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설마가 그 설마 맞아. 들어가자!"
"아씨..제정신이에요!!!!"
"야, 나도 5단계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주위에 보이는게 이거 밖에 없네 빨리!!"
"정도가 있지...!싫어요"
"야.너 버텨봤자 좋을 거 하나 없어 빨리 들어가"
눈 앞에 있는 모텔촌, 한 모텔을 가리키며 들어가자고 나를 잡아끄는 홍정호, 아씨 왜 하필이면 기성용은 여길 지나고 있었던 거야_
싫다고 싫다고 발뺌만 해도 아무 말 않고 잡아끄는 홍정호, 이러면 나에 대한 기성용의 시선은 더 차가워질꺼란 말이야...
이 때껏 그와 3년 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사랑해오면서 그와 관계를 맺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사랑해서 더 소중하게 여겨주고 싶다는 그의 말도 있었지만 나또한 혼전순결을 원하는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가 나의 모습을 본다면 아마 더 실망하고 말 것이다.
"야.대충 들어가는 척해.나도 너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다?누가 보면 니가 졸-라 섹시한줄 알겠다"
"..이...이..씨..."
나를 잡아끌다 이내 말이 안통하는 나를 보고 귓속말로 속삭이는 홍정호, 덕분에 내 얼굴은 불 붙은 꽃처럼 새빨개졌다.
"헐,야 니 남친 여기봤다. 빨리 가자"
그렇게 얼떨결에 들어오게 된 모텔, 홍정호는 급하게 키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난 여전히 그의 손에 이끌려 방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야 이왕 이렇게 된 거,들어가서 눈좀 붙이고 ㄱ....아씨 미친거아냐 야 뛰어!!!!"
"네?!"
"빨리 빨리 빨리 들어가!!"
쾅_
모텔 안으로 들어와 여유있게 행동하던 홍정호는 방 근처에 이르자 무언가에 쫓기듯 순식간에 방 안으로 나를 밀어내듯 밀쳐넣었다.
그리고 내 귀를 의심하게 하는 목소리 한 줄기,
"문열어."
"기..성용..?"
"좋은 말로 할 때 문열어라.."
"야 대충 하고 끝내자 좀 있으면 너한테 완전 넘어오겠다. 따라올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쉽네 짜식_"
문 밖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기성용의 목소리,그러는 와중, 홍정호는 신나죽겠다는 표정으로 공주님처럼 나를 들어올려 방의 한 가운데 위치한 퀸사이즈의 침대에 나를 무심히 던졌다.
이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다보자 그는 '잠시만'이라고 입모양을 만들며 내 위로 자연스럽게 엎드렸다.
"이..이거..!"
"쉿!문열렸다 개자식아!!!!"
"ㅁ..읍!!"
묘한 자세, 다급한 분위기, 내 위의 홍정호, 내 손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 그리고 그와의 두번째 키스.
첫번째 키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눈물맛에서 딸기맛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일 뿐인데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든단거다.
"씨발새끼가!!!!"
둔탁한 구타음과 함께 아련하게 느껴지던 홍정호는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대신 무척이나 화가 나보이는 기성용의 얼굴만이 위로 보인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순간엔 그저 내 입술언저리에 남아있는 홍정호의 향기와 흔적, 그리고 오랜만에 가까이서 보는 기성용의 모습에
아릿하게 저려오는 마음과 눈가만 남아있었다.
"000..너...하..따라나와.."
"아씨..더럽게 아프네..야~다음으로 갈까?"
"더 맞고 싶으면 계속 나불거려라_"
기성용은 멍하니 누워만 있는 내 손을 잡고 자리를 박차고 모텔 밖으로 무작정 나를 이끌었다. 아팠다. 내 손을 통해 느껴져오는 감각은 오직 고통뿐이었다.
눈을 통해 비춰지는 그의 뒷모습에 문득 눈물이 터져나왔다.오랜만이여서일까. 당장이라도 걸음을 멈춰서고 다가가서 안기고 싶었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녹슨 마음에 빗장을 풀어 그를 가득 담고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미친듯이 걷다가 그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화가 난건지, 슬픈건지 알 수 없는 생소한 표정이 나를 그 자리에 그대로 옭아매고 말았다.
"그 새끼가 그렇게 좋냐_"
"날 버린 건 너야!뭘 어쩌라는 거야!!"
"아 그건...!...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몸을 그렇게 함부로 내줘?니가 창년이야?"
"너..진짜..이제 남이라고 막 말..."
"아..미안..이렇게 까지 말하려고 한 건 아닌데.."
"..됐어..너랑 이런말 하는 것도 웃긴것같다.내 몸은 내가 잘 간수해 니 여자친구나 잘챙겨"
마음과는 다르게 내 입에선 투박한 말이 거침없이 나왔다. 그러다 이내 그의 입에서 나온 무지한 한 마디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그였지만
쉽사리 제어가 되지 않는 입에선 간절하지 못한 한 마디만이 튀어나왔다.
"..신경쓰여...그래, 내가 ...버렸어 근데도 신경쓰여!!! 아직..하..너 사랑하는 것 같다.미안하다.."
뒤로 돌아서 가려는 발걸음을 잡아당기는 그의 말에 무너지듯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그걸 말해서 어쩌자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표정이 어떤지, 울고 있는 내가 보이는지 어떤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이미 눈 한가득 눈물이 고여 아무것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몇 개월동안 지겹도록 느끼던 아릿함과 기쁨이 동시에 차올라 뭐라고 말해야할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그대로 회로가 정지되었다.
그냥 그가 나를 예전처럼 따스하게 품 안에 넣어주기만을 바랬다.
*
"하..더럽게 아프네....난 이제 어떡하냐 000....넘어갈까..말까.."
텅빈 모텔 방 한구석 허탈히 앉아있던 그는 터진입가에 비릿하게 핏내가 풍기는 웃음을 걸치고 있었다. 기성용과 그의 의뢰인이 나간 뒤 한참동안을 그는 그렇게 주저앉아있었다.
몇 달전 그는 흥신소를 개업했다. 평소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던차라 고등학교를 마치고나면 사업을 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만 해오던 그였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었고 몇 년 아르바이트생 신세만 전전하다가 돈을 모아 작은 가게, 흥신소를 차린 것이었다.
그가 처음 흥신소를 개업했을 때 그는 사람을 찾아준다거나 물건을 구해준다거나 하는 류의 의뢰만 받아왔었다. 그도 당연히 흥신소란 이런 일을 해주는 곳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몇 주전, 그는 특이한 의뢰인을 만났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듯 무너져버린 표정에 약간의 한기까지 서린 여자였다.
그의 의뢰인은 가녀렸다. 뒤돌아서 대면한 그녀는 툭 치면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의뢰는 잔인했다. '살인' 그것도 동생.
그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흥신소가 무슨 살인청부소도 아니고 뜬금없이 살인이라니.하지만 돈이 필요했던 차라 그는 일단은 의뢰를 수락하기로 했다.
게다가 여자의 표정은 의뢰수락이 불성사될경우 당장이라도 손목긋고 죽어버릴것만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남자친구를 동생에게 뺏겼다는 그녀는
증오심에 가득 차있었고 그는 그녀의 남자친구를 찾아주고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물론, 살인은 빼고, 어쨌든 중요한건 남자친구가 돌아오는 거니까 말이다.
하지만 의뢰가 진행될수록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게 되었고, 그는 급기야 그런 그녀에게 가진 동정을 사랑으로 바꾸어버리기까지 해버렸다.
"니가 아파하는거에 나도 물들어버렸는데..다음단계로..가야되냐..말아야되냐..나 아무래도 미친것같다..000.."
"대답좀 해봐라..나 진짜 일낼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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