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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 13 >
맛있는 냄새. 코를 킁킁거렸다. 뭐지, 짭조름한 냄새다. 옅게 달걀 냄새도 나고. 정신은 아직 잠에서 덜 깨었으면서도 몸은 음식 냄새에 반응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부엌을 갔더니 정국이 있었다. 내 인기척을 느낀 그가 뒤를 돌아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잘 잤어?”
여전히 졸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접시를 식탁에 내려둔 그가 내 머리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얘는 아침에도 잘생겼어. 눈을 덜 뜬 상태에서도 전정국이 잘생겼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정국이 내 눈가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자동반사적으로 눈을 확 감아버렸다.
“눈곱 있다.”
조심스레 말라붙은 눈곱을 떼어주는 정국이었다. 부끄러움과는 별개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렸다. 식탁에서 따뜻한 음식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계란말이다.
“네가 한 거야?”
“김석진한테 배웠어.”
“우와.”
맛이 궁금해서 손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어 먹으려는데 그가 내 손을 아프지 않게 탁 쳤다. 먹는 걸 제지당한 게 아쉬워 입술을 내밀었다. 치사하게.
“아침부터 유혹하는 거야?”
그가 튀어나온 내 입술을 보며 말했다. 아니라는 답을 하기도 전에 짧게 입술이 닿았다. 입술을 뗀 그가 씩 웃었다.
“양치질 안했는데.”
“손으로는 음식 집어먹으면서 양치질은 안한 건 문제야?”
“그거랑 그거랑은 다르지.”
“빨리 씻고 와. 눈도 못 뜨는 애한테 키스하려니까 죄책감 들어.”
그에게 일부러 틱틱 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아침부터 사람을 들어다 놨다 하네. 아직도 졸리다. 하품이 쩍 나왔다. 하품을 하며 바라본 내 모습은 정신을 확 깨웠다. 화장실 거울은 쓸데없이 커서는. 오늘 왜 이렇게 못생겼냐고. 눈 밑에 눈물과 함께 말라붙어 있는 눈곱은 못 봐줄 정도였다. 전정국 비위도 좋다. 이런 애한테 뽀뽀도 하고. 얼굴에 들러붙은 눈곱은 떼어내기도 힘들었다. 심지어 아팠다. 눈 뜨기 힘든 이유에 졸린 것과 함께 이 눈곱도 한몫했을 거다. 자고 일어났더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세수를 하고 아침도 먹기 전에 양치질을 했다. 아주 오랫동안. 깨끗이. 이유는 나도 모른다. 몰라. 쓸 데가 있겠지.
“다 식었다.”
“식었어?”
“조금?”
“기다려봐.”
정국이 계란말이 접시를 다시 들고가서 프라이팬에 불을 올렸다. 그렇게까지 식은 건 아니었는데. 좁은 부엌에 정국이 있으니 평소보다 더 좁아보였다. 어깨가 참 바람직하다. 식탁에 턱을 괴고 앉아 그를 보고 있으니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흰색 토끼가 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는 분홍색 앞치마. 자취를 시작하고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사 놓은 앞치마는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구석에 걸려있었다. 그가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생각하자 웃음이 픽하고 흘러나왔다.
“뭐가 웃겨.”
“정국아.”
“응.”
“나 보고 싶은 게 있는데.”
“보고 싶은 거?”
“보여줄 거야?”
“말해 봐.”
“보여준다고 약속하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계란말이에 집중하던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수상한 눈빛을 마구 보냈다. 저러다 생각 읽어버리면 어쩌지. 침을 꿀꺽 삼켰다.
“알겠어.”
정국의 답은 예상 밖이었지만 뛸 듯이 기뻤다. 급격히 좋아진 기분에 몸을 막 흔들며 발랄한 걸음으로 앞치마를 꺼내들었다. 뭔가를 눈치 챈 정국의 안색이 나빠졌다.
“약속은 약속이다?”
“그래도 저건…….”
“무르기 없기!”
정국에게 앞치마를 내밀었다. 내 손이 무색해지게 제 할 일을 하는 녀석이었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프라이팬을 닦고. 계란말이 하나를 집어 입으로 바람을 불어 식히고는 내 입에 넣어주고. 입 안에 들어온 계란말이는 딱 먹기 좋은 온도였다. 입을 오물거렸다. 그리고 후회했다. 표정관리를 위해 노력했는데 녀석이 낌새를 안 모양이다.
“맛없어?”
이마에서 땀이 삐질 흘렀다. 입을 움직이고 싶은데 움직이질 않는다. 어쩐지 짭조름한 냄새가 많이 나더라니. 소금을 얼마나 넣은 거야. 한 번 씹자 짠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아니, 괜찮아.”
“괜찮은데 맛있지는 않나 봐?”
정곡을 찔려 물을 내뿜을 뻔했다. 다행히 밖으로 뿜지는 않고 사레만 들렸다. 내 등을 그가 두드려주었다.
“뭐가 문제야.”
“소금 얼마나 넣었어?”
“많이.”
“다음부터는 조금만 넣어줘.”
“먹기 힘들어?”
“그 정도는 아니구.”
밥을 엄청 많이 먹으면 좀 괜찮을 것 같아 숟가락 가득 밥을 퍼서 먹었다. 잠시 충격적인 짠맛에 잊고 있던 약속이 떠올랐다.
“앞치마!”
손뼉을 치며 다시 앞치마를 들어 그에게 입어달라는 눈짓을 했다.
“진심이야?”
“웅.”
입 안에 든 음식물 덕분에 발음이 뭉개졌다.
“약속해짜낭.”
“하... 진짜. 정여주 때문에 내가 별 걸 다해본다.”
정국이 잠시 망설이더니 더딘 손길로 앞치마에 머리를 넣었다. 덩치에 안 맞게 조금 작은 앞치마는 귀여움을 더 부각시켰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귀엽네.
“정구가!”
“왜.”
정작 본인은 부끄러워 내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웃음이 실실 나왔다.
“왜? 부끄러워?”
“벗을래.”
“아 조금만 더 입고 있어. 응?”
“조금 지났어.”
결국 전정국은 앞치마가 뜯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벗어 던졌다. 아쉽다. 사진이라도 찍어 둘걸.
“나도 보고 싶은 거 있어.”
마지막 계란말이를 집어먹고 밥을 또 한 움큼 입에 넣고 있는데 대뜸 전정국이 말했다. 이 불길한 예감은 뭐지.
“보여줘.”
빠른 속도로 음식을 씹어 넘겼다. 위험하다. 빨리 양치질이나 다시 하러 가야지. 결국 아까 한 양치질은 쓸모가 없었다. 그건 또 그거대로 아쉬웠다.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다.
“보여줄 거야?”
끈질기게도 물어보는 전정국에 급히 가방을 챙겼다. 불안해. 그 때였다. 그의 온기가 입술을 통해 전해졌다. 갑작스런 행동에 눈을 깜빡였다. 입술을 계속 대고 있는 채로 그는 깜빡이는 내 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예쁜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혔다.
“보여줬네.”
“응?”
“놀라는 거. 보고 싶었어.”
“변태.”
그를 싫지 않은 표정으로 흘겼다. 정국이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걸 어떡해.”
뺨을 넘어서 귀까지 확 달아오르는 느낌에 신발에 발을 대충 구겨 넣고 다녀온다는 말을 하고는 집을 나왔다. 아침부터 진짜. 올라간 입 꼬리가 내려가질 않았다. 그냥 아주 위에 자리를 잡았다. 발걸음도 가볍네. 헛기침을 하며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정여주.”
문으로 정국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무방비하게 웃고 있던 얼굴 그대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보고 조금 뒤에 표정을 풀었다. 창피하게. 너무 바보같이 웃었어.
“전화해. 데리러 갈게.”
“응.”
발에 날개라도 달린 것 마냥 계단을 가볍게 내려갔다. 같이 있으면 이렇게 행복한데 잠시만 눈을 돌리면 불안하다. 갑자기 나타났던 김태형도 세나도. 요즘들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도. 그는 괜찮은데 나만 흔들리는 것 같아서 더 불안하다. 나도 괜찮아 지기를.
***
정국은 혹시나 여주가 넘어질까 봐 닿지도 않는 손을 뻗었다. 다행히 여주는 넘어지지 않고 계단을 잘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간 여주는 이제 보이지 않았지만 정국은 그곳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괜찮은 척, 지금 이 기분을 즐기고 싶어도 줄어드는 날짜는 숨통을 조여 왔다. 여주가 불안해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더 숨이 막혔다. 정국 역시 불안한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여주 앞에서 내색할 수는 없었다.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조심스럽게 만들어내고 있는 이 행복이 지속될 수 있을까. 여주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포기할 준비도 한 정국이었다. 그러나 함께할 수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의미야. 여주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도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시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정국이 처음으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또 잃으면 그녀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나를 기억해줘. 여주야.
엄청 늦게 왔는데 분량도 적어서... 죄송한 마음에 구독료는 없앴습니다!
독자님들께서 추측해주시는데 관심과 애정 너무나 감사드려요.
이제 곧! 다음 편부터 궁금하신 것들이 밝혀질 예정입니다.
항상 감사해요:)
W. 사프란(Spring Cro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