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치원을 배경으로 까만 승용차가 들어온다. 승용차 운전석에서 내리는 학연이 뒷좌석에 타고있던 쌍둥이들을 차례차례 내려준다. 먼저 내려놔도 가만히 있는 은수를 내려두고 장난기 많은 은하를 내릴려고 하는데,
작은 두 손을 뻗어 학연의 볼을 딱 만지며,
"아빠,"
"응?"
"뽀뽀"
라면서 입술을 쭉 내미는게 아닌가. 학연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씩 웃으며 뽀뽀를 해준다. 그리고 은하를 안아들어 내려주는 학연. 기다리고 있는 은수가 질투날까봐, 혹시나 자신이 은하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까, 걱정이 되어 은하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무릎을 굽혀
"은수야, 아빠볼래요?"
"?"
하고선 입술에 뽀뽀를 해준다. 많이 부끄러웠던 은수, 빨개진 볼과 귀를 감추려고 해도 잘 가려지지 않는 가보다. 그런 은수마저도 사랑스러운 학연은 쌍둥이를 데리고 유치원 안으로 들어선다. 쌍둥이를 내려놓고는
"차은수, 차은하. 오늘 선생님 말 잘듣고 있어야돼요. 아빠 오늘 일찍 올게."
라고 손을 크게 흔들어주고서는 회사로 출근한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야외 수업이 있는 날, 체육복으로 모두 갈아입힌 선생님은 아이들을 두 줄로 세운다. 은수가 다른 친구들과 많이 못 어울리는 편이기에 은수를 은하와 짝으로 만들어주고, 간단한 체조를 시키는 선생님. 콩콩 뛰는 체조를 하다 넘어진 은수. 넘어진 바람에 턱과 무릎이 까져 엎어진 그대로 울어버리는 은수. 은하를 제외하고 모든 아이들은 깔깔 웃는다. 웃음 소리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
"은수, 넘어졌다. 헷."
선생님은 놀라서 은수를 들어올렸고,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아가한테는 얼마나 쓰라릴까. 은수를 데리고 유치원 안으로 들어가 턱과 무릎을 흐르는 물로 씻기고 연고와 밴드를 가져와 조심스럽게 붙인다.
"은수야, 많이 놀랬지?"
"....네."
"많이 아파?"
"..아니요."
"선생님도 많이 놀랬어. 선생님은 은수가 안아팠으면 좋겠어요."
"..네.."
"은수가 다친건 은수 잘못이 아니야. 그쵸?"
"..네.."
"자, 이제 다시 나갈까요?"
야외 수업도 끝나고, 모든 수업이끝나자 몇 분 기다리지 않아 들어오는 학연. 은수의 턱에 붙어 있는 캐릭터 밴드를 보고 표정을 찡그린 채, 선생님을 찾는다.
"선생님."
"네?"
"은수,"
"아, 오늘 야외수업하다.."
"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들이예요."
"아, 아버님, 제게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들이예요. 제가 말해도 못미더우시면 어쩔 수 없지만요. 아가들은 다 다치면서 큽니다. 야외 수업 중 체조를 하다가 넘어졌어요. 저도 많이 놀랬고, 은수도 많이 놀랬습니다. 제가 은수를 안 다치게 할 수는 없지만 은수가 다칠 때 치료해주고 놀랜 마음을 달래는게 진정히 제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버님."
"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들어올때 부터 한껏 찡그린 표정으로 들어온 학연. 기분 안 좋은 일에 일이 겹치니 괜히 불똥은 선생님한테 튀었고, 서로의 마음만 상한 일이었다.
***에피소드
안녕하세요! 저는 은하라고해요, 차은하. 이름 예쁘죠? 우리 아빠가 지었어요!! 헤헤, 사실은 오늘 체육 시간에 차은수가 넘어졌어요. 선생님께서는 차은수를 유치원으로 데리고갔고 친구들은 더 크게 웃었어요. 전 화가 많이 많이 났어요, 너희들은 안넘어지는거야?
"야! 니들은 안넘어져?"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넘어진게 차은수 잘못도 아니고! 니들 넘어질 때 봐. 내가 막 웃을거야. 나빠 니들."
내가 넘어진 것도 아닌데 내가 괜히 속상했어요, 차은수는 많이 아플까요?
2.
아침마다 전쟁을 선포하는 쌍둥이둘. 덩치도 조그마한것둘이 얼마나 사고를 치던지. 기어코 오늘은 접시를 깨고 말았다. 안그래도 아침이라 바빠 정신없는 학연이 '쨍그랑' 소리에 놀라 입던 와이셔츠 단추를 모두 잠구기전에 뛰쳐나갔다. 범인은 은하, 고작 몇분이지만 동생인 은수보다 말썽을 자주 피운다. 은수는 제법 겁에 질린 채 눈만 말똥말똥 뜨며 학연을 바라보았고 은하는 깨진 접시 조각을 만지려고 손을 뻗고 있었다. 놀랄 기척도 없이 은수를 재빠르게 안아든 학연.
"차은하. 가만히 있어요. 아빠 놀랬잖아."
아이에게는 화를 내지 않기로 수백번이고 수천번을 다짐하고 또 다짐한 학연이었기에 화가나기보다는 놀란 마음이 앞선 아빠였다. 겁을 먹은 은수와 은하를 뒤로 두고 깨진 접시 조각을 하나하나 집어드는 학연. 미처 보지못했던 날카로운 부분에 슥-베어버린 손가락 사이로 선혈이 망울망울 맺혀나온다. 학연은 조금 쓰라린 손가락을 움켜쥐고 밴드를 급하게 찾아서 대충 붙였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뒷처리를 하는 학연이었다.
쌍둥이와의 전쟁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다행히도 시계 바늘은 빨리 달려나가지 않았다. 나머지 옷을 마저 챙겨입고 한손에는 은하를 안고 한손으로는 은수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두 개의 베이비시터에 쌍둥이를 앉히고 운전대를 잡은 학연은 곧장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유치원. 쌍둥이를 맞이하러 나온 유치원 선생님. 은하와 은수를 보더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쌍둥이에게 인사를 전한다. 쌍둥이에게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든 선생님의 머리위에는 학연의 정돈된 얼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 안녕하세요 아버님."
"네. 잘부탁드릴께요."
형식적인 인사를 뒤로 하고 학연은 차를 향해 걸어나갔다. 선생님의 눈빛은 학연의 손가락을 향해.
"휴, 오늘은 다치셨나?"
며칠 전, 괜히 선생님께 화를 냈던게 미안하기도 했고. 학연은 운전대를 잡아 회사에 도착하면서도 유치원 선생님의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내가 손 다친건 어떻게 알았지?'
그도 그럴 것이 큰 상처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바로 상처를 알아챘다. 결국 학연은 선생님께서 눈썰미가 있고 주의력이 깊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쌍둥이들을 잘 돌 볼 것이라는 확신도. 그리고 저번 일은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
"은하야, 오늘 아빠 다쳤어요?"
"네!"
"뭐하다가 다쳤어?"
"내가요, 오늘 아침에요. 이만한 접시를 깼는데요. 내가 주울랬는데 아빠가 줍다가 피가났어요."
조그마한 손을 펴 크게 원을 그리는 은하. 과장하기는.
"그렇구나. 은하야, 앞으로는 유리를 만질때는 조심해서 사용해야해요."
"네, 선생님!"
은하가 아직 많이 어린터라 발음이 새기도 하고 표정과 몸짓으로 말하는게 너무 귀여웠던 선생님. 잠시 웃던 선생님이 정신을 차리고 은수를 바라보았다. 은수는 은하와 다르게 표현이 서툴렀다. 표정도 말도 잘 드러나지 않는 은수. 당연히 눈길이 가는 아이였다.
"은수야, 선생님이랑 들어갈까?"
고개를 끄덕이던 은수의 작디 작은 손을 꼭 잡고 어린이집으로 들어간다.
퇴근 시간이었다. 시계 바늘은 어느새 여섯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 시간에 올 학연이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는다.
"다운아, 잘가!!!!"
"은하도!!"
해가 뉘엿뉘엿지어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의 손을 꼭 잡거나 유치원 셔틀 버스를 타고 이미 집에 도착해있을 터, 그러나 학연이 오지 않는 바람에 은수와 은하는 선생님과 남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빠가 오질 않자 조금 불안해 보이는 은수였다. 그런 은수를 단박에 알아챈 선생님은 은수의 손을 꼭 잡고,
"은수야, 아빠 곧 오실거야. 선생님이 아빠한테 전화할까? 은수도 들을래?"
라고 다정하게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한다.
"선생님~ 저도 들을래요!"
당차게 말한 은하와 같이 어린이집 전화기를 들어 학연의 전화번호를 꾹꾹 누른다. 통화 수신음이 몇 번 오가자 들리는 학연의 목소리.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버님, 별빛 어린이집 은수, 은하 선생님 김○○라고 합니다. 지금 은수, 은하가 아버님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일이 바빠서. 잠깐만 데리고 있어주시면 안될까요? 도저히 제가 빠질 수 없는 상황이라,"
"네? 네. 알겠습니다."
"잠깐,"
"네?"
"은수, 잘 있나요?"
"네, 다행히 은수, 은하 모두 잘 있습니다."
"아빠~"
선생님과 학연의 전화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은하.
"응~ 아빠야. 은하야, 선생님 말 잘듣고 있어야돼요. 알았죠?"
"네! 빨리 와야돼요!"
"알았어요, 은하야 선생님 좀 바꿔줄래?"
"네! 선생님~"
"아, 아버님."
수화기를 받아든 선생님께서는 다시 은수에게 수화기를 내민다. 아마 학연은 은수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을 터, 선생님은 스피커를 눌러 학연과 은수의 대화를 엿들었다.
"은수야, 아빠야. 잘 있어요?"
"...네.."
"아픈거 아니죠?"
"...네"
"아프거나 하면 선생님한테 꼭 말해. 알았죠?"
"..네.."
"휴.. 은수야, 선생님 바꿔줘."
한숨을 깊게 내쉬는 학연. 수화기를 받은 선생님은 통화를 마무리 짓는다. 은수와 은하를 뒤로 두고 간단하게 물건을 정리 중인 선생님.
"야, 차은수!! 여기서 쉬야 하지말랬잖아!!"
은하의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니 은수의 바지는 축축이 젖어,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은수는 그 상태로 크게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기에 은수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은수야, 쉬야했어? 괜찮아."
울음이 아니라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은수.
"아니야!!!!!"
"응, 은수 괜찮아. 선생님이랑 씻으면 괜찮아."
젖은 바지와 속옷을 벗겨 세탁기에 집어 넣은 후,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 가 물로 깨끗이 씻겼다. 어린이집에 있는 남은 옷을 입혔다. 많이 창피했는지 눈을 꼭 감고 도리질을 반복하는 은수를 꼭 안고 다독였다.
"은수, 괜찮아. 은수야. 괜찮아."
선생님의 나긋한 목소리를 자장가로 새근새근 곤히 잠든 은수 작은 이불에 눕혔다. 그리고 은하에게 신신당부를 하는 선생님.
"은하야, 오늘 일은 친구들한테 비밀이에요."
"왜요~?"
"만약 은하가 바지에 쉬야를 했는데 은수가 말하면 기분 좋을까요?"
"아니요.."
"그러니까 말하지 않기로 선생님이랑 약속해요."
"네~"
활짝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들어 선생님과 약속을 하는 은하. 마침 학연이 어린이집으로 향해 들어온다. 급히 왔는지 머리는 살짝 헝크러져 있었고 와이셔츠 첫 단추도 살짝 풀려있었다. 은하는 학연을 향해 뛰어들었고, 학연은 그런 은하를 안아올렸다.
"은수는요?"
"아, 은수 자요. 방금 잠들었어요."
은수의 바지가 집을 나설 때와 다른 것을 확인한 학연은 선생님께 말을 건넨다.
"은수 바지가.."
"아, 은수가 바지에다 볼 일을 봐버려서."
"?"
"은수가 아버님과 통화 후 얼마 안돼서 볼 일을 봤더라구요, 죄송해요."
"아뇨, 죄송할 일 아니예요."
"은수가 많이 당황했길래 씻고나서 진정시키고 잠에 들었어요."
"아,"
은하를 내려놓고 은수를 들어올린 학연. 선생님께서는 은하를 들어올려 학연의 자가용에 태워다 준다. 학연이 운전석에 올라타고 선생님이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려 할 때,
"선생님,"
"네?"
"버스 끊기지 않았나요, 나는 선생님께서 버스가 끊겼으면 좋겠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제가 선생님 태워다 드릴려구요. 오늘 은수 일도 그렇고 며칠 전 괜히 화난것도 죄송한 의미에서.."
"굳이 안그러셔도 되는데.."
"얼른 정리하고 나와요."
거절을 해도 계속 차에 타라고 할 것만 같아 허겁지겁 정리를 하고 나온 선생님은 학연의 차에 조수석에 앉는다. 학연의 어디사냐는 질문에 꾸벅 대꾸를 해준 선생님의 대화를 끝으로 몇 분간은 정적에 차올랐다.
"은수, 어때요?"
정적을 먼저 깬 학연.
"은수요, 많이 내성적이죠. 표현도 잘 안하는 편이구요."
"네, 그렇죠."
하고 살짝 웃어보이는 학연.
"엄마가 없어요."
"네?"
"은수는 엄마가 없어요."
"그게 무슨말인지.."
"저랑 전부인이랑 이혼을 했어요. 도저히 같이 못 살 것같아 이혼했어요. 은하는 워낙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라 금방 되돌아왔지만 은수는, 은수도 전에는 밝았는데 말이죠. 그 때 이후로는 표현을 잘 안하네요."
"아.."
"저도 대책없죠, 참. 아, 그리고 저번일은 죄송했어요."
"아니예요, 괜찮아요."
"제가 괜히 선생님께 화를 낸 것 같아서."
학연의 말을 끝으로 또 다시 정적에 차오른다. 곧 도착한 선생님의 집, 감사하다는 인사를 마무리로 학연의 차는 떠났다.
***에피소드
"아빠."
"응, 왜?"
"선생님은 세상에서 제일 착한것 같아."
"왜?"
"선생님이 은수 쉬야한거 비밀로 하랬어."
"정말?"
"뭐, 물론 나는 선생님이 말하지 말라고 안했어도 말 안할꺼야."
"마음도 어쩜 이리 예뻐. 아빠는 선생님보다 은하가 더 착한 거 같아요."
"헷,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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