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찍간장
" 형. "
" ...어, 어... 응, 종인아... "
" 제 눈 보고 대답해요. "
종인의 낮게 깔린 강압적인 어투에 준면이 움찔, 하며 몸을 떨다 이내 궁지에 몰린 토끼처럼 부들부들, 억지로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저를 내려다보는 종인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준면을 아무 말 없이 굳게 입을 다문 채 잠잠하던 종인이 이내 입가에 피식, 비웃음을 매달고선 준면에게 말했다.
" 누가 형 잡아먹기라도 한대요? "
" ... "
" 형, 얼른 오세훈한테 가고 싶죠. "
" ... "
" 그러니까 착한 척하지 말고 얼른 우리 민석이... 아니, 민석이 형 번호 줘요. "
안 주면 콱, 그냥.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샐쭉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종인에 준면이 흠칫, 딸꾹질을 하며 저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인의 폰에 빠르게 민석의 번호를 입력했다. 드,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가득 머금는 종인에 순간 준면의 머릿속에 부처님의 형상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부처님... 제가 무얼 잘못했다고 이런 시련을...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민석에 대한 미안함과 종인에 대한 무서움으로 뒤섞여 울상을 짓던 준면이 이내 또다시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부들부들, 심히 떨리는 손으로 종인에게 폰을 넘겼다. 저의 휴대폰을 쳐다보다 만족한 듯 꾹꾹 터치하며 저장하던 종인이 나 이제 갈게... 라며 삐그덕 삐그덕 나가려는 준면의 동그란 어깨를 거세게 붙잡았다.
" 왜, 왜!? 번호 줬잖아! "
" 형 번호도 달라고요. "
형이 제 오작교 역할을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아서. 생긋 미소를 지으며 저에게 읊조리는 종인에 준면은 생각했다. 김종인 씨발 이 마라(魔羅)의 자식... 나무아미타불...
*
" ... "
" ... "
" ...그만 쫓아와. "
우뚝. 누군가를 따돌리려는 듯 빠르게 걷던 민석이 불현듯 멈추며 몸을 홱 틀었다. 갑작스레 저의 쪽으로 몸을 돌리는 민석에 흠칫 몸을 떨던 백현이 이내 능청스레 아하하, 하고 웃으며 민석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우리 민석이는 눈치도 빨라.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슬렁어슬렁 저를 향해 다가오는 백현에 민석이 백현의 움직임에 따라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따라오지 말라니까?
" 튕기는 게 네 매력이긴 하지만 미래의 신랑한테 너무한 거 아냐? "
" 안 다물어? 너 진짜 미쳤지. "
" 야 솔직히 그 게이 새끼들보단 내가 더 낫잖아! "
그러는 넌 게이가 아니고 뭔데 시발롬아. 울컥하며 욕을 내뱉으려던 민석이 이내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말자는 듯 입을 다문 채 또다시 몸을 돌렸다. 그런 민석에 당황한 백현이 멍청히 서 있다 이내 퍼뜩, 정신을 차리며 민석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어딘지 모르게 가냘픈 민석의 고운 손목을 잽싸게 낚아채고선 민석의 손목을 악력으로 짓누르며 민석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갑작스레 느껴져 오는 욱신거리는 통증에 민석이 울상 섞인 인상을 찡그린 채 낮게 욕을 읊조렸다. 개새끼야, 안 놔?
" 우리 민석이는 욕할 때가 제일 섹시한 거 같아. 정말 아름다워. "
" 씨발... 아, 아프다고! 아! "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저의 손목을 잡은 채 자신의 손에 더욱더 힘을 가하는 백현에 민석이 깜짝 놀라며 손을 파닥파닥, 백현에게 벗어나려 애썼다. 변백현 이 미친 싸이코 새끼야! 그때, 누군가 둘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엉겨있는 백현과 민석의 손을 있는 힘껏 떼어냈다.
" 뭐야, 김종대? 왜 방해질이야, 방해질이. 시벌. "
" 민석이 데려갈 테니까 반에 얌전히 돌아가 계시죠? 존나 개똥 닮은 새끼야. "
뭐, 뭐? 개똥? 시방 너 지금 뭐라 캐쌌냐? 흥분한 듯 블라블라 외계어와 사투리를 펼치는 백현에 종대가 귀찮다는 듯 저의 하얀 귀를 한 번 도도하게 휙휙 후비고선 민석을 이끌어 백현에게서 빠르게 벗어났다. 순간 민석의 눈에 종대의 도드라진 날개 뼈에 흰 날개가 펼쳐진 것 같은 환상이 펼쳐졌다. 아아... 나를 구해주러 온 종카엘이시여... 어느정도 백현에게서 멀어진 종대가 민석의 손목을 놓으며 민석에게 시선을 마주했다. 저를 보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는 민석에 종대의 미소가 점점 굳어갔다. 아, 그니까 민석아... 그게...
" 김종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 어... 어... 아... 민석아... "
에라 모르겠다, 미안해! 난감한 표정으로 민석의 시선을 피하던 종대가 이내 민석을 향해 양손을 싹싹 빌고서는 어디론가 뛰어갔다. 저를 구해준 종대가 갑작스레 사라지자 이 무슨 상황인가 싶어 그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민석에게 어디선가 나타난 검은 그림자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 이제 우리 둘만 남았어요, 형. "
" ...아, 미친놈아 놀랐잖아! "
어디서 튀어나오고 지랄이야, 지랄은! 인기척 없이 다가온 종인이 낮은 음성으로 민석의 귓가에 로맨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멘트를 씨익, 웃으며 속삭였다. 덕분에 깜짝 놀란 민석이 헙, 하는 소리를 내다 이내 종인의 널찍하고도 듬직한 등판을 세게 퍽퍽 때리며 생각했다. 등판만 존나 넓네. 부럽게.
" 제가 김미원... 아니, 종대 형한테 부탁한 건데. "
" 뭐를? "
" 민석이 형 좀 끌고 와달라고. "
그래서 미안하다고 한 거구나. 김종대 이 개새끼... 이미 사라져버린 종대의 형상을 향해 욕을 중얼거리던 민석이 이내 종인을 곁눈질로 흘끗 쳐다보다 슬금슬금 종인을 티 나지 않게 피했다. 그러나 움직이는 사람을 누가 모를 수 있으랴, 저의 앞으로 기어가듯 조심조심 움직이는 민석에 종인이 손을 뻗어 민석의 뒷덜미를 콱, 붙잡았다. 어, 어, 뭐, 뭐야, 안 놔?
" 진짜 처맞고 싶냐? "
" 입술로 때려 주신다면 맞을 의향은 다분한데. "
건드리지 말고 놓으라고, 이 씨ㅡ발롬아!! 아까와 같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저에게 낮게 속삭이는 종인에 민석이 열 덕분에 붉어진 얼굴로 종인에게 따발총을 쏘듯 다다다다 욕을 내뱉었다. 호모 새끼, 변백현 같은 새끼, 존나 당근 같은 새끼. 알 수 없는 욕들을 내뱉으며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민석에 종인이 가만히 쳐다보다 이내 해사한 미소를 생긋, 지었다. 형은 뭘 해도 귀엽긴 한데 화내는 건 안 돼요. 화내지 마세요, 형.
" 화내면 몸에 안 좋아요. "
" ... "
" 예쁜 몸 상할라. "
아아, 김종인 어머님... 어쩌다 이런 호모 새끼를 낳으셨어요... 쓸모도 없는 호모씨발새끼를...
*
분명 떠들썩해야 할 점심시간임에도 다른 교실과는 다르게 일학년 어느 교실에는 유독 긴장감 섞인 침묵만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반에 남아있던 아이들은 살벌한 분위기에 하나 둘 억지로 교실에서 나가기까지 하였고, 차마 반에서 나가지 못한 아이들은 그저 교실 뒤편에서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둘의 눈치를 흘끗흘끗 살필 뿐이었다. 가만히 종인을 노려보던 세훈이 이내 분노가 가득 섞인 목소리로 종인에게 말했다.
" 번호 지워. "
" 싫은데? "
" 지우라고. "
" 후배로서 선배 번호 좀 알고 있겠다는데, 왜 지우라 마라야. "
" 민석이 형한테 질려서 김준면한테 갈아탔냐? 씨발아? "
준면의 얘기만을 듣고 멋대로 얘기를 만들어내는 세훈이 어이없다는 듯 종인이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내려다 이내 반쯤 열린 입을 닫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얘도 김민석이랑 친하니까, 아예 컾퀴벌레 한 쌍을 내 오작교로 놓으면 되겠네. 무표정을 내비치며 속으로 계산을 하던 종인이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접대용 미소를 씨익 지었다. 그리고 저를 향해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는 세훈에게 다가가 가만히 어깨동무를 했다.
" 나 김준면 과거 다 아는데. "
" ... "
" 내 휴대폰에 영상도 있는데, 보여줄까? "
손에 들린 저의 폰을 요망하게 흔들며 유혹하는 종인에 세훈이 네가 그걸 어떻게 가지고 있냐며 발끈하려다 이내 종인과 마찬가지로 곰곰이 생각했다. 김종인이 워낙에 캐내기를 잘하는 애니까 그런 걸 거야. 그래, 화낼 필요 없잖아 오세훈. 저에게 셀프 최면을 걸던 세훈이 이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종인에게 말했다.
" 그래서 내가 뭘 도와주면 돼, 친구? "
예상외로 팔랑귀에다 단순하기까지 한 세훈은 준면을 보호하기엔 여전히 어리고, 풋풋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숙한 종인에 비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