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국지민 |
분명 연습실에 동아리 멤버들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해 문을 벌컥 열고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던졌더니 중학생같이 보이는 남학생이 어정쩡하게 받았다. 저기, 가방. 거칠게 다뤄서 앞부분에 이름 모를 먼 모인 부분을 두어 번 털고 나에게 다시 주었다. 축 처진 눈꼬리에 자신도 민망한지 어정쩡하게 웃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거꾸로 쓴 스냅백을 고쳐 쓰는데 얼핏 보이는 뒤통수가 동글동글, 짙은 갈색이어서 그런가 한 번 쓰다듬어 보고 싶게 생겼다. “누구세요?” 함정은 난 아직 이 꼬맹이가 누군지 모른다는 거다. 내 물음에 구석에 앉다 벌떡 일어나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꼭 이리저리 움직이는 갓 태어난 말티즈 같아 귀여웠다. 어, 그러니까. 한참을 오물거리다 핸드폰에 켜진 화면을 들이밀었다. 확인하니 동아리 오디션 종이를 찍은 사진이었다. 어, 한 시간 빨리 왔는데. “빨리 오셨네요.” “몸이라도 풀려고… 안 되나요?” 고개를 좌우로 흔드니 그럼 다행이라며 웃는 게 귀여웠다. 원래 저 나이 애들이 귀엽나? 꼬맹이가 핸드폰에 노래를 틀고 스피커로 연결하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하는 폼이 이리저리 잘도 찢는 게 유연해 보였다. 뒤에서 지켜보려 바닥에 앉아 양반다리를 하고 거울을 통해 꼬맹이가 움직이는 춤 선을 빤히 바라보았다. 유연한데 왁킹도 잘 하고, 주로 요즘 대세인 얼반 쪽의 느낌이 가득했다. 뭐 잘 어울리네. 턱을 괴어 한참을 바라보다 누군가가 들어오는 모습에 꼬맹이가 민망한지 노래를 끄고 핸드폰을 가져가 방금까지 얌전히 앉아있던 고양이로 구는 모습이 웃겼다. 저렇게 수줍음이 많아서 뭘 할 수 있겠나. 정국은 마실 것을 사려 지갑을 챙기고 나왔다. 이제 도착했는지 입구 앞에 가득한 크루 멤버들이 보여 손을 흔들었다. 다 같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려다 아까 들리던 음악소리가 울려 정국이 검지로 입을 막고 걸음걸이를 조심스럽게 바꾸었다. 문을 조심히 열고 크루 멤버들에게 보라며 손짓했다. 꼬맹이가 같이 오디션을 보러 온 학생들과 같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아까 내 앞에서는 새색시처럼 있던 사람이 하이파이브까지 하며 춤을 추는 게 신기했다. 자기들끼리 동그랗게 모여 있는 원 안에 꼬맹이가 들어갔다. “야 저 센터 이름이 뭐냐.” “모르겠어요. 재즈부터 시작했나, 춤 선이 괜찮네.” 꼬맹이가 추는 춤을 빤히 보다 선배들이 한 마디씩 뱉었다. 제일 맘에 드는지 이름부터 확인하는 게 아무래도 확정인 듯싶었다. 참다못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다들 쳐다보았다.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해 일단 음악 볼륨을 크게 틀고 다들 몸을 푸는 시늉을 하며 리듬을 타자 학생들과 꼬맹이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테스트를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지목했다. 역시나 꼬맹이만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국은 예상했다는 듯 덤덤했다. 이름 물어볼 때부터 알아봤지. 신입 자기소개 함 해봐라. 사투리가 묻어나 남이 들으면 건방질 수 있는 어투에 꼬맹이는 뭐가 좋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박지민입니다. 나이는 스물이고요.” 나보다 많아? 난 이제 열여덟인데? 한 명씩 악수를 하며 다가오는 지민의 키를 짐작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이는 안 작네. 손을 살짝 들자 덥석 잡는 순간 짜릿했다. 지민을 바라보니 여전히 웃는 얼굴에 살짝 파인 팔자주름이 예뻐 보였다. 정국은 짐작했다. 아, 어쩌면 내가 이 사람한테 첫눈에 반했구나. |
| 태형지민 |
요 며칠 전부터 지민이 자전거를 탄다며 한창 떠들어댔다. 운동신경이 좋아 쉽게 배웠다며 자기 입으로 떠들다 언제 한 번 끌고 오라며 아이들이 말하자 오늘 피시방에서 만나자는 약속에 기어코 끌고 나왔다. 하여튼 진짜 끌고 오는 호구는 저 새끼밖에 없다. 오후쯤에 들어가 해가 질 때 나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고 집에 가려 하니 지민이 역시나 자신의 자전거라며 자랑을 해댔다. 고딩되서 타는 게 자랑이냐. 먼저 간다며 손을 흔들고 아슬아슬하게 타다 결국 “으어!” 넘어졌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웃자 나도 웃었다. 솔직히 웃긴 건 웃어야지. 그러다 SNS에서 보던 글이 생각났다. 한 번 으리는 으리라며 친구가 쪽팔려 하지 않게 같이 행동해줘야 한다는 꽤나 멋있는 말이었다. 나는 지민의 옆으로 뛰어가 넘어진 모양 그대로 누웠다. “김태형 미친 새끼 진짜.” “시발 웃겨서 눈물 나.” 내가 눕자마자 애들은 더 웃었다. 웃길 만 하지. 박지민도 웃긴지 길바닥에 누워서 낄낄거린다. 아이들 한 명이 내 옆에 나와 같은 자세로 누웠다. 곧이어 주르르 따라서 눕는 꼴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 쳐다보고 핸드폰을 가까이 들이미는 게 느껴졌다. 유난히 친구의 동생인 정국이 눕지 않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정국아 너 울어? // 샤워를 하고 나와 한창 머리를 털던 와중에 단체 카톡방에 진동이 울렸다. 뭐냐 귀찮게. 확인하니 오늘 길바닥에 누워 웃는 사진을 전정국이 열몇 장을 연속으로 보냈다. 아이들의 대화는 전부 다 키읔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났다. 사진을 일일이 확인하다 박지민이 웃는 모습이 가장 예쁜 사진을 저장했다. 하여튼 박지민 예뻐서 내가 누워 준거야 알아? 그것도 모르고 같이 자음을 난발하며 웃는다. 내 마음도 모르고 진짜. |
| 남준지민 |
선배, 뭐 해요? 남준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자판기 커피를 손에 들고 껄렁껄렁 다가왔다. 미간을 찌푸리며 맞은편에 앉아있는 교복 차림의 학생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반이나 담긴 종이컵을 소리 나게 올려놓고 팔짱 끼고 있는 호석에게 비키라며 손을 휘저었다. 호석이 알아서 일어나자 남준이 그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왜 왔냐.” “그냥… 어쩌다 싸워서….” “왜 싸워. 가뜩이나 코딱지만한 사내놈이.” 와 아저씨 지금 키로 무시하는 거예요? 이건 아니지! 학생이 책상을 텅텅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 있던 파일로 머리를 한 대 칠까, 세워서 때려도 되나. 진지하게 생각하던 남준은 이마를 긁적이고 이름을 자연스럽게 적었다. 이름 박지민, 학교는 요 앞 상고, 주민번호는 9510131 뭐였더라. 지민이 얼굴을 살짝 들이밀어 남준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앞머리 올린 게 더 멋있는데, 내리면 제 나이에 안 맞게 귀엽고. 살짝 올라간 눈썹을 타고 내려와 제법 오뚝하게 서있는 코는 멋있고, 어떻게 보면 날카로운 눈은 섹시하고 입이 커서 웃는 게 시원시원하니 딱 내 꺼 같은데. 지민은 헤헤 웃으며 볼에 상처 난지도 몰랐다. 그저 앞에 이상형이 있으니 웃는 것뿐이요, 사실 경찰서에 온 이유도 싸움이라는 장난도 있었지만 콕 집어 남준을 보기 위해 그런 것이니 이 정도면 말 다 한 거지 뭐. “그만 봐라. 민망하다.” “민망하라고 보는 건데요?” 눈썹을 추켜 올려 지민을 올려다보았다. 좀 무섭지만 멋있잖아? 자리에 곱게 앉아 더러워진 와이셔츠를 탈탈 털어내고 다시 남준을 바라보려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조그만 방에 휙 들어가 버렸다. 화났나? 지민의 입이 톡 튀어나와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힐끗 바라보던 호석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애기야 사실 저 선배가 모태솔로야. 표현 제로라고. 방금 부끄러워서 들어간 거야. 알려줄까 고민하다 다시 나오는 남준의 모습에 호석은 급히 아무 파일이나 열어 읽는 척을 했다. “꼬맹아.” “네에.” “얼굴 들어봐.” 혼나는 건가. 지민이 고개를 드니 작은 구급상자를 가져와 솜에 소독약을 묻히고 있었다. 지민의 상처에 조심스럽게 톡톡 두드리자 미간에 잔뜩 주름을 지면서도 가만히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아 일부러 꾹 누르자 아프다며 결국 소리쳤다. 이래야 꼬맹이답지. “맞고 다니지는 마라.” “네?” 알록달록한 밴드를 붙이고 나서야 남준은 지민의 눈을 바라보았다. 투명하니 반짝반짝 빛날 것 같아 자리에 앉으며 헛기침을 뱉었다. 지민은 남준이 붙여준 밴드를 쓰다듬었다. 이 아저씨 지금 밀당 하는 건가? 뭐지? 남준은 노트북을 몇 번 두드리고 덮었다. 오늘은 그냥 보내주는 데 다시 오면 아저씨한테 혼난다. “아저씨한테 혼나면 매일 올래요.” “쓰읍.” 다른 일이 있는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준이 지민의 머리에 꿀밤을 박자 지민이 슬쩍 올려다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역시나 헛기침을 하며 머리를 잔뜩 헝클며 한마디 뱉고 남준은 밖으로 나갔다. “배고프지?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저 아저씨는 나를 아주 들었다 놨다, 요물이야. 신나게 가방을 메고 남준의 뒤를 쫄래쫄래 따르는 지민을 바라보는 호석이 엄마미소를 지었다. 둘이 저녁도 먹고 배도 맞고 좀 그래라 어휴. |
| (사실은) 정국지민 |
우리가 만약에 이전에 만났다면 어떨까요. 당신이 더렵혀지기 전으로 돌아가 내가 어설픈 광대 분장을 하고 장미꽃을 건네던 그 날, 그날의 당신이 지금보다 더 아름다웠다면 어떨까요. 난 가끔 생각해요.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감정들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내 눈에 여전히 당신은 아름다워요. 그거 알아요? 난 당신의 더렵혀진 모습도 사랑해요. 그러니까 더 이상 스스로 상처내지 말아요. 아니면 내가 더렵혀지면, 그때는 날 마주 볼래요? 당신은 생각만큼 더럽지 않아요. 봐요. 내가 이렇게 안을 수 있잖아. 그거면 되잖아요. 나만 봐주면 되잖아요. 당신은 더럽지 않아요. |
| 태형지민 |
단 것도 아닌, 그렇다고 쓰지도 않은. 아무 맛도 나지 않은 너는 여전히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약지에 자리 잡은 은색의 실반지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다. 결국 너는, 그렇게. 투명한 빨대에 하얀 액체가 빨려 들어갔다. 조그맣게 자리 잡은 목젖이 울렁였다.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고 마시는 게 신기했다. 무슨 맛이니, 큰 모금으로 삼킬 만큼 그만큼 맛있니? “지민아.” “맛있어?” 표정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조금씩 내리는 봄비는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 뭉쳐지고 떨어진다. 너와 내가 닮지 않았니? 계절을 알리는 비가 내려서 만나서 결국 떨어지는 거. 턱을 괴고 여전히 지민의 표정을 관찰했다. 검은 색을 칠하지 않은 눈매가 순해보였다. 몽글몽글한 이미지와 다르게 자리 잡은 복근도 어울리지 않았다. 흔들의자가 차츰 움직였다. 앞 뒤, 앞 뒤. 앞 뒤로. 지민아, 그렇게 살아있는 척이라도 해줘. 그래야 내가 살 것 같으니까. 태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더 마실래? 컵 안에 아까 마시던 것과 같은 액체를 부었다.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경계까지 따랐다. 많이 마시고, 잘 자. 좋은 꿈 꿔. |
똥을 많이 쌌다! 뿌직뿌직...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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