보도란게 떠올랐고 순간 반대편 쪽에서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성규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
" 존나 드럽게 비싸네."
아이스크림점 문을 열고 나온 우현이 우산을 어깨에 끼우고 귀에서 헐렁거리는 이어폰을 고쳐 끼운 뒤 영수증을 지갑에 넣었다. 어제도 먹었지만 오늘 또 사간다고 안
먹을 성규는 아니였기에 자신이 아는 사이즈중에 제일 큰 사이즈를 사봤다. 때맞춰 이어폰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someone like you'가 흘러나왔다. 비도 오고 감
성이 촉촉해진 우현이 코를 훌쩍이며 횡단보도 앞에 섰다.
" ...저 놈은 뭐야. "
미친 놈 마냥 이렇게 장대비가 쏟아지는데 우산도 안 걸친 채 뭐가 그리 신나는지 이 쪽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내가 맞장구 쳐주길 바라
는 건가 ? 그 모습을 계속 빤히 쳐다보던 우현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 김성규 !?! "
입모양을 보니 자신을 부르며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다. 아니,집에 있어야할 김성규가 왜 이 날씨에 나와서 그것도 저 천상옷 차림으로 미친듯이 저러고 있는 거지 ? 우
현이 이어폰을 빼는 것도 잊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있자 뒤에 사람들이 잔뜩 서있는데도 불구하고 성규가 하늘높이 펄쩍 날아올랐다.그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고 우현이 경악하며 우산을 놓쳤을때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회색의 하늘이 바닥이 되었다가 벽이 되었다가 다시 하늘이 되었다가를 반복한다.
왜 이러지. 세상이 도는건가. 아니면...내가 도는 건가.
*
커다란 트럭에 치였던 우현이 성규보다 더 높이 날아오르더니 퍽 소리를 내며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에 들려있던 봉투에서 아이스크림이 흘러나와 우현이의 피와 요상한 모양새로 섞이기 시작했다. 멍하니 하늘을 보며 눈을 껌벅거렸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온
몸에 힘이 없다. 좀 편안한 것 같기도 한데...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는 게 보인다. 왜 날 저런 눈으로 보고 있는 거지.
" 우현아 !!!! "
" ......"
이상하게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사람들이 다 보고 있었는데 무슨 짓을 한거냐며 성규에게 큰 소리를 칠 생각이였지만 이상하게 아무런 것도 할 수가 없다. 숨이 답답
해져오고 눈은 감긴다. 뭐라 말 해야하는데. 천천히 눈동자를 밑으로 내리자 와이셔츠가 피에 잔뜩 젖어 있는 게 보였다.
" ...이거...피네... "
그 말을 끝으로 우현은 졸린 눈을 감았다.
" 우현아."
" ...... "
" 우현아,우현아."
" ...... "
" 눈 좀 떠봐. 잠은 집에 가서 자면 되잖아."
*
" 환자분 지금 수술실 들어가셨구요. 보호자 되세요 ? "
" 보,보호자요 ? "
" 일단 수술은 들어가는데 보호자 분 빨리 모셔오세요."
누군가가 부른 구급차가 우현을 희망병원으로 이송했고 이송되는 내내 성규는 힘없이 축 늘어진 우현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볼에 갖다대며 혹시나 자신의 부름에 대답을 할까싶어 우현이의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
" 형 !!! "
제일 먼저 도착한 건 동우와 호원이였다. 성규에게 가까이 다가온 동우가 성규의 몰골에 깜짝 놀라며 서둘러 수건을 얻어와 성규의 얼굴여기저기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 우현이는요 !? 수술실 들어갔어요 ? "
" 동우야.나 어떡해.하나도 모르겠어.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나 왜 이렇게 멍청해. 아무것도 도움이 안 돼. "
성규가 초점이 없는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얼굴엔 우현의 피가 잔뜩 묻어있고 옷도 피로 엉망진창이 되있었다.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든 동우가 우현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고 호원은 어디선가 얻어온 담요를 성규에게 덮어주었다.
" 천사가 꼴이 이게 뭐냐... "
" 사자님. 우현이 데리고 가면 안 되요.데리고 가지 마세요."
" 일단 너 정신 좀 차리고 이야기하자."
" 지금 우현이네 부모님 이리로 오신대요.성규형 ! 괜찮아요 ? 정신 좀 차려봐요 ! "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리던 성규가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졌다.
*
우현이가 죽게 될 까요. 안 죽게 될까요.
에그몽은 해피엔딩이지만 결과는 어떻게 될지모릅니다.
흐흐흐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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