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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 안 인어  


 

w. 문달 


 


 


 


 


 


 


 


 


 


 


 


 


 


 


 

Chapter 8. pingpong 


 


 


 


 


 

어둠이 밀려오면 그대로 안을 준비를 했고 광선이 비쳐들면 눈을 감고 맞이했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작은 움직임에도 출렁거리는 물을 살결로 느끼면서. 


 

정우는 눈두덩으로 따듯한 빛을 받고 있으면서 문밖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눈치를 보며 얼굴만 내민 도림에겐 그저 햇볕을 쬐고 있구나, 정도였다. 구조적으로 탁월한 자리선정이었다. 

정우가 들어가 있는 욕조는 그 안에서 가장 태양과 가까운 자리였다. 

이 때문에 안으로 들어오는 도림은 그를 집어삼킨 눈부신 후광만을 볼 수밖에 없다. 


 

정우는 나름 긴장했다. 도림이 뛰쳐나가고 그도 분을 누르지 못해서 한참을 격한 숨을 쉬었다. 어깨의 들썩거림이 멎어 들어서야 가라앉은 기분과 함께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마지막으로 본 도림은 울기 직전이었다. 

그럴 애로는 안 보이나 혹시나 안 보이는 곳에서 훌쩍이고 있을까 봐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잠깐. 울어도 싸지. 금방 꼬깃꼬깃하게 접었다.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 그리고 지금 아침까지 도림은 정우를 건들지 않았다. 도림이 앞에서 조잘댈 때마다 머리가 다 아팠는데, 그 수다쟁이가 입을 꾹 다물고 바닥 걸레질이나 하고 있으니 바삐 기어 다니는 도림을 좇는다고 좌우로 몰리는 눈이 다 아팠다. 


 


 


 

"무릎 아플 건데." 


 


 

굳이 봉걸레 놔두고 몸 아프게 기어 다녀야 하나 싶어서 보다못해 정우가 혼잣말처럼 흘렸다. 걸레를 쥔 손이 멈추고 도림이 정우를 쳐다보았다. 

도림과 정우의 눈동자가 나란히 맞았다. 이 상황을 바랐으면서 먼저 눈을 돌린 건 정우였다. 뿌득-뿌득- 반질거리는 대리석 바닥을 문대는 소리가 이어졌다. 정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뒤 꾸부린 허리를 펴고 일어난 도림이 홍조가 번진 얼굴로 정우에게 다가왔다. 


 


 

"물 뺄게. 너 덮고 있는 타올 새 걸로 갖다 줄까?" 


 


 

"응." 


 


 

묵묵히 일련의 작업을 반복하는 도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정우의 단단한 눈빛은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 더는 무시 못 하고 도림이 물었다. 


 


 

"왜 그렇게 빤히 봐?" 


 


 

"어제 일 때문에 기죽어 있나 싶어서." 


 


 

"아니야." 


 


 

대답과는 다르게 어제 일을 환기하는 듯 눈동자를 위로 굴리던 도림의 입이 앞으로 삐죽거린다. 정우는 혀를 찼다. 


 


 

"아침 가지고 올게." 


 


 

"안 먹어. 입맛 없어." 


 


 

"언제는 있는 것처럼 구네." 


 


 

"나 본 지 얼마나 됐다고?" 


 


 

"아니, 얼마 안 됐지만 그 얼마 동안 너 엄청나게 남기는. 됐어." 


 


 

길게 늘여놓아 봤자 부질없단 생각이 들었는지 대충 얼버무리고 가는 도림의 뒤통수에 대고 정우가 말했다. 


 


 


 

"어딜 가?" 


 


 

"난 배고파." 


 


 

"너 배고프다고 날 내팽개치고 가? 돈 벌기 싫어?" 


 


 

"와, 협박하는 거? 휴게 시간은 보장해줘야지." 


 


 

도림이 문 앞에서 멈춰서 양 허리에 손을 짚고 섰다. 입을 이죽거리던 정우가 손을 들어 서랍장을 가리켰다. 


 


 


 

"책 한 권 가져와 줘." 


 


 

"못됐다 진짜. 사람한테 밥때가 얼마나 중요한데. 너 우리 엄마한테 다 꼰지를거야." 


 


 

"너만 엄마 있어? 나도 엄마 있어." 


 


 

"아휴 유치해서 같이 못 놀겠네." 


 


 

"시작한 게 누군데." 


 


 

"너. you. 당신!" 


 


 

도림이 정우를 향해 격하게 삿대질했다. 화살처럼 날아드는 손끝을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우가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부탁해 도림아, 라고 상냥하게 말하면 갖다 준다." 


 


 

"부탁해 도림아. 갖고 와." 


 


 

도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조하고 감정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정우가 손을 내밀었다. 트집을 잡으려다가 그러면 또 대화가 끝도 없이 쳇바퀴를 돌릴 것 같아 순순히 서랍장 문을 열었다. 


 


 

"우리 정우~ 미운 두 살~ 어떤 걸 읽을까요~" 


 


 

아무렇게나 리듬을 때려 박아 흥얼거리는 말이 기가 차서 정우는 허공으로 숨을 세게 뱉었다. 

도림이 갖고 온 건 구석에 처박아 두기만 한 동화책 전집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인어공주였다. 노림수임이 보여서 괘씸했다. 정우는 도림과 도림 손에 든 책을 번갈아 쳐다보며 눈으로 욕을 했다. 


 


 


 

"자. 나 이제 밥 먹으러 내려간다?" 


 


 

"어딜 내려가. 읽어줘야지." 


 


 

"뭐? 이게 뭔 소리야." 


 


 

"네가 네 입으로 그랬잖아. 정우 미운 두 살이라고. 미운 두 살은 글자 못 읽겠으니까 어디 한번 실감 나게 읽어봐." 


 


 

도림이 흘겨보든 어쩌든 굴하지 않고 신이 난 정우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 인어공주 말고 다른 거로." 


 


 

"다시 가져오기 귀찮아." 


 


 

"나 인어공주 싫어해." 


 


 

"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도림은 속으로 자기가 또 선을 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불안함이 손톱 밑 연한 살을 뜯는 행동으로 넘어갔다. 

정우는 예상외로 평온한 얼굴을 유지한 채 말했다. 


 


 


 

"결말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서 어릴 때도 엄마가 인어공주 읽어주면 화냈어." 


 


 


 

"엄마한테 버릇이 없었네." 


 


 


 

"너도 버릇없잖아." 


 


 


 

"야! 갑자기 말이 왜 그렇게 가냐?" 


 


 


 

정우에게 직접 말하면 어제보다 더 틀어질 것 같아 이번엔 목구멍을 껄떡대며 넘어오려는 말을 푹 눌렀다. 정우는 목소리도 뺏기지 않았고, 두 다리가 멀쩡히 있었지만, 인어 같다는 인상이 강했다. 

정우가 세이렌이라면 오디세우스는 밀랍을 스스로 빼내 바다로 던졌을 것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몸이 부서지는 게 차라리 덜 어리석다 여겼을 거다. 

도림이 책을 들고 잠깐 암초 위의 정우와 거칠게 부딪치는 파도를 상상하는 사이, 정우는 멍한 초점의 도림을 들여다보며 은근하게 미소 지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풀이 죽어서 입 다물고 일만 하더니 지금은 또 전처럼 깝죽대기 시작한다. 정우와 도림은 서로를 애 취급하고 있었다. 

정신이 퍼뜩 든 도림이 책을 펼쳤다. 


 


 

"그럼 결말을 바꿔보자." 


 


 

"어떻게?" 


 


 


 

"인어공주가 글자를 배우는 거야. 자기한테 글자 좀 가르쳐달라고. 못 알아들으면 아무 책이나 종이 갖고 와서 거기 쓰여 있는 글자 가리키며 보디랭귀지 하는 거지. 알려달라! 그래서 왕자한테 글을 배우는 거야. 왕자 바쁘면 그 아래 따까리한테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이웃 나라 걔랑 결혼하기 전에 고백하는 거야! 나는 사실 바다 사는 인어공준데 어쩌고 너 구해준 거 나고 저쩌고." 


 


 

"안 믿으면? 안 믿기는데?" 


 


 

정우가 손으로 턱을 쓸며 듣고 있다가 어깃장을 놓았다. 한참 열을 올리며 얘기하던 도림이 말한다고 들려있던 팔을 쑥 내렸다. 


 


 

"야, 동화는 뭐든 다 돼. 


 

하여튼 그래서 해피엔딩 좋지? 이제 인어공주는 이렇게 끝나는 거다?" 


 


 

도림의 당당함에 헛웃음만 터졌다. 입을 가리고 있는 정우를 살피더니 너도 인정한 거라며 마음대로 매듭을 짓는다. 하드커버 표지가 두꺼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책을 가슴에 안고 일어난 도림이 발을 동동 굴리며 제발 밥 좀 먹게 해달라 사정했다. 정직한 뱃고동 소리가 정우에게까지 들렸다. 

미간에 굵은 선을 그으며 인상 쓰는 꼴이 가여워서 정우는 바깥쪽으로 손을 저었다. 


 


 

"넌 진짜 안 먹을 거야?" 


 


 

"글쎄. 한번 보고 결정할까 싶기도 하고." 


 


 

"가져오라는 소리네. 네~네~ 대령해드립죠~" 


 


 

"얄미운 짓만 골라서 해." 


 


 

대답 대신 문이 센소릴 내며 닫혔다. 성질도 고약하다. 정우는 습관처럼 또 한숨을 내쉬었다. 어쩜 저렇게 애 같지. 제 마음대로 도림을 판단하다가 허리를 쿡쿡 쑤시는 통증에 인상을 쓰며 다른 자세로 바꿔 앉았다. 

코 밑까지 담그고 눈앞에서 보글보글 터지는 방울들을 구경하며 놀았다. 

아예 머리를 푹 수그려 완전한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보기도 하였다. 뻣뻣하고 마른 다리는 버겁지만, 발가락 열 개는 꾸준히 만져줘서 그나마 유연했다. 옴지락거리는 발가락들이 투명한 물 아래로 다 보였다. 혼자 하는 놀이는 금방 질렸다. 정우는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서 올려놓았다. 닫힌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선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무슨 밥을 이렇게 오래 먹어?" 


 


 

투덜거리며 머리를 숙여 포갠 손등에 올렸다. 정우라고 졸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정우는 악을 쓰며 잠을 떨쳐내려 버틴다. 꾸벅꾸벅 머리를 갸웃하게 하는 졸음이 감기만 한 눈 위로 쏟아졌다. 

이대로 잠들면 악몽에서 허덕여야 해. 눈알이 튀어나올 듯 부라리며 일어났다. 때마침 가로로 긴 트레이를 엎지 않으려고 끙끙거리며 도림이 들어왔다. 엉덩이로 밀고 들어와 다시 엉덩이로 닫은 후 바닥에 트레이를 내려놓고 구부정한 허리를 바로 펴며 좌우로 돌려가며 스트레칭 했다. 


 


 

"어우, 힘들다." 


 


 

"뭐야?" 


 


 

"어? 어어. 버터에 구운 토스트랑 후라이랑 피넛, 딸기잼이랑 우유. 진짜 맛있어. 엄청나게 주워 먹고 온다고 살짝 늦었. 다?" 


 


 

"그럴 줄 알았다." 


 


 

"먹을 거야?" 


 


 

"맛은 볼게." 


 


 

"까다롭다." 


 


 


 

정우는 입을 작게 벌려 한입- 도림이 보기에 정우의 한입은 입 안에 넣었다 다시 빼는 것과 비슷했다- 베어 물고는 천천히 씹었다. 미간을 좁히며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도림은 와구와구 먹게 도와주고 싶어 애끓었다. 


 


 

"네가 깨작깨작의 표본이다." 


 


 

"안 먹을래." 


 


 

"아까워." 


 


 

"아까우면 먹든가." 


 


 

"어우, 그건 별로. 네가 먹은 건데." 


 


 

"정말 싫다 너." 


 


 

정우가 들고 나가라며 손짓했다. 하지만 도림은 입을 우물거리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정우가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혹시 잠깐 옆으로. 살짝만! 비켜줄 수 있어?" 


 


 

"왜?" 


 


 

"수건으로 막는 것보다 이걸 붙이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라고 하며 주섬주섬 볼록한 주머니에서 본드와 테이프와 가위, 펠트 조각을 꺼내 들었다. 정우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도림의 손에 들린 것들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이걸로? 


 


 

"어! 한번 해보게! 근데 바로 네 옆이니까. 잠깐만 비켜줄 수 있을까?" 


 


 

도림 딴에는 정중한 부탁이었다. 옆으로 비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정우는 뜻밖에 순순히 도림의 말을 들어주었고, 도림은 실례하겠다며 슬리퍼를 벗고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괜히 입이 바빠져서 이것만 빨리하고 물을 바로 갈아주겠느니, 수건으로 막아도 틈이 있어서 바람이 들어와 감기 들 거라느니 주절거렸다. 


 


 

"맞아. 바람 들어와서 추웠어." 


 


 

"뭐래. 내가 감기 언급하니까 괜히 그러는 거 다 알아." 


 


 

정우는 엉성하게 붙여놓은 꼴이 못 미더웠지만 해놓고 혼자 뿌듯해 하는 도림을 굳이 면박을 주지 않았다. 얼른 발이나 빼라고 내쫓기만 했다. 

몸이 마르기 전에 잽싸게 깨끗한 물로 갈아준 뒤 점심때 다시 오겠다며 도림은 나갔다. 


 

감기가 자기 일을 잊고 있다가 도림 덕에 생각이 났는지 정우는 정말로 이마와 목에 열감이 있는 게 느껴졌다. 아직은 뜨끈한 물을 손으로 떠서 어깨 쪽에 뿌리며 몸을 웅크렸다. 

낮 동안에는 둔하다가 해가 지니 금방 나타났다. 목에 가래가 끓고, 으슬으슬 떨렸다. 몸이 퉁퉁 부어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졌다. 

수건으로 막아놨을 때보다는 바람이 덜 들어오는 것 같기는 한데 창 가까이에 손을 대보면 그래도 한기가 느껴졌다. 

엄마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때는 몰라도, 잠든 척 엄마를 속일 줄도 아는 나이가 됐을 때부터는 흔한 잔병은 치러본 적이 없었다. 

정우는 깊은 밤을 혼자서 버텼다. 새벽에 양초를 한 무더기로 갖고 온 도림을 봐서야 화를 터뜨릴 수 있었다. 


 


 

"나 감기 걸렸어." 


 


 

"어?" 


 


 

"나 감기 걸렸다고, 너 때문이야." 


 


 

"거짓말하지 마. 멀쩡해 보이는데?" 


 


 

"넌, 너는 이게 멀쩡해 보여?" 


 


 

제일 작은 초가 완전히 녹기 전에 새 양초로 갈려고 가까이 다가와서 도림은 엄살이 아니란 걸 알았다. 눈이 풀렸어도 노려보기는 잘했다. 자기를 향한 정우의 일관된 태도에 도림은 혀를 내둘렀다. 손대지도 못하게 하는 통에 작게 승강이를 벌이다가 겨우 정우의 이마를 짚어본 후 허둥지둥거렸다. 


 


 

"약, 내가 엄마한테 종합감기약 같은 거 있냐고 물어볼게!" 


 


 

"약 함부로 먹었다가 잘못되면 어떡할 건데." 


 


 

"그렇지는 않을 거야. 효과 직방인 약 있는데! 그거," 


 


 

"싫어. 약 안 먹어." 


 


 

"아니면 부엌 가서 내가 꿀물이라도 타올까? 갔다 올게!" 


 


 

"가지 마." 


 


 

정우가 일어난 도림의 옷자락을 잡고 못 가게 끌어당겼다. 감기와 함께 어리광도 도졌나 보다. 


 


 

"나 혼자되면 더 아플 거야." 


 


 

"뛰어갔다 올게." 


 


 

"가지 말라고 하잖아." 


 


 

"육십까지만 세! 진짜 금방 갔다 올게." 


 


 

"짜증 돋구지 마. 힘들단 말이야. 그냥 가만히 있어." 


 


 

"아프다며. 아프면 약을 먹든 몸을 데우든 해야 할 거 아니야. 물 온도 높여줘?" 


 


 

정우가 무거운 머리를 들지 못해서 수그린 자세로 도리질했다. 

도림은 주름이 쥐인 옷자락과 부들부들 떠는 그의 손을 보다가 자신의 손을 포갰다. 


 


 

"넌 계속 아프다고 할 거잖아. 그런데 가만히 있으라고?" 


 


 

정우는 입을 여는 것도 힘에 부치는지 우물거리기만 하다. 말았다. 

도림이 대신 한숨을 쉬었다. 


 


 

"사람 체온이 제일 좋기는 한데. 모르겠다! 일단 살리고 봐야지. 네가 가만히 있으래서 어디 가지는 않을 건데 뭐라도 해야겠어!" 


 


 

도림의 목소리엔 쓸데없이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정우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림이 말없이 있어 줬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도림이 앉아 있다가 상체만 세우고 일어나 엉거주춤 정우를 안아왔다. 정우는 도림을 밀어낼 기력이 없어 그대로 기댔다. 바로 가까이에서 뜨겁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정우를 안느라고 옷이 젖었지만 도림은 개의치 않고 최대한 그를 보듬어 안았다. 크고 뜨거운 심장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우가 편하게 있을 수 있게 배를 내밀고 허리에 바짝 힘을 줬다. 


 


 

"내가 오늘은 진짜 밤새 같이 있을게." 


 


 


 

새벽을 지켜보는 건 힘겹게 숨을 헐떡이는 정우 뿐인 듯싶었다. 

자기 머리 위에 턱을 괴고 졸고 있는 도림을 깨우고라도 싶었으나 마녀한테 목소리라도 상납했는지 바닥을 질질 끄는 쇳소리만 나오다 그쳤다. 

이게 다 도도림이 인어공주 책을 들고 와서 생각도 비유도 책 내용을 따라가는 거라고 정우는 생각한다. 

가뜩이나 여기저기가 무지근한데 도림까지 받치고 있으려니 식은땀이 줄줄 났다. 


 

하여간 도움이 안 된다. 혼미했다. 실수로 정말 잤다가 호되게 아팠던 것보다 힘들다 느끼며 정우는 까무룩 잠에 빠진다. 정신을 잃었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Chapter 9. 번데기를 두들긴 손님 


 


 


 


 


 

예정보다 일찍 귀국했다. 장거리 비행으로 판형은 지쳐 있었다. 피곤해도 정우 생각이 났다. 도림이랑 잘 지내고 있으려나. 혹시 도림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을까. 이른 아침부터 도로 위를 세게 구르는 바퀴를 재촉했다. 정우가 보고 싶었다. 


 


 


 

"사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정우는요?" 


 


 

제일 먼저 판형을 맞은 건 든든한 하우스키퍼 송말희였다. 

말희는 오자마자 일에 지쳐 휴식이 필요한 자신보다 아들부터 챙기는 판형을 말리며 방으로 인도했다. 


 


 

"자고 있을 거예요. 먼저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판형은 서둘러 씻고 홈웨어를 대강 꿰어입고선 부랴부랴 정우의 방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정우도 도림도 깨어있을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간 판형의 눈에 보이는 광경은 욕실 바닥에 누워있는 도림과 욕조 밖으로 팔을 늘어놓은 채 자고있는 정우의 모습이었다. 

판형은 날이 완전히 밝았는데도 눈을 감고있는 아들을 처음 보았다. 

새벽 다섯시에 출근하기 전에 가도 이미 깨어 있는 채 판형을 맞던 그였다. 

판형은 소리나지 않게 살금살금 움직였다. 수건 바구니에서 수건 하나를 꺼내왔다. 도림의 앞에 무릎꿇고 앉아 그의 머리를 살짝 들고 아래에 수건을 받쳐 주었다. 그리고나서 판형은 매끈하고 윤기나는 정우의 팔을 쓰다듬었다. 정우는 하도 몸에 오일을 들이붓고, 물 안에서 생활해서 늘 젖어있었다. 판형은 정우의 삐져나온 팔에 물기가 하나도 없이 건조하고 부드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팔목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기절해있던 정우가 정신을 차리고 게슴츠레 눈을 떴다.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며 놀라서 덜덜 떨고 있는 판형을 바라보았다. 


 


 

"엄마, 나 아팠어." 


 


 

"아팠다고?" 


 


 

정우가 먼저 속삭이듯 숨을 많이 섞어 소곤거렸다. 판형도 따라 도림의 눈치를 보며 말소리를 낮췄다. 응. 하고 정우가 반대편 손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판형이 눈을 크게 떴다. 


 


 

"얘가 깼어. 저기로 바람 계속 들어와서 감기 걸렸나 봐." 


 


 

"어떡해. 엄마가 미안해. 지금도 많이 아파? 김 선생님 부를까?" 


 


 

격주로 왕진하러 오시는 왕진 의사를 대며 휴대전화를 꺼내 드는 판형을 정우가 만류했다. 


 


 

"괜찮아. 얘가 간호해줬어." 


 


 

"정우는 도림이랑 있으니까 어때? 괜찮아? 무슨 일 없었고?" 


 


 

"나 얘 불편한데." 


 


 

"정우야." 


 


 

"싫지는 않아." 


 


 

라고 하며 정우가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잘도 자는 도림을 내려다봤다. 

잡고 있는 정우의 손가락이 까딱거렸다. 


 


 


 

"정우야. 너 낫고 있나 봐. 팔에 물 다 말랐는데도 이상 없잖아." 


 


 

정우가 인상을 쓰고 팔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폈다. 잘 모르겠어. 


 


 


 

"아니야. 정우야 너 낫고 있는가 봐." 


 


 

긴가민가 싶지만, 판형의 얼굴에서 기쁨이 보여서 정우는 그러려니 넘기기로 했다. 


 


 

"얘 좀 치우든지 깨워줘. 정말, 정말 불편해. 얘랑 어제부터 계속 같이 있었어." 


 


 

"정우야, 너보다 누나야. 얘가 뭐니?" 


 


 

"얘가 먼저 친구 하 쟀어." 


 


 

판형이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서, 친구 하기로 했어?" 


 


 

"아니? 내가 얘랑 친구를 왜 해? 아니야. 빨리 치워줘. 물 다 식었어. 얘 일 제대로 안 해. 지금까지 자고 있잖아. 야, 도도림. 도도림 일어나. 넌 이제 해고야."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정우가 당황해서 판형을 낯설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판형에게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따 오후 출근도 기분 좋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밝은 모습의 정우를 이때까지 살면서 처음 보았다. 판형은 도림에게 고마웠다. 


 

이미 날개까지 다 돋았을 텐데 나비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웅크려있는 고집을 부렸다. 다 죽은 번데기 껍질을 잘게 부수는 바람이 솔솔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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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엉엉 작가님 나정이에요 알림 울리자마자 달려왔습니당ㅜㅜ 아진짜 이 글 볼수있어서 너무 행복해요ㅜㅡㅜ 정우가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것 같아서 넘 좋고 도림이한테도 더 마음을 연것 같아서 넘 좋네요... 다음편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작가님 진짜루 사랑합니다ㅜㅜ💚
5년 전
문달
엇 1등 하트 파인애플의 주인공 나정님! ㅋㅋㅋㅋㅋ 정우와 도림이의 성장기는 투비 컨티뉴..♡
5년 전
독자2
유루입니다! 도림이덕분에 정우가 점점 나아가고있는것같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조만간 걷기연습도 하겠다... 늘 생각하지만 도도림이라는 이름 정말 예쁜것같아요..! 도씨였으면 개명했을것같아...♥ 좋은글 감사합니다=)
5년 전
문달
항상 이름 지을 때마다 고민하는데 저도 도림이라고 지어놓고 쓸 때마다 으쓱해한답니다 핰
5년 전
비회원183.145
순수한 정우... 너무 귀여워요... 참 저는 물매입니다... 도림이도 너무 귀엽고... 사과 없이 자연스레 넘어가는 저 텐션... 알라뷰... 말은 해고라면서 이미 짱친 먹은 정우.. ㄱㅇㅇ....
5년 전
독자3
역시 도림이 덕분에 정우가 많이 밝아지고 있네요 귀찮고 별로지만 싫지는 않은 정우 ㅜㅜㅜㅜ 도림이와 함께 하면서 점점 밝아지는 정우가 보고싶네요ㅠㅜㅜㅜㅜ
5년 전
독자4
토끼또잉이에요!!ㅠㅠ 정우어머니ㅠㅠ 판형님이 웃으신 이유를 알것도 같아요ㅠㅠ 저도 정우랑 도림이가 한 공간에서 같이 자고 있는 장면에서 뭔가 엄마 미소를 짓게 됐거든요ㅠㅠ 정우 피부 일어나는 것도 어머니 말대로 진짜 나아가고 있는 거 같고ㅠㅠ 정우가 도림이한테 마음을 열어가고 있는 거 같아서 제가 다 뿌듯하고 행복합니다ㅜㅠ 헿ㅎㅎㅎ 아! 그리고 인어공주 결말 바꿔준 도림이ㅠㅠ 너무 좋아요ㅠㅠㅠㅠ
5년 전
독자5
스트로니입니다! 밝아지고 있는 정우 모습보니까 괜히 찡하고 제가 더 기뻐요ㅠ 얼마나 혼자 외로웠을까싶고 정우가 앞으로 몸이 더 나아져서 정우도 정우어머니도 얼른 행복했으면 좋겠고ㅠㅠ 도림이가 인어공주 결말 바꿔준것도 그잠깐이지만 정우에겐 어떤의미로 다가왔을지ㅠ 모두 행복하자ㅠㅠㅠㅠ오늘도 좋은 글 감사해요 작가님!!💚
5년 전
독자6
이꺽꺽이에요!! 정우가 낫고있다니...! 감격스럽ㅠㅠㅠ 빨리 정우가 나아서 도림이랑 밖에 나갔으면 좋겠어요 ㅠ
5년 전
독자7
작가님... 지금이라도 암호닉을 신청해도 될까요.. 진짜 너무 좋아요ㅜㅜㅜ 너무 좋아서 스크롤도 일부러 천천히 내리고 대사 하나하나 곱씹어서 읽고 있어요ㅜㅜ 정우가 이제 나아지고 있는건가요 엄청 행복합니다!!!
5년 전
문달
암호닉은 언제든지 환영!! 문달쓰 암호닉 신청방에서 따로 받고 있답니다♡
5년 전
비회원242.121
후하후하 감사합니다 작가님 덕분에 일요일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게되네요! 앞으로 여주와 정우의 관계도 궁금해지고ㅜㅜㅜㅡ꺆 넘 좋아요ㅎㅎ
5년 전
독자8
라나입니다! 정우가 도림이 덕에 많이 밝아진 것도 좋은데 심지어 낫고 있기까지 하다뇨! 너무 해피입니다 진짜ㅠㅠㅠㅠㅠ 확실히 글로만 봐도 정우가 처음보다 많이 밝아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5년 전
비회원157.59
[윱]으로 암ㅁ호닉신청해도될까요ㅠㅠㅜㅠㅠㅜㅠㅜㅠㅜㅠ작가님글최고에요,,!
5년 전
문달
킂 감사해요ㅠㅠㅠ 최고 먹을 퀄은 아닌뎈ㅋ큐ㅠㅠㅠ 암호닉 신청방에서 따로 받고 있둡니다~~~
5년 전
비회원81.93
매일 그냥 보기만 했는데 이건 안되겠다 즌말.. [미정우]로 암호닉 신청 해도 될가료? 작가님 진짜 천재세요? 진짜 맞네 이분 그거네 그거,, 인티 내에서 손에 꼽히는 명작이네요 소설 내주세요 바로 사겠습니다,, 진짜 필체 말댠데,,, 마지막 구절 읽으면서 진짜 천재인거 확신. 근데 그렇다면 정우는 이미 나은 상태인데 심적으로 아프다고 느끼고 있던건가요? 아몰랑 그저 뭔들~ 작가님 글은 인어정우 만 읽어봤는데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싶게 되네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작가님 ♥︎
5년 전
문달
하...과도한 칭찬에 숨 못쉬고 어디로든 숨고만 싶어-문달
ㅋㅋㅋㅋ큐ㅠㅠ감사해요ㅠㅠㅠ 암호닉은 따로 신청방에서 받고 있어용...♡

5년 전
비회원81.93
근데 암만 생각해도 당시는 천재다. . 소재부터 말도안돼
5년 전
독자9
작가님 인어정우 너무너무 잘 어울려요ㅠㅠㅠ 진짜 인어는 아니겠지만 ㅠㅠㅠㅠ 정우 캐릭터도 너무 찰떡이고.. 스토리도 따뜻해서 좋아요ㅠㅠㅠ 이걸 왜 지금봤을까요ㅠㅠㅠ
5년 전
비회원120.153
작가님 너무 재밌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5년 전
독자10
늦었지만 감사의 댓글 남겨요... 첫화부터 확실하고 구체적인 설정덕분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는데 전개도 너무좋아요ㅠㅠ 특히마지막줄 진짜인상적이에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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