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럭이는 푸른 도포자락의 흔적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 가다 당신 생각이 나 꺾은 붉은 꽃은 신 옆에 내려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가가 한 번도 말을 걸지 못했지만, 당신은 좋은 사람일 것을 나는 압니다. 그리고 지금, 푸른 도포자락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나는 당신 생각이 나 꺾은 붉은 꽃을 그대의 옆에 살포시 내려놓습니다.
*
돌다리에서 마주하던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자칫 잘 못 하다가는 서로 물에 빠질 수 있던 그 상황을. 저 때문에 젖어가던 도포의 끝자락은 흔적을 남기고서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로 눈에 아른거리던 당신을 나는 마음에 담고 담아 그렸습니다. 당신은 마치 내 눈앞에 계시는 듯하였고 그저 난 그런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언젠간 만나리라, 생각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하늘이 이어준 연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한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희 둘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수줍어하던 붉은 볼을 숨기려 무던히 애쓴 저를 그대는 모르시겠지요. 그렇게 저를 보시던 눈에서는 모든 감정이 교차하고 계셨습니다. 우울하게도 보이셨고, 행복하게도 보이셨습니다. 저는 그대의 기분을 잘 알지 못하고 그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어느 누구와 견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감정을 알리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저를 서글프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대를 곁에서 볼 수만 있다면 괜찮았습니다. 그냥 이렇게 보기만 할 터이니 제 눈 밖에 다가가지 말아주십시오. 그것이 저의 바람이자 부탁입니다. 그것만 알아주신다면 전 더욱이 바랄 것이 없습니다.
오늘도 그대를 보러 길을 나섰습니다, 항시 입던 푸른 도포자락이 바닥에 끌리어 그 흔적을 따라 걸을 때. 마치 그대와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져 눈앞이 아찔해져오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그대 뒤에서 걸으며 그대가 갑자기 멈추어 보던 꽃도 한번 보고 하늘도 바라보니 마치 푸른 것이 그대의 도포 자락을 닮았더군요. 그리고 환히 빛나던 태양은 그대 같아서 눈이 부셔왔습니다. 눈에 담으려 해도 욕심인 건지 담아지지 않아 조금은 서글퍼졌지만 괜찮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대를 이렇게라도 담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그대를 사랑한다 말을 해보지만 곧 다물어지는 입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앞에서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그대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였습니다, 이럴 거면 인연이라 생각지 말고 이름 석자라도 물어 놓을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고는 합니다. 그렇게 해가 뜨고서도 달이 져서도 그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혹여, 들어가면 실례가 될까 그저 가만히 숨죽여 그대를 기다렸지만 그림자 한 점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그냥 발걸음을 돌리어 돌아왔지만 나중에 그대를 보게 된다면 그때는 이름 석자를 물어보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대의 이름이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오늘은 제가 일이 생겨 그대를 보러 가지 못 했습니다, 그래도 그대는 지금 잘 계시겠지요. 잠시 보지 못한 것뿐인데 이리 그리워지는 것은 누구의 탓입니까. 그대에게 홀린 제 탓입니까 그게 아니라면 저를 홀린 그대의 탓입니까. 아마 내 탓도 있겠지만, 그대의 탓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저는 오늘도 그대를 그리며 잠에 듭니다.
그대여, 닿지 못 할 이름을 적어봅니다. 그대를 기다리는데 곡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습니다. 어째서인지 저도 슬퍼지는 기분에 그대를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와버렸습니다. 사실은 슬퍼져서가 아니라 무서워져서라는 것이 더욱 맞을까요. 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리도 무거운 적이 처음이었습니다. 마치 검은 뻘 밭을 걷는 기분에 오는 길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대는 잘 지내고 계시지요? 내일은 꼭 그대를 보러 가겠습니다.
그대여, 오늘 내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정녕 사실이란 말입니까. 어제 들은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까.
닿지 못 할 그대여, 그대 이름 석자 모르는 날 미워하세요.
오늘은 그대를 만났습니다, 그대와 얼굴도 마주하고 이름 석자도 알았습니다. 거기다 그대를 품은 내 마음도 고백하였고, 그대 생각이 나 꺾은 붉은 꽃도 그대에게 내어주었습니다. 말 한마디 없었지만 저는 상관없습니다. 이렇게라도 그대를 보게 된 것은 다행입니다. 내일도, 모레도 그대를 보러 가겠습니다.
한동안 이야기를 쓰지 않아서, 일기장에 먼지가 쌓여있었습니다.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은 아직인데 시간은 잡을 수 없는 것인 듯하였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 내 마음은 여전하길 빌어봅니다. 그대도 여전한데, 나만 변하면 그대에게 향했던 내 마음들이 부정되버리는 것 같아서. 그대는 계속 그곳에 있겠죠? 내일은 그대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으니 가겠습니다. 내일 만나요.
그대를 안고 울었습니다, 그저 그대가 보고 싶어져서 그대를 보고 있는 와중에도 보고 싶어져서. 제 욕심이 너무 큰 것이겠죠. 그대를 보고서도 보고 싶어 하다니. 이제부터 날이 추워진다고들 합니다, 그곳은 따뜻하지요?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 내일도 보러 가겠습니다.
*
둘이 처음 만나던 날, 그 푸른 도포자락에 설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를 않으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그렇게 스쳐 지나갔으면 좋을 인연이었을 텐데 왜 그리도 끈질기게 버티는지 그때는 신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였다. 나는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넌 내 뒤를 따라다녔다. 그저 그런 너를 가만히 두었을 뿐. 그것이 그때의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제가 보는 것을 따라 보는 너의 모습에 너에게 여유라도 주고자 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너는 내 뒤를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내가 안으로 들어가면, 너는 한참을 서있다 뒤를 보이며 돌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난 네 뒷모습만으로도 연정을 품었다. 그런 나를 너는 알기나 할까, 아마 저리 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구나. 그렇게 널 보내고 나며 나는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눈을 감았다. 처음 본 그 얼굴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네가 보고 싶어 그리워질 때면 떠오르는 네 얼굴이 곱기만 하다. 눈을 떠 나가려는데 몸이 무겁고 가라앉는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주변을 둘러보니 그저 울음이 강을 이루었다. 손을 뻗어 달래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와중에도 네가 날 기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눈앞이 아득해져오는 것이 이런 느낌인 걸까. 더 이상 널 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릿해온다. 우리는 한 것도 없는데 난 너를 이렇게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나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라는 게. 이제 편히 눈 감으라는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이렇게 가버린다면 너는 이제 나를 보러 오지 않겠지, 그저 나만이 너를 그리워하고 마음에 품었겠지. 네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 얼굴만은 내가 기억하니 너무 서글퍼 말아라, 내 마지막으로 품은 사람이니 잊지 않을 터. 너도 나를 잊지말아라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들은 다시 들어갔고 이제 몸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버겁다. 이제 난 마지막까지 널 그리다 눈을 감는다.
그곳에서도, 난 널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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