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범] 어우 오글오글(욕주의)
지호랑 민혁이는 고등학생임. 여느 남고생들과 다름없이 대화에 욕이 빠질 수가 없는 그런 그냥 주위를 둘러보면 볼 수 있는 고등학생들임. 둘은 중학교 때부터 5년 동안 쭉 같은반이여서 눈만 마주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정도로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었음. 맨날천날 붙어다니는 둘은 보면서 지호의 10년지기 친구 경이는 묘한 생각을 한 게 한 두번이 아님. 쟤네 사귀나, 진짜.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이미 학교를 뒤덮은지가 오래인데 둘만 모름. 우지호가 인상이 세서 애들이 겁을 먹고 말을 안 하기 때문.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경이가 둘에게 사귀냐고 물어보면 둘 다 눈이 이만해져서는 아니라고 딱 잡아떼는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한데, 평소 우지호 행동이 나 이민혁 좋아해요-, 하고 티를 팍팍 내고 다녀서 우지호 저게 또 혼자 삽질하나 하는 생각도 하곤 함. 다음은 작년에 있었던 일인데 얼마나 병신같이 티를 내고 다니는지 보여드림.
“야 밥 먹었냐?”
“아니, 안 먹었는데.”
“뭐? 넌 몸도 비실비실한 게 왜 밥을 안 쳐먹고 다녀? 내가 밥 먹으라 그랬지, 디질래 진짜?”
“내가 밥 안 먹었는데 니가 왜 성질, 어, 야!”
민혁이가 밥 안 먹은거에 지가 더 흥분해서는 씩씩거리면서 먹을 걸 이만큼 사다주고 다 안 먹으면 디진다, 라며 되도않는 협박을 하는 건 예삿일임. 한 날은 민혁이가 독감에 걸려서 학교를 빠진 적이 있었음. 그 전날부터 머리 아프다, 목 아프다 찡찡거리길래 지호가 약 먹으라고 계속 얘기 했는데 계속 안 먹고 버티다가 안 되서 병원을 갔더니 독감이라는거임. 그래서 집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쉬고 있었는데 어떤 미친놈이 문을 계속 두드림. 그것도 엄청 크게. 쾅쾅쾅!!
“문 열어, 이민혁!!”
“…어떤 미친놈이. 씨발, 진짜…”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비틀 일어나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건 우지호였음. 우지호를 보자마자 누르고 있던 짜증이 확 올라왔음. 머리도 둥둥 울리는데 문을 쾅쾅 두드려대서 엄청 짜증이 난 상태였음. 그래서 뭐라고 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지호가 민혁이 손목을 잡고 침대에 데려가 앉힘. 영문도 모르고 질질 끌려가서 어느새 이불까지 덮고 앉혀진 민혁이 당황해서 눈만 멀뚱거리고 있으니 지호가 멍하니 침대 한가운데 앉아있는 민혁이를 침대 헤드에 기대 앉히고는 들고 있던 봉지에서 여러 개의 통을 꺼내기 시작했음.
“이민혁, 또 밥 안 먹었지?”
“어….”
“약도 안 먹었겠네, 야채죽 좋아해서 그것만 사올라 그랬는데 입맛 없을까봐 전복죽이랑 참치죽이랑… 이거 뭐냐, 게살? 암튼 이것도 사왔어. 뭐 먹을래?”
“…어…?”
“야채, 전복, 참치, 게살. 뭐 먹을래?”
“…참치.”
“어, 좀만 기다려. 데워 옴.”
지호가 참치죽 통을 찾아서 나가고 민혁이는 아직도 어리둥절 해서 눈만 껌뻑이다가 왠지 모르게 더 포근해진 듯 한 이불의 느낌이 좋아서 고개를 처박고 있었는데 야, 하는 지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지호가 어느새 쟁반에다가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죽과 숟가락을 가져오고 있었음. 어울리는 듯 어색한 모습에 풋하고 웃음이 터진 민혁을 보던 지호가 얼굴이 새빨게져서는 침대 옆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고 민혁이한테 소리를 질렀음.
“뭐, 뭐 비실비실한 게 맨날 쳐 아프기나 하면서 뭘 쪼개?!”
“아, 소리 지르지마. 머리 울려….”
“…아, 미안. 아무튼, 밥을 먹어야 낫지, 병신아. 밥도 안 먹고 뭐했냐?”
“혼자 있으니까… 움직이기 싫어서 먹을 생각도 안 했지….”
“…나 부르지, 병신아. 친구는 뭐하러 두냐?”
“그래도, 너도 할 일이 있는데 막 부를 수는 없잖아. 별 것도 아닌데….”
“야, 니가 아픈 거보다 나한테 중요한 게 어딨냐? 니가 아프다는데, 내 일이 뭐가 중요해.”
“…어?”
…아니, 씨발. 이게 아니고, 어쨌든! 빨리 먹어 새꺄. 나으라고, 빨리. 이런식으로 또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일상임. 그런데, 하루도 빠짐없이 같이 등·하교 하고 심지어는 주말에도 매일매일 만나서 같이 다니던 둘이 최근 들어 좀 멀어진 것 같음. 사실 일방적으로 이민혁이 피해다니는 거지만.
“야, 너 오늘 왜 먼저 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어? 미안해. 아침에 나왔는데 재효 만나서…. 진짜 미안.”
“이민혁! 내일 어디서 만날래?”
“아, 나 내일 재효 만나기로 해서…. 미안해.”
“민혁아, 나 이거 좀 가르쳐줘.”
“나도 이거 몰라, 태일이한테 물어봐. 미안.”
“야, 이민ㅎ…”
“어, 어? 야, 안재효! 같이 가!”
에이, 씨발…. 눈치 없는 재효도 야, 너 지호랑 싸웠냐? 하면서 눈치를 챌 정도로 피해다니는데 지호가 모를리가 없었음. 처음에는 좀 바쁜가보네, 하고 그냥 넘겼는데 갈 수록 대답도 안하고 주말에 만나기는 커녕 등·하교도 같이 안 하는 민혁이를 볼 때마다 화가 올라오면서도 내가 뭐 잘못한거 있나 고민을 하는 지호였음. 그렇게 계속 누르고 누르다가 지호가 폭발한 건 민혁이가 지호를 피해다닌지 한달 쯤 되는 날이였음. 한달 내내 보낸 카톡만 삼백개가 넘는데 민혁이는 읽지도 않았음. 차라리 아무 소식이 없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카톡 프로필 사진이며, 페이스북이며 매일매일 하고 있는데 지호가 보낸 카톡만 안 읽음. 무턱대고 가서 화를 낼수도 없고, 참고 있던 지호가 한숨을 푹푹 쉬면서 아무생각없이 페이스북을 쭉 보다가 한 게시글에서 멈춰섰음.
[2014년 7월 4일 오후 3시 26분
시험 끝났으니까 이제 놀 일만 남았다! 재효랑 영화보러옴~~~~ 완전 보고싶었던건데 재효가 영화도 보여주고 팝콘도 사줌ㅠㅠㅠ 완전 머시쩡 재효야 니가 최고야! 너뿐이야! 안재효 엄지척!]
허…. 지호는 어이가 없었음. 지호가 시험 끝났으니까 놀러가자고 했을 때 선약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재효라는 걸 알고나니 기분이 확 나빠졌음. 올해 처음 만난 애보다 내가 못 하다는거야? 안재효 저 새끼는 왜 이민혁한테 치근덕거려, 존나 기분 나빠. 내가 부를 때는 들은 척도 안하더니, 안재효랑 영화를 보러 가? 씨발, 나도 저거 같이 보려고 했는데…. 같이 올라온 사진에는 잔뜩 신이 나서 콜라를 쪽쪽 빨고 있는 이민혁과 뒤에서 웃고 있는 안재효가 있었음. 사진을 보고나니 기분이 더 나빠져서 휴대폰 배터리를 뽑아버린 지호가 배게에 얼굴을 쳐박았음. 이민혁 진짜…. 왜 저러냐, 진짜. 민혁이 저를 멀리한 적은 한번도 없어서 지금 이 상황이 화가 나고 어이가 없지만서도 잔뜩 걱정을 하고 있는 지호였음. 매일 무슨 잘못을 했나 생각을 해봐도 딱히 상처주거나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멀어질 수도 있는 계기가 될 법한 일도 딱히 없었는데, 왜 저를 피해다니는 지 알리가 없는 지호였음.
그대로 밥도 안 먹고 잠이 든 지호가 일어난 건 다음날 12시가 넘어서였음. 오질라게도 잤네…. 띵한 머리를 짚은 지호가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발을 디디는 순간 배가 욱신해서 배를 감싸쥐고 주저앉음. 어…? 그러고보니 명치부분이 허리도 못 펼 정도로 아팠음. 숨을 쉬는데도 올라오는 토기에 몇번 헛구역질을 한 지호가 화장실로 기어가다시피 가서는 변기통을 붙잡고 구역질을 했지만 올라오는 건 신물밖에 없었음.
“아, 병원 가야되나…. 돌겠네, 아, 존나 아파…”
생각해보니 오늘은 토요일이였고, 이미 아침이 훌쩍 지나 대학병원도 다 닫은 상태였음. 머리를 헤집은 지호가 침대로 기어가 웅크려 누웠음. 땀도 나고, 갈수록 배는 더 아파오는게 곧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옆 테이블에 배터리가 분해된 채로 놓여있는 휴대폰을 가져와 전원을 켠 지호가 켜자마자 쏟아지는 문자를 확인했음.
[야 폰 왜 꺼졌냐 배터리없냐]
[이거보면 전화해라]
[야 아직자냐 곰탱이새끼]
[폰좀켜라 폰왜쓰냐]
[야씨발좀보라고]
[아디질래씨발아답좀해라고]
[아진짜보자마자전화해라]
발신자는 모두 박경이었음. 내심 민혁이의 연락을 기대했던 지호지만 민혁이의 연락은 하나도 없었음. 또 욱신 아파오는 배를 움켜쥐고 있으니 벨소리가 울려댔음. 울려오는 머리에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무작정 받았음.
“…여보세요…”
- 야, 씨발. 장난치냐, 폰 왜 있냐? 이제 일어났냐? 뭐하는데.
“…박경?”
- 어, 근데 왜 목소리가 다 죽어가냐. 아프냐?
“좀 있음 뒤질거 같다, 하, 씨발 진짜….”
- …병원 가봤냐? 나 지금 간다.
“오긴 뭘 와, 오지마.”
- 닥쳐, 좀. 10분만 기다려.
“…알겠어.”
- 그래, 자빠져 잠이나 자고 있어라.
여전히 배를 움켜쥔 채로 이불을 코 끝까지 덮은 지호가 땀이 흐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쓸었음. 18년을 살면서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던 것 같음. 몸이 아프니까 괜히 혼자 있는 게 서러웠음. 이민혁도 그랬겠지, 이 와중에도 민혁이 생각을 하는 저가 한심해 실소를 지은 지호가 기절하듯 눈을 감았음.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땀에 쩔어있던 몸도 좀 시원해진 것 같아 슬며시 눈을 떴음. 한 낮이던 밖은 어느새 어두컴컴한 밤이 돼있었음. 침대 옆에 놓여있는 의자 하나와 물이 담겨있는 그릇을 보니 경이가 왔나 싶었음. 침대에 누워 배를 문지르고 있으니 밖에서 두개의 목소리가 들려왔음.
“야, 탄다! 탄다고!”
“아, 알아! 그럴거면 니가 해!”
“빨리 저어, 빨리!”
“아, 씨. 박경 진짜. 나 안 해!”
“지호껀데 안 할 거야?”
“…에이씨, 지호 때문에 한다. 진짜….”
…이민혁? 틀림없이 민혁이 목소리였음. 이불이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방을 흘끔 쳐다본 경이가 지호가 일어난 걸 보고 민혁이에게 야, 지호 깼다. 가봐. 하고는 민혁이를 문 앞까지 밀었음. 어, 어? 어리버리한 소리만 내다가 어느새 일어나 앉아있는 지호와 눈이 마주친 민혁이가 문 앞에서 쭈뼛거리다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지호를 쳐다봄.
“…괜찮아?”
“……”
“아프면 연락을 하지 그랬…”
“…니가 안 받았잖아. 니가 나 계속 피해다녔잖아.”
“…지호야,”
“내가 너한테 뭘 잘못 했냐, 너 왜 그러냐, 진짜. 나 죽는 꼴 봐야되겠냐? 그리고 내 연락은 받지도 않더니 박경 연락에는 쪼르르 달려오고, 그러기냐? …이민혁 너 존나 실망이다, 진짜.”
“……”
“…됐다, 와줘서 고맙다. 경이랑 밥 먹을테니까 가ㅂ…”
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에는 눈물이 가득한 채로 입술을 꾹 깨문 민혁이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음. 어, 야! 이민혁! 야! 당황한듯한 경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났음. 머리를 싸맨 지호가 한숨을 푹 쉬었음. 죽을 들고 들어오던 경이가 의자에 앉고는 지호를 툭툭 쳤음.
“좀 괜찮냐? 이민혁한테 뭐라고 했냐?”
“…몰라.”
“병신새끼, 이거나 쳐먹어.”
뜨거운 죽을 담은 그릇이 얹힌 쟁반을 지호에게 건내준 경이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한숨을 푹 쉬었음. 이 새끼는 뻑하면 연락 끊어서 문제야, 진짜. 휴대폰을 집어넣은 경이가 지호가 뜨거운 죽을 불고 있는 걸 빤히 쳐다봤음. 그러다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하더니 씨익 웃었음.
“…뭘 봐.”
“우리 지호, 잘생겼네 싶어서.”
“미친 새끼.“
“그래서 이민혁이 좋아하나봐.”
“…뭐?“
천연덕스럽게 웃은 경이가 하나도 줄어들지 않은 죽그릇을 보고는 지호의 뒷통수를 툭 쳤음. 거실에 있을테니까 다 먹고 불러라, 하고는 휑하니 나가버린 경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지호가 어느새 식어버린 죽을 떠먹었음. 반나절을 꼬박 아무것도 안 먹고 자버려서 배가 여간 고픈게 아니였음. 어느새 한그릇을 비운 지호가 쟁반을 들고 미적미적 일어나 거실로 나갔음.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경이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고 이제야 안색이 돌아온 지호를 보고는 일어나 지호가 들고 있던 쟁반을 받아 싱크대에 넣었음.
“부르라니까 말 더럽게 안 듣지.”
“…귀찮게. 놔둬, 내가 할게.”
“알겠으니까 가, 임마. 나중에 해.”
“……”
지호를 떠밀어 소파에 앉힌 경이 옆에 앉아 아무 재미도 없는 TV를 보기 시작했음. 그렇게 어색한 정적이 한참 동안이나 흘렀고, 먼저 그 정적을 깬 사람은 경이였음.
“지호야, 넌 민혁이 어떠냐?“
“왜,”
“그냥, 어떠냐고.”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맨날 덜렁거리고, 지 몸 하나 못 챙겨서 빌빌거리는 거 보면 내가 챙겨줘야 될 것 같은 그런, 의무감이 생겼다고 해야되나. 좀, 아, 어쨌든 잘 모르겠어.”
“어이고, 이것들은 아주 쌍쌍으로 청승이네. 한명은 너무 잘 알아서 청승이고, 한명은 잘 모르겠다고 청승이고, 아주 생난리를 쳐라, 둘이서.”
“…뭔 소리야.”
“아오, 이 병신!”
눈치 빠른 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니네, 이민혁은 이런 새끼가 뭐가 좋다고! 눈치를 못 채는 지호가 답답했던 건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꽥꽥 소리를 지르던 경이 씩씩거리던 숨을 겨우 진정시키고는 바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지호를 내려다봤음. 한참을 그러고 있던 지호가 문득 정신을 차린 듯 경이를 올려다 봤음.
“…이민혁이 뭐라고?”
“아오, 몇 번 말해야 알아처먹을래? 너 좋아한다고, 이민혁이!”
“……”
“야, 씨발, 너 이민혁 안 좋아하면 민혁이 상처 주ㅈ, 야, 야! 우지호!!”
경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나가버린 지호가 허둥지둥 옷을 챙겨 나오면서 경에게 야, 나 나간다. 진짜 미안! 하고는 급하게 뛰어나갔음. 방금 전까지 아파서 곧 디질 것 같다고 빌빌거리던 새끼가 맞는지, 좋아하면서 아닌 척 하기는. 그런 지호가 괜히 귀여워 웃음이 터져버린 경이였음.
*
집에서 급하게 뛰어나온 지호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막 뛰다가 신발이 벗겨졌음. 벗겨진 신발을 고쳐신고는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음. 머리는 기억이 잘 안나고 하고 있었지만 몸은 제 집을 찾아가 듯 익숙하게 찾아가고 있었음. 민혁의 집 앞에 다다른 지호가 숨을 몰아쉬고는 초인종을 눌렀음. 자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반응이 없길래 몇 번 눌렀더니 문 건너편에서 꽉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음.
- 누구세요.
“…이민혁, 문 좀 열어봐.”
- 가, 할 얘기 없어.
“…민혁아, 미안해, 그러니까… 얘기 좀 하자.”
- ……
열어줄 때까지 있을게.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자 싶어 문 앞에 쪼그려 앉은 지호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고 있으니 등에 무언가 닿는 게 느껴졌음. 뭔가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민혁이가 문을 열고는 빼꼼 밖을 쳐다보고 있었음.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 지호를 보더니 들어와, 라며 문을 열어줬음. 방으로 들어가는 민혁이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지호도 민혁이를 따라 들어갔음.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멍하니 앞만 보고 있다가 지호가 민혁이를 쳐다봤음. 빨개진 눈과 코가 여간 운 게 아니구나 싶었음. 옷에도 눈물자국이 가득한 게, 피부도 여리면서 또 세게 문질렀겠다. 말 더럽게 안 듣지, 진짜. 혼자 생각을 한 지호가 민혁이 고개를 제 쪽으로 돌렸음. 눈을 깔고 있던 민혁이가 천천히 지호를 올려다 봤고, 속눈썹에 맺혀 있는 눈물을 닦아준 지호가 민혁이를 꼭 안았음.
“진짜 미안,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
“…왜 아닌 척 지랄 했는지 모르겠다, 나도. 이렇게 좋은데…”
“……”
“맘 상하게 해서 미안해, 이민혁.”
“흐으…”
“…그래, 내가 미안해. 나 때려라, 존나 쳐맞아도 싸.”
“아니, 아니야…. 미안해…”
“…니가 왜,”
“아픈데, 이렇게 뛰어오게 하고, 너 지금 열 나는데… 아픈데…”
아닌데, 나 안 아파. 너 보니까 다 나았다. 지호가 씨익 웃으며 민혁이를 끌어안자 민혁이 그런 지호의 품에서 버둥거리며 아, 장난치지 말고오…! 라며 소리를 슬쩍 지름. 그 와중에 머리 울릴까봐 걱정해주는 민혁이 마냥 이뻐보이는 지호가 저를 끌어안고 있느라 같이 땀범벅이 된 민혁의 이마에 쪽, 하고 입 맞췄음. 아, 뭐야아. 찡찡거리는 민혁이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쪽쪽쪽, 계속 해서 입맞춘 지호가 민혁이의 손을 잡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음.
“큼, 아, 쪽팔린다. 한 번만 할테니까 잘 들어. 앞으로는 절대, 펴엉생 이런 분위기 없을거니까.”
“…응.”
“…이민혁, 내가 진짜 미안하고, 이때까지는 니가 병신 같고 그래서 귀여워서 챙겨주고 싶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박경한테 고마워 해야되는건지, 너 그렇게 뛰어나가고 싱숭생숭 했는데 경이가 너가 나 좋아한다고, 그러더라고.”
“…박경…!”
“일단 들어봐. 어쨌든, 경이 덕에 내 마음 확실하게 알게 된거고, 그래서 너한테 온거고. …쪽팔리는데, 이민혁 너 진짜 좋아하거든, 내가. 그러니까… 나, 너 가져라.”
“……싫어.”
“…어…?”
“너가… 나 가져, 내가 니 거 할래.”
“…아, 진짜. 더럽게 이쁜 새끼….”
이쁘면 그냥 이쁘지, 더럽게 이쁜건 또 뭐야? 괜히 툴툴거리는 민혁이를 지호가 꽉 끌어안자 답답한지 버둥거리던 민혁이도 이내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지호의 등에 손을 감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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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 재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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