왁자지껄한 성균관 내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한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의 중심에, 성균관을 대표하는 장의가 있다.
다부진 어깨에 수려한 외모. 제 아비를 뛰어 넘는 명석한 두뇌까지. 모든 게 완벽하여 저자거리의 일반 백성들도 그를 보면 혀를 내두른다는 성균관의 장의는,
성균관 전체가 떠들썩해진 이 순간에도 고고한 자태로 앉아 서책을 응시한다. 그러나 서책을 붙잡고 있는 희고 고운 손의 놀림은 평소보다 훨씬 더디다.
"장의. 대사성 나리께서 찾으십니다요."
드디어 올 것이 온 게로구나. 하며 서책을 덮는다. 온 반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그 소문.
온 백성이 다 알고 있는, 철부지 공주마마가 성균관에 입학한다는 소문의 진위가 이제 곧 밝혀질테지.
성균관에 여자라.
하,
세상이 말세로구나.
제 신념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것이 어명이라면. 존경해 마지 않는 국왕전하의 명이라면.
신하된 도리로서 어이하겠는가. 그저 받들어야지.
자리에서 일어나 갓끈을 고쳐매고, 어명을 받들 준비를 하는 경수의 표정이 어둡기만 하다.
"저를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왔는가. 장의. 어서 들게."
장의가 건물 안으로 완전히 발을 들이자, 문이 닫힌다. 서책이 하나 가득 쌓여있는 대사성의 집무실에는 대사성과 장의. 그 둘만이 존재한다.
“네 뜻이 그렇다면.”
“...”
“지금 당장 입궐할 채비를 하거라.”
“..네?”
"놀랐느냐. 이 아비가 설마 내 어여쁜 딸을 바로 성균관에 보낼까봐?"
"...아.......네. 조금... 놀랐습니다."
"허허. 이 아비를 무엇으로 보고."
"..."
“공주마마께서 오랜만에 제 벗을 찾으신다는구나.”
"저하. 공주마마 드시옵니다."
김내관이 언질을 주기 전부터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목소리를 들은터라, 민석의 입꼬리는 한없이 올라가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런 내 누이. 열 여섯이나 먹고도 여전히 아이같은 내 누이가 아침부터 무슨 연유로 나를 다 찾아왔을까. 하며 부스스 웃는다.
문이 열리고,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는 공주가 안으로 든다.
"오라버니. 아니. 세자저하. 그간 강녕하셨사옵니까."
"하..... 그간이라니. 어제도 보았지 않느냐."
아. 맞다. 하고 배시시 웃어보이는 누이 덕에, 제대로 꾸중하지도 못한 채, 그저 웃음만 나오는 민석이다.
"그래. 어이하여 내 누이가 이 꼭두새벽부터 오라비를 찾아 왔을까."
"아! 맞다! 혹시 제가 성균관에 입학한다는 소식을 들으셨사옵니까?"
"들었고 말고. 내 누이가 간만에 공부를 해보이겠다고 하는데, 어느 오라버니가 반대를 하겠느냐.
그래서. 그 일 때문에 이리 달려온 것이냐?"
"아. 그건 아니옵고. 혹...오라버니께서도...저와 같이 성균관에 가시면..어떠한지."
저마저 궁을 떠나면 외로워하실 저하가 아니옵니까... 평생 한 번 뿐일 이 기회에 성균관에서 벗들과 함께 지내보심이 어떠하실지..... 하며 말 끝을 흐리는 제 누이를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는 민석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싶었던 것을 청하면 모두 가질 수 있었던 제 누이였기에 자기밖에 모르고 큰 공주가, 이리도 저를 챙기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견하였다.
"네가 외로워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아니옵니다!!!!!!!! 저는 제 벗과 함께 입학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입궐하기로 하였는데."
"네 벗이라면 혹 누굴 말하는 것이냐."
"아! 홍문관 대제학의 여식, ㅇㅇㅇ 이옵니다."
하.
지금 대제학의 여식이라.
그리 말한 것인가.
민석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나온다.
달 빛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한사코 따르겠다는 호위무사들을 물린 채, 홀로 산책을 하고 있던 민석이었다.
보름달이 영롱한 밤이면 늘 민석이 향하는 곳이 있다.
그의 어미가, 저를 낳고 세상을 떠난 제 어미가 살아 계실 때 달을 쏙 빼닮았다 하여, 제 아비가 만들어 준 작은 연못이다.
하얗다 못해 투영할 듯 했다던 제 어미를 꼭 닮았을 조그맣고 예쁜 연못이다.
연못 위에 있는 다리에 가만히 앉아, 물 위로 비친 달을 멍하니 바라보는 민석이다.
제 어미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처럼 이리 고우셨을까. 하는 생각에 눈 끝이 아려온다.
소매를 들어 눈 가를 훔치려는 데, 문득 연못 옆, 작은 풀 숲에서 바스락. 하는 소리가 난다.
"게 누구냐. 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했거늘."
"..."
"썩 나오지 못할까."
짐짓 낮은 톤으로 으름장을 놓자, 풀 사이로, 누군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궁녀는 아닌 듯 싶은데. 누구냐."
"아.. 저. 송구하옵니다. 공주마마의 말동무로 들어온 ㅇㅇㅇ이온데, 그만 길을 잃어."
땋아 동그랗게 잡아 묶어놓은 머리카락이 앳띈 소녀같이 귀여웠다. 양쪽으로 둥근 모양을 띄고는 하얀 장식에 모양 잡혀 있는 것이 새초롬해 보이기도 했다.
분명 공주의 소행이었으리라. 분명 왕실의 법도에 어긋나는 모양새였으나, 그 모습이 사뭇 잘 어울려 웃음을 터트리고 마는 민석이다.
"머리는. 공주가 그리 해 놓은 것이냐."
"...아.. 네. 송구하옵니다."
"헌데, 내가 누군줄 알고 그리 극존칭을 써오는 것이냐."
"아...저." 하며 말을 잇기를 망설이는 듯 했다.
어허, 어서 말하지 못할까. 하며 마음에도 없는 으름장을 놓으니 그제서야 그 조그만 입술을 움직여 한 글자 한 글자 내뱉는다.
"세자저하가. 아니십니까."
"허."
이런 당돌한 계집 아이를 보았나. 제가 세자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뻔뻔하게 숨어서는 사내로서 보여주기 부끄러운 모습까지 다 보았다니.
그리 생각하긴 했으나. 민석은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웃음이 났다.
"내 길을 알려줄터이니, 가자꾸나."
"아... 저하. 황송하옵니다."
고개를 푹 숙인채, 제게 얼굴 한 번 보이지 않는 계집이다.
세자인 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처사이건만, 왜 이 아이에게만은 유독 제 눈을 마주치는 것을 허하고 싶은 것인지.
왕실의 법도가 천칙이라 여겼던 민석에게 왜 유독 이 아이에게만은 예외를 두고 싶어지게 하는 것인지.
민석은 도통 알 수 없었다.
잔뜩 심통이 난 민석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제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 계집의 팔목을 확 붙잡는다.
그제서야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어 저를 본다.
하. 하고 민석은 또 한 번의 탄식을 터트린다.
제가 잡아올린 손목의 핏줄이 투영할 듯 하얗고 예뻤다.
그리고 마침내 눈에 담은 그 계집은. 달빛을 받아, 마치 저 너머 환락인 월광천녀 같았다.
"이름이 무엇이라고."
"ㅇㅇㅇ이옵니다. 저하."
"공주의 말동무로 들인 아이라면. 사대부 집안의 여식인가."
"그러하옵니다. 저하. 소녀, 홍문관 대제학의 여식이옵니다."
대제학의 여식이라.
제 아비의 왕권을 호시탐탐 탐하는 악덕한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충신은 존재한다.
어린 민석의 눈에도. 충신과 간신은 뚜렷히 구분되었다.
대제학이라면. 다행히도 충신에 속하는구나.
왠지 모를 안도감과 기쁨에 홀로 웃음을 삼키는 민석이다.
대제학의 여식이라는 그 아이의 손목을 꼭 쥔 채. 궁궐을 벗어나는 길을 안내해준다.
"이 문만 벗어나면, 아마 내 호위관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 물으면 네 아비에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네. 그럼. 강녕하시옵서서. 저하."
"..잠시만."
"...네?"
"민석이다. 내 이름."
"아..."
"혹.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기억해 주겠느냐."
'꼭 그러하겠사옵니다. 저하.' 하는 입 꼬리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그렇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었다.
그러나.
평소 성품이 올곧기로 소문난 제 아비에게 혼줄이 난 것인지.
그 뒤로 단 한 번도 그 아이의 모습을 궐 안에서 볼 수 없었다.
그런 대제학의 여식이. 성균관에 입학한다라.
참으로 재밌게 되었구나.
한참을 추억에 젖어있던 민석이. 오늘따라 더 더욱 사랑스러워 보이는 제 누이를 바라보며 입을 뗀다.
"그래. 이 오라비도 함께하자꾸나."
입궐을 함과 동시에, 궁녀를 따라 공주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주가 잠시 처소를 비웠으니, 여기서 기다리시라는 궁녀의 말에, 아름답게 잘 가꾸어진 공주의 정원을 눈에 담는다.
전국 각지의 화려한 꽃은 모조리 모아 놓은 듯한 공주의 정원 속에 있으면 있을수록.
내 낯 빛은 점점 어두워진다.
사람이 아무리 연지곤지를 찍어 바른 들. 꽃의 아름다움을 어찌 이겨낼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에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어본다.
그런 내 눈에. 한 마리 어여쁜 나비가 밟힌다.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 이 곳 저 곳을 옮겨다니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나비가, 담을 넘어 날아간다.
그 나비의 자태에 혼을 뺏긴 듯. 정처없이 그 뒤를 쫓아간다.
한참을 나를 유혹해오던 나비가 자취를 감춘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어딘지도 모를 다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어어어!!!!!!!!!!!" 소리와 함께. 내 몸이 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인간의 몸을 하고서는 감히 꽃과 나비를 질투해 이리 천벌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는데,
누군가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나를 단단히 붙잡아옴이 느껴진다.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어보니, 처음 보는 사내의 얼굴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 너도 한 외모하는 걸로 보아하니. 김옥빈이 보여준 아이돌 중 한 명이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입꼬리를 올려 보이니,
그 사내가 굳은 표정으로 내 허리춤에 올려놓은 팔을 거두어간다. "그럼 저는 이만." 하며 제 갈 길을 가려는 사내를 용기내어 붙잡는다.
"아...저..."
"..."
"감사합니다."
"아. 네."
"혹.. 존함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여전히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오묘한 미소를 짓는 사내다.
그럴수록 내 궁금증은 커져만 간다.
"제 이름을 알아 무엇하시게요."
"혹.. 세자저하십니까?"
"...하..."
".."
"세자 저하의 옥안도 제대로 모르시는 걸 보니. 공주마마는 아니신 듯 합니다."
"...아.."
"차림새를 보아하니 궁녀도 아니신 듯 하고."
"..."
"혹여, 사대부 집안의 여식이시라면. 다시 뵙게 될 수도 있겠군요."
"..."
"경수입니다. 제 이름은."
"..경수.."
"그럼 저는 이만."
경수. 라는 두 글자만을 남긴 채,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 사내를,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는다.
내 허리춤을 감쌌던 팔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때, 자취를 감추었던 나비가. 내 손 언저리에 와 앉는다.
이 자를 만나게 해주려고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게냐.
고맙기는 하나,
네 덕분에 내 머리 속은.
한커풀 더 무거워져 버린 듯 싶구나.
우쮸쮸쮸입니다 :)
이전 글을 고쳐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고 있었는 데 이런 명쾌한 해결책을 주신 드래곤후르츠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여주의 이름은 ㅇㅇㅇ. 애칭 또는 호 가 연아 인 걸로 하겠습니다!!!!! 짝짝짝!!!!!!!!!
암호닉 신청은 늘 받고 있습니다 :)
연재가 종료되면. 암호닉 신청해 주신 분들을 대상으로 텍스트 파일을 제공해 드릴 예정이니,
많은 신청 바랍니다 ♥
[] 괄호 안에 닉네임 넣고 신청해 주시면 더 좋아요 *.*
암호닉 불러볼까요? :)
찬여열 님, 모카 님, 뚜비뚜바 님, 대추 님, 글리소 님, 애정 님, 드래곤후르츠 님, 시우밍 님, 손터쿠 님, 슈웹스 님, 오열 님
이상 댓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고백할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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