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그런 꿈을 꾸고 나니, 저절로 과거 회상이 되더라. 처음 노인을 만난 날,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곳에 적응해가는 과정, 노인의 그림들, 그리고 변해가는 내 모습. _ 내가 남자와 함께 말을 타고 도착한 곳은 남자가 사는 도시였다. 남자의 말로는 이곳은 화가들의 도시라고 불린다고 했다. -내가 살던 곳과는 격리되어 있다고 한다. 오로지 그들만이 모여서 살고 있는 곳.- 나는 화가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무언가에 굉장히 열중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니? 남자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언가의 열중하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손을 들어 그 사람들을 가리키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저 사람들이에요?" "그래, 하지만 저기 있는 사람들은 이곳 화가들의 일부란다." 나는 입을 헤-하고 벌린 채 그 사람들을 보았다. 붓을 들고 열중한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말끔하게 차려입은 여성 두 명이 나를 힐끗거리며 수군대는 것이었다. 나는 남자에게로 가 그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겼다.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조용히 뒤를 가리켰다. 남자도 그 두 여성을 보고는 내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는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 등을 다독여주었다. "어딜가든 사람들은 주변에 관심이 참 많은 것 같구나."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_ 남자는 이곳 집들에 비해 다소 평범해 보이는 집으로 향했다. 집 안은 보기보다 아늑했다. 그리고 따뜻했다. 처음 느껴보는 집의 온기에 낯설어하고 있을 때, 남자가 담요를 가지고 와 내 어깨에 덮어주었다. "집에 어린아이가 살았던 적이 없어서 옷이 없구나. 내일 가져다 주마."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번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뭐든 쓰다듬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뭐 좀 마시지 않으련? 남자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내게 소파에 앉아있으라 한 뒤, 부엌으로 향했다. 나는 남자의 말대로 소파에 얌전히 앉아 집안을 둘러보았다. 처음으로 보는 집이라는 곳의 내부는 굉장히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잠에 들기에도 충분했다. 소파 팔걸이에 기대어 졸던 눈을 떴다. 부스럭대며 몸을 일으키자, 안경을 낀 채 탁자 앞에 앉아 책을 보던 노인의 눈이 나를 향했다. 내 앞에 있는 앉은뱅이 탁상에는 우유 한 컵이 올려져 있었다. "식었겠구나. 다시 데워줄까?"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남자의 표정에 의아함이 서렸다. "말하기 싫으니? 어째 한마디도 안 하는구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_ 쓸데없는 회상은 관두기로 했다. 어차피 생각해봤자 과거였고, 돌아가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다. 노인은 제 방으로 들어가 잠에 취해있을 것이고, 나는 아직도 소파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20분. 원래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는데 노인과 나는 반대인가 보다. 나도 억지로 잠을 청하기 위해 팔로 두 눈을 포개었다. 내일은 밖을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새벽 4시, 뻐근한 몸으로 눈을 떴다. 역시 소파에 몸을 구겨 넣은 채 자는 건 몸을 혹사시키는 짓이었다. 노인의 흔들의자에 걸린 누구의 것인지 모를 외투를 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답지 않게 소리에 민감한 노인을 위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곳의 생활패턴은 정해져있지 않아, 이런 시간에도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많았다. 물론, 귀족들은 호화로운 저택에서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져 있겠지만. 역시 내 예상대로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이곳 화가들뿐이었다. 그리고 그 화가들은 내 모습을 쫓으며 나를 헐뜯기 바빴다. 이곳 화가들은 나를 싫어한다. 이유는 내 스승인 노인 때문. 노인은 이곳에서 존경받는 주류 화가 중 하나였다. 그로 인해 내게 붙은 별칭은 '주류 스승의 비주류 제자'였다. 심지어 내 스승은 내게 자신의 그림을 가르치지 않았다. 자신의 작업하는 모습도 내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 어떤 기본기도 배우지 않은 채, 내 방식대로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은 이 도시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다르고,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스승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나도 나름대로 내 그림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난 가르친다고 배울 놈이 아니었다. 하기 싫다고 뛰쳐나가기 일쑤였을 것이다. 발걸음을 돌려 도시의 문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바깥 도시로 나가볼까 하는 심산이었다. 문으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바깥으로 나가는 걸 즐기는 사람은 이 도시엔 없었으니까. 점점 문에 가까워져 갈 때쯤, 옆에서 웬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으로 나가는 거야?" 나는 놀란 눈으로 옆을 보았고, 그곳엔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금으로 장식된 벤치에 앉아 몸을 돌려 나를 보고 있었다. -벤치는 내게 등을 보이는 방향이었다.- 남자가 팔을 뻗어 내게 손을 흔든다. "나 너 진짜 보고 싶었는데." "나를 알아?" 내가 그렇게 묻자, 남자가 흔들던 손을 검지 하나만 핀 채, 저 멀리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기 있는 담벼락 그림 네가 그린 거 아니야?" 나는 남자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회색 담벼락에 내가 해놓은 낙서들이 보였다. 이곳에 자주 오다가다 하면서 그려놓은 것들이었다. 내가 그 낙서를 가리키며 남자에게 물었다. "저 낙서 말하는 거야?" "낙서였어? 난 굉장히 마음에 드는 그림인데."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근데 저걸 내가 그린건줄은 어떻게 안거야?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바로 너 말하던데? 자꾸 도시 벽에 낙서하고 돌아다니는 골칫거리라면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처음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이 남자가 누군지 알 것 같다. 7년 전, 어떤 화가 하나가 한 사람을 위해 금으로 장식된 하나밖에 없는 벤치를 만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벤치의 주인은 이 도시의 최고 권력자의 아들인 이홍빈이라는 것. 그 벤치는 오로지 이홍빈만이 앉을 수 있었다. "그럼, 네가 그 이홍빈이겠네." 홍빈은 내 질문에 그저 싱긋 웃기만 했다. 나도 홍빈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긴 정적을 깬 것은 홍빈이었다. "그러니까...베인 씨 제자님? 이름 좀 가르쳐주시겠어요?" 나는 갑자기 바뀐 홍빈의 태도에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권력자의 아들에게 최대한 예를 갖추면서. "김원식..입니다." 홍빈은 벤치 등받이에 팔베개를 한 채, 내 이름을 곱씹었다. 그리고 허리를 벌떡 세우더니 눈을 빛냈다. "원식 군, 제 후원받을 생각 없어요?" 그것이 내가 이 도시의 화가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본 제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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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이제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야 되는데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하네요... 정말 원식이로 표현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데 그게 참 어렵네요......ㅠㅠㅠ위 작품은 장 미쉘 바스키아의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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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