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상황이나 인물을 기억했을 때 내적 고통이 심해지는 경우, 그 특정 상황이나 인물에 관련된 기억들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할 수 있습니다."
세게 힘을 주어 하얗게 질린 성용의 손은 풀릴 기미라곤 눈꼽만치도 없었다. 마치 사형선고라도 내리듯 엄숙하게 울리는 의사의 목소리와 누구세요, 라 지독하리만치 다정하게 물었던 자철의 목소리가 교묘하게 섞여 성용의 귓가를 난잡하게 어지럽히고 있었다. 후들거리는 것은 비단 귓가만은 아니었던 듯 바르르 떨리는 다리와 팔에 성용은 자철의 병실로 향하던 길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 보았다. 자철이 입었던 옷마냥 새하얀 병원복들과 시끄러운 소리들이 울렸다. 저 어딘가에서 자철이 아까마냥 웃고 있을 것만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끝까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던 자철이 뒤늦게서야 온 자철의 어머니에게서 성용의 이름을 듣던 순간, 기억을 잃었음에도 미간을 흉하게 찌푸리던 자철이 크게 각인되고야 말았다. 혐오에 얼룩져 성용을 마주한 자철의 눈동자는 말했다. 너구나, 비록 기억을 잃었을지라도 그의 몸은 성용에 대한 거부 반응이 심할정도로만치 남아있었다. 그런 눈동자에 밀려 답을 하지 못해 후들거리며 나왔던 성용은 의자에서 일어나 아직 후들거리는 다리로 자철의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 가까워지는만큼 성용의 어깨에 올려지는 가책들은 무겁게 쌓아올려졌다. 지금껏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자철을 제 개마냥 부려오던 성용이 이제서야 자철의 존재를 자각했느냐, 하는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록 꼬이고 꼬인 둘이었지만 표면상이더라도 그들은 절친이었으며 그것은 그냥 생긴 둘 사이의 대명사가 아니었다.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늦었다.
그제서야 현실을 파악해 고치려고 발버둥을 쳐 봤자 이미 저지른 일들이 늪이되어 발목을 쥐어감아 잠기게 하기 마련이었다. 성용이 그를 깨달았을 적은 이미 늦었다 생각할 때였다. 자철의 병동 앞, 한참을 문 앞에서 서성이던 성용은 결국은 병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
실수를 깨달았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었으나, 엎지른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 이미 남은 얼룩을 무슨 수로 지우겠는가. 성용은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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