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학과 조교랑 연애하는 썰
003
[만나자. 우리. 내일 당장.]
와. 이 사람은 번호 따는 것부터 시작해서
만나는 것도 속전속결이네. 아주.
사실 뭐 아예 만나기 싫다는 건 아니었다?
아깐 너무 당황스러워서 정신없이 내려오긴 했지만. 찬찬히 떠올려보니 얼굴도 제법 훈훈했던 것 같기도 하..고..
무용학과의 남자들이 평소에는 정~말 까칠하고 재수없는 데 무대 위에만 서면 사람을 그렇게 흥분시킨다는 정수정의 말이. 언뜻. 생각나기도 하고..
그래도 바로 오케이하면 내가 너무 쉬워보이진 않을까. 또 한참을 썼다 지웠다하며 망설이고 있는데.
[왜. 싫어?]
하고 바로 또 문자를 보내는거야.
아니 좀!!!!!!!!! 나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요 이사롸마!!!!!!!!!!!!!!!!!!!!!!!!!
[음..싫지는 않은데..]
[..좋지도 않구나?]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아요. 라고 보내려다가 말 끝을 살짝 흐렸더니 그걸 또 귀신같이 잡아내더라.
독자님들.. 나 이 남자 무서워 엉어어어어어엉어어엉
사실 그냥 무턱대고 '네.' 라고 얘기할 수가 없었던 게.
어찌됐건 대학교에서 나랑 제일 친한 친구는 정수정. 그러니까 무용학과 4학년이었고.
하도 정수정이랑 붙어다니니까. 왠만한 무용학과 사람들은 '아. ㅇㅇㅇ' 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아. 정수정 친구?' 이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음.. 내가 이 사람이랑 만난다는 사실이 무용학과에 알려지는 게 싫은거야.
[아..음.. 그건 아니고. 우리 그럼 학교 근처 말고 다른 데서 볼..래요?]
혹시라도 기분 나빠할까봐. 소심하게 ...을 붙여가며 문자를 보내놓고 답장을 기다렸지.
이윽고 울린 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왜? 정수정 때문에?]
그래... 이제 해탈하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네.]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 그럼 합정 쪽에서 볼까?]
[아. 네. 좋아요!]
[장소는 내가 다시 문자로 알려줄게.]
그렇게 약속을 잡아 놓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어.
내 나이 이제 스물 여섯. 물론 재수를 해서 1년 학교를 늦게 들어가긴 했다만.
휴학도 여러 번 하고 교환학생도 다녀와서 벌써 5년 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이었고.
CC에 대한 환상. 각종 대학 축제들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을 나이가 아닌. 그야말로 취업에 몰두해야 할 대학교 4학년이었어.
대부분의 일상이 학교. 도서관. 집. 교수님들 연구실. 의 반복이던 나에게.
새로운 사람과의 약속이라니. 그것도.. 남.자.
아 뭐..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운 남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막상 이렇게 약속을 잡아 놓고 나니.
아.. 내 심장.
왜 나대는 거니...................
나대는 심장을 붙잡으며 정말 오랜만에 불편해서 안 입던 원피스도 꺼내입고. 분칠도 좀 하고.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로 갔지.
그렇게 전공 수업을 여차여차 끝내고. 오늘의 마지막 수업인 그.. 문제의 교양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향했어.
매일 정수정이랑 앉던 그 자리에 앉아서 정수정을 기다리는 데.
[야. 너 어디야?] 하고 정수정한테 문자가 온거야.
[어디긴. 강의실이지.]
[어? 너 언제 옴? 어딨어? 아오. 나 강의실 도착했는데 우리 맨날 앉던 자리에 다른 년이 앉아있음. 왕 짜증.]
응? 우리 맨날 앉던 자리에.
앉은 다른 년.
이.
난 데?
[그 다른 년이 나인듯 싶다.]
하고 문자를 보내 놓고는 뒤돌아 정수정을 찾는데.
거의 맨 끝자리에 앉아있던 정수정이 야!!!!!!!!!!!!!!!!! 하고선 나에게로 돌진해 오는 거야.
"아. 쪽팔리게 뭐하냐."
"야!!!!!!!!!!! 너 어디서 되도 않는 여자 코스프레하래. 어?"
그래. 왜 정수정이 한 소리 안하나 했다.
흥분해서 씩씩, 거리는 정수정의 팔을 잡고 일단 앉힌 다음에 귓속말로.
"나. 오늘 남자 만나." 라고 말했더니.
"뭐어??!!!!!!!!!!!!!!!!!!!!!!!!!!!!!!!!!!!!!!" 하고 정말 강의실이 떠내려 갈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거야.
강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됐고.
황급히 정수정의 입을 틀어 막아 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듯 싶었다.
정말 다행이게도 교수님이 때 마침 들어오셨고.
강의가 시작되자 정수정의 흥분도 조금씩 가라앉는 듯 보였어.
[언 놈이야.]
뚱한 표정으로 삐딱하게 앉아서 바로 옆에 있는 나에게 굳이 문자를 보내는 정수정이 귀여워서 혼자 큭큭거리고 웃다가 답장을 보내줬지.
[몰라. 나도 일단 그냥 한 번 만나보는 거야.]
[와.. 나 버리고 자기 혼자만 연애하겠대. 나쁜 년.]
[야. 내가 잘되면 바로 입 싹 씻겠냐. 니가 어떤 친군데?]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갑자기 나를 보는 정수정의 눈빛이 달라지는 거.
나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친구야아아아아' 하고 달려드는데.
아 씨. 온 몸에 닭살이 쫙 돋아가지고는.
겨우겨우 떼어놓고서는 강의를 들었지.
본격적으로 강의 듣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골아떨어진 내 친구년을..한심하게 쳐다보면서.
겨우겨우 졸린 눈을 비벼대며 수업을 견뎌낸 나는 교수님이 강의실을 벗어남과 동시에 짐과 짐 같은 정수정을 챙겼고.
수업 째면 안되냐며 찡찡대는 정수정을 겨우 달래놓고 지하철을 탔지.
정신없이 나오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핸드폰을 들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 조교한테서 문자가 와 있었어.
[잊어버리진 않았지? 합정역 ㅇㅇ카페로 와.]
아. 잠시. 우리 밥 먹는 거 아님?
배고파 죽겠는데 무슨 카페?
설마. 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싶어서 [네. 이따 봬요.] 하고 보내놓고는 약속장소에 도착했어.
카페에 딱 들어서는 데. 한 쪽 구석에서 삐딱하게 앉아 나를 기다리던 조교가 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또. 그 기분 나쁜 눈빛으로 나를 위 아래로 훑으면서 손짓하는거야.
내가 살짝 표정이 굳어서 다가갔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는.
"치마는. 여전히 짧네." 이러더라.
그 말에 또 빠직.
"저 무용학과 아닌 거 아셨잖아요."
하고 삐딱하게 대답하는데,
"그래도. 너무 짧아."
하고선 나를 쳐다보더라.
음. 근데 뭐랄까. 그 남자의 표정이..
약간 뚱해보이는 표정 있잖아.
만화 캐릭터들이 얼핏 겹쳐보이는 것도 같고.
무튼 그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데. 내 기준으론 이 남자가 이런 표정을 짓는 걸 처음 본 거지.
뭔가 그 동안 '싸가지', '학생주임', '눈빛 짱시룸', '막무가내'. 이런 이미지들로만 이 남자를 생각해오고 있었던 나한테는
약간의 충격과 동시에. 음. 인정하긴 싫지만 좀 귀엽다고 해야하나. 무튼 그랬어.
그 표정을 보고 있으니까 내 기분도 이상하게 살짝 풀어지더라?
그래서 그냥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관리 하시게요?" 하고 살짝 웃으면서 장난식으로 툭. 던졌어.
그랬더니 그 남자가.
"나는 벌써 시작했는데."
"네..?"
"너도 나 싫지는 않다면서."
"아..뭐.. 그거야 그런데."
"그럼 됐네. 우리 사귀자."
와. 무슨 이런. 막무가내 고백이 다 있냐.
기가 차고 말문이 막혀서 '하..' 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남자를 쳐다보는 데.
"이제 밥 먹으러 갈까?"
하고 처음으로 나한테 웃어보이는 그 남자의 표정이.
아이처럼 들떠보여서.
음.. 그러니까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먼저 쿵. 하고 반응해버렸어.
우쮸쮸쮸 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수졍이ㅠㅠㅠ..ㅠㅠㅠ 언니가 자꾸 자고. 찡찡대고. 소리나 지르는 여자로 만들어서 미야네ㅠㅠㅠ...
뭐. 어쨌든. 드디어 조교님과의 연애 시작입니다. 앞으로 기대 많이 해주실거져???? ♥
혹시나 읽으시면서 원하시는 에피소드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 달아주세요 :) 소중한 의견, 소중하게 듣겠습니다 !
암호닉 불러볼까요? :)
스테이크 님, 체리 님, 찬여열 님, 세젤빛 님, 허거덕 님, 마지심슨 님
이상 댓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고백할게요. 사랑합니다.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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