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뭐지."
"아까부터 왜 자꾸 따라오세요?"
2층 양호실에서부터 로봇처럼 뚜벅뚜벅 걸어 급식실로 향하던 종대는 계단을 내려가던 중 결국 참지 못하고 크리스에게로 몸을 돌려 마주보았다.양호실에서 마주친 이 엄청나게 잘생기고 엄청나게 거대한 남자는 종대가 루한에게 인사를 하고 양호실을 나와 급식실로 내려가는 길 내내 계속 뒤를 따르고 있었다.양호실은 아픈 환자들의 안정을 이유로 학생들에겐 출입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교무실 등 교직원 전용 복도에 있는터라 막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복도엔 종대와 크리스를 제외한 그 누구도 없었다.그냥 이름을 모르는 비슷한 또래의 학생도 아니고 루한 선생님과 동갑으로 추정되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크리스가 자꾸 뒤에서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를 울리며 따라오니 종대의 입장에서는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휙 돌아 보니 저보다 높은 계단에 서 있는 크리스의 얼굴이 더욱 높아보여 종대는 뒷목이 뻐근해질 지경이었다.크리스는 크리스대로 잘 걸어가다 말고 잔뜩 경계조로 질문을 날리는 눈 앞의 조그만 학생이 어이가 없었다.교복바지가 헐렁해보일 정도로 유독 마른 체구며 자신의 가슴에나 간신히 올 법한 아담한 키를 보아하니 잘 봐줘야 중간종인 듯 한 꼬맹이가 시비를 터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물론 크리스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하여간 경종들은 자기들의 모자란 조건은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따지고 보는군.초장에 기를 눌러놔야겠어.평소 같았으면 곧바로 내뱉었을 말을 가벼운 헛웃음으로 대신한 크리스는 안 그래도 내려가는 계단에 서 있어 더욱 작아보이는 종대의 면전에 대고 코웃음을 치며 한껏 눈을 내리깔았다.그리곤 종대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낮은 목소리로 읽어주었다.
"김좆대."
".................."
"................."
".....종대에요."
"...........김종대."
한층 짙어진 침묵 사이로 크리스는 아주 살짝 목을 가다듬었다.이런 발음실수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언어 공부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해 왔건만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체면을 구기는 실수를 저지르다니.시선을 살짝 돌리는 척 얼른 살핀 종대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몰라도 굉장히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이름 가운데 글자의 받침인가 뭔가 하는것을 잘못 읽은 것 같은데 그것 하나가지고 저렇게 기분상해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역시 경종들의 자존감은 한없이 낮다고 비웃으며 크리스는 다시금 눈을 거만하게 내리깐 채 허리에 손을 척 얹으며 종대에게 말했다.마치 조롱하듯이 약간 리듬을 타면서.
"Hah,종대.나 오늘부터 여기 교생이야.교직원이라고."
"..그래서요?"
"그래서라니?밥 먹으러 식당 가는 것도 안돼?Cafeteria몰라,종대?"
종대 English Class에 Sleeping했어?라고 덧붙이고 싶은 것은 카리스마를 위해 생략한 크리스는 외국인처럼 움푹 패인 두 눈 가득 즐거움을 가득 담아 종대를 내려다 보았다.종대는 그런 크리스를 굉장히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내 또다시 휙 하고 마른 몸을 돌리더니 다다다다 계단을 내려가 이내 사라져 버렸다.멀어지는 삼선실내화 소리를 음미하며 크리스는 적막한 복도의 공기를 상쾌하게 들이마시며 계단 난간에 몸을 살짝 기대며 팔짱을 척 하고 끼었다.
역시 내 Humor Sense는 Great해.
**
"맛있어?맵진 않아?"
"웅.오랭마네 먹거서 징짜 마싰어."
'시발,졸귀..'
"뭐라구?"
"튀김 추가해줄까?"
"오-박찬열 짱짱맨인데?그래주면 나야 고맙지!내가 주문해 올게!"
"그래?지갑 가져가."
"진짜?땡큐!"
작은 떡볶이를 입 안에 넣고 우물대던 백현이 천진하게 웃으며 엄지를 척 치켜들더니 단박에 주문을 추가하러 직원에게 달려가 버리자 찬열은 그제서야 손바닥으로 제 입을 덮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다이나믹한 입버릇 때문에 하마터면 간신히 터놓은 백현에게로의 길을 순식간에 다시 매몰시킬 뻔 했다.백현과 마주하고 앉아 조금이라도 더 듬직한 남성미를 어필하기 위해 내내 어깨와 허리를 쭉 펴고 있었더니 상체가 나무판대기가 되어버린 듯 뻣뻣하다.절로 올라오는 신음을 혹시나 백현이 들을까 싶어 꾹 참으며 슬쩍 스트레칭을 변명삼아 카운터를 향해 돌아보니 찬열의 검은 지갑에서 체크카트를 꺼내든 채 부산하게 발 뒤꿈치를 동동 튀어대는 백현의 모습이 보인다.은근히 남자다운 라인이 잡혀있는데도 네이비색 교복을 입은 모습은 그저 귀엽기만 하다.뻐근했던 등근육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끼며 찬열은 결국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아예 의자에서 등을 돌려 튀김을 기다리는 백현의 뒷모습을 감상하기 시작했다.저 조금만 머리통에선 금방이라도 하얀 두 귀가 솟아나 쫑긋댈 것만 같고,교복 마이 밑으로 살짝 보이는 저 엉덩이는 굳이 새하얀 강아지 꼬리가 나와있지 않아도 충분히 탱탱.
"뭐야."
상상이 점점 위험해지려는 찰나 찬열의 두 눈이 번득이더니 악다물어진 잇새로 뿌드득 위협적인 소리가 새어나왔다.튀김을 받아드는 백현의 머리를 카운터 직원이 흐뭇하게 웃으며 쓰다듬고 있었다.저 새끼가 뭔데 감히?마음속에서 분노가 불씨를 지피더니 질투가 되어 화르륵 타오른다.저도 모르게 그르릉 소리를 내는 찬열에 양 옆 테이블에서 오붓하게 분식 데이트를 즐기고 있던 경종 커플들이 살벌한 호르몬을 느끼곤 부르를 몸을 떨며 찬열의 눈치를 살폈다.질투를 참지 못한 찬열이 두 눈 위로 희미한 금빛을 번득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순간,비닐이 덮힌 채 갖가지 튀김이 종류별로 쌓인 접시를 든 백현이 휙 찬열을 향해 뒤돌았다.금방이라도 웃음을 터뜨리며 방방 뛸 듯한 행복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찬열은 곧바로 환하게 미소지어주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꽉 쥐고 있던 의자 등받이의 지지대가 움푹 패여 있었다.
"찬열아!대박이지?저기 알바형이 나 귀엽다고 튀김 서비스 주셨지롱-"
"오-진짜 대박인데?변백현 운이 좋다,오늘?"
"맞아맞아.나 좀 럭키가이인 듯."
"진짜 그런가 보다.하하....."
백현아.진짜 럭키가이는 저 알바새끼야.내가 강냉이를 다 털어주려다 참았으니까.조금 전까지의 살벌한 분노는 마음 속에서만 중얼거린 찬열은 연신 신이 나 어쩔 줄을 몰라하는 백현의 앞으로 튀김접시를 밀어주며 양호실에서부터 유지하고 있던 멋진 웃음을 얼굴 가득 띄웠다.아니,사실 이미 백현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찬열을 향해 방긋방긋 웃어주기 시작한 때부터 찬열의 얼굴엔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튀김은 떡볶이와 먹어야 제 맛이라며 떡볶이 국물 한가득 튀김을 푹 담궜다 쏙쏙 삼키는 백현의 모습은 그야말로 간신 앞에서 신이 난 작은 포메라니안 그 자체였다.배가 많이 고팠던 것인지 원래 잘 먹는 것인지 쉴 새 없이 떡볶이며 순대,튀김을 먹어대는 백현을 찬열은 어느새 턱까지 괸 채 하염없이 감상하고 있었다.이렇게 먹여놓으면 또 그 때처럼 잠이 와서 낮잠을 잘까?친구된 기념이라면서 쿠션을 사줄까?백현이처럼 새하얀 쿠션을 사주면 아주 잘 어울리겠지?백현이는 집에서 어떻게 잘까?잠옷을 입고 자려나?난 팬티만 입고 자는데.백현이는 어떤 팬티를 입지?난 드로즈 입는데.백현이가 좋아하는 팬티 색깔은 뭐지?사이즈는?
"찬열아?"
'S사이즈....?'
"박찬열!"
"엉?!"
눈 앞이 번쩍 뜨였다.찬열은 발작하듯 고개를 휘적이며 눈을 깜박였다.백현이 떡볶이 소스가 묻은 포크를 한 손에 든 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선 찬열의 앞으로 잔뜩 기울이고 있었다.무슨 상황인지 잘 파악이 되질 않아 찬열은자신을 바라보는 백현의 눈만 멀뚱멀뚱 마주보았다.어쩐지 평소보다 조금 더 처진 눈꼬리를 한 채 마주보고 있는 백현의 표정이 걱정스러워 보였다.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백현의 시선을 제대로 받은 적은 처음이라 찬열은 부끄러움에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떡볶이 소스가 살짝 묻어있는 분홍색 입술이 보였다.찬열은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입맛이 없는거야?왜 먹지도 않고 멍하게 있어.."
"어....난..."
"너 아까도 양호실에서 아파서 자고 있어던 거지?"
식탁을 짚고 있던 백현의 한 손이 그대로 찬열의 이마로 안착했다.하얗고,가느다란 네 개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찬열의 이마를 감싸는 순간 찬열은 이마에 열이 뜨끈하게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눈을 한번 꿈벅 감았다 떠도 시선엔 백현의 입술이 가득 차 있었다.아무 문제없는 자신의 이마에 집중하느라 살짝 깨문 입술에 묻어있는 떡볶이 국물이 자꾸 신경쓰인다.맛보고 싶다는 어이없는 충동이 자꾸 치솟는다.
"흠....열은 없는데."
"...........하..."
"괜찮은 거 맞지,찬열-"
백현의 입술이 움직이고 이름이 나오는 순간,찬열은 참지 못하고 혀를 내밀었다.그리고 핥았다.
백현의 입술을.
"........................"
"........................"
신나는 가요가 흘러나오고 분식을 즐기는 반류들의 즐거운 대화로 가득한 상어떡볶이가게.그 속에서 오직 찬열과 백현만이 침묵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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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안녕하세요 요즘따라 잠을 못 자서 피곤하네요
- 분량이 조금 줄어든 느낌이라 죄송할 뿐입니다.외출해야해서 시간이 많이 없었네요ㅠㅠ..
- 오늘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클첸은 say,hello.찬백은 say,goodbye가 되겠....?아직 완결나면 안되는데?
- 갤럭시의 클라스는 영원합니다.
- 종대의 이름은 소중합니다.
- 저 초록글 될 때마다 캡처하고 있어요!사랑합니다 ♥(특수문자가 돼요^^!)
- 암호닉은......ㅠㅠ굳이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다만 앞편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댓글을 달아주실 때 ㅇㅇ이에요!이렇게 자기표시를 해주신다는 점에선 저도 글 쓰는데 지속적인 피드백도 받고 좋을 것 같아요ㅎㅎ
- 내일 월요일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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