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코X유권 "너를 많이, 좋아해!"
" 야, 지호야, 우지호!"
멀리서 헬렐레, 지호를 부르며 달려오는 유권이의 모습에 안 그래도 험상궂은 지호의 인상이 더욱 험상궂게 구겨진다. 등교라도
좀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려 했더니만. 으, 피곤해 피곤해. 생긴 것과 다르게 공부 욕심이 많던 지호는 전날 밤 오늘 볼 모의고사 준비를
하느라 밤을 새하얗게 지새웠는데, 김유권 저 자식은 옴팡지게 잘 자셨나, 아침부터 쩌렁쩌렁한 목청으로 한껏 예민한 지호의 대뇌를 둥둥 울려댄다.
" 조용히 말 해 임마. 그러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한테까지 닿겠어."
" 오우, 또 밤 샌거야? 공부 좀 쉬엄쉬엄 하라니까. 다크써클로 우물 파겠어! 크큭,"
" 웃기냐, 하나뿐인 친구 피곤해 쓰러지시겠다는데."
" 그러니까 공부 좀 살살 해 임마~"
밤을 무리하게 지새운 탓인지 지호의 하늘은 빙빙 도는데, 우지호 속도 모르는 눈치고자 김유권은 마지막 말과 함께 그대로 지호의 뒷통수를 빠악-,
" 이 미친 눈치고자 새끼야!! 아 어지러워 뒤지겠는데, 존나 눈치고자 어오!"
등교라도 맘 편히 하고 싶었던 지호의 맘을 알 리 없는 타칭 '눈치고자' 김유권은 긴 다리로 휘적휘적 앞서가는 우지호를 엉거주춤 쫓아가며,
" 아 왜 그러는건데에!! 같이 가자고 우지호!!"
기차 화통 삶아먹었다고 해도 믿을 그 쩌렁한 목소리로 앞서가는 지호의 심기를 쿡쿡.
.
.
" 야 우지호, 집에 안 가?"
" 너 먼저 가라. 나 보건실 좀 들렸다 가야될 듯 싶어서."
등교때부터 자꾸 쓰러지겠다, 뒤지겠다 거리더니 정말로 쓰러질 듯한 안색을 하고 비틀거리며 보건실로 향하는 지호를 보던 유권이
지호의 뒤를 쫓으며 어디가 어떻게 아픈건지, 혹시 점심 먹은 게 체한 건 아닌지, 질문 세례를 퍼부어 대고.
머리는 지끈거려 죽겠는데, 뒤에서는 쫑알거림이 끝이 나질 않으니. 등교할 때 부터 많이 참고 있던 지호가 결국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건지,
씩씩대며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유권과 눈을 마주한다. 뭐든 다 때려 부술듯 한 표정을 한 지호가 그러고선 하는 말이,
" ㅇ,...됐다. 나 힘드니까 먼저 가, 제발."
매사에 칼같은 지호가 왜 항상 유권에게만 약해지는지. 지호 자신도 그걸 알 길이 없었다. 그래, 지금은 아파서 그래. 속으로 자기합리화를
하던 지호가 말을 멈추고 다시 보건실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기 시작하고.
" ㅇ,야! 같이 가 준다니까 그래?"
" ...됐다고 좀. 제발."
지호의 말을 듣고도 지호가 퍽 걱정이 된 건지 끈질기게 지호의 뒤를 쫓는 유권에 지호가 정말 한계를 맞이한 건지 한 번 더 뒤돌아,
미간을 좁히며 곧 울듯한 표정으로 유권에게 명령 아닌 부탁, 아니 거의 애원에 가까울 정도의 말을 하니,
" ..알겠어. 갈게,"
" ....그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뒤 돌아 지호와 정 반대의 길을 걸어가는 유권의 발걸음에, 씁쓸함이 묻어나는 듯 했다.
.
.
가까스로 1층 구석에 위치한 보건실에 도착한 지호가 공부 좀 작작 하라는 보건선생님의 타박을 좀 듣고 나서야 약을 처방 받을 수 있었고,
약만 먹고 집에 가려 했던 지호는 보건선생님의 권유(라기보단 명령)에 의해 보건실 침대에 누워 머리를 쥐어뜯는다.
에이씨, 빨리 집에 가서 김유권한테 사과나 좀 하려고 했더니, 괜스레 아까 일이 계속 맘에 걸리는 건지 지호는 쉬라고 눕힌 침대 위에서 끙끙대며
끊임없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새끼, 많이 화 났을라나?
드륵-, 뻑뻑해서 잘 열리지 않는 보건실의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호의 위로 시선 하나가 느껴졌다.
" .....김유권?"
" 크큭, 사내새끼가 밤잠 한 번 설쳤다고 보건실에 드러누워있냐?"
진작에 집에 갔을 애가 왜 지금 내 옆에 있는걸까. 방금전까지만 해도 김유권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지호가 알 수 없는 상황에
머리가 더 더욱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 친구한테 말 참 예쁘게 한다, 응? 근데, 너 왜 지금 여기 있는거야. 집에 안 갔어?"
" 너도 나보고 맨날 눈치고자라면서, 너도 눈치고자네. 지금까지 너 따라온건데? 중간에 화장실 좀 갔다 오니까
금세 보건실 들어갔길래. 그래서 따라 들어온거야."
" 미친새끼..."
" 야, 아플 때 혼자 있으면 서러워-."
능글맞게 웃으며 침대 위 지호의 옆에 걸터앉은 유권이 이내 지호가 걱정 되었는지 어서 빨리 한숨 좀 자라며 지호를 독촉하자,
이 상황이 웃기면서도 나쁘진 않은 건지 입꼬리를 말아올린 지호가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
.
" ...금세 잠 들었네."
" ..."
" 이 눈치고자 새끼야, 네가 나한테 눈치고자라고 할 자격이 없어."
" ..."
" ....내가 너 좋아한다고, 우지호."
바보같은 김유권. 친구라면서 우지호 잠귀 밝은 것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