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안 인어
W.문달
Chapter 12. 또 어떤 새벽은 사랑스럽게
분명 계주가 언질을 줬을 텐데. 정우는 퇴근하고 돌아온 판형의 입에서 따라가라는 소리라도 나올까 꾹 다문 입술만 쳐다보았다. 우려와는 다르게 잘 있는지만 살핀 후 잘 자라는 인사가 끝이었다. 자기 전에 초에 불을 붙이고 더운물로 갈아주러 온 도림에게 말할까 고민했다. 잘된 거 아니냐며 가라고 부추기면 부추겼지 정우 입장은 헤아려주지 않을 것 같아 관두었다.
"잘 자! 새벽에 보자~"
아무 근심 없이 마냥 밝아 보이는 도림이 얄미웠다. 정우는 오래도록 가져본 적 없는 면이라 심술 난 걸지도 모른다. 스위스 얘기로 기분을 들쑤신 계주도, 아무 말 없는 판형도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도림도 전부 꼴 보기 싫었다. 정우는 볼품없이 마른 다리에 힘을 주고 들어 올리려고 했다.
분명 제 몸에 붙어있는데 따로 잘려있는 것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밀어가며 들썩였지만 아주 미세하게 떴다가 금방 가라앉았다. 처참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몇 번 더 시도해 보다가 나중 가서는 분을 못 이겨 울어버렸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손을 써서 들어 올리고 자세를 잡아주는 게 최선이었다.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다리는 죽었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쩌자고 태어났을까. 자주 비집고 들어오는 암울한 생각들은 정우를 떨게 하였다. 용기는 없었다. 몸이 바싹 말라버린다면 그대로 방치된다면 얼마나 아파하며 죽을까. 숨이 끊어지지는 않을까? 건드리기 꺼려질 정도로 흉물스러운 몰골로 발견되는 건 아닐까. 정우는 아픈 게 싫었다. 참아야 하는 것도 싫었다. 연약한 촛불이 정우가 팔을 들며 내는 바람에 흔들렸다. 언젠가 호기심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그 잠깐도 참지 못하는데 죽기 직전까지 전신을 꽉꽉 조여오는 통증들을 어떻게 견뎌. 끈적한 눈물이 속눈썹 끝에 매달려 있다가 무거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상태가 평소보다 안 좋아질 때면 눈물에 점성이 생기고, 작은 알갱이 비슷한 것들도 같이 섞여 나왔다. 판형은 드물게 그 눈물을 본 적이 있는데, 진주 알갱이 같다고 빗댔다.
자신을 증오의 대상으로 올려놓고 저주를 마구 퍼부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정우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를 받아줄 아무것이 절실했다. 저 자신에게 의지하기에는 나약했다. 우는데 숨이 가빠왔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려라. 정우의 힘없는 상반신이 욕조 밖으로 늘어졌다.
정우를 감싸고 있던 수분이 날아가고 있었다.
"정우야!"
방정맞은 발소리를 내며 도림이 뛰어와 엎어져 있는 정우를 일으켜 물 안으로 들였다. 진심으로 내는 표정. 도림이 화를 냈다. 걱정돼서 우러나오는 말과 행동이었다.
"심장 철렁했잖아!"
"너는 내 진짜 모습 본 적 있어?"
"뭐?"
"징그럽게 변하는 거. 본 적 없지. 보여줄까?"
"지금은 뭐, 가짜 김정우니? 그리고 자학하는 건 안 보고 싶어."
도림이 옳았으므로 정우는 자책을 멈추었다. 대신 도림의 심기를 툭툭 건드렸다.
"또 지각했어."
"참, 나. 내가 지각인지 아닌지 당신이 어떻게 알지요? 나 시간 딱 맞춰서 왔거든요?"
"토 달지 마."
"토토토토."
"왕유치."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네? 그거, 네 소개잖아."
"자다 온 거 티 내? 세수는 하고 오는 게 예의 아닌가?"
"허! 언제는 눈곱 안 달고 왔냐? 비몽사몽으로 늘 출근했지?"
"예의가 아니지."
"언제는 우리가 예의 차렸니."
"넌 정말."
"정말 뭐! 뭐어!"
"아니다."
"말을 하다 마는 거 그거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알아? 뭔데에!"
"너무 시끄러워. 새벽에도 어쩜 이렇게 우렁차지?"
"부러워?"
"어."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예상을 빗나가는 답변에 도림의 입이 다물렸다.
갑자기 붕 뜬 분위기를 수습하고자 손 빠르게 오일을 가득 짜서 정우의 어깨에 덕지덕지 묻혀 발랐다.
"그래도 시끄러운 내가 있으니까 심심하지는 않지?"
정우는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응, 이라고 대답했다.
"이게 바로 또래 친구의 긍정적인 영향이라는 거야. 앗, 나 방금 되게 고급진 어휘 쓰지 않았어? 똑똑해 보이지?"
"왜 이러나 모르겠다, 휴."
"다 알아."
"뭘 다 알아?"
도림이 무릎으로 엉금엉금 움직여 정우의 다리 쪽으로 옮겨갔다. 아까처럼 쏟아 붓듯이 오일을 발라주며 경직된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정우 너 나 좋아하지."
"와... 와아..."
"어떡하냐. 나는 이미 임자가 있는데."
"네가?"
"되게 그렇다? 감히 네까짓 게? 로 들리네."
정우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도림이 어깨를 으쓱했다.
"윤오라고. 있어."
"그게 누군데?"
"왜? 질투나냐?"
"아니?"
"너는 모를 건데, 엔도시라구~ 하여튼 그런 게 있어~"
"뭐라는거야 진짜."
발그레해져서는 광대를 방싯방싯 올려가며 낄낄거리는 도림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엔도시가 뭐야.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이름만 알게 된 그 사람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해해! 내가 워낙에 마성이어야 말이지."
"나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네. 같이 있고 싶으면서."
"도림아, 나가줘. 부탁이야."
"안 그래도 다 끝나서 나가려고 했거든요?"
"나가는 척만 해."
기름진 손을 씻으러 세면대로 간 도림이 물을 튼 채 열심히 비비던 손을 멈추었다. 콸콸 쏟아지는 물소리 사이로 작고 가냘픈 음성이 흘러나온다.
"전에도 말했잖아. 있어달라고."
정우. 애 같은 우리 정우. 안아주고 싶은 정우.
"너 좋아하는 거 맞으니까 나가래도 바보같이 나가버리면 안 돼."
뒤돌아보면 심지 곧은 눈빛으로 정우가 도림을 바라보고 있다.
도림은 할 수 있을 때 최대한의 표현을 해주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그리고 자신에게도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고 배웠다.
우정 이라는 이름으로 정우를 쓰다듬고 싶어졌다. 몇 번 했다고 고분고분 안겨있는 정우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
Chapter 13. 가뭄2
엄마.
나를 심장처럼 여겨줘.
판형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눈을 깜빡이지 않고 버티며 정우가 재차 강조했다. 나를, 엄마 심장처럼 여겨줘.
계주가 정우를 스위스로 데려가고 싶다고 했다. 중대한 일이라 결정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더니 기다릴 수 있다는 답신이 돌아왔다.
꼭 치러야 하는 행사처럼 꾸던 꿈이 있다. 햇살을 품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팔 벌리고 제게 달려오는 정우. 그 한 장면이 판형을 눈물짓게 하였다. 감격에 흘리는 눈물이었으며 대조되는 현실에 바치는 비통함이기도 했다.
계주는 믿음직한 인물이다. 그는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그 계통을 잇는 사람이고, 인맥 역시 화려하고 넓다. 가까이 두어서 실이 될 게 없다.
그런 계주의 파격적인 제안을 거절할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가서 치료를 받게 될 정우의 의사였다. 정우가 긍정의 사인 하나만 해준다면 곧장 계주에게 연락해 가자고 말할 수 있다.
계주가 정우에게 먼저 말해놔서 그도 알고 있다고는 했지만, 말을 꺼내는 게 어려웠다.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자기만 쳐다보는 정우의 말간 눈동자를 생각하면 `나만 보는 이 아이를 어떻게 보내지?` 우려되었다.
도림이 온 뒤로는 덜해졌으나 엄마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정우를 생각하면 판형은 결코 계주와 둘만 가게 놔둘 수 없었다.
그런데 잠자코 판형의 손길을 받던 정우가 먼저 계주의 이름을 들먹였다.
"스위스 가 쟀어."
밑도 끝도 없는 단문이었지만 바로 이해가 갔다. 판형은 입술을 떨며 정우에게 물었다.
"너는 어쩌고 싶니?"
그랬더니 나온 답이 그러했다. 내가 엄마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으면 한다고. 간결하지만 뼈있는 말이 판형을 갈기갈기 찢었다. 겨우 눈물을 참으며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넨 뒤에 정우의 방을 빠져나왔다.
판형에게로 결정권이 미뤄졌다. 벌겋게 부풀어 오른 심장을 기어코 뜯어낼지 곪더라도 모르는 체할 지 정해야 했다.
밤이 길었다. 까만 밤, 그보다 더 캄캄한 방안에서 판형은 괴로워했다.
"나흘 뒤 출발이야. 오늘 밤 비행기로 그분들이랑 김 선생님이 널 안전하게 데리고 가기 위해서 어떤 장치를 시범적으로 설치하실 거래."
"아."
정우는 자기감정을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다듬어지지 않아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정우의 얼굴에 드러난 건 판형을 향한 배신감 비슷한 종류였다.
정우가 어디까지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판형은 그 앞에 서기 전까지 많은 연습을 했다. 정우를 봐도 마음 약해지지 않기. 흔들리지 않기. 똑바로 바라봐주기. 머릿속에 그린 각본대로 잘해냈다. 하지만 엄마로서는 실패했다.
"도림이는 휴가 보냈어."
"나 없으면 도도림도 잘리는 거 아니야?"
"음. 아마도."
"뭐라도 시켜줘."
"...생각해볼게."
끝이었다. 판형은 더는 꼿꼿하게 서 있을 수가 없어서 일을 핑계로 자연스럽게 돌아 나가려고 했다. 정우가 날을 세우기 전까진.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사정없이 쑤셔대는 한마디였다. 판형은 떨리는 손을 주먹 쥐고 가슴께로 모았다.
"엄마는 날 사랑한 적 없던 거야."
"정우야, 엄마는."
"엄마는. 그냥, `괴물 같은 아들을 청춘을 바쳐가며 보살핀 헌신적인 나` 역할에 심취해 있는 것뿐이야."
엄마는 너 잘되라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서. 혹시라도 거기 가면 여기 가만있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판형은 그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정우는 끄덕 않고 판형을 향해 계속해서 살을 겨누었다.
"난 죽을 거야. 극심한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져버리든지, 이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조롱받고, 학대 당할지도 몰라. 연구한답시고 날 여기저기로 내세울 지도, 나를 물 한 모금 먹이지 않고 며칠을 건조한 상태로 내버려둘 지도."
"김정우!"
"난 그렇게 죽을 거야."
비관적인 말의 나열들이 판형을 잘근잘근 밟았다. 전남편과 갈라섰을 때, 판형은 사실 자신이 없었다. 이 아이만 아니었다면 호감을 가지고 접근한 남자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았을 것이고, 이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아파서 울든 그러다 죽든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밤을 눈물로 때우진 않았을 것이다. 너는 왜 태어나서, 태어나기를 하필 내 자식으로 나서 나를 이토록 불행하게 만드니. 하지만 아기의 잘못이 아니니 앞에서 탓하는 못난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잘 버텨왔다. 잘 끌고 왔다. 잘해왔는데,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네 입장에서만 보고 울컥해서 쏘아대는 몇 마디로 무수한 시간을 보잘것없게 만드니. 하는 억하심정이 들었다. 판형은 그 자리에서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음절 음절을 끊어 내뱉었다.
"함부로 죽겠단 말 하지 마. 악착같이 살려고 아등바등했던 건 너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나 알면서. 나를 제일 잘 알면서!"
"너는! 정우 넌! 너야말로 어떻게 엄마한테 그래? 너는 아직도 내가 어린 네 앞에서 술에 꼴아 한탄만 하던 철없는 엄마로만 보이니? 몸을 뒤집어가며 새벽마다 울어대는 너를 끌어안고 같이 울던 나, 상태를 유지라도 할 수 있게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자. 쉬는 날 없이 돈만 벌던 나, 너랑 같이 살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는 나는 안 보이고? 나 그동안 헛짓거리했니? 뭘 하든 자식에게 매정하고 정 없는, 혼자 살기 바쁜 철딱서니 엄마로 보고 있는 아들 앞에서 쇼했어?"
이런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우도 판형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감정을 다루는 게 서투르다. 더 와 덜 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우의 눈가와 코끝이 붉었다. 판형은 자신도 그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턱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훔쳤다.
"우리 정우는 여전히, 많이 어리구나."
침잠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읊조리고는 판형은 바로 자리를 떴다.
혼자 남은 정우는 맹맹한 코를 들썩이며 희고 긴 손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억억 막히는 울음을 내었다.
예정된 대로 먼 데서부터 날아온 에밀 박사와 그의 최측근 연구원들 그리고 그들을 모시고 온 계주가 정우를 만나러 왔다. 한바탕 판형과 다툰 뒤에 운다고 진이 빠져있던 정우는 별 반항 없이 계주의 가식적인 손길을 받아냈다. 박사는 작게 피어오르는 촛불들에 둘러싸여 처연하고 순진한 눈빛으로 그들 일행을 쳐다보는 정우에게 경이로움을 느꼈다.
"예쁜 눈을 가진 소년이구나- 라고 박사님이 말씀하시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정우는 기가 차서 헛웃음만 치고 말았다.
자신을 앞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서 영 못 알아듣겠는 언어를 쓰며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 괴이하게 보였다. 동시에 자기의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 함부로 더러운 발들을 들여놓은 것이 몹시 불쾌했다.
저들이 가면 도림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내 휴가를 떠났다는 게 떠올랐다.
심각하게 긴 회의를 하던 그들이 일렬로 서서 정우를 향해 뭐라 떠들어댔지만 정우는 알아듣지 못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계주가 통역해주었다.
"일단 정우 너는 수송선을 이용해서 갈 거고, 반드시 물속에 몸이 담가져 있는 상태여야 하니까 큰 수조로 옮겨질 거야. 어, 그 수조가 뭔지는 알고 있나? 투명하지만 단단한 정육면체의 공간인데 그 안에 물을 가득 채우고, 너를 안에 들이고, 어, 천장에는 산소를 공급해주는 특수한 장치가 있어. 네 몸에 작은 패치들을 붙일 건데 그거랑 천장이랑 이어질 거야. 겁먹진 말고. 너의 안전을 위해서니까."
계주는 친절한 말투로 말했지만 친절한 척에 불과했지 배려심은 없었다.
한가지 정우가 알겠는 건 자신이 물건처럼 옮겨질 거라는 사실이었다.
"나를 어떻게 옮겨? 날 옮길 그 수조는 어딨는데?"
"음. 박사님 말씀으로는 새벽에 일단 차를 타고 항구로 가실 거래. 타고 갈 배는 이미 준비되어 있고. 여기서 두 시간 좀 넘게 걸리지만."
"내가 차를 타?"
정우는 계주라는 인간에게 완전히 질려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오랫동안 왕진을 오며 정우를 지켜봐 왔다면 정우가 차를 탄다는 게 어려울 거라는 걸 알 텐데 태연하게 두 시간 걸린다는 말까지 전달했다. 저 인간이 나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구나. 정우는 다시금 울화가 치밀었다.
"박사님은 너를 처음 보니까. 너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기도 해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김에 얼마나 어느 강도로 증상이 나타나는지 보자고 하시네."
"달리는 차 안에서 한 사람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걸 다른 사람들은 구경하고 있어. 그게 상식적으로 그려지는 그림이야?"
"박사님이 독특하시긴 해도 유능한 분이셔. 네 말대로 잔인한 장면이긴 한데 결코 내버려두지는 않으실 거야."
"나 안 가."
"넌 가야 해. 이미 널 위한 모든 준비를 다 하고 왔어."
정우의 망상이 마냥 터무니없고 과대한 건 아니지 싶다. 그들은 물과 정우의 상관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해괴망측한 온갖 실험에 최선을 다할 인물들이다. 계주는 옆에서 동조하며 열심히 부추기겠지.
안 가. 절대 안 가. 격하게 거부하는 정우를 두고 다시 의논을 시작했다.
노려보는 것도 지쳐가는 정우에게 계주가 다시 박사의 말을 전했다.
"정 그렇다면 지금 아예 수조로 옮겨가는 건 어때? 혹시 몰라서 트럭으로 하나 가져온 게 있긴 한데, 네가 지금 있는 욕조만 한 사이즈로."
정우가 의사 표현을 하기도 전에 계주 뒤로 다가온 박사가 크고 두툼한 손으로 정우의 어깨를 잡고는 목 부근에 주삿바늘을 찔러넣었다.
경련을 일으키다가 정신을 잃은 정우를 계주가 물고기를 채로 건져내듯이 들어 올렸다.
도림이 휴가를 실컷 즐기고 돌아와 본 정우는 욕조 대신 관상용 물고기처럼 수조에서 잠들어있는 기이한 꼴로 있었다.
"사장님. 정우 뭐예요? 욕실 안에 있는 건 뭐예요? 정우 왜 저런데 갇혀있어요?"
"정우는 내일 스위스로 떠나. 거기서 얼마나 됐던 치료를 받을 예정이야."
"정우도 그러자고 했나요? 가겠다고 했어요?"
판형은 그다음 물음엔 대답을 내주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정우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다는 걸 깨달은 도림이 울먹이며 판형에게 따지려 하자 옆에 있던 말희가 딸을 만류했다.
"사장님, 아닌 것 같아요. 정우 이대로 못 보내요. 제발요. 아니면 저도 데려가 주세요. 예민하고 경계심 많은 앤데 낯선 곳에서 기댈 사람 한 명도 없으면 스트레스받아서 어떡해요."
"정우는 할 수 있어. 내가 알아. 도림이 너보다 내가 더 오래 정우를 지켜봐 와서 알아. 내 아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단다."
판형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느낀 도림은 후회하실 거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말희가 대신 죄송하다고 허리를 숙였다. 판형이 이마를 짚었다.
"김정우야."
수조 앞에 다리를 끌어안고 앉아 물끄러미 정우를 쳐다보았다. 가지런히 눈을 감고 미동 없이 한가운데 떠 있었다. 정우의 표정은 극히 평온해 보였다.
"정우야. 이건 아닌 것 같아. 나 지금 외계 생물체라도 보는 기분이야.
그런데 이 커다란 수조 안에 네가 있어. 너 잠들면 아파서 깨는 게 싫다고 눈만 감고 있는다며. 근데 왜 이런 데서 자고 있어? 정우야 나 왔잖아. 도도림 왔다구. 야, 김정우. 눈 좀 떠봐 제발."
끝으로 갈수록 흐느낌이 심해졌다. 무릎에 얼굴을 박고 훌쩍였다.
도림은 밤새 그러고 있다가 새벽녘에 정우를 데리고 온 계주의 손길에 일어났다. 사다리차로 창문을 통해 정우가 있는 수조를 옮기는 것을 보며 도림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고 느꼈다. 짐짝처럼 실려 나가는 수조의 물이 넘실거릴 때마다 제가 다 안절부절못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정우는 끝내 도림을 보지 못하고 갔다. 도림이 자기를 앞에 두고 서럽게 울고 이름을 부르는 걸 분명 듣기는 했다. 정신은 깨어 있었으나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은 탓인지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정우도 도림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눈이 뜨이질 않고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으며 입은 거추장스러운 호흡기로 막혀 있었다. 차라리 정신마저 잠들어있다면 좋았을 텐데. 답답했다.
정말 배에 올라탔다는 게 실감이 났다. 한번 흔들릴 때 크게 휘청였다.
분명 어두운 지하에 컨테이너들과 같이 묻혀 있겠거니 싶었다.
도림은 아직도 울지 못하는 정우를 위해 대신 울고 있을 것이다. 숨이 가빠졌다. 물거품이 부글거리며 터졌다.
도림아. 무서워.
난 여태 쭉 혼자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어.
오히려 김계주랑 엄마한테 화가 난 채로 있을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 나 지금 떨고 있는 것 같아. 햇빛도 안 들고 계속 깜깜해. 추운 것 같아. 무서워.
보고 싶어.
네가 내 옆에 지금 있어 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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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오브 워터 비슷한 그런...느낌인데...제 표현력이....개똥갘아서 넘우 제성함네다.....(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