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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 macguffin ]

속임수, 미끼라는 뜻.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헛다리 짚기’ 장치를 말한다.

(영화사전, 2004.9.30, propaganda)


뮤즈

[ Muse ]

1.(작가・화가 등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2. Muse 뮤즈(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시, 음악 및 다른 예술 분야를 관장하는 아홉 여신들 중의 하나)







 

최준홍정대현 : <마녀사냥 ; 늑대의 거짓말>


어머니는 몇 십, 몇 백억의 재산을 가진 귀부인보다는 야 덜 고상했지만 취미는 그 재산 수준에 맞지 않게 고상한 편이었다. 어머니의 손에는 항상 가위와 빛바랜 갱지 위로 인쇄된 글자들이 일목요연하게 나열된 신문이 들려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최준홍의 머릿속에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의 파편이 기록되어 갈 즈음에도 어머니는 신문 기사 따위를 들고 있었던 듯했다. 모서리가 네모지게, 혹은 동그랗게 잘리는 기사들은 어머니의 손을 따라 스크랩 파일북에 몸을 안착시켰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다시피 하는 빽빽한 스크랩북 속에는 족히 십 년도 더 되어 말라비틀어진 내용의 것들도 있었다. 최준홍은 제 입으로 고상하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르게 말할 수 없는 어머니의 취미를 옹호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다. 아름답지만 쇠약해진 어머니가 그나마 활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취미라고 불릴 수 있는 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최준홍과 그의 어머니는 좁다란 단칸방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은 여름 장마철이 되면 눅진한 곰팡이가 방 안 곳곳에 꽃이 피어나듯 만개했고, 심할 때는 바닥 밑에서 물이 스며 들어 올라오거나 천장에선 물이 새기 일수였다. 그래서 여름이 지날쯤엔 벽지 공사를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 될 때가 많았다. 겨울이라고 다를 게 없는 건 어쩌면 좁은 방 안에서 서로를 얼싸안고 밤을 지새워도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를 시린 기운에 몸을 떨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스크랩북에 애정을 기울이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비가 새는 날이면 어떻게든 물기에 젖지 않게 하시려 갖은 애를 쓰셨다. 최준홍도 언젠가 한 번 어머니를 도와 그 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그게 계기가 되었던 모양인지, 그날 이후로 최준홍은 스크랩북의 또 다른 부모가 된 것처럼 착실하게 그것을 보듬어 안았던 것 같다. 어머니의 분신쯤으로 착각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최준홍은 어머니 덕을 보아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신문 기사를 보는 게 취미 아닌 취미가 되어버렸다. 가난함을 몸에 두르고 사는 최준홍과 어울려 줄 착한 마음씨의 또래 아이들은 그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학교를 파하고 나면 집으로 곧장 돌아와 어머니가 없는 동안 스크랩북이나 들춰보는 게 하루 일과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굳이 어머니 탓이 아니더라도 짓궂은 당시 또래 아이들의 행동도 한몫 했던 듯했다. 그리고 최준홍의 취미는 현재까지도 연결되고 있었다.

 

 

양천 살인, 공소시효 1년 남아….

 

양천 살인 사건은 9년 전, 50대 남성이 칼에 찔린 채 절벽에서 숨진 사건으로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제 사건에 오른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 측에서는 이 사건이 어쩌면 계속해서 미제 사건에 올라 있을지도 모른다는 허심탄회한 의견을 전하고 있습니다. 양천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는 10년, 하지만 9년이 지난 현재 많은 의문점만을 주었을 뿐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초기 수사 단계보다 몇 배의 수사 인력을 투입하였으나 여러 증거 자료들의 충돌로 인해 그것 또한 허사가 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다른 측에서는 수사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공소시효의 맹점을 짚으며 따끔한 일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고연 신문 정지형 기자.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스크랩한 기사는 한 때 양천 일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최준홍은 스크랩 된 기사를 손 끝으로 훑어내렸다. 모서리 일부가 찢겨나가 너덜너덜했다. 최준홍의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도 양천 살인 사건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그것 또한 신문 기사에 실렸었다. 최준홍이 작은 TV 화면 속에서 방영 되는 만화 영화를 보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그것을 오리고 있었었다. 최준홍은 충동적으로 그게 번뜩 기억이 나자, 좁은 방 구석에 일렬횡대로 우스꽝스럽게 쪼르르 세워진 스크랩 파일 북 몇 개를 뒤졌다. 아무렇게나 몇 권을 꺼내 대충 훑으며 뒤지고 나니 어른하게 떠오른 조각의 실체가 눈 앞에 보였다.

 

 

[속보] 양천 50대 男, 절벽에서 칼에 찔린 채 시신으로 발견…수사 중.

 

지난 밤 오후 11시경 인근 절벽에서 50대 남성 A씨가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A씨를 발견한 것은 9살의 B군이며 자신의 친구 C군과 숨바꼭질을 하던 도중 C군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그 사실을 걱정한 나머지 산에 올랐다가 A씨를 목격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가파른 절벽 밑 돌출부에 쓰러진 A씨는 식칼에 찔려 사망했지만, 한동안은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경찰 측에선 A씨가 평소 원한을 산 사람은 없는지, 주변에 수상한 행동을 보인 사람은 없는지에 대해 수사할 것임을 전했습니다. 주전 일보 김한성 기자.

 

 

사실 굳이 찾아봤다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여겨질 정도로 내용은 별 거 없었다. 지나간 세월을 의미하는 빛 바랜 종이 쪼가리를 보던 최준홍은 그것을 덮어버렸다. 어질러진 방을 정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살인 사건에 대해 별 다른 생각을 않았다.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마저도 방금 전에 알았으니까. 그러나 이제 와서 괜히 신경 쓰이는 건 단지 자신이 이제 거처를 옮길 곳이 양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준홍정대현 : <아가미 ; 내가 막아버린 너의 숨>


물고기는 숨을 쉬었다. 뻐끔뻐끔. 숨을 쉬기 위해 쉴 틈 없이 아가미를 열고 닫았다. 지름 삼십센치뿐이 되지 않는 이동거리에도 물고기는 그 곳이 자신이 있을 자리라는 듯이 유유히 헤엄을 쳤다. 그 와중에도 입술을 벌려대며 키싱구라미 특유의 힘 겨루기를 멈추지 않았다. 수초, 자갈, 물, 키싱구라미 두 마리. 어항에 있는 것들은 그것이 다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가 살아가는 목표 혹은 성실, 그리고 나태함으로 점철되어있었다.


최준홍은 매일 꿈을 꾼다. 어항 속에 손을 담구어 한 마리의 키싱구라미의 숨통을 틀어막는 꿈을. 그게 아니라면 아가미가 있어도 쓸모가 없는 허공의 세계로 내팽개쳐 숨도 쉬지 못하고 죽어버릴 키싱구라미의 모습의 꿈을. 원망스레 치켜 뜬 동태 눈깔은 언제나 저를 보고 있었고, 그것은 자신이었다. 


최준홍은, 눈을, 치켜뜨고, 

원망스레, 최준홍을, 쳐다본다. 


그 때 쯤이면 최준홍은 항상 꿈에서 깨어나 꿈 속의 키싱구라미처럼 숨을 헐떡거렸다. 





상냥하지 못한 손길로 먹이를 주었다. 키싱구라미는 자신의 눈알의 크기보다도 못한 먹이들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면서도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최준홍은 언제 힘 겨루기를 할지 모르는 키싱구라미 사이를 휘저어 놓았다. 굳이 사이를 떼어놓는다고 해서 그네들이 투박하게 싸움질을 멈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최준홍은 싸움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키싱구라미에게서 방조죄 따위를 추가받고 싶지는 않았다. 


구겨진 캔버스의 뒤축을 편 최준홍은 문을 꼼꼼하게 잠궜다. 귀에는 MP3를 꽂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왼쪽, 오른쪽이 뒤바뀌어진 상태로 엉성하게 끼워진 이어폰을 정라하지 않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이제 막 깨어나신 모양인지 마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신 주인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인 최준홍은 그대로 대문을 빠져나왔다. 뒤에서는 주인 아주머니의 배웅 소리가 들렸다.


예정보다 이르게 찾아 온 봄이었다. 그럼에도 최준홍은 단정하게 교복 자켓까지 꼼꼼히 여며 입었다. 어스름하게 갈빛이 돌던 머리는 지난 가을에 까맣게 물들였다. 그 때 샀던 교복은 그새 키가 컸는지 바짓단이 얼핏 짧아져 있기도 했다. 최준홍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 일 년 조금 남은 기간동안만을 입을 옷이었다. 



   넌 교복 입은 게 제일 예뻐.



신호등의 초록불이 깜빡거렸다. 최준홍은 자리에서 멈춰섰다. 




* * *





최준홍은 정대현을 좋아했다. 최준홍은 그 날 교내 봉사차 고아원을 방문했었고, 정대현도 별반 다르지 않을 이유였겠지만 관계자에게 듣기론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방문한다는 것이었다. 봉사시간과 같은 허무맹랑한 뜻은 아닌 듯했다. 순수하기만한 동요를 의외로 잘 불러서 조금 웃기기도 했다. 종내에는 피아노 반주를 치던 이와 함께 뒤뚱거리는 춤까지 췄다. 최준홍은 동물농장을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닭장 속에는 암탉이, 문간 옆에는 거위가. 정대현은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눈을 맞춰주며 제 나름으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최준홍은 밀대걸레로 바닥을 닦으면서도 귀는 쫑긋하게 그 곳을 향해 있었다. 하나의 동경이었고, 열 일곱 어린 나이의 첫사랑이기도 했다. 최준홍이 기억하는 정대현의 가장 첫번째 모습은 귀여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동요를 부르던 것이었다. 


그리고 최준홍이 기억하는 정대현의 두번째 모습은 학교 운동장에서였다. 체육 수행평가를 마친 최준홍은 반 아이들 여럿과 함께 스탠드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었다. 운동장 한 가운데에서는 3학년들 남학생들의 축구가 한창이었다. 교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체육복을 다 차려 입은 사람도 있었다. 여학생들은 최준홍의 반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시시덕거리며 놀기도 하고 축구를 구경하기도 했다. 최준홍은 흥미 없는 눈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공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주변에서 어, 하고 소리를 지르길래 시선을 옮겼다. 


골대 근처에서 두 사람이 나자빠져 있었다. 태클로 인해 넘어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멀쩡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또 다른 한 사람은 손으로 무릎 쪽을 털어대기만 할 뿐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 주변으로 몰려든 몇몇 이들은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무릎에는 피와 모래로 잔뜩 지저분해져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아프지도 않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부축을 받을 뿐이었다. 최준홍은 그 사람이 제 옆을 스쳐지나가는 걸 본 뒤에야 정대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세번째 기억은 그 날의 다른 시간대였다. 점심을 잘못 먹은 것 같다며 엄살이라는 엄살을 다 부려대는 친구를 위해 보건실을 찾았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소화제를 찾는 것은 어려웠지만 저보다 먼저 보건실을 방문한 이 덕분에 순탄하게 최준홍의 손 안에는 소화제가 쥐어질 수 있었다. 그것을 찾아 준 건 정대현이었다.



   “얘, 있지, 내가 소화제 찾아줬으니까 너도 나 좀 도와주면 안 돼?”



정대현은 어설프게 서울말을 썼다. 사투리의 억양이 좀 남아있는 듯 했지만 최준홍은 별 다른 티는 내지 않았다. 최준홍은 정대현의 맞은편 침대에 앉았다. 정대현이 접어올린 교복단 밑에서 덜렁거리는 제 무릎을 보여주었다. “아프겠지?” 장난같은 물음에 최준홍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운동장에서 나뒹굴었으면서도 웃고 있던 몇 시간 전의 정대현의 모습을 기억해냈다.



   “반창고 좀 나 대신 붙여주라.



볼우물이 파이게 웃은 정대현은 최준홍의 손에 반창고와 테이프를 들려주었다. 최준홍은 정대현이 이런 부탁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엉성한 손놀림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최준홍은 피딱지가 굳어있는 정대현의 상처를 한 번 보고, 반창고를 한 번 보다가 조심스레 정대현의 무릎께로 손을 가져다대었다.



   “아까, 치료 안 했어요?”

   “어?”

   “아니, 아까, 아침에…. 넘어지는 거.



필요없는 말을 꺼낸 것 같아 괜히 민망했다. 서투른 손이 조금 빠르게 움직였다. “아침에? 아, 그럼 줄넘기 하던 게 너네야? 귀엽던데.” 정대현은 시종일관 즐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치료 했는데, 내가 좀 많이 덜렁대서 다 떨어졌어.”

   “…….”

   “뭐야, 그럼 너 나 넘어지는 것도 봤겠네.”

   “…….”

   “으, 창피해.”



정대현은 종달새처럼 종알종알 떠들었다. 최준홍은 떠들어대는 정대현의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어주었다.




* * *




유영재는 최준홍을 싫어했다. 교실에서든, 복도에서든, 어디에서는 걸어오는 시비엔 이제 슬슬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유영재는 시비를 거는 것이 언제나 처음이라는 듯 굴었다. 유영재는 최준홍의 몸에 상흔을 남기거나, 상스러운 욕설로 폭력을 가하지 않았다. 전교권에서 성적이 뛰어놀고 선생님들에게서 신임을 받는 전형적인 모범생의 계급답게 구는 편이었다. 최준홍에게 걸어오는 유영재의 시비는 항상 혐오어린 눈빛이었다. 그 어느 곳에서 마주치든 유영재의 눈빛을 받아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최준홍은 매번 그것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지만 반대로 매번 숨통을 조여오기도 했다.


미친 새끼, 너 되게 뻔뻔하구나. 유영재에게서 처음 들은 말이자 욕은 그랬다. 최준홍은 그 한 마디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은 자신보다 더욱 힘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고, 제 앞에 있는 사람 또한 다를 것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전자와 후자가 다른 점이 있다면 후자는 전자를 대신해서라도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최준홍은 어쩌면 그것을 바라고 있었을 지 모르나, 후자의 유영재는 제 손 마저 더럽힐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라리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마음을 접었다.


저를 쳐다보는 유영재의 시선은 언제나 견디기가 힘들었다. 제 안의 죄책감을 또렷하게 꿰뚫어보며 책망했다. 가끔은 제 할 일을 하며 조용조용하게 최준홍의 가슴을 후벼파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최준홍은 꼭 악몽을 꿨다. 그리고 오늘은 아마 악몽을 꿀 듯 했다. 



   “정대현 재활 중이야.”

   “…….”

   “목 아예 못 쓸지도 모른댔어. 재활에 성공해도 정대현 노래 못 불러.”

   “…….”

   “근데도 하겠다는 게 너 때문이야.”



바닥에 내팽개쳐져 숨을 헐떡대는 키싱구라미. 



   “네 잘못 아니라고, 너 안심 시킬거라고, 너한테 목소리 들려줄거라고.”

   “…….”

   “우리 형 불쌍하지. 너는 여기서 뻔뻔하게 잘만 살아가고 있는데 혼자 그렇게 간절하잖아.”



바닥에 내팽개쳐져 숨을 헐떡대는 최준홍, 나.



   “정대현 재활 한 달 뒤에 끝나.”

   “…….”

   “끝나면 부산 내려올거야.”

   “…….”

   “그럼 넌 예전처럼 사라지면 돼.”



내 숨통을 막고 있는 건 정대현도, 유영재도 아닌 어쩌면 나.






유영재정대현 : <더 라잉 게임> - 조직물썰 


정대현과 유영재는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아장아장 걸어다녔을 무렵부터 친구였다. 가난한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도 둘은 재간둥이로 통했다. 어딜 가든 둘은 손을 꼭 잡고 돌아다녔고, 어른들은 정대현과 유영재를 보며 고단한 삶의 무게를 토해내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가족을 제외하고서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정대현과 유영재에게 가난함이란 중요하지 않은 요소였다. 가파른 달동네의 계단길을 오르면서도 서로가 함께 있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었지, 끝 없는 계단의 너머를 꿈꾸지는 않았다.


그런 둘은 동시에 열병같은 첫사랑을 겪었다. 정대현은 유영재를, 유영재는 정대현을. 첫사랑은 서로였다. 아주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장장 십년이 넘는 기간동안 떨어질 줄을 몰랐던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연정을 품었다. 그러나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정상적인 범주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둘에게,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 년이 훌쩍 지날 때까지, 각각의 마음을 숨긴 채로 지내었다.


그리고 열일곱의 겨울이었다. 정대현이 크게 감기를 앓았다. 병결로 학교를 나오지 않은 것만 해도 삼일이 넘어갔었다. 그리고 4일째가 되던 날, 정대현이 학교를 나왔다. 목에는 두툼한 목도리를 둘둘 만 상태였다. 코를 훌쩍이고, 기침을 했다. 유영재는 그게 걱정 되어서 정대현이 괜찮다고 만류를 함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옆에 붙어있었다. 정대현이 유영재를 크게 떨쳐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가난한 집안을 먹여살리기 위한 노동자로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고, 그만큼 정대현은 유영재에게 의지했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차고 하얀 겨울을 나기 위한 정대현만의 쉼터였다, 유영재는.


그래서 정대현은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었다. 유영재는 아마 자신이 저에게 사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떠나게 될 것 같았다. 삶의 유일한 버팀목을 잃고 살아가기에는, 정대현은 그것을 견뎌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대현은 평생에서 딱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용기를 내었다.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콧물과 기침을 매단 채로 유영재와 하교를 하던 저녁이었다. 정대현과 유영재는 계단의 끝을 마주보고 있는 집에서 각각 살았는데, 정대현은 그곳에서 유영재를 향해 입을 열었다.




* * *




낡은 선풍기가 탈탈대며 돌아갔다. 작게 난 창문까지 열었지만 창문 밖에서는 짙은 뙤악볕과 매미 소리만 마냥 그것을 타고 넘어왔다. 조악한 앉은뱅이 상 위로 가계부를 펼쳐놓고, 그 옆에 둔 계산기를 두드렸다. 식비, 월세값, 세금, 저축금, 하나하나 가계부에 기록해가는 손이 익숙해보였다. 확실히  남은 돈이 많아졌다. 그것이 유영재 덕분이고,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정대현은 사실 우울해졌다. 자신이 조금만 잠을 덜 자고, 일을 더 했더라면 유영재는 힘들게 들어간 학교를 그만 두지 않았을테고 남들보다 배로 일을 해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 힘든 와중에도 자신을 챙기기 바쁜 유영재를 보고 있노라면 정대현은 떳떳하지 못한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유영재에게 미안했으며, 또한 유영재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유영재가 학교를 그만 둔 건 두 달 전의 일이었다.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둘은 죽기 살기로 공부해, 같은 대학교에 들어 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 보내왔음에도 서로와 떨어져 살게 될까 불안해 했지만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땐, 그만 훌쩍대며 울음을 터트렸다.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대학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만만찮은 등록금의 압박에 시달렸다. 게다가 자신들의 달동네로부터 먼 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바람에 따로 자취방을 구해야 했고, 부모님들과 함께 살 때는 걱정 않던 식비까지 감당해 내야 했다. 


결국 유영재는 대학에서의 한 학기가 끝나자마자 정대현에게 자신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빠듯한 아르바이트 생활 탓에 둘은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도 얼굴을 맞댈 일이 많이 없었는데 그나마의 짜투리 시간에 만나서 한다는 말이 저것이었던지라, 정대현은 덜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괜찮아. 너라도 공부하면서 살아야지.” 유영재는 아무 말도 못하는 정대현의 등허리를 쓸어내려주며 그리 일렀다. 정대현은 그것이 모두 다 자신이 탓인 것 같아서 유영재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단지 유영재의 옷자락을 꾹 잡고 미안하다는 말만 하염없이 반복했다. 








김힘찬정대현최준홍 : <클리프 퍼레이드> - 리얼물


우리들은 쳇바퀴를 돌았다. 허술한 울타리로 둘러진 작은 공간 안에서 서로의 꾀리를 잡아채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무기력한 의식 속의 굴레였다. 그 굴레는 우리들을 속박해왔다. 꾸역꾸역 손을 뻗노라면 그게 한 뼘도 채 가지 못해서 나는 그만 시들한 들꽃처럼 힘이 쭉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김힘찬이나, 정대현이나, 나와는 다를 것 없는 본능과 이성 사이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가련한 사람이었다.


정대현이 처음 눈물을 내보였을 적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정대현을 좇고 있었다. 그리고 정대현도 나처럼 무언가를 좇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정대현의 시선 끝에 있는 건 김힘찬이었다. 정대현이 작은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울음 짓게 만든 건 아마 김힘찬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뿐이 하지 못했던 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정대현의 시선이 자꾸만 김힘찬의 뒷 모습을 좇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쯤엔 그것이 확신으로 변했다.


내 스스로도 우리들은 절벽 끝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만큼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TV 속에서는 마냥 귀엽고 어린 막내로 비추어질지 몰라도, 실상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는 알고 있을 터였다. 그 누군가가 김힘찬이라면 좋을텐데, 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어린 짐승이 발톱을 드러내기에는 말 그대로 그 짐승이 너무나도 어려서, 나는 긴 탐색전을 하기 위해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대현아, 너 요즘 최준홍이랑 되게 잘 어울려다닌다. 그 말이 날이 서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건 비단 나 뿐만이 아니었다. 정대현이 눈을 껌뻑거리며 가만히 김힘찬을 쳐다보았다. 입술을 한 번 물었다 놓는 행동을 난 똑똑히 목격했지만 모른 체 하기로 했다. 정대현은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에, 뭐, 막내니까요. 잘 챙겨야죠.” 짐짓 어른스러운 척 하는 정대현이 우스웠지만 그게 또 정대현다웠다. 김힘찬은 정대현의 말에 입꼬리를 비실비실 끌어올렸다. 그제서야 나는 김힘찬이 술에 취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자각하고나니 쓴 술냄새가 물씬 풍겼다. 


형, 술마셨어요? 나는 순진무구한 막내의 탈을 쓰고 그리 물었다. 정대현은 그것까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벽 한 시에 술이 웬 말이냐는 거다. 아침에 스케쥴도 있는 양반이. 정대현도 술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아채고 김힘찬더러 얼른 잠이나 자러 가라면서 닦달을 했다. 하지만 김힘찬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붙어 먹지 마.”

   “…….”

   “너 나 좋아하잖아.”

   “형.”

   “아냐?”



나는 일순간 울컥했다. 정대현의 마음을 갖고 놀았던 김힘찬이 괘씸해서, 동시에 울듯 말듯,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정대현이 너무도 가련해서, 나는 그만 모두가 잠든 새벽이라는 것도 잊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것을 막은 건 정대현이었다. 정대현은 손을 뻗어 나를 뒤로 물러서게 하더니 아무 말 않고 소파에 앉은 김힘찬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더니 김힘찬을 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좋아했죠.”

   “…….”

   “좋아했었지, 좋아하는 건 아니죠. 그게 왜요?”

   “…….”

   “형, 나 갖고 놀려는 거면 그만해요. 나 바보 아냐. 더 이상 멍청하게 당하고 있지도 않을거고.”

   “…….”

   “이제 날 놓을 건 형이에요.”



나는 잠 못 이룰 새벽을 지냈다. 정대현이 새벽 내내 울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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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맥거핀 뮤즈 전문은 이 필명으로 다 옮겼어요 그래봤자 두 편뿐이지만은.

2. 맥거핀 뮤즈는 연재하려다가 말았던 것들, 완결을 언제볼 지 모를 단편 조각글들, 그 외 잡다한 글들 정리할 겸 올리는 거라서 보실 분들만 보시기를 추천함다.

3. 돼지토끼는 빠르면 내일 또 올라오고, 늦으면 다음주 주말 쯤. 업데이트 못했던만큼 올리려고 노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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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젤현이라니...... 젤현이라니........ 씻으러갈려했는데 알람떠서 급하게 왔어요 ㅋㅋㅋㅋ 오늘도 잘읽고가요♡
9년 전
독자2
중독자님 글이 떠서 놀랐는데 스프링버니가 아니고 맥거핀뮤즈였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전에도 재미있게 봤었는데... 짧은 글들이지만 다 취향저격이에요ㅇ<-<....
9년 전
독자3
맥거핀뮤즈 처음 보는거 같은데..와...취저..와.....
9년 전
독자4
컴 끄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인티 돌고 가는데 제목에 떡하니 맥거핀 뮤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은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아요 작가님도 좋은 하루 되세여!
9년 전
독자5
짤막하게 읽는것도 좋네여ㅠㅠㅠㅠㅠ다음편이 나올지 안나올지 모르지만 그래도 짧게읽는것도 좋은거같아요 여운도 남는것같고..
9년 전
독자6
젤현젤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글에너무어울리게비지엠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ㅠㅠ정보좀알수있을까여...
9년 전
중독자
답이 없었어 - 홍대광 임당 'ㅅ'~
9년 전
독자7
헐맥거핀뮤즈쓰신분이중독자님이었다니..대박...정말대박....짧막한글인데도다금냄새가ㄷㄷㄷ
9년 전
독자8
헐 맥거핀뮤즈가 중독자님꺼였어..어쩐지 짧은 글이라도 단번에 몰입하게 만드는게 있다고 느꼈더니만...혹시나가 역시나였어ㅠㅠ중독자님 사랑해요 님의 글은 다 금이야 금.....사랑해요♥♥
9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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