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밥 말아 드신 모델 박찬열
W. 레전드덕
박찬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꽉 쥐고 있던 그의 옷자락을 뒤늦게 놓고 머쩍음에 내 허벅지를 문질렀다.
박찬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숨이 얼마나 컸는지 내 머리칼에 닿아 흔들리는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연인사이라고 밝혀도, 소문이라는게 그렇듯. 그에 대한 비난과 의심은 줄어들지 않음을 안다.
그치만 원나잇이라는 사실이 대중에게도 공개가 된다면 그 타격은 이루 다 말할수 없을 정도일거라는것도 아주 잘 안다.
“ 당신에게 도움을 줄 생각도, 주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
“ ... ... ... ”
“ 왜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알거라고 생각해요. ”
“ 어. “
“ 엄연히 나를 위한 선택이고, 그 선택이 그쪽한테 도움이 됐으면 됐지 피해는 없을거에요. ”
입술이 쉽게 열리지 않는게 꼭 꿀먹은 벙어리 같다.
뒷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적이는게 생각이 많아진듯했다. 나 또한 생각이 많아졌다.
혹시나 열애 인정 기사가 나갔을때부터 헤어진다는 기사가 나갈때까지. 아니 그 후까지 내가 놓고 살아야할 몇가지들이 눈에 밟혔다.
사람들의 입은 가볍고, 눈은 재빠르며 귀는 얇다. 거짓도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신비한 능력속에서 완전 민간인인 내가 버텨낼 수 있을까.
“ 사장은 내가 잘알아. 자기가 원하는대로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물불안가려. ”
“ ... ... ... “
“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끌어들이겠지. 그러다가 필요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 이번엔 그게 너가 될꺼야. ”
“ ... ... ... ”
“ 너는 나를 일으켜 세울 도구로 사용되는거라고. “
“ 그럼 어떻게해요! 책임은 지라고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건...하아 “
머리가 아팠다.
할 수 있는건 없고, 하라는건 하기 싫고. 선택권은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사장님의 계획은 이미 짜져 있고, 이제 그 시나리오 그대로 흘러가면 되는일만 남았다.
“ 상관없어요. 난... 그냥 이 일로 부터 벗어나고 싶어요. “
“ ...너..”
“ 당신과 나는 이미 끌어들여졌어요. “
“ ... ... ... ”
“ 쉬고싶어요. 집에 가야겠어요. ”
“ 하, 데려다 줄게. ”
“ 같이 있는거 좋을거 없어요. 저 혼자서..아 ”
괜찮아졌던거 아니었나. 안떨던 손까지 다 떨리네.
쿨하게 일어나서 걸어나가려 했던 내 머릿속 계산과는 정 다르게 흘러갔다. 일어나자 마자 휘청거리를 꼴이라니. 웃겼을거다.
탁자를 탁 짚으려던 나 보다 박찬열이 더 빨랐다. 순발력 하나는 좋네. 내 팔과 어깨를 강하게 잡던 박찬열을 올려다 보니 미간에 주름이 나져있다.
“ 걸을 힘도 없으면서 어떻게 집에 혼자 가겠다는거야! ”
“ ...택시타면 되요.”
“ 말들어! ”
솔직히 혼자서 택시를 타고 가는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쓸데없는 고집이었다.
강하게 나를 부축해오는 박찬열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 못이기는척 박찬열에게 기댔고, 이상하게 그의 품은 포근했다.
*
“ 주소 ”
박찬열은 딱딱한 사람의 표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방금 있었던 일들을 다시 되집어 보면서 나를 걱정해줬던 그를 머릿속에서 끄집어 냈다. 버려지는 사람이 내가 될거라며. 아닌가.
그냥 나와 엮이는게 귀찮거나 싫어서 였을 수 있겠구나. 힐끔 그를 올려다 봤다.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다.
민지네 집까지 가는 차 안은 어색하기 그지 없었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노래도, 라디오도 켠 상태도 아니었고 차도 얼마나 좋은지 그 작은 소음도 없었다. 조수석에 앉는게 아니었어.
운전석에 앉아있는 박찬열의 작은 숨소리까지 들린다. 그럼 내 숨소리도 박찬열에게 들리는건가. 괜히 신경써서 숨을 고르게된다.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
“ 전화해. ”
“ 예? ”
“ 집에 들어가서 전화하라고. ”
“ 제가 왜요. ”
신호는 빨간불이었고, 한손으론 핸들을 쥐어잡은 그가 내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말투가 조금 전투적이였나. 했던 말들을 다시 주워 담고 싶을 정도로 민망했다. 귓바퀴가 뜨거워 지느게 느껴져 괜히 머리를 매만졌다.
“ 오케이 일지 노 일지. ”
“ ... ... ... ”
“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전화해. ”
“ 이미 얘기 끝난걸로.. ”
“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라고. 만약 노 라고 한다면 벗어나게 해줄게. ”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자신의 희생' 뿐이겠지.
박찬열의 희생으로 내가 벗어 날 수 있다면 난 과연 마음이 편할까?
골치아파서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서 대충 고개를 주억였다. 초록불로 바뀌었다.
집 앞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박찬열에서 정색을 타주고 나서야 돌아갔다.
완전 정 없는 사람은 아닐수도. 라고 아주 짧게 생각하고 접었다.
그런 심한 소리를 듣고도 이런 생각을 하냐! 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집에 돌아왔다.
“ 일 안갔어? ”
시간을 보니 일을 가있어야 할 민지가 집에 있었다.
“ 갔다가 일찍 왔어. 아프다고하고 ”
“ 그러다 짤린다 너 ”
“ 그건 그렇고 어디갔다온거야? ”
“ ...그게 그러니까 ”
불편했던 옷도 탈의하지 않고 민지 옆에 꾀차고 앉아 방금 있었던 일들에 대해 토시하나 노히지 않고 모두 말 했다.
함께 욕을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이로써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는데 내말에 마침표가 찍히자 마자 민지의 입에서는...
“ 박찬열 멋있다. ”
“ 뭐라니 얘가. ”
“ 자기 희생해서라도 너 벗어나게 해준다잖아. 얼마나 큰 결심이겠어. “
“ 그건 그래도 이때까지 나한테 했던 막말들은 기억 안나니? 나한테 돈 보고 접근했냐는 식으로 몰아갔잖아! ”
“ 그건 오해 할 수도..있는 상황이기도...아니 잠깐만. ”
“ 이년보게. 그래서 지금 박찬열 편들어 주는거야? 섭섭하다 진짜..워 ”
“ 아니 그게 아니라. 생각해봐. 너가 다시 생각해서 노! 라고 했다 쳐봐. 그럼 박찬열은 만천하에 원나잇을 한 남자로 알려지고 너덜너덜 해질때까지 욕을 먹겠지. 그럼 넌? ”
“ ... ... ... “
“ ..넌 박찬열의 원나잇 상대로 인생 아작나는거 아니냐. ”
미친. 욕이 저절로 나왔다. 뭐라도 대단한걸 발견한것처럼 오른쪽 검지를 치켜세우고 말하는 민지의 팔뚝을 내리쳤다.
아악! 둔탁한 민지의 신음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지니 그때야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후회 없는 선택이고 뭐고
선택지는 단, 1개 밖에 없다.
*
목욕을 하는 중에도, 밥을 먹는 중에도, 심지어 볼일을 보는 중에도 핸드폰을 곁에서 멀리 하지 않았다.
전화를 하라고는 했는데 언제 해야할지 타이밍을 못찾겠어서 그의 번호를 눌렀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는 내 꼴이 우스워서 혼자 히끅 거리기도 몇번.
의도치 않게 박찬열의 번호를 외워버렸다. 무슨 그와 내외하는것도 아닌데. 바보 같다 정말.
“ 뭐하냐. 그냥 하라고 전화! ”
“ 아, 할꺼야. 할껀데..조금 있다가 “
“ 답답하다 진짜. 전화해서 오케이! 하고 끊어버려. ”
“ 그러기가 쉽냐?...”
옆에서 더 민지가 더 날뛴다. 누군 그러고 싶지 않아서 이러니. 민지를 피해 방안으로 들어가 괜히 창가 쪽에서 핸드폰을 다시 잡았다.
8시쯤이면..충분히 고민했다고 생각하겠지.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댔다.
[ 여보세요. ]
“ 저에요. ”
[ 알아. 벌써 생각 다 한거야? ]
“ 다시 생각해보니까 어렵지 않은 선택이더라고요. ”
[ 무슨 말이지? ]
“ 전 당신의 원나잇 상대로 세상에 알려지고 싶지 않아요. ”
[ 뭐라는거야? 알아 듣기 쉽게 얘기해. ]
“ 오케이에요. 전 무조건 ”
[ 풉 ]
웃음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 들려왔다. 내 결의에 찬 외침이 우습다는건가.
“ 왜 웃어요? ”
[ 그냥. 웃겨서 ]
“ 웃으라고 한 말 아닌데... ”
[ 집엔 잘 들어갔고? ]
“ 예??? ”
엄마? 갑자기 사람이 변할 수 있는건가. 날 물어 뜯으려고 할땐 언제고. 집에 잘 들어갔냐고 물은건가 지금? 나한테?
갑작스런 박찬열의 놀라운 말에 대답아닌 대답을 하다 삑소리가 났다. 핸드폰 저편으로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조금 길게.
“ 그냥..뭐 들어왔죠. ”
[ ..흠..있잖아. ]
“ 네 ”
[ 미..안 ]
“ 네? 잘 안들려요. 뭐라구요? ”
[ 못들었음 됐고. 끊어. 피곤해. ]
“ 네. 쉬세요. ”
당연히 박찬열이 먼저 전화를 끊었고, 끊기자 마자 나는 침대로 달려가 몸을 튕기며 미친듯이 웃었다. 미...안..이 뭐야 정말
일부러 안들리는척해서 다시 한번 들으려 했는데. 아 녹음을 했어야 했는데. 아쉽다.
아, 놀려주고 싶은데. 핸드폰 홀더를 풀어 만지작 거리다가 문자 수신자에 박찬열의 번호를 쳤다.
『 미..안.. 사과 잘받을게요. '가짜 연애' 잘해봐요. 박찬열씨 』
_____
많은 분들이 재밌어 해주시고, 댓글도 많이 달아주시니까 힘이 나네요~
빨리 오고 싶어지고 그러네용~!!!
찬열이를 점점 바꿔놔야할텐데...흠...너무 개눔이라서 갑자기 바꾸려니...
찬열이만 이상한거 같고 막...그러네요..? ㅋㅋㅋㅋ
이렇게 가짜 연애가 시작되었답니당~@!!
이번 편도 댓글 많이 써주시고 재밌게 읽어주시면 너무너무 좋을것 같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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