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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가서 쉬겠다며 찬열과 헤어지긴 했지만 아직 일곱시 밖에 되지 않은 이른 시간에 혼자 집에 들어가고 싶진 않은 경수다.

찬열과 계속 있어봤자 백현에 대한 화제는 끊이지 않을 것이었고, 그것은 경수를 괴롭게 만들 것임에 분명했던 것이다.

어디가서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이런 날 연락할 사람이라곤 방금 헤어진 찬열을 제외하면 그리 많지 않았고,

그렇다고 혼자 청승떨며 쓸쓸하게 술을 마시고 싶진 않았기에 곰곰히 생각하던 경수가 무언가를 떠올리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 여보세요



"도경수예요"



- 압니다만



"안바쁘면 지금 나 좀 주워갈래요?










* * *










갑작스레 경수에게 전화받은 종인이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이자카야였다.

가게에 들어와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구석에서 혼자 술을 푸고 있는 경수가 눈에 들어오길래 종인이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경수의 앞자리로 가서 앉았다.










"어? 김종인씨다"



"뭡니까 갑자기. 약속있다던 사람이"



"흐흥... 그게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뭐 먹을래요?"










자켓을 벗어 옆자리에 가지런히 놔둔 종인이 메뉴판을 뒤적이며 흘끔흘끔 경수의 얼굴을 살폈다.

어묵꼬치와 오코노미야끼를 주문하자 경수가 술잔에 술을 따라 종인의 앞으로 내민다.










"도경수씨가 이런 데도 옵니까?"



"음? 이런데라뇨?"



"생긴건 고급 와인바에 갈 것 같이 생겨놓고 이런 일반 술집이라니 좀 이미지랑 안어울려서요"



"그거 칭찬이죠...?"



"좋을대로 생각해요"



"치... 나 와인바같은데 별로 안좋아해요. 오히려 난 포장마차 체질인데? 거기다 오늘은 저녁을 양식으로 먹었으니 술은 한식으로!"



"이게 한식은 아니잖습니까"



"아 그냥 오늘은 포장마차에서 청승맞게 술 푸기 싫어서 그랬어요. 됐어요?"










별것도 아닌걸로 자꾸 태클을 걸어오는 종인에 경수가 입술을 삐죽이며 잔을 비웠다.

멀뚱히 앉아서 자신만 바라보는 종인이 민망했던 모양인지 경수가 얼른 마시라는 듯 종인을 재촉한다.










"뭐해요. 술 잔 앞에 놓고 고사지낼거예요?"



"말 안해도 알아서 마십니다"










경수와 마찬가지로 입 안에 술을 털어넣은 종인이 경수가 먼저 시켜놓은 안주를 집어먹는다.

종인이 주문했던 어묵꼬치와 오코노미야끼가 나오고 한동안 말없이 술과 안주에만 집중하던 두 사람은 경수가 먼저 말문을 열면서

그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침묵이 깨졌다.










"김종인씨는 내가 싫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니, 맨날 나 보면 인사도 안해, 가끔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냥 피해버려, 그것도 아니면 눈도 안마주쳐,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말 한마디 못걸어서 안달인데 전혀 그런 기색도 없어. 내가 뭐 잘못했어요? 아니면 이유도 없이 그냥 내가 싫은거야?"



"그런거 아닙니다"



"이거봐, 말투도 또 엄청 딱딱해. 완전 격식차렸어. 내가 불편하고 막 그래요?"



"솔직히 편한 상대는 아닙니다만"



"치... 그러면 내 번호는 왜 따가고 주워가라는 말에 홀랑 나오는건 뭐라고 설명할건데요?"










경수의 물음에 따박따박 대꾸하던 종인이 이번에는 말이 없다.

하지만 별로 대답을 들으려고 물었던 건 아닌 듯 경수는 다시 술 잔을 기울였다.

그런 경수를 바라보던 종인 역시 마른 입술을 술로 적시더니 입을 열었다.










"이상하리만치 신경쓰이고 보고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가끔 먼저 말 붙이고 싶은데 내 성격상 그게 잘 안되서 답답하긴 합니다"



"나 좋아해요? 누가 들으면 자기 맘도 모르고 고백이라도 하는 것 처럼 들리겠네"



"듣고보니 그렇네요. 도경수씨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느낀다면 내가 도경수씨를 좋아하는게 맞겠네요"



"... 농담이죠...?"



"그런 취미 없습니다만"










허... 이런 당돌한 남자 좀 보게





이런 진지한 얼굴로 조금의 부끄럼도 없이 턱턱 내뱉는 말에 경수는 기가찼다.

무슨 저런-자기말로 따지면-진담을 농담처럼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어조가 농담같다는건 아니지만.

종인의 말을 들은 경수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했다.










"뭡니까"



"푸흐흐... 김종인씨같이 잘난 남자가 내가 좋다니까 기분 좋아서요. 왜요. 난 기분좋아하면 안되나?"



"난 장난하는거 아닙니다"



"나도 장난 아닌데요? 진짜 기분 좋아요. 김종인씨같이 키크고 잘생기고 패션 에디터로 일하면서 돈도 많고 능력있는 남자가,

뭐... 유머감각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나를 좋아한다니까 괜히 우쭐해서요. 진짠데?"










정말로 기분이 좋은 듯 소리내어 웃는 경수였지만 정작 눈은 전혀 웃고있지 않았다.










"하아... 나 완전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네. 잘생긴 남자들한테 둘러싸여서. 흐흥..."



"정말로 무슨 일 있습니까...?"



"참 빨리도 물어보네요, 이런 무딘 남자같으니"



"타이밍을 기다린 것 뿐입니다"



"치... 그럼 물어봤으니까 말해줄게요. 내가 아까 말했죠? 나 임자있다고. 아, 이런 얘기 하면 김종인씨 상처받나?"



"계속 얘기하시죠"



"아, 재미없어. 뭐 이리 반응이 없어. 진짜 나 좋아하는거 맞아요?"










종인의 무덤덤함에 경수가 버럭 짜증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종인은 여전히 이렇다 할 반응이 없다.

결국 '내가 졌다' 하는 표정으로 경수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남자라는건 짐작하고 있었죠? 그렇다고 뭐 이상하게 생각하진 말아요. 김종인씨가 나 좋아하는거랑 뭐가 달라.

뭐 어쨌든 그 사람은 남자에다가 나보다 나이도 몇 살 많고 또..."



"또?"



"유부남이예요. 그것도 젊고 예쁜 여자랑 결혼한"










경수가 꺼낸 의외의 말에 종인이 조금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종인의 이런 반응과는 다르게 경수는 피식- 자조적으로 웃어보였다.










"왜요? 나 되게 나쁜놈처럼 보여요? 막 가정파괴범같아?"



"......"



"역시 김종인씨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긴... 정상으로 보는게 더 이상한거겠지만"



"도경수씨는 본인이 나쁘다고 생각합니까?"



"으흠? 글쎄... 남들이 보면 내가 백번 잘못하고 몰매맞을 인간이겠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흐흐...

난 나쁘다고 생각 안해. 오히려 내 얘기 듣고나면 내가 불쌍한 사람취급받을걸요?"



"그렇다면 나도 도경수씨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와하... 김종인씨 보기보다 의리있네? 흐흥..."










강단있고 우직한 종인의 말에 경수가 맘에 든다는 듯 처음으로 기분좋은 웃음을 지었다.

적당히 술이 들어가고 시간도 야심한 밤으로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 경수는 종인과 함께하는 이 술자리가 나쁘지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있는 찬열이 경수를 마냥 곱게볼리 없었음은 물론이고, 아까의 그 분위기에서 찬열과 그대로 술자리로

향했다면 분명 이렇게 웃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 오늘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주한 김종인이라는 남자는 생각했던 것 보다

꽤 괜찮고 앞으로 좀 더 알아가고 싶은, 연애감정은 아니지만 가깝게 지내고 싶은 좋은 남자다.

종인이 오기 전부터 혼자 홀짝홀짝 술을 마시고 있던 경수의 앞에는 이제 꽤 많은 소주병이 즐비하고 있었다.

그와 비례하게 취기가 오른 경수의 얼굴은 살짝 홍조를 띠며 불그스름해지고 목소리 톤도 조금 높아졌으며 많이 웃었다.

반대로 종인은 자꾸만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 간간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냉수로 입 안을 적셨다.










"김종인씨 생각보다 좋은 남자 같아요"



"도경수씨도 나쁘진 않아요"



"아씨... 이럴 땐 그냥 적당히 쑥스러운 척을 하던가 아니면 고맙다고 해야지 뭐 반응이 그래요"



"쑥스럽지도 않은데 그냥 솔직히 반응한게 뭐가 나쁩니까"



"어휴... 앓느니 죽지 내가"










정말 나쁘진 않은데 눈치도 없고 유머감각도 없고 너무 솔직하다.

경수가 생각하기에 백현 또한 유머감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변에 유머감각 있어서 좀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사람 하나 쯤은

있으면 좋으련만 김종인이란 남자 역시 유머감각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아아... 보고싶다..."



"그 사람이요?"



"네"



"그럼 보면 되잖아요"



"아니 사람이 어쩜 그리 단순해요? 말했잖아요 그 사람 결혼했다구. 아무 때나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사람 아니라구요"



"결혼까지 한 남자가 바람피우는 상대가 보고싶다고 하면 적어도 얼굴 정도는 보여줄 수 있지 않아요?"



"... 한 번도 먼저 보고싶다고 한 적 없어요. 매달리는 것 처럼 보일까봐... 구차하고 구질구질해보일까봐 먼저 전화도 안하고

들러붙지도 않고 질투같은건 생각도 안해봤어요. 그게 그 사람 곁에 머물 수 있는 내 유일한 방식이예요"










종인의 생각보다 훨씬 깊고 복잡하게 꼬여버린 관계였으며, 그 관계의 표면적인 중심엔 백현이 서 있었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경수였다.

그동안은 단지 경수에게 조금 신경이 쓰일 뿐이었지만 이 자리에서 경수를 좋아한다고 깨달아버린 종인은 어쩐지 경수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그런 종인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수는 어느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간간이 술 잔을 비우고 웃고 떠들고 취했다.

종인은 별 말은 없었지만 경수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쳐주고 가끔씩 미소도 지어주며 나름대로 열심히 경청해주었다.

발그스름한 볼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열기를 식히던 경수가 시간을 확인하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스윽 고개를 돌려 가게에 붙은 벽시계를 확인하니 시간은 어느새 열한시가 훌쩍 넘은 야심하다고 하면 야심할 시간이었다.

그 때 갑자기 경수의 술 잔 옆에 있던 핸드폰이 미약하지만 존재감을 알릴 수 있도록 진동하기 시작했고, 별 생각없이 화장실 쪽을 바라보던

종인은 그리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경수의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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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흐아... .그전화가 백현이일까요?ㅜㅠ제발ㅜㅠ 경수가불쌍해요 너무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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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ur
ㅇ...아마도요...?? 저도 경수가 너무 불쌍한데 그런게 좋아요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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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엉ㅇ엉ㅇ엉ㅇ 진짜 좋아요 ㅠㅠㅠ 진짜 취향저격 아껴읽고있어요 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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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ur
으앙 감쟈해요ㅠㅠㅠ취향저격이시라니..ㅠㅠㅠㅠ11편까지 다 쒀뒀던건데 그대때문에 빨리 들고와야겠어요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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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어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취향저격탕탕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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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ur
취향저격 탕탕!!! 감쟈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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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헐 그 전화는 백현인 걸까요?허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와ㅠㅠㅠㅠㅠㅠ취향저격이네요ㅠㅠㅠㅠ헐 근데 경수하고 백현이 사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와ㅠㅠㅠㅠㅠㅠㅠㅠ진짜 미치겠다ㅠㅠ변백현 이 나쁜노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 나쁜넘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왜 그래여 경수한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우리 부쨩한 경수한테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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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ur
ㅠㅠㅠ백현이죠ㅠㅠㅠ이렇게 전화상으로 처음 종인이와 백현이가 마주하게 되었어요 첨부터 둘이 별로..악감정이...백현이는 정말 나쁜놈이죠ㅠㅠ나쁜남자ㅠㅠㅠ그런 백현이한테 휘둘리는 경수...ㅠㅠㅠㅠ부쨩해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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