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I need you
남우현은 김성규를 말없이 노려보고 있다. 김성규는 눈을 감고 남우현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지 않다. 눈자위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면 분명히 정신은 말짱히 깨 있음이 분명한데, 부러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톡, 톡. 남우현이 손톱을 물어뜯는 소리가 들렸다. 방구석에 처박혀 눈알만 도록 굴리던 성열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힐끔 눈길을 돌렸다. 저 버릇 안 좋은 건데. 성열이 우현의 행동을 말리려 입을 열었다가, 곧 다시 다물었다. 방 안은 이미 숨도 못 쉴 정도로 성열을 압박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팽팽하게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성규의 몸이 걱정되어 확 올려놓았던 보일러의 온도 덕에 성열은 방 안에서 그대로 구워질 것만 같은 위기를 겪고 있었다. 이제는 배마저 슬슬 아파오는 것 같았다.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벽에 머리를 기대고 곰곰이 고민하던 성열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오른 팔을 번쩍 들고 검지로 우현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내일 먹을 찌개에 넣을 두부가 없으니까! 두부 사고 올게! 성규 잘 보고 있어!"
말을 마친 성열은 옷걸이에 걸어놓은 빨간 야상을 대충 걸치고 부리나케 방을 빠져나갔다. 마당에서 성열이 넘어지기라도 한 건지, 우당탕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성열의 거침없는 욕세례가 들리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두부 같은 소리하고 있네. 우현은 활짝 열린 방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뚫어져라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을 느낀 건지, 성규가 몸을 뒤척이며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우현이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김성규."
"안자는 거 다 알아."
"일어나."
우현답지 않게 목소리는 낮았고, 으르렁대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성규의 뒷모습을 보면서 우현은 순간적으로 울컥한 심정이 차올라 성규의 몸을 자신 쪽으로 돌리곤 마구 흔들어댔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그만해."
광적인 우현의 손놀림을 멈춘 것은 성규의 손이었다. 성규에 의해서 손목을 붙잡힌 우현은 여전히 씩씩대며 성규를 노려보았다. 성규는 이불을 걷어내고 등을 꼿꼿이 펴고 앉았다. 우현의 손목이 빨갛게 부어오르자 성규는 손목을 놓고 고개를 푹 떨궜다. 우현은 부어오른 손목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눈에 불을 켜고 성규의 어깨를 붙잡았다.
"설명해."
"뭘?"
"아까 뭐 한 건지 설명해."
"밤바다, 너무 예쁘지."
"김성규!"
"홀렸나봐,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바다 쪽으로 걸어가고 있더라고. 바보 같지. 걱정했어? 미안해. 고개를 든 성규는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 정말…. 우현의 말이 끝나기 전에 성규의 손이 우현의 양 볼을 붙잡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서로를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우현의 눈동자에 비친 성규의 모습이 흔들리고 있었다. 성규는 왼쪽 손을 들어 우현의 눈꺼풀을 만지작거렸다.
"우리 우현이, 눈이 예쁘네."
"…."
"코도 예쁘고."
"김성규."
"입술도 예쁘고."
"그만."
"울지 마."
남자가 많이 울면 못 써. 성규는 우현의 눈에서 톡, 하고 떨어진 눈물을 옷소매로 슥슥 닦아주면서 중얼거렸다. 뭐 하나 빠지는 데가 없는데. 넌 울면 못생겼어. 그러니까 울지 마. 말을 마친 성규가 배시시 웃으며 우현을 끌어안았다. 우현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성규의 품에 멍하니 아기처럼 안겼다.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건지. 김성규는 왜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는 건지.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순 없다고 판단한 우현은 성규를 밀치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성규의 눈을 마주했다.
"그냥 넘어가려고 하지 마."
"너 어떻게 나 알아봤어? 어릴 때랑 그렇게 똑같은가."
성규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성열이 우현에게 주었던 사진을 만지작거렸다. 우현은 성규의 손아귀에서 사진을 뺏어들고 다시 성규를 윽박질렀다.
"대체 왜 갑자기 그렇게 사라진 건데."
"이거 나 어릴 때 사진인데, 왜 네가 갖고 있어?"
"지금 뭐하는 건데, 너!"
"우리 여행가자. 나 놀이동산도 가고 싶고, 열차여행도 가고 싶은데."
"태평하게 그런 소리가 나와?"
같이 갈 거지? 두 눈을 깜빡이며 물어오는 꼴이 어이가 없었다. 물어보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도저히 성규의 의중을 읽어낼 수가 없어 답답했다. 우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고 생수통을 찾아 들어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냉수를 들이부었다.
다시 방 안에 돌아오니 성규는 모로 누워 리모컨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음악방송에 채널이 멈추고, 성규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지금 이 상황에 노래가 나와? 성규를 향한 질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김성규가 갑자기 사라졌어도, 묻는 질문에 쓸데없는 동문서답을 해도.
지금 눈앞에 김성규가 있으니까. 이후 쓸데없는 잡념을 털어버리는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현은 성규의 옆에 슬금슬금 다가가더니 그대로 바닥에 누웠다. 성규는 쭉 뻗은 우현의 팔에 머리를 놓았다. 우현의 목덜미에 성규가 내뱉는 숨이 규칙적으로 와 닿았다.
"고마워, 우현아."
"뭐가."
"나 찾아줘서."
"애초에 형이…."
"어디부터 갈까? 내일 바로 떠나자."
아, 잠깐. 성규가 방구석에 놓인 가방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어 우현의 눈앞에 대고 흔들어댔다. 우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봉투를 낚아채곤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곤 금방 당황한 표정으로 성규를 쳐다보았다.
"이게 뭐야? 이거 다 어디서 났어?"
"너희 누나가 주신거야. 그러니까 그 돈 너랑 다 쓸 거야."
"형이 써야지, 이걸 왜."
"우리 여행 경비!"
좋지? 이런 형이 있어서 든든하지? 성규가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질문을 해대는 통에 우현은 점점 뒤로 밀려났다. 계속해서 움직이던 우현이 실수로 리모컨을 만진 통에 텔레비전은 까만 화면만 반질거리고 있었다.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성규는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들렸다. 성열이 형, 우산은 가지고 나갔으려나. 그제야 성열의 존재가 생각난 우현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뭐, 알아서 오겠지.
"우현아, 이리 와봐."
"어?"
성규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난 우현은 성규의 곁에 서서 가볍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이중창 구조로 되어있어, 창문을 하나 더 열자 시원한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바람을 타고 빗방울이 우현과 성규의 얼굴에 날아오기도 했다. 성규는 우현의 손을 잡고 창문 밖으로 쭉 내밀었다. 손등에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져 바닥으로 흘렀다. 문득 몇 개월 전의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그 때도 그랬다. 항상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나를, 창문을 열고 세상과 마주하게 해주었던 것은 김성규였다.
성규는 고개를 돌리고 우현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빛 속으로 돌아온 걸 환영해, 우현아."
* * *
"여기야?"
"응."
"관뒀다고 하지 않았어?"
"뭐 한번쯤이야."
원장님, 저 왔어요. 딸랑거리는 경쾌한 종소리와 성규의 하이톤이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앉은상을 펴놓고 이론 공부를 하던 아이들은 성규에게로 쪼르르 달려왔고, 다섯 개 정도의 작은 방 안에선 아이들이 제각각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피아노. 우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제 허리께까지 오는 작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잊고 있었던 옛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원장이라는 사람은 삼십대 정도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여자였다.
"성규가 일한다고 해서 정말 좋았는데."
"죄송해요."
"개인 사정이라니, 어쩔 수는 없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고, 원장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고작 나랑 여행 가려고 일도 그만 둔 건가. 우현은 심란해졌다. 나는 노래를-. 그 말을 들은 이후, 음악을 뺀 성규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야 깨달았다. 잊고 있었던 한 가지를. 성규의 귀에 항상 부착되어 있는 보청기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눈에 확 띄었던 것이다. 우현의 시선을 느낀 성규는 어색하게 귓불을 만지작거렸었다. 입모양으로도 말을 대충 알아들을 순 있지만, 그건 한계가 있노라고.
"잠깐 애들 좀 봐줄래? 인쇄소에서 찾아올 게 있어서."
"그러세요."
고마워, 성규야. 커피 잔을 내려놓은 원장은 잠시만 부탁할게, 라는 말을 덧붙이곤 교습소 문을 열고 나갔다. 성규는 음표라기보다는 콩나물에 가까운 그림을 그려놓은 아이 곁에 앉아 음표 그리는 법을 알려주거나, 방에 들어가서 피아노 레슨을 해주곤 했다. 우현은 멀뚱멀뚱 의자에 앉아 그런 성규를 구경만 할 뿐이었다. 2번방에 들어갔다 나온 성규는 허리춤에 양손을 갖다 대고 도끼눈을 떴다.
"야, 남우현."
"응?"
"너도 레슨 좀 봐줘. 피아노, 잘 알잖아?"
"근데 너무 오래돼서…."
괜찮아. 할 수 있어. 성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우현을 5번방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 곳엔 아무도 없는, 텅 빈 연습실이었다. 우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성규가 헤헤 웃으며 방 안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잖아?"
"남우현 선생님, 피아노 좀 쳐주세요. 김성규 학생 노래 연습 좀 하게."
성규가 큼큼거리며 목을 풀었다. 우현은 허탈하게 웃으며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무슨 곡을 쳐드릴까요, 김성규 학생? 우현이 하얀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고 성규를 올려다보았다. 성규는 킥킥 웃으며 계속 손에 들고 있던 악보를 우현에게 건네주었다.
"…날 안아주면 안돼요."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노래였지만 그저 성규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아 우현은 그동안 피아노를 치지 않아 굳은 손을 열심히 놀려댔다. 피아노 주변에는 아이들이 몰려 입을 헤 벌리고 노래를 부르는 성규와 피아노를 치는 우현을 구경하고 있었다.
"보컬전공이라 남다르긴 하네?"
"원장님."
계속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던 성규가 눈을 반짝 뜨자, 원장이 문에 기대어 박수를 치며 생긋 웃었다. 그 박수를 필두로, 모여 있던 아이들이 환호성을 하며 박수를 쳤다. 학생도 피아노 잘 치네요. 여기서 일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 말을 들은 우현은 멋쩍은 듯 턱을 매만졌다. 성규는 우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의자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볼게요."
"피아노 치려고 온 거였어?"
"당연히 원장님 보러 온 거였죠."
"말은 잘 해, 말은."
다음에 또 놀러와. 성규와 악수를 나눈 원장은 씩 웃으며 말했고, 성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가지 마요!"
"응?"
우현과도 안면이 있는 여자아이였다. 성규는 무릎을 굽혀 아이와 시선을 맞추었고, 아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성규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아이가 성규를 놓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우현도 성규를 따라 무릎을 굽히고 아이를 살살 구슬렸다.
"다음에 다시 올게. 약속할게."
"그렇지만…."
"약속!"
우현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삐쭉 내밀고 우현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 * *
"형. 내 핸드폰 못 봤어?"
"핸드폰 있었어?"
"어디서 떨어뜨렸나 봐. 누나가 걱정할 텐데."
"내 핸드폰 일단 써. 대신 우리 여행가는 건 비밀이야."
* * *
"오늘은 마을투어라도 하는 거야, 뭐야."
"정답입니다."
성규는 투덜투덜 거리느라 삐쭉 튀어나온 우현의 입술을 잡으며 킥킥 웃었다. 시장에서 과일을 잔뜩 사는 것이 수상하다 싶더니, 마을 회관에서는 사과를 깎질 않나. 박 씨 할아버지네 쌀부대를 옮겨주질 않나. 길거리 청소를 하질 않나. 오늘의 김성규는 완전히 마을의 수호천사였다. 우현의 외할머니 댁이 있던 감나무 앞에 서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 향한 곳은 드디어 그 곳이었다.
"변한 게 없네."
"난 저번에도 왔어."
"그래?"
성규는 낡은 그네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쇠가 부딪히며 끽끽거리는 불쾌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성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넷줄을 붙잡고 있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해가 짧아져서 그런 건지, 어느덧 해가 지려는 듯 바다가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
"내 이름은 김성규야. 스물 두 살이고."
"형?"
"많이 기다렸어, 우현아."
"미안해. 미안…."
"네가 미안할 필요 없어. 나 혼자 널 기다린다고 한 거니까.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그럼 왔을 거야. 내가 형을 기다렸을 거야."
"알아."
성규가 읏차, 거리며 그네에서 일어났다. 해를 등지고 선 성규의 몸에선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고작 몇 달 너를 기다린 내가 이렇게 애가 탔는데, 10년을 기다린 넌.
"이젠 기다리지 마."
"응."
"사라지지도 마."
"응."
머뭇거리던 우현의 입술이 성규의 입술에 닿고, 떨어지는 그 짧은 새에, 운동장엔 어둠이 깔렸다.
* * *
다 안녕이라 말하고
웃으며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줘요
당신이 난 필요해
암호닉을 확인하세요 |
이 새벽에 깨어있는 그대는 없으시겠죠? 오늘도 1등하는 그대에게는 리퀘픽을. 저번 편에서 일등한 민낯 그대는 제외 설정을 많이 주실수록 제가 쓰기가 수월합니다. 요렇게 제가 써드리기로 한 단편이 올라오는 건 나너바가 완결된 이후입니다. 근데 왜 지금 리퀘를 받냐면 있는 암호닉 그대들에게 잘하려고.... ㅎㅎ 귱 몽림 규닝 유자차 환 여우 리니 써니텐 군만두 에비 롱롱 제시 무럭자라 에몽 복자 치쯔 밀크 규꼬리 쫄란규 동우야내가 감성 제이 이랴 케헹 감규 석류 익명인 빵형 하니 감자 국어사전 몽몽몽 환상그녀 지게 사인 모닝콜 모모 민낯 사과 암호닉이 이렇게 많은데 그대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암호닉 2번째 줄 출석률ㅋ올ㅋ 유자차 그대가 주말에 안왔어......... ....기억할거야.............. 친해지고 싶은 그대들은 많은데 글잡이 익명이라 아쉽네yo 방법이 없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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