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오늘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웬일이예요?"
"지금 시간이 썩 이른 시간은 아니라고 봅니다만"
"김종인씨 우리집 쳐들어온 시간이 아홉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거든요? 지금은 열한시 되려면 한참 남았으니까 이른거죠"
"도경수씨가 그렇다고 얘기하면 그런가보죠"
"이씨... 근데 진짜 웬일이냐니까요?"
"말했잖습니까. 안부차 전화걸었는데 아픈 것 같아서 겸사겸사 병문안 왔다구요"
"언제 그랬어요!!!"
"죽 사온거보면 뻔한거 아닙니까?"
"그럼 약은요!!"
"여기"
아까 쇼핑백과 같이 들고왔던 봉지 안에서 여러가지 약들을 꺼낸 종인이 경수의 앞으로 내민다.
"뭔 약을 이렇게 많이 사왔어요? 약국 차려도 되겠다..."
"아프다는데 어디가 아픈지 몰라서 종류별로 다 사왔어요. 놔뒀다가 두고두고 먹어요"
"치, 약이 무슨 과자야? 두고두고 먹게"
그래도 조금은 감동한 듯 감기약, 두통약, 소염제, 해열제, 진해거담제, 소화제, 진통제 등등 이것저것
가득 담겨있는 봉지를 뒤적이던 경수가 구급상자와 약봉지를 TV서랍장 안에 넣어두고 돌아온다.
"약 안먹습니까?"
"음... 지금 나한테 필요한 약은 없는 것 같아서요"
"대체 어디가 아픈데요?"
"마음이... 마음이 아파요"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경수를 주시하는 종인을 마주보던 경수가 처연하게 웃어보였다.
* * *
"배 안고파요?"
"왜요? 배고파요?"
"아니, 김종인씨 배 안고프냐구요"
"그러는 도경수씨는 배고프냐구요"
서로 배고프냐만 내뱉던 경수와 종인이 결국 피식 웃어버린다.
경수야 본래 출퇴근이 일정치않은 디자이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한참 풋내기였고,
종인은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에디터지만 요즘은 한가로웠다.
결론적으로 오늘은 둘 다 오프라는 소리. 그래서 경수가 집에 있을 수 있고 종인도 경수의 집에 들릴 수 있었던 것이었지만.
집에만 있기도 답답했고 차도 가지러 가야했던 집주인 경수가 준비를 하고 나오는 바람에 종인도 같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경수야 속으로 나온 김에 이것저것 감사의 표시로 점심 한 끼 사먹일 생각도 있었고 말이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정오는 참 기분 좋은 것이었다. 종인에게나 경수에게나.
물론 지금은 종인의 차 안에 꼼짝없이 앉아있었지만 그래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란게 있기 마련이니까.
"설마 나 가게 앞에 내려다주기만하고 그냥 갈건 아니죠?"
"그럼요"
"헐... 진짜 그냥 가려고 했어요, 나 내려주고?"
"뭐하고 싶은데요 도경수씨는"
"음... 이왕 나온거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데이틉니까?"
"어... 그게 또... 그렇게 되네..."
머리를 긁적이며 곰곰히 생각하던 경수가 아무렴 어때 하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니 뭐, 나온김에!! 어? 밥 같이 먹을 수도 있고!! 어? 밥 먹었으니까 후식으로 커피 한 잔 정도 마실 수도 있는거지"
"누가 뭐랬습니까"
"아, 몰라몰라. 어쨌든 그냥 가버리기만 해봐요? 어, 근데 나 내려주면 내 차 따로 김종인씨 차 따로니까...
에잇 안되겠다!! 우리 아가는 이따 데리러 가고 일단 밥부터 먹으러 갑시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정해도 되는겁니까?"
"그래서, 싫어요? 싫으냐고오"
"후... 뭐 먹고 싶어요? 아니, 아프다는 사람이 죽 말고 다른거 먹어도 됩니까?"
"요즘 자주 이러니까 상관없어요. 이제 안아파. 아까 오바이트하고 살짝 안좋았던 것 뿐이지, 나오니까 기분도 좋아졌어요"
그래서 결국은 경수의 의견(이라고 쓰고 은근한 압박이라 읽는다)에 따라 한정식집에 들어온 종인과 경수이다.
"도경수씨는 어제도 말했지만 참 생긴거랑 식성이 다르네요"
"아니, 그렇게 갭이 큰가 내가?"
"스파게티를 돌돌 말거나 스테이크를 썰고 있을 것 같은데 음식 취향은 상당히 한국식이잖아요"
"그런거야 그냥 가끔 별미로 먹는다 치지만 사실 별로 안좋아한단말이예요. 나는 한정식이나 탕같은 요리가 좋아.
왜요? 어제도 그렇게 얘기하더니, 김종인씨는 이런거 별로예요?"
"딱히 가리는건 없습니다만"
"아, 다행이다... 헤헤... 내 주변 사람들은 어찌된게 한국인이면서 밥먹을 땐 항상 고기를 썰어. 쳇"
"그 사람도 양식 좋아하나보죠?"
"음... 아니 꼭 그렇다기보단 그 사람 하는 일이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업이라서 꼭 고기는 먹어줘야하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늘 기름이야. 으으..."
생각만해도 느글거린다는 듯 양 팔을 문질문질거린 경수가 곧 밥상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밑반찬들에 행복하다는 듯
젓가락을 입에 물고 샐샐거리며 웃는다.
마른 주제에 음식은 또 야무지게 잘도 집어먹는 경수를 보며 저 음식들은 다 어디로 가는걸까 하고 생각한 종인 역시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먹어봤자 집에 가면 또 다 토해낼 것이라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경수는 꾸역꾸역 음식물을 입 속으로 밀어넣기에 바쁘다.
보는 종인이 다 체할 것 같아 천천히 먹으라며 툭툭 내뱉지만 그 때만 알았다고 하며 히죽 웃을 뿐 다시 빨라지는 속도에 결국 종인도
부지런히 나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특별한 대화가 오가지 않자 접시가 비워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그만큼 빠르게 식사를 마친 경수와 종인이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더 퍼지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신발을 신고 계산서를 든 경수가 카운터로 향한다.
"또 도경수씨가 계산합니까?"
"왜요?"
"어제 도경수씨가 샀으니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아 됐어요. 별것도 아닌거가지고. 김종인씨가 나 병문안 와준 것도 고맙고 어제 태워다주기도 했고...
나 좋아하는거 먹으러 온거니까 내가 낼게요"
"그건 정말 별거 아니라니까요. 도경수씨가 또 계산하면 내가 미안해지잖아요"
"아, 진짜. 이럴 땐 그냥 잘 먹었어요 한 마디 하면 될거가지고 말 완전 많아.
그럼 남자 두명이서 쪼잔하게 더치페이라도 할래요? 응? 그럴거 아니면 그냥 얌전히 옆에 있는 박하사탕이나 집어먹어요"
경수가 답지않게 답답하다는 듯 신경질을 내더니 계산서를 내밀고 카드를 긁는다.
영수증을 지갑에 구겨넣으며 한정식집을 나서는데 옆에 있는 종인의 표정이 그리 썩 밝진 않다.
"아, 그렇게 맘에 걸리면 커피는 그 쪽이 사요. 그럼 됐죠?"
"그래도 커피가지고는..."
"아 진짜!! 김종인씨 의외로 이상한거에 집요해. 뭔가 막 쫌생이같아. 그냥 잘 먹었다는 말 한 마디 하면 될거가지고.
그러면 다음에 커피값도 김종인씨가 내고 앞으로 커피값은 김종인씨가 쭉!! 쭉!!! 내요. 알겠어요?
참고로 말하는데 요즘 커피값 비싼건 김종인씨도 알죠? 이제 김종인씨는 큰일났다~"
톡톡 쏘아붙인 경수가 이제야 좀 후련하다는 듯 먼저 종인의 차를 향해 걸어가 조수석쪽에 기대곤 종인을 바라본다.
"뭐해요! 안갈거야? 나 차키 없잖아. 빨리 와요"
이에 긴다리를 휘적이며 성큼성큼 걸어가며 리모콘으로 차문을 열자 경수가 먼저 냉큼 조수석으로 올라탄다.
종인이 오던말던 종인의 차가 람보르기니라는 것 쯤이야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태도다.
운전석에 올라 탄 종인이 시동을 걸자 경수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연다.
"커피는 어제 갔던 이자카야 근처 카페가서 마셔요. 내 차도 그 쪽에 있으니까"
"그러죠"
경수와 종인을 태운 람보르기니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한 이십분 쯤 달려 유료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나온 종인과 경수가 부지런히 눈에 보이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창가쪽으로 자리를 잡고 털썩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경수가 메뉴판을 뒤적인다.
"뭐마실거예요?"
"아메리카노요"
"윽... 그거 쓰잖아요. 으흠... 나는 모카라떼! 생크림 잔뜩 얹어서... 아! 나 케이크 먹어도 돼요?"
"좋을대로"
"앗싸"
신이난 듯 케이크의 종류를 손으로 쭈욱 훑던 경수가 딸기케이크를 가리키며 씨익 웃는다.
메뉴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 종인이 주문을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아메리카노와 경수가 말한 생크림 잔뜩 얹은 모카라떼, 딸기케이크 하나를 주문하고 계산을 마친 종인이 진동벨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온다.
"시켰어요? 생크림 잔뜩 얹어달라고 했어요?"
"말은 해뒀어요"
"신난다 헤헤"
"모카라떼도 달텐데 생크림까지 얹으면 완전 달지않아요?"
"단게 좋아서요. 인생은 쓰디쓴데 커피까지 쓰면 무슨 재미로 살아요"
커피에도 이런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건가 싶어-사실은 그게 아니겠지만- 종인이 그냥 조용히 입을 다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이블에 올려놓은 진동벨이 요란하게 떨리기 시작하고, 종인이 주문한 메뉴들이 담겨있는 쟁반을 들고 돌아오기
무섭게 경수가 모카라떼를 낚아채 빨대를 푹 꽂아넣는다.
"으으 달다..."
"단게 좋다면서요"
"좋아요. 먹다보면 막 혀가 녹아내릴 것 같애"
포크를 들어 딸기케이크를 조그맣게 잘라 입 안에 넣은 경수가 오물오물거리다가 히죽 웃는다.
"맛있습니까?"
"응. 맛있어요 흐흐... 김종인씨도 먹어봐요"
"됐습니다 별로..."
"그러지 말고 한 입만 먹어봐요. 자, 아~ 해봐요 빨리"
극구 마다하는 종인에게 경수가 포크를 들이밀며 입을 벌릴 것을 종용하자, 하는 수 없이 종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다.
그러자 경수가 포크를 종인의 입으로 쏘옥 집어넣고 손수 턱을 들어올려 입까지 닫아주는 수고로움마저 보여주었다.
"어때요? 맛있죠? 응? 맛있잖아~"
"... 나쁘진 않습니다"
"에이... 맛있으면서? 맛있다고 한 마디 하는게 그렇게 힘든가..."
종인이 입 안에 있는 것을 천천히 넘긴 후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들이켰다가 미간을 찡그리며 인상을 찌푸린다.
"왜요?"
"... 써요"
"으하하- 김종인씨 그런 표정 처음봐요. 크큭"
"웃깁니까"
"네 웃겨요 완전. 김종인씨 은근히 재미있는 사람이야"
경수가 정말로 재미있다는 듯 종인을 바라보며 웃다가 라떼 위에 얹어진 생크림을 빨대로 휘젓는다.
"있잖아요 김종인씨. 그, '습니다' 말투는 좀 안쓰면 안돼요?"
"뭐가 잘못됐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느낌이 딱딱하잖아요... 내가 불편해서 그런거예요?"
"원래 말투가 이렇다고 말씀 드렸잖습니까"
"아, 그래도오... 나한테는 좀 부드럽게 말해주면 안되는거예요? 나 주위에 유들유들한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데 김종인씨까지 그러면 진짜 사는게 재미 없을 것 같아서 그래요"
한숨을 폭 쉬며 정말 풀이 죽은 듯 빨대만 휘저어대는 경수에 종인이 턱을 긁적거리다가 입을 연다.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요"
"말하면 원하는대로 해주려구요?"
"그렇게 원한다면 한 번 바꿔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그럼 말 끝마다 '~습니다', '~합니까'하는건 모조리 빼요. 그거 진짜 딱딱하고 사무적인 것 같아서 어색하단말야"
"알겠습니다"
"씁-! 또?"
"... 그러도록 하죠"
"아... 그것도 너무 딱딱하단말이지"
어떻게하면 좋을까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궁리하던 경수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뇌하기 시작한다.
종인이 생각하기엔 별거아닌 것 가지고 왜 저리 쓸데없이 고민할까 싶기도 하지만 그냥 놔두기로 한다.
"아 몰라몰라. 그 뒤에껀 나중에 생각하구 일단 '습니다'체 쓰지마요. 알겠죠?"
"알겠어요"
종인의 대답이 흡족하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은 경수가 마지막 남은 커피를 스트로우로 쪽 빨아먹더니 얼음을 꺼내먹는다.
차가운 얼음을 입 안에서 쪽쪽거리면서 녹여먹은 경수가 조금 남은 딸기케이크로 손을 뻗어 접시를 깨끗하게 비우더니 의자에 편하게 기댄다.
종인 또한 조금 남은 아메리카노를 한 입에 털어넣고 얼음을 깨물어먹었다.
"다 마셨으면 나가죠"
"벌써요? 흐응... 나 이렇게 밖에 나온거 진짜 오랜만인데..."
"도경수씨는 데이트같은거 안합니까?"
"김종인씨같으면 할 수 있겠어요? 일주일에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든데... 어쩌다가 만나도 집에서만 만난단말이예요.
그렇다고 나 혼자 밖에 싸돌아다닐 수도 없잖아..."
"흠... 일단 나가죠"
종인의 말에 무작정 나오고 보니 슬슬 날씨가 더워지는 듯 햇볕이 꽤 강하게 내리쬐자 경수가 눈을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가린다.
"아 이제 긴팔 못입겠어요. 날씨가 점점 더워져... 여름 싫은데..."
"더워요?"
"네에..."
"시원한 데 갈래요?"
어제 오려고 했는데!! 술마시고 티비도 보고 한주동안 있었던 스트레스 좀 풀고 그랬더니 깜빡하고...ㅎ....ㅎㅎㅎ...
죄송해요 기다려주신 분들...ㅠㅠㅠㅠㅠ 내 암호닉 사랑들 미안해여...신알신 하신 분들도...저를 매우 치세요
그래놓고 내용도 재미가 없어서 미안해요ㅠㅠㅠ어떡하지...? 진짜 한대 치실래요...??
마지막
뽀리
더 더 재밌게 쓸 수 있도록...노력해볼게요ㅠㅠㅠ흡흡....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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