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아 뭐해?"
"공부."
형은 내 방 문을 노크하더니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했다. 학교에서 형이 날 볼 때 이런 기분이었구나. 작게 웃으니 얼른 하고 놀자는 형이다. 형은 아예 방문을 활짝 열고 문에 기댔다. 내가 어떻게 하나 볼꺼라면서. 그래 그럼. 해보란 듯이 형을 등지고 다시 의자를 책상 앞으로 당겼다.
"오늘 피곤했어?"
우지호의 필기를 베껴 쓰고 있는 나를 보던 형이 말했다. 형의 이런 점이 좋다. 수업시간에 졸았지?가 아닌 오늘 피곤했어?하는 지극히도 나를 걱정하는 말.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자 이번에는 다른 주제로 말을 걸어온다.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볼펜을 꽉 쥐었다. 아, 틀렸다. 수정테이프를 꺼내서 틀린 부분을 지우고 다시 볼펜을 손에 쥐었다. 형의 목소리만 계속 귀에 들어온다. 원래 이렇게 잘 들렸나.
"한 달동안 학교에서도 보고 집에서도 보겠네."
아,행복하겠다. 형은 혼자 무슨 상상을 하는건지 목소리가 들떠있었다. 이런식으로 가면 필기에 필자도 못 쓸 것 같다. 일어나서 문에 기대어 서있는 형 앞으로 갔다. 끝났어? 물어보는 형을 문 밖으로 낑낑거리면서 밀었다.
"어? 권아 왜, 왜"
"공부 방해 돼요, 아직 많이 남았단 말이야."
순식간에 힘도 못쓰고 밀려난 형을 두고 방문을 닫았다.별 것도 아닌데 너무 매정하게 했나. 머리를 긁적이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다시 볼펜을 쥐고 책을 빤히 쳐다보니 점점 빨려 들어 가는 것 같다. 우지호 얘는 선생님 말하는걸 다 받아적었나, 책이 필기로 가득하다. 중요하다 싶은 것만 골라 적어야겠다. 빨간색으로 적혀있는 것만 책에 옮겨적었다. 열심히 한글자 한글자 베껴 적고 있는데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른 척 계속 필기를 하고 있으니 아예 방으로 들어왔다. 살금살금 걸어서 책상 뒤에 있는 침대에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앉았다. 안봐도 뻔하다. 의자를 빙글 돌려서 쳐다보니 어색하게 웃는다. 따라 웃으니까 괜찮은 줄 알고 형이 안심한 듯 웃는다.
"나가요 형."
웃던 형의 표정이 싹 굳었다. 어? 바보같이 묻는 질문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크게 웃으니 의자도 같이 뒤로 젖혀진다. 이제 권이가 형을 놀리네. 형은 한숨을 푹 쉬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그 때문에 형의 이마를 덮고 있던 앞머리가 옆으로 살짝 넘어갔다.
"여기 너가 별로 안 써서 완전 새 거 냄새나. 이불도 완전 새거, 베개도."
형은 침대에 누워서 손으로 침대를 이리저리 쓸어봤다. 내가 이 집에 올 때 산 침대인데 처음 며칠 이후로는 아예 쓰지 않았다. 이 방도 공부할 때만 들어오는 곳이고 잘 때는 형 침대에서 자고, 가끔씩은 쇼파에서 자고 한다. 그러다보니 완전 새 침대다. 갑자기 새침대는 어떨까, 궁금해져서 볼펜을 놓고 침대에 가서 앉았다. 오, 침대가 완전 탱탱해. 침대가 탱탱한건 뭐야. 형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아니, 침대가 완전.. 이거봐요 형. 완전 통통 튄다니까."
침대가 탱탱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앉은 채로 침대에서 통통 움직였다. 얼마 쓰이지 않은 침대 매트릭스가 탄탄하게 내 몸을 받쳐주었다. 계속하니 트렘펄린 타는 기분도 들고 재밌었다. 놀이기구 타는 기분이다.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아서 웃으니까 아까 형보다 더 바보가 된 기분이다.
"야해 권아."
가만히 나를 보고있던 형이 한 말에 몸이 딱 굳었다. 형이 이런 말 하는 것도 한 두번이 아닌데 들을 때마다 괜히 긴장되고 몸이 굳는다. 순식한에 미묘해진 분위기를 어떻게든 해보려고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애매하게 돌려 형을 봤다. 턱을 괴고 누워서는 여유롭게 입가에 미소만 짓고 있다. 내가 왜 이러는 지 다 알고있다는 듯 한 저 미소. 아까 운동장에서 다 못했지 권아, 그치. 고개를 다시 천천히 앞으로 돌렸다. 어떻게 대답하든 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권아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짝 긴장해서 고개를 저으니 형이 더는 못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 상황은 뭔가 싶어서 상황파악을 하려니까 형이 몸을 일으켜 가까이 와서 앉았다. 괜히 몸이 움찔했다. 미치겠다 진짜. 큭큭 웃으며 형이 내머리를 헝클여놓았다.
"놀랬어?"
"..."
"우리 권이 무슨생각을 하는거야,"
"아 진짜아.."
"공부해 권아, 혼자 다른 생각하지말고. 알았지?"
애기 달래듯이 우쭈쭈 엉덩이를 톡톡 친 형이 얼굴이 빨개진 나를 두고 방을 나갔다. 괜히 아까 한 번 놀렸다가 두 배는 더 당한 것 같다.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마른세수를 여러번 하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아 공부해야되는데.
먼저 씻고 나와 이불 속에서 핸드폰으로 우지호와 카톡을 했다. 답이 느리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오기도 하고 갤러리에 들어가서 사진을 보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사진 참 많다. 내 사진말고 형 사진. 하루하루 찍어서 보내주는게 얼마나 많은지, 포즈는 다 비슷비슷하다. 아까도 수업 중에 형이 정장을 입은 자신의 셀카를 보냈다. 갤러리 맨 앞에 있는 오늘 사진을 유심히 봤다. 집에 오는길에 같이 찍은 건데 난 교복을 입고 형은 정장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어쩐지 나이 차이가 많아 보인다. 나이 차이게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미간을 찌푸리며 나도 얼른 나이먹고싶다, 생각하고 있는데 형이 들어왔다. 안 자?
"아직 안졸려요."
형이 옆에 누울 공간을 만들려고 몸을 틀어 벽 쪽으로 붙었다. 뭐해, 형이 이불 속으로 들어오며 핸드폰에서 눈을 못떼고 있는 날보며 말했다. 내 사진보고 있지, 은근슬쩍 툭 던진 말 같은데 사실이라 조금 놀랬다. 급히 화면에 인터넷 창을 띄웠다.
"폰 그만 보고, 권아."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형에게 넘겨줬다. 형은 받아서 팔을 뻗어 침대 옆의 서랍장에 놔두었다.얼른 자, 내일 학교 가야지. 형도 가야죠. 형에게서 등을 돌려 누웠다. 익숙하다는 듯이 형이 뒤에서 안았다. 아직 밤이 쌀쌀해서 다행이다. 허리에 둘러진 형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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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단
범권행쇼
버미궈니들 소소한 일상이 저는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
범권이들 떡밥이 넘쳐날 그날까지..
다음화는 조금 늦게 나올거 같아요 마음편히 기다려주세용
항상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암호닉- 망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