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밥 말아 드신 모델 박찬열
W. 레전드덕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기사를 빠짐없이 낭독했다. 그 기사가 진실이건 거짓이건 간에.
100톤 짜리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것 같은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굴려서 사건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 난 유명 모델 박찬열과, 술에 취한채 부대끼며 다정히 집에 들어가는 사진이 찍혔고, 언론에서는 나를 그의 여자친구로 낙인 찍었다는것. '
팩트는 우리는 원나잇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며, 연인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이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는다. 세상의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을테니. 혼자 오만가지 생각에 잠겼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자그마한 일도 아닐뿐더러,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진실이 알려지는게 두렵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박찬열의 원나잇 상대로 남는니, 그의 여자 친구로 남는것이 낫겠다고.
전화가 왔다. 민지 이겠거니 했는데 모르는 발신자 번호였지만, 대충 짐작이 갔다.
지체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 왜 이제서야 전화를 받는거야! ]
다짜고짜 내게 소리를 질러대니 핸드폰을 한번 귀에 멀리했다가 다시 가져다 댔다. 고막나가는줄 알았네.
내게 여러번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난 민지의 카톡만 보고 주구장창 기사만 읽고 있었으니 알았을리가 없다.
" 집에 오자마자 잠들었어요. 방금 일어났고요. "
[ 기사 봤지. 봤을거야. 집 밖에 나가지 말고..아니다. 지금 만나야 겠어. 매니저 보낼게. ]
" 박찬열씨! 지금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거든요? 대충 설명이라도 좀 해줘요. "
[ 기사 그대로야. 밖에 파파라치 깔렸어. 얼굴 최대한 가리고 여기로와. 와서 애기해. ]
" ...그럼.. "
할말이 더 있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건가요. 라고 물을 생각 이었다. 그러나, 박찬열은 가차없이 전화를 끊었다.
싸가지도 이런 싸가지도 없지. 핸드폰 화면에 대고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올리고 나서야 기분이 죠금 나아졌다.
우리집을 어떻게 알고 매니저를 보낸다는건지. 주소라도 문자로 찍어 보내야 하는걸까나. 잠깐 고민했다가 말았다.
배가 고팠다. 이런 상황에 배가 고플 수 있는거니? 내 뱃속에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봤다. 대답은 '꼬르륵' 이었고. 컵라면을 먹었다.
맛이 좋았다. 어쩌면 난 이 사태에 대해서 실은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라면이 이렇게 잘 들어갈 수 없지.
대충 씻고 편한 옷차림에 모자를 눌러썼다. 얼굴을 최대한 가리라고 했던 박찬열의 말이 생각나서.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띵똥' 초인종소리가 들린다.
" 진짜 찾아 왔네. "
*
박찬열 매니저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SM소속사 였고, 로비 앞에서 차분히 기다리고 있는 박찬열과 약 5시간만에 다시 상봉했다.
아무 설명 없이 다짜고짜 날 데려간곳은 다름아닌 사장실이었고, 내가 살짝 뒷걸음 쳤음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게 문을 열어 제꼈다. 개자식이 따로 없네.
" 앉아 "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이수만 사장님은 가장 중앙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고, 날 노려보고 계셨다. 난 오금이 지릴정도로 무서웠다.
시선을 맞추지 못해서 박찬열의 얼굴을 올려다 봤다가 얼굴이 더 심각하길래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 꽂았다. 죽겠다. 진짜.
" 박찬열."
" 예, 사장님. "
" 내가 경고했지. 조심하라고. 기자들한테 놀아날 기미 보이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 "
" 면목없습니다. "
" 어떻게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어! 도대체가 "
" ...제가 알아서 처리 하겠습니다. "
" 너가 뭘 알아서 처리해! 지금 밖에서는 니 목숨줄 잡고 흔들어대고 있는데! "
" 죄송합니다. "
열애설 하나에 목숨줄이 흔들리다는 말에 난 이해를 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열애설이 나면 아니라고 하면 되고, 아니라고 하면 아 그렇습니까? 정정기사 내주고. 얼마나 아름답고 깔끔한가.
박찬열이 하도 죄송하다. 면목없다 연신 사죄를 해대니 나도 함께 해야하는건가. 입술에 침을 양껏 바르고 입을 뻥긋하려는 순간.
" 너가 기자들 끌어들인건 아니겠지. "
" 아닙니다. 이 여잔 아무것도 모릅니다. "
" 니가 어떻게 장담 할 수 있는데. "
" 장담은 못해도, 이 말에 책임은 질 수 있습니다. "
" 하, 사태 파악하고 정리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 하도록하지. 나가봐. "
내 손목을 잡고 이끄는 박찬열에 힘에 난 갈대 마냥 힘없이 끌려 나갔다.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말이다. 개념 없는 여자로 보이긴 싫었는데.
굳게 닫힌 문을 다시 열고 인사를 하자니 그것도 좀 웃긴듯 싶어 그냥 말았다.
집에서는 몰랐던 또 다른 두려움이 생겼다.
손목이 부러질것같은 아픔이 뇌리에 닿는 순간 벗어나려 발버둥 쳤고, 박찬열은 날 그대로 코너 벽에 몰아 붙혔다.
등이 아팠다. 눈물이 핑 돌았다. 여전히 잡고 있는 손목은 쥐가 내린듯 저렸고 짜쯩이 솟구쳤지만 애써 억눌렀다. 참자. 참아.
" 돈 가져가라고 할때 안가져 비싼척 굴더니. 뒤돌아 서니깐 아깝던? "
" ... ... ... "
" 내가 누구냐고? 날 모르는척 연기 까지 해가면서 뒤에서 더러운일 꾸미는 내가 모를 줄 알아? "
" ...이봐요. "
" 내가 너 같은 여자 한 두번 본 줄 알아? 다 똑같아. 결국은 돈이라고. 돈 "
" 그만해. "
" 뭘 그만해. 지금 부터 시작인데. 말해. 얼만데? 일도 이렇게 커진 마당에 솔직하게 불러. 얼마면 조용히 짜져 있을건데!! "
" ... ... ... "
태어나서 이런 치욕은 또 처음이다.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이 큰 몸뚱아리라도 숨기고 싶은 심정.
아니 차라리 내 몸이 수증기 처럼 증발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난 마지막말은 제대로 듣질 못했다.
간질거리는 왼쪽 손바닥으로 박찬열의 오른쪽 뺨을 날려버렸으니. 후회는 없었다. 박찬열로부터 잡혀 있는 오른쪽 손바닥으로 세게 내리치지 못한게 아쉬울 뿐.
눈물이 차오르는게 느껴져서 자존심이 상했다. 절대 울기는 싫었는데. 제발 떨어지지 말아라. 눈물아 떨어지지마.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눈물이 툭 털어졌고 내 자존심도 툭 떨어졌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 돈. 지금 돈이라고 했니? 너나 가져 이 자식아. 내 첫..순결 빼앗안 놈한테 돈 받고 얼씨구나 좋아할 그런 싼 여자 아니야 나. "
" ... ... ... "
" 그래 못믿겠으면 믿지마. 너 믿으라고 한 말 아니니까. "
" ... ... ... "
" 나한테 무슨일이 일어나도 죽어도 너한테 매달리는 일 없어. 절대로. 아까부터 내가 기사한테 불었네 어쩌네 그러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니 행실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평소에 얼마나 지저분하게 놀았으면 기자들이 널 타겟으로 삼겠니. 안에서 들어보니깐 한두번이 아닌것 같던데. 인생 똑바로 살아라. "
" ... ... ... "
" 말 끝났어. 비켜. "
박찬열의 가슴팍을 밀어내고서야 난 벗어날 수 있었고 다리가 후들거려 걷기 힘들어도 애써 덤덤한채 걸어갔지.
속이 다 시원했다. 벙찐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박찬열 얼굴이 얼마나 우습던지. 한방 먹으니까 어떠냐? 배부르지?
솔직히말하자면 조금 아주 조금 무서웠다. 날 불러 세우면 어쩌지. 얼굴로 불꽃 주먹을 받아줘야하는건 아닌가. 난 안전히 이 회사를 빠져 나가면..되..
" 야! "
" 아, 이 말 빼먹었네. 다시는 내 눈 앞에 띄지마. 그땐 진짜 반쯤 죽여놀테니까. "
*
곧바로 택시를 잡아 타고 집에 도착했다. 집까지 오는 30분 내내 민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사실대로 불었고, 민지는 말이 없었다.
큰 충격에 빠진것 같았고, 자신을 자책하고 있는것 같았다. 몇가지는 빼고 말했어야 했나.
" 결론은 박찬열은 개재수탱이라는거. 내가 마지막에 뭐라고 했는 줄 알아? "
[ 넌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거데. ]
" 어?...몰라.그냥 당분간 숨어지내야지 별 수 있나. "
[ 집 주변에 파파라치 있을거라며. 무섭지 않아? 우리 집으로 와. 나랑 있어 ]
" ...응..나 사실..무서워 좀 많이.. "
당분간 민지네 집에서 있을 요량으로 집을 간략하게 쌌다. 있을건 있을테니 옷이나 속옷이 절반 이상을 이뤘다.
민지네 집은 여기서 그닥 멀진 않지만, 그래도 만천하에 공개된 집에서 혼자 있는다는건 위험할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옆에 있어 준다면 의지가 될 것 같고.
민지네 집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일 하고 있는 카페. 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하고 있다.
" 사장님, 저에요. OOO. 당분감 정상 출근을 못할 것 같아서요. 몇일만 쉴 수 있을까요? "
사장님은 내 모든 사정을 이해해주셨다. 처음 가게를 오픈할때부터 함께 해왔던 정이 있지 사정 빤히 아는데..라며 날 다독여주셨다.
고맙지만 딱히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현재로서 딱히 위로가 되는 말이 없다.
괜찮냐는 말과, 축하한다는 말, 속였냐는 얄궂게 말로 가득 채워진 카카오톡방을 모두 삭제했다.
" 짐은 나중에 풀고 뭐 좀 먹자. 뭐 먹을래? 내가 쏠게- "
" 진짜지? 그럼 역시 치맥이지. "
민지는 날 여전히 대했다. 그게 고마웠다. 캐리어를 방 구석지에 내팽겨 치고 치킨과 맥주를 시켰고, 우린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 더럽게 볼거 없네. 그냥 끄자 "
" 그래. "
TV에서는 모두 같은 내용으로 연신 떠들어 댔다. 민망할 정도로 확대된 내 사진을 보며 토론 까지 할 기세다.
박찬열이 잘나가긴 하는 모양이다. 민지가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볼거 없다며 어색한 연기를 한다. 미안했다. 눈치보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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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의외로 괜찮은것 같아서 바로 써서 올려요~
재밌다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암호닉도 벌써 많이 받았고요.
짧진 않죠? 길게 쓴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암호닉 신청은 받도록 하겠습니당!
많이 신청해주세요~
댓글로 많이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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