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의 곧게 뻗은 다리가 침대 밑으로 내려오고, 곧 두 발에 힘을 실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 만큼이나 하얀 와이셔츠를 상체에 걸친다.
아래에서부터 네다섯개의 단추를 잠그고 뽀얀 가슴팍을 드러낸 경수가 흐트러진 머리를 매만지며 주방 냉장고 앞으로 향해 문을 열었다.
손에 잡히는 생수병 하나를 꺼내서 뚜껑을 열고 두어모금 들이키며 다시 방으로 돌아와 조심스레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피곤한 얼굴로 잠들어있는 백현에게 손을 뻗어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올리자, 그 손길에 곧 눈을 뜰 듯 백현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이에 화들짝 놀란 경수가 서둘러 손을 떼고 다시 백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늘 백현과의 정사가 끝나면 백현은 쓰러지듯 잠의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경수는 잠에 들지 못하고 날이 새도록 이렇게 백현이 깨어나기 전까지
백현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도 물..."
"깨있었어요?"
갑작스레 백현이 경수에게로 손을 뻗으며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자 깜짝 놀란 경수가 되물으며 백현의 손에 생수병을 쥐어주었다.
고개를 들어 생수병을 입으로 가져가며 목을 축인 백현이 다시 경수에게로 생수병을 건네주고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눈을 떴다.
"너 일어나서 셔츠 입을 때 부터"
"응큼하긴. 일어났으면 일어났다고 말을 하던가"
"몇 시야?"
"음? 6시 조금 넘었어요"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한 백현이 상체를 일으키더니 경수를 지나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 몸으로 욕실로 향했다.
그런 백현의 뒷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쉰 경수가 몸을 일으켜 저려오는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간단한 아침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다 씻었어요?"
"응"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리고 있는 경수에게로 어느새 샤워를 마쳤는지 목에 수건을 걸친 백현이 다가온다.
"가서 앉아요. 거의 다 됐어"
식탁 의자를 빼내어 자리에 앉은 백현에게 경수가 갓 만든 따끈한 토스트와 김이 오르는 커피를 건네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간다.
느릿하게 토스트를 베어먹고 있는 백현과 달리 한 팔에 백현의 수트를 들고 식탁 의자에 걸쳐놓은 경수가 이제야 숨을 돌리며
백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왜 이렇게 얼굴이 까칠해... 많이 피곤해요?"
"언제는 안 피곤한 적 있었나"
"그래도..."
"지금 변호한 클라이언트때문에"
"왜요? 이번엔 뭐 조폭이라도 돼?"
"그런건 아니고, 그냥 일이 좀 복잡해"
말하기도 짜증난다는 듯 커피를 마시며 미간을 찌푸리는 백현에 경수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접시를 비운 백현이 옆자리에 걸쳐진 바지와 셔츠를 빠르게 입고 단추를 잠그자, 한 손에 넥타이를 들고 다가온 경수가
손을 뻗어 백현의 목에 정갈하게 넥타이를 매주고 수트 자켓까지 입혀준 뒤 옷매무새를 정돈해준다.
서류가방을 손에 든 백현이 손목시계를 두르고 시간을 보자 아직 7시도 되지 않은 시각.
"오늘은 못 와"
"알고 있어요"
"집으로 가봐야 돼. 혜교 생일이야. 저녁에 외식하기로 했어"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선물은 샀어요?"
"아직"
"저녁에 맛있는거 사주면서 장미꽃 한다발 주는거 잊지 말아요. 여자들은 그런거 좋아하잖아"
와이프의 생일때문에 오지 못한다는 백현의 말에도 경수는 표정변화조차 없이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경수의 무덤덤한 반응에 괜스레 화가 난 백현이 경수를 지나쳐 현관으로 향한다.
"간다"
"혜교씨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줘요"
"내가 연락하기 전까진 먼저 전화하지마"
경수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은 백현이 미련없이 경수의 집을 나섰다.
절애(切愛)
이번 패션쇼 의상 컨셉에 대해서 회의를 하자며 불러낸 디자이너로 인해 경수는 혼자 사무실에 앉아 다른 스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 안에 잡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것저것 뒤적거리지만 역시나 백현에게선 일말의 전화나 문자조차 없다.
그런 경수를 알아챈 것인지 손 안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이에 흠칫 놀란 경수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뭐해?
"아... 찬열이형..."
- 뭐야 그 반응은? 어째 실망한 목소리다?
"흐흥... 그럴리가요. 간만에 걸려온 외간남자의 전화에 심장떨려서 그랬어요"
연락이 없을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백현이 아닌 목소리에 본의 아니게 찬열에게 실망한 티를 내고 만 경수가 금방 콧소리를 내고 웃으며
장난스레 화제를 돌렸다.
- 바빠?
"음... 아니? 지금 모델 의상 컨셉 상의하러 잠깐 사무실 오긴 했는데 아직 미팅할 사람들 아무도 안왔어"
-그래? 그럼 저녁에 시간 돼?
"왜요? 딱히 별일 있는건 아니지만"
- 우리 예쁜 경수가 얼굴 좀 보자고 이 형이. 왜 그렇게 비싸게 굴어"
"치... 알겠어요. 맛있는거 사줄거야?"
- 여부가 있겠습니까. 먹고싶은거 생각해놔. 이따 전화할게"
"응 알겠어요"
그렇게 찬열과 저녁약속을 잡은 경수가 전화통화를 끝마쳤다.
오늘같은 날은 백현의 연락도 없고 또 백현이 저녁에 집으로 찾아올 일도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백현과 그의 와이프가 단란한
한 때를 보낼시간동안 혼자 청승맞게 집에 있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루정도는 다른 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경수가 고개를 돌리자, 한 팔에 필기구와 파일을 든 채 문을 연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있을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자리에 혼자 앉아있는 경수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건지 남자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 자리에 멈춰서있었다.
"뭐해요 거기 서서? 안들어올거예요?"
"아, 네.."
경수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듯 조심스레 문을 닫은 남자가 경수의 맞은 편 자리에 가서 앉는다.
남자의 동선을 눈으로 주욱 훑고 있던 경수가 손 안에 담아뒀던 핸드폰을 옆으로 밀어내곤 남자를 지켜보기 시작한다.
그다지 챙겨온 것도 없으면서 분주히 움직이는 손놀림이 누가 보더라도 어색하다.
그런 남자의 행동이 우습기도 하면서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경수가 금방 싫증을 느끼곤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무료하게 문자함만 뒤적거리던 경수가 무심코 고개를 들자, 쭉 경수를 지켜보기라도 했었다는 듯 남자의 눈과 마주친다.
어쩐지 당연스레 남자가 허둥지둥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것이라 예상했던 경수의 생각과는 다르게 남자는 똑바로 경수의 두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덕분에 경수 또한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남자의 두 눈만 빤히 바라보는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남자의 외모가
두 눈에 들어온다. 크고 뚜렷한 눈과 깊은 눈매라던가, 날렵한 광대와 턱선, 높고 곧게 뻗어있는 콧날, 굳게 자리잡혀있는 입술.
늘 경수와 마주칠 때면 먼저 자리를 피해버리는 그였기에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은 아닐까, 어딘지 고운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오늘 본 그의 얼굴은 완연하고 강건한 남자의 그것이었다.
백현 역시 경수가 생각하기에 거칠지만 부드러운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 앞의 이 남자 또한 백현과는 다른 의미로
경수에게 비슷한 느낌을 심어주고 있었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경수가 현실로 돌아오며 본의아니게 먼저 시선을 내렸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네?"
"평소에는 마주쳐도 쌩하니 가버리기만 하고, 눈 마주칠 새도 안주더니. 오늘은 마음을 다르게 고쳐먹었나봐요?"
"하-"
"아니면... 그 쪽도 내가 맘에 들었나...?"
남자가 별 말 없자 경수가 장난스레 눈꼬리를 휘어접고 웃으며 말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남자에게선 그 어떤 긍정이나 부정의 말도 쏟아지지 않았다.
되려 민망해진건 경수였다. 큼큼거리며 한 번 목을 가다듬은 경수가 딴청을 부리며 입을 열었다.
"뭐야, 분위기가 싸해서 농담이라도 걸어보려고 했는데... 뭐 반응이 그래요? 농담이예요 농담. 걱정말아요 안잡아먹어"
"보통 사람들은 그런 농담 들으면 반응이 어떤데요?"
"음? 어... 눈에 띄게 당황한다던가, 볼을 붉힌다던가. 아니면..."
"아니면?"
"덥치려고 벽으로 밀어붙인다던가"
경수의 마지막 말에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다.
"아, 이런 얘기 거북하려나? 흐흥... 근데 이건 진짜 농담 아닌데"
"진심입니까?"
"말했잖아요 농담 아니라고. 그렇다고 내가 진짜 아무 남자랑 다 잔다는건 아니야. 나도 남자거든요. 그런 놈들 떼어내는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뭐 가끔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 큰 놈들이 그러면 무섭긴 한데, 그건 내가 눈치봐서 말려들겠다 싶으면
애초에 그런 말 꺼내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다가 진짜 당하면 어떡합니까?"
"뭐, 기분이야 더럽긴 하겠지만 이 바닥에 얼굴 반반하고 나보다 키 큰 애들이 한둘도 아니고... 당할 바에야 우락부락하고 못생긴 애들보다
꽃미남 계열이 더 낫지 않겠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고, 내가 무슨 순결 잃었다고 엉엉 울고불고 난리 칠 여자도 아닌데다
애를 배는 것도 아닌데... 그냥 깔끔하게 한 번 주고 끝내면 그만이예요"
"... 원래 그렇게 인생을 막 삽니까?"
의외로 진지하게 경수의 말을 들어주는 남자에 계속 말을 내뱉으니 남자가 또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다.
막 사냐니... 남자의 말이 어이가 없긴 한데 또 경수 자신이 말한 내용이 남자가 생각하기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어서
경수가 슬핏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막 사는 것 처럼 보여요? 흠... 아닌데... 내가 막 이 남자 저 남자 후리고 다니는 게이처럼 보여요? 그래요?"
대체 이 남자는 어떻게 저리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런 얘기를 꺼낼 수 있을까
자칫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콕 찝어 묻는 경수에 남자가 생각했다.
경수는 꼭 자기 자신을 일부러 생채기 내듯 자세히 들어보면 자신을 깎아내릴 말을 툭툭 내뱉고 있었다.
뭐가 그리 꼬인걸까 이 사람은.
"그럼 도경수씨는 이 남자 저 남자 후리고 다니는 게이가 맞습니까?"
"아, 그게 그럼 또 그렇게 되는건가? 흐흥... 나 아무나랑 안자요. 나름 지조있는 남자거든. 아까 말은 그렇게 했어도 사실 다른 사람이랑은
자본 적 없어요. 당할 뻔 한 적은 있지만, 그랬다간 나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질 지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죠?"
경수의 말인 즉슨, 당할 뻔한 적은 있어도 당한 적은 없다, 지조있는 남자라서 다른 사람이랑은 안잔다. 결국 임자있는 남자라는건가.
대충 머릿 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남자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또 눈꼬리를 휘어접고 가볍게 웃은 경수가 손목에 둘러진 시계를 보곤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지금 시간이 몇신데 아무도 안와? 이 사람들 이거 안되겠네?"
"아직 미팅시간 안됐잖아요"
"그런가? 내가 너무 일찍 나왔나? 흐흥..."
경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 사이에선 아무런 대화도 오고가지 않은 채 침묵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내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하나 둘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 다들 모였으니 미팅 시작하자고"
모델계쪽에서 일하는 경수와(경수를 모델로 쓰기에는 키가...흡) 토끼같고 어여쁜 마누라두신 변호사 변백현의(올ㅋ라임.. 죄송해여;;)불륜물이랄까요
이런 불순한거 왜 이렇게 좋은지... 네 그러해요..처음 올려보는 글이라서 반응이 없으면...슬플 것 같아요ㅠㅠㅠㅠ
마침 오늘 구독료가 없다길래... 높게 잡아보아요 나중에 조정할거지만...ㅎㅎㅎㅎㅎ 반응 없으면 이건 그냥 1편에서 끝인거죠 깹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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