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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A (Alpha Omega Alpha)
※오메가버스 세계관 차용
알파와 베타, 오메가. 조화로운 듯 부조화스럽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유전자에 새겨진 계급 딱지. 알파는 군림하고 베타는 통치되며 오메가는 핍박 받는 사회. 이 통념은 세계가 만들어 진 지 몇 천 년이 지난 현재도 사회의 룰이 되어 그대로 계승되어 오고 있다. 있는 자들은 부를 물려받고 없는 자들은 자식들에게 평생을 살며 겪을 고통 만을 물려준다. 알파는 여전히 가장 위의 알파로, 오메가는 가장 아래의 오메가로 남는다. 제 몸을 이루는 유전자에 새겨져 신분의 상승조차 꿈 꿀 수 없는 세계. 연간 오메가의 자살률은 30%에 가깝다.
찬열은 괜히 제가 살고 있는 세계를 곱씹어 보았다. 참 신기하지. 어떻게 인간이 정확하게 알파, 베타, 오메가로 나뉘어져서 한 그룹은 우월하고 다른 한 그룹은 미천 할 수가 있지. 제가 살고 있는 사회이건만 참으로 신기한 사회였다. 따지고 보면 베타가 제일 평화로울 것이다. 무지한 건 편하다. 오메가가 많은 곳에 가면 페로몬들이 뒤섞여서 얼마나 머리가 아픈데. 하지만 그 단 내를 맡을 줄 모른다니, 좀 불쌍하군.
그래도 찬열이 이렇게 태평하게 인류의 역사나 되새기며 감탄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알파라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아마 그가 알파가 아닌 오메가였다면 빌어먹을 인류의 탄생을 저주하며 '차라리 인간은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는데'와 같은 폭언을 쏟아 냈을 것이 분명하다. 어쨌든 오메가로 산다는 것은, 십 대 중반의 사춘기를 기점으로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발정기를 평생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고 자신이 오메가라는 사실이 밝혀질까, 혹시 길가다 알파라도 마주치진 않을까 하루라도 편히 삶을 사는 날이 없을, 지옥 속에 사는 일이니 말이다.
찬열의 집안은 부유했다. 일반 알파 가정 답게 그의 부모는 꽤나 건재한 사업을 운영하였고 그는 좋은 부모 밑에서 알파의 자부심을 가지고 기득권으로서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자랐다. 그는 아쉬울 것도, 아까운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렵지 않은 선에서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알파 특유의 뛰어난 머리 덕에 공부도 곧 잘 했다. 잘생긴 얼굴과 훤칠한 키는 그를 더욱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정말로 찬열은 아쉬울 것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새롭게 관심이 가는 것이 생겼다. 찬열은 한창 수업이 한창인 교실에서 고개를 돌려 복도 쪽 가장 구석 자리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필기를 써 내려가는 손바닥이 분홍빛이었다. 반쯤 벌어진 작은 입술 역시 예쁜 진달래색으로 붉었다. 하복 셔츠 아래 뻗어진 팔은 볕도 못 본 아이처럼 흰 빛이다. 볼펜으로 슥슥 칠판에 선생이 필기 하는 것을 받아 써 내려가던 소년이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필통을 뒤적인다. 찬열은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소년은 필통에서 노란 형광펜을 꺼내더니 중요한 것인 듯 노트에 줄을 쳤다. 빨간 볼펜으로 작은 별 세 개를 그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찬열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감돈다.
오세훈.
옆으로 보이는 선이 단정하게 곧고 예쁘며 짧은 소매 아래 드러난 팔뚝이 셔츠 색과 큰 구분 없이 희었다. 왼쪽 가슴 위 하얀 명찰에 쓰인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오세훈. 소년 오세훈. 위화감 없이 평범한 학생들 사이에 섞여 있지만 사실 세포 하나, 하나를 파고들면 가장 천한 유전자를 가진 소년.
갑자기 세훈이 책을 보던 시선을 들고 찬열의 방향으로 고갤 돌렸다. 아까부터 쏟아지던 시선을 그도 느꼈던 것이다. 세훈이 자신을 바라보자 찬열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눈이 커졌다가 이내 가늘게 접히며 끝이 휘어진다. 찬열이 웃는다. 세훈을 바라보며,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얼굴을 한다. 세훈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것과 상관없이 찬열은 미소 지었다.
그러다 세훈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다시 돌린다. 그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세훈의 손에서 미끌어진 샤프가 교실 바닥으로 떨어진다. 툭ㅡ 찬열은 샤프를 주우러 허리를 숙이는 세훈을 보다가 힐끗 눈을 돌려 제 옆자리를 보았다. 꿈틀거리며 책상에서 일어나 거칠게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는 소년. 손가락 사이사이로 검은 머리칼이 빠져나간다. 소년의 얼굴엔 짜증이 배어있다. 언제나 화나 있는 인상이지만 오늘은 유독 그 인상이 사납다. 머리만큼 검은 눈동자가 사납게 빛난다. 찬열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김종인, 왜.
“어디서 비누향 안 나냐.”
“비누?”
“어.”
찬열은 공기에 떠다니는 것들 중 비누향을 맡으려 애썼으나 맡아지는 냄새라곤 남학생들 특유의 땀에 절은 더운 냄새가 다였다. 찬열은 종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종인은 그저 얼굴을 굳히며 다시 책상에 고개를 파 묻으며 엎드렸다. 찬열은 말 없이 종인의 헤집어진 머리카락을 내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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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열이 다니는 학교는 유독 베타의 수가 많았다.
사회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베타라지만 학교에 겨우 둘 뿐인 알파와 그것보다 조금 많은 수인 오메가를 생각해본다면 단연 압도적인 수치였다. 보통 알파들은 땅 값 비싼 동네에 밀집해 살기 때문에 소수의 사립학교들 선에서 거의 대한민국의 알파 학생들이 모두 수용이 가능했다. 찬열 역시 집의 위치로 따지고 본다면 일반 학군에 속하는 이 학교가 아닌 소위 알파 학교로 일컬어 지는 학교 중 한 곳에 다녀야 했다. 그가 집과 멀면서도 또 시설마저 좋지 않은 이 학교에 다니게 된 건 정말 순전히 전산의 문제였다. 그렇지 않다면 찬열이 그의 중학교에서 혼자 이렇게 멀고 동떨어진 학교에 오게 된 건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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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찬열은 딱히 그것이 불만이지 않았다. 그는 어쨌든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딱히 앞으로 다닐 고등학교가 멀다는 건 전혀 찬열에겐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었다. 그의 부모는 혹시 찬열이 후에 고등학교부터 리그를 만들어 나가는 알파 사회에서 차별 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오로지 부모만의 걱정이었다. 찬열에게 그런 건 걱정할 거리조차 아니었다. 사실 지금에서야 돌이켜 보면, 찬열로선 이 학교로 자신을 보낸 병신 같은 컴퓨터가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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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찬열이 학교에 입학하니 찬열과 똑같은 처지의 소년이 한 명 더 있었다. 찬열은 입학 전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단지 입학식 당일 추위와 싸우며 도착한 교실이 남학생들의 것 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적막해서, 의아함에 교실을 살폈을 땐 페로몬을 맡지 못하는 베타조차 그 아우라에 압도 당할 정도의 알파의 기운을 가진 사내가 군림하듯 가장 뒷자리에서 무표정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찬열은 그를 피하고 싶었다. 얽혀선 좋을 것 없을 것이라는 본능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가장 늦게 학교에 온 찬열에게 남은 자리라고는 당연하게도 그의 옆자리 뿐이었다. 어쩌면 이런 게 기구한 운명이지. 찬열은 그렇게 생각했다. 찬열이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돌려 찬열을 보았다. 김종인. 찬열은 빠르게 명찰에 쓰인 이름을 읽었다. 그리고 아마 김종인도 동시에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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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열?’
‘.....’
‘병신 같은 컴퓨터 때문에 쓰레기통에 빠졌다는 그 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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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며 종인은 웃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모르겠으나 그는 날카로운 눈을 희번득이며 입 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종인이 무엇을 의도하고 그런 말을 건넨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의도가 찬열을 당황케 할 목적이었다면 그건 성공이었다. 찬열은 많이 당황했었다. 소문까지 날 줄은 몰랐는데. 단지 전교의 다른 아이들도 찬열을 알 거라는 생각이 그를 당황 시켰다. 종인의 비아냥거리는 태도는 관심조차 없었다. 찬열은 대꾸 없이 종인의 옆 빈자리에 앉았다. 종인 역시 별다른 말없이 담배를 마저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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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치 정해진 각본처럼 찬열과 종인은 친구가 되었다. 친구라기 보다는 원만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기 위한 짧은 협력 관계라고, 찬열은 생각했다. 이건 찬열이 전혀 생각지도, 원하지도 않았던 것이지만 찬열이 알파라는 걸 안 아이들이 먼저 찬열을 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입학 전 베타들과도 조화로운 생활을 하길 꿈꿨던 모범 알파 찬열로선 씁쓸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찬열은 제 삶을 평화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는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다. 찬열에겐 종인이 어떤 사람이든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찬열이 종인이 원래 그 지역에서 군림하던 유명한 알파였다는 걸 안 건 후의 일이었다. 그가 박찬열을 친구로 받아 들인 것도 찬열이 알파라는 이유에서 였고, 지독한 알파 우월 주의에 베타와 오메가는 모두 제 아랫것으로 본다는 이야기도, 저에게 반항하는 오메가를 딱 죽지 않을 정도로 패 아이를 뇌사 상태로 만들어 정치가 집안안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는 사실 역시 찬열은 후에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떠드는 작은 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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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것 역시 찬열과 상관 없는 것이었다. 알파 우월 주의는 대부분의 알파라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었다. 사람을 패 뇌사 상태까지 만들 정도라면 조금 심각하긴 하구나, 나름의 감흥을 써보자면 그게 다였다. 그래, 찬열에게 종인에게 종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열 일곱의 나이까지는 전혀 거슬릴 것도 없었다. 문제는 늘 열 여덟, 폭풍 같은 고교 시절의 중심의 나이에서 일어난다. 십 팔, 그 이름도 좆 같은 열 여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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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땐 김종인 말고 좀 정상적인 친구들과 지내야지 했던 찬열의 바람을 보기 좋게 깨부수며 찬열과 종인은 나란히 같은 반으로 진급했다. 반 배정 결과를 들은 찬열은 누가 자신과 종인을 함께 묶는지는 모르겠으나 찬열은 3학년 역시 김종인과 같은 반이 될 거 같다는 자신 만의 확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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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된 첫 날, 찬열은 홀로 교실에 앉아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종인을 기다리며 그는 지루함에 다리를 달달 떨었다. 교실 안의 다른 학생들은 찬열과 종인과 같은 반에 됐다는 사실에 절망에 빠진 듯 입 조차 열지 않았다. 교실은 유독 조용했다. 그리고 삭막했다. 그래서 일까. 그래서 침묵을 가르고 난 드르륵거리는 미닫이문 소리가 그래서 너무나도 크게 들렸을까. 그래서 지루함에 다리를 떨던 찬열이 자연스럽게 고갤 들어 그 곳을 보고, 그곳에서 전에 없던 하얀 소년을 발견한 것일까. 단 한 번도 무언가 욕심 낸 적 없던 찬열이, 열 여덟 인생 만에 처음으로 갖고 싶다 생각한 존재가ㅡ 삭막함을 깨부수고 그 곳에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 겨울의 어느 날, 오세훈은 찬열의 인생에 과감하게 들어왔고 찬열의 마음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 제 마음대로 싹을 틔웠다.
박찬열, 첫사랑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찬열의 짝사랑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우선 그의 대외적인 친구가 김종인이라는 점. 알파 우월주의에 찌들은, 오메가는 거미줄에 걸린 곤충보다도 더 하찮게 생각하는 김종인. 너무도 천한 존재라 오메가와 상종조차 않는다는 그 김종인이 찬열이 오메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무엇이 되었든 최악의 결말을 맞을 것 만은 확실했다. 남 괴롭히길 좋아하는 김종인이 오세훈을 가만 둘 리가 없다. 찬열은 절대 김종인은 제 마음을 모르게 하리라 다짐했다. 그것이 2학년 첫 날부터 찬열이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숨겨온 이유였다. 찬열은 평화로운 것을 좋아하니 말이다. 오메가를 좋아하게 된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확실히 종인에게 좋은 떡밥 거리임은 분명하다. 여전히 찬열은 종인과는 얽혀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찬열은 오랫동안 세훈을 지켜보았다. 겨울 바람이 불던 날 부터 에어컨에 더위를 나는 지금까지, 찬열은 세훈을 보았다. 찬열이 지켜본 세훈은 이랬다. 친구가 없고, 언제나 혼자 다니며 필기를 열심히 하고 햇볕을 싫어하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자기 고립형 인간이었다. 존재감도 미미하고, 조용하기 까지 해 하루 중 한 마디도 안 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반 아이들이 오세훈이라는 애가 반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세훈은 천한 오메가 같지도 않았다. 언제나 고고했으며 반듯했다. 꾹 다문 입술은 그의 금욕과 절제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는 찬열이 본 오메가 중, 가장 오메가 답지 않은 오메가였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오메가스러운 오메가였다. 세훈에게선 그만의 색기가 흘렀다. 그것은 절대 가볍지 않은 중후한 것이었다. 다른 오메가들과 다를 것 없이, 아니 다른 오메가들보다 훨씬 더 세훈은 자극적이며 차가운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뻤다. 햇빛을 싫어해서 타지 않은 하얀 피부는 매끈하여 고왔고 이마를 덮는 갈색 머리카락은 날카로운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유독 작은 입술과 날카로운 눈은 그를 귀엽게도, 색기 있게도 만들었다. 흰자 위에 둥둥 떠다니는 검은자는 투명한 갈색이었다. 정말 여자처럼 선이 곱고 여성스러운 얼굴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 그에겐 끌리는 무언가 있는 것이다. 은근히 사람의 정복욕을 부추기는 그 무언가. 사람을 당기는, 그 무언가가 분명 세훈에겐 존재했다. 그러다 찬열은 세훈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웃을 때 보조개가 생기는 지 궁금했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좋아하는 옷 브랜드는 어디인지, 집에선 뭘 하고 노는 지 따위와 같은 아주 사소한 궁금증들이 생겼다. 짝사랑을 앓는 이라면 누구나 겪는 그런 아주 사소하지만 커다란 것들 말이다. 그렇게 몰래 수업 시간에 세훈을 훔쳐보다가 찬열은 자신도 모르게 참을 수 없는 미소를 짓고 마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박찬열은 오세훈을 좋아한다.
*
어느 날 찬열은 깨닫는다. 혼자 밥을 먹는 세훈을 보며 아, 오세훈 외롭겠다ㅡ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찬열은 형용할 수 없는 한심함을 느꼈다. 바로 자신에게. 아무리 짝사랑이라고 해도 이렇게 노력조차 않는 짝사랑이라니. 찬열은 자신이 5개월 전 처음 세훈을 보았을 때에 여전히 안주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찬열과 세훈의 관계는 처음보다 좋아지지도, 그렇다고 멀어지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의 관계라고 해봤자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같은 반 학우라는 것 뿐이었다. 멀어질 것도 없는 사이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문득 찬열은 세훈이 제 이름을 알기는 할까 궁금했지만 수업 시간에 눈을 마주치는 일이 많은데 그 정도는 알지 않을까 생각했다. 찬열은 아무리 종인이 신경 쓰이더라도 이대로 가만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훈과 자신의 관계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찬열은 우선 세훈의 빈 옆자리를 자신이 채워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굳이 연인이니 애인이니 하는 허울 좋은 이름이 아니더라도 그는 세훈이 외롭지 않길 바랬다. 더욱이 자신의 옆에서 외롭지가 않다면 그것은 행복한 일일 것이다.
오세훈은 지금 무방비 상태에 놓인 사슴이다. 초원 위에 홀로 방황하는 한 마리의 사슴. 그를 노리는 사냥꾼도, 사자도 아무도 없는 초원 위의 외로운 섬. 그래서 외롭고 새로운 누군가 다가오면 경계하며 몸을 움츠린다. 그게 사냥꾼이라면 사슴은 놀라 하이에나처럼 저 멀리 달아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찬열은 자신이 사슴이 되자고 생각했다.
친구. 그래 찬열은 세훈과 친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친구라면 세훈이 부담스럽지도 않을 것이다. 차근차근 시작해 나가는 것이 옳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친구가 된다면 세훈이 찬열을 향해 웃어 줄 지도. 아 물론, 김종인 모르는 비밀 친구 말이다. 사냥꾼도 사자는 피하는 것이 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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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은 오늘 하루 종일 들뜬 마음이었다. 바로 오늘은 찬열이 세훈에게 친구를 하자고 손을 내미는 날. 찬열은 오늘도 조용히 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공책에 무언갈 써내려가는 세훈을 바라보았다. 이 교실에서 오세훈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는 찬열, 바로 저 자신 뿐이다. 아, 어떡해. 정말 철저히 외톨이잖아. 찬열은 웃음이 나왔다. 왜 진작 이런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쉬워 한다. 김종인 모르는 비밀 친구라니, 재밌잖아 너무.
점심 시간, 찬열은 종인에게 매점을 간다는 핑계로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세훈이 어디 있는 지 알고 있다. 세훈은 언제나 점심 시간이면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찬열은 도서관 건물 바로 밖에서 세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녕, 오세훈."
갑작스럽게 들린 제 이름에 놀란 세훈이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는다. 그러다 세훈은 자신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저를 보며 웃고 있는 키가 큰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세훈이 잘 아는 남자였다. 아니, 아마 이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아는 남자.
"쉿, 여긴 누가 볼 수도 있으니까."
세훈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는 세훈에게 성큼 성큼 다가와 세훈의 팔을 잡아 끌었다. 당황한 세훈이 찬열을 올려다 보았지만 찬열은 둥근 뒷통수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찬열이 세훈을 데리고 간 곳은 학교 깊숙한 곳에 있는 산책로였다. 산과 닿아 있는 탓에 가는 사람도 없는, 허울 뿐인 산책로. 찬열에게 끌려오는 내내 세훈은 불안했다. 그는 오메가였다. 알파인 찬열이 제가 오메가라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하나? 끌려가면 어떻게 되지? 세훈의 머릿속이 온갖 배드 엔딩만을 떠올리고 있는 그 때 찬열이 걸음을 멈추었다. 순순히 풀려난 제 팔목을 보던 세훈이 고갤 들어 찬열을 본다.
"아, 미안. 소개가 늦었나."
"....."
"난 박찬열이고 너네 반인데 나 알지?"
세훈은 뜬금 없는 찬열의 자기 소개에 얼굴만 찌푸렸다. 제 앞에 있는 이 알파가 무슨 꿍꿍이인지 세훈은 알 수 없었다. 특히 박찬열은 늘 웃고 다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었다. 거기다 평소에도 세훈을..... 어쨌든 간에 오메가인 세훈은 알파인 그 앞에서 완전한 약자였다. 세훈은 찬열에게서 조금 물러나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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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랑 친구하고 싶어서."
찬열은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와, 친구가 하고 싶어. 이렇게 말이다. 뭐? 세훈이 반사적으로 되묻는다. 그는 찬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랑 니가 뭘 하고 싶어? 세훈의 인상이 눈에 띄게 확 찌푸려진다. 그럼에도 찬열은 싱글 벙글, 그는 기분이 좋다. 세훈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찬열을 보았다.
"넌 알파잖아."
"알파랑 오메가는 친구 못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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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의 말에 세훈은 마음속 깊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알파와 오메가는 상극의 위치에 있는 것이었다. 사회의 바닥에 있는 오메가와 꼭대기에 솟아있는 알파. 그 거리는 절대 좁혀지지도 좁아지지도 않을 것이란 걸 세훈은 지난 18년의 세월 동안 몸으로 부딪히며 느껴왔다. 그러나 당연하지- 하는 그 대답을 마음으로만 삼킨 것은 저를 보며 환하게 웃는 찬열의 얼굴이 꼭 거짓 같지 만은 않다고 생각되어서, 세훈은 차마 입 밖으로 소리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세훈이 이 알파의 꿍꿍이를 파악할 수 없다. 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길래. 갑작스레 저에게 다가와 친구 하자며 손을 내미는 이 알파는, 정말 자신과 친구가 하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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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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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낯설기 그지없다. 이렇게 내민 손도, 절 보며 웃는 얼굴도 -더욱이 알파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세훈에겐 사실 모두 처음인 것들이었다. 18년 인생을 살면서 오메가인 그에게 먼저 다가와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사 자신이 오메가인 걸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하였다고 해도 이미 그 외로움에 익숙해 져버린 세훈은 자신을 혼자 방치했다. 그는 사람이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접촉을 했던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히트사이클에 길을 가던 대학생에게 범해진 것이 마지막이었다. 절대로 좋다고 보이진 않는,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핑계로 방관하나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사건 말이다. 그래서 세훈은 조금 들뜬 걸 지도 모른다. 분명 머릿속은 저건 음모라고 소리치지만 그의 마음은 동하고 있다. 세상 사람 누구도 잘생긴 웃는 사람에겐 마음이 약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세훈은 외로웠다. 그는 철저히 18년 동안 오로지 그 혼자였다. 그의 인생을 얘기해 보자면 외로움, 이 세 글자로 모두 다 말할 수 있을 것처럼. 그는 많이 외로웠던 것이다. 세훈은 생각 한다. 친구란 무엇인지 또는 박찬열과 자신이 친구가 되어서 발생할 일들 말이다. 그리고 세훈은 찬열이 저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는 걸 안다. 찬열의 시선을 그는 절대 모르지 않았다. 그것들을 곰곰이 떠올리던 세훈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아차린다. 알파. 학교에 단 둘 뿐인 알파. 박찬열과 김종인. 그는 찬열의 눈을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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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 믿어도 돼?"
"물론.
내가 뭘 믿고 널 믿어?
날카로운 말에 찬열이 뚫어져라 그를 바라본다. 날카로운 말 만큼 날이 선 두 눈. 세훈에게 찬열이란 믿을 수조차 없는, 그런 존재란 말인가. 그는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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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진심이야."
"....."
"너와 가까워 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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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와 친구 이상을 하고 싶지만 서두르지 않을게. 너는 아주 겁이 많고 또 날이 선 고양이와 같으니까. 찬열은 빙긋 웃었다. 햇살 같이 포근한 미소였다. 세훈은 느낄 수 있었다. 아, 박찬열 너 진심이구나. 그의 눈빛과 미소가 세훈에게 알려주었다. 난 너를 정말 원한다고. 너와 가까워 지고 싶어. 그의 눈이 그렇게 속삭인다. 한참을 뜸 들이던 세훈은 입술을 오물 거리며 어색하게 손을 내밀었다. 차가운 손에 따뜻한 온기가 와 닿았다. 그 온기는 세훈의 얼음 같은 손을 녹인다.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의 온도가 평행 상태에 도달하듯 알파와 오메가, 상극의 관계에 있는 찬열과 세훈이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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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친구는 거짓이었다. 친구의 관계를 빙자한 접선. 찬열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이상, 둘 사이에 친구는 성립할 수 없다. 찬열은 기다릴 것이다. 그 기다림이 아주 오래되더라도 그는 세훈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려도 세훈이 제게 오지 않는다면...ㅡ
그러니까 세훈아, 어서 빨리 나를 좋아해. 너를, 내게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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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과 헤어지기 전 찬열은 세훈에게 아 맞다, 하며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근데 우리 둘 친구인 건 비밀이야."
"어?"
"김종인이 알면 지랄 지랄 할 거거든."
찬열의 웃는 얼굴을 보며 세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세훈의 표정이 오묘하다.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 그러나 찬열은 흥분된 마음에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방금 전 세훈과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다는 사실, 그가 제 사정 거리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에 대한 뿌듯함만이 그의 가슴에 가득했다. 찬열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남동생을 위해 베스킨 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샀다. 그것도 가장 크기가 큰 하프갤런. 그 정도였다. 찬열의 감정은 지금 너무도 행복해서 그날 아침 찬열의 하얀 신발을 더러운 운동화로 밟고 가 신발 자국을 낸 그의 남동생에게 선뜻 아이스크림을 쾌척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찬열은 아주 가까운 곳에 닥친 불행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찬열은 앞으로 모든 일이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듯 그가 좋아해 마지 않는 오세훈 역시, 그 순간 자신에게 갑자기 행운에 남 모르게 기뻐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 두 남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서로 다른 행복에 설레는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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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과 세훈은 말 그대로 정말 비밀 친구였다. 비밀 친구.
우선, 교실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안녕이라는 의미를 담아 눈빛을 보냈다. 그러면 둘은 그걸 이해했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매점에서 사온 우유를 마시기도 했다. 학생들은 잘 걸음 하지 않는 학교 별관의 미디어실에서 찬열은 바나나 우유를, 세훈은 흰 우유를 마셨다. 찬열과 세훈은 생각보다 빨리 친해질 수 있었는데 사실 둘 다 마땅히 친한 친구가 없는 탓이 컸다. 박찬열의 적극성도 한 몫 했고 조용한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말이 많은 세훈 역시 원래가 활발한 찬열과 궁합이 잘 맞았다. 둘의 친구 사이가 성립되고 이 주 동안은 아주 평화로웠다. 찬열은 세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어릴 적 버려진 고아라는 것, 오메가라는 걸 숨기고 있다가 고아원에서 쫓겨났던 일까지 그는 모두 세훈의 입을 통해 들었다. 그것은 세훈이 그만큼 찬열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찬열이 남동생과 있었던 일들을 말하면 세훈은 입을 오무리고 웃기도 했다. 그토록 찬열이 보고 싶었던 웃는 얼굴을 세훈은 친구인 찬열을 위해 모자람이 없도록 보여주었다. 광대가 볼록해진 채로 눈을 접으며 웃는 그 얼굴을, 사슴이 된 찬열은 마음껏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세훈의 열 여덟 인생을 통틀어 먼저 손을 내밀어준 최초의 사람이자 알파였다. 오메가인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주고, 친구 하자고 말을 건넨 찬열을 세훈은 의심하던 처음과는 달리 신뢰하게 되었다. 그래, 그 신뢰. 신뢰가 문제였다. 오세훈은 전적으로 박찬열을 믿었다. 좋은 친구로서 그를 신뢰했다. 그 신뢰가 찬열의 평화를 부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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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같은 화요일, 장맛비가 내리던 오후에 늘 그렇듯 사람 없는 미디어실에서 세훈은 작은 목소리로 찬열을 불렀다. 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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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김종인이랑 친하지."
"어... 그렇지."
"걔 어떤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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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이 빳빳하게 고개를 들고 세훈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 일말의 불안감이 감돈다. 왜? 묻는 찬열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는 애써 웃었다. 무슨 일 있겠어. 아니, 괜찮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애써 웃었다. 그리고 그 발악이 무색하게도, 세훈은 아주 평화로운 얼굴, 아니 조금 상기된 얼굴로 찬열에게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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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김종인 좋아하거든"
"....."
"그냥, 누구한테든 말해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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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 순간 느꼈던 찬열의 감정을. 한순간에 그의 심장은 가슴에서 발바닥으로 추락했다. 그것은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를 삼켜오는 절망의 바다가. 발 아래에서 서서히 차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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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믿어도 될 거 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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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듯 말하는 네 입을 찢어버리고 싶다. 아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도록 이를 모두 뽑아버리고 싶다. 아니, 그런 건 다 필요 없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단 5분이라도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그렇게 말을 했을 텐데.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너를 향한 내 심장 고동과 김종인을 향한 네 심장 고동이 똑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서 뛰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친구 하자는 말 하지 않 았을 텐데. 사슴이 무서운 줄 모르고 사자에게 뛰어들 줄 알았더라면, 그 전에 그 가는 다리에 총을 쏘아 그 자리에 멈추게 만들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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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열...?"
"..어"
"...놀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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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은 대답 할 수 없었다. 아니, 놀라지 않았어. 단지, 단지 너무 비참해서 그런 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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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부턴데?"
"어? 그게.. 2학년 첫 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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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은 그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겨울 바람에 볼이 빨개져 교실 문을 연 창백한 소년을. 그리고, 바로 그 뒤로 오세훈의 몸을 밀치고 교실 안으로 성큼 성큼 들어왔던 김종인ㅡ 내 눈엔 그것 마저 보이지 않던, 오직 오세훈만 보이던 공간에서 바로 그 오세훈이 본 사람은 내가 아닌 김종인. 김종인, 김종인. 아마 오세훈은 모를 것이다. 네가 김종인한테 반한 그 순간, 난 너를 좋아해버렸다는 것을. 평생 가슴에 기억 될 아름다운 순간일 줄 알았던 그 순간이 알고 보니 모든 비극의 시발점이었다. 찬열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김종인은 알파 우월 주의 사상에 찌들은 우성 알파 새끼라고. 아스팔트 위에서 사람들 발에 밟히는 씹던 껌보다도 오메가를 더 낮은 존재로 생각하는 게, 그게 김종인인데 넌 대체 누굴 좋아하는 거지? 김종인은 니 존재조차 알 지 못 할 게 뻔한데. 창틀에 널린 걸레와 너를 두고 구분도 못할 지도 모르는 놈이 바로 김종인인데. 넌, 넌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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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야. 김종인은 오메가 싫어하잖아."
"......"
"그래도 털어놓으니까 뭔가 속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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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은 작게 미소 지었다. 그러며 고갤 들어 찬열을 보았다. 평소와 다른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찬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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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열."
"...응"
"너 왜 안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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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찬열은 울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세훈이 미운 순간에도 오물거리는 분홍 입술이 예뻐서, 찬열은 울지 못해 웃었다.
그랬다. 박찬열의 감정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도 거대해서, 차마 이제라도 사슴에게 총을 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자에게 달려간 사슴은 다리 하나 부러뜨리고 싶지 않을 만큼 예쁜 피조물이다. 감히 어떻게 그 피조물에 총을 날릴 생각을 하겠는가. 그 순간에도 그 찬란한 피조물은 사자를 꿈꾸며 얼굴을 붉혔다. 찬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덜 예쁘지 그랬어 씨발년아ㅡ 그런 말도, 찬열은 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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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찬열과 세훈의 사이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사실 김종인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달라진다면 그것이 이상한 관계였다. 어쨌든 둘은 표면상, 아니 세훈의 머릿속에선 완벽한 친구 관계였으므로. 찬열과 세훈은 여전히 우유를 함께 마시는 친구 사이였다. 둘 사이에 변화는 없었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존재는 있었다. 친구 박찬열과 오세훈 사이에 김종인이라는 제 3자가 뚜렷한 존재감으로 둘 사이에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오로지 세훈에 의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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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언제부터 김종인이랑 친했어?
김종인은 평소에 뭐하고 놀아?
김종인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중학교 때 김종인은 어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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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누적된 종인에대한 질문이 상당했다. 세훈은 그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가도 뜬금없이 종인에 관한 질문을 하나 정도 던져보았다. 그것은 은근한 물음이었지만 좋아하는 상대에 대한 반짝이는 호기심이 깃든 것이었다. 세훈의 질문은 참으로 찬열에겐 친근한 것들이었다. 모든 질문이 예전 세훈과 친하기 전 찬열이 세훈에게 궁금했던 것들과 너무도 닮아서, 찬열은 너무도 쉽게 세훈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슬프고 쓸쓸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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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은 다 잘 먹어. 그 새끼야 맨날 자고 다니는 건 지금이나 예전이나 똑같았지. 너도 알잖냐 김종인 맨날 얼굴 퉁퉁 불어서 다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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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찬열이 세훈의 질문에 억지로 쥐어 짜내는 대답을 뱉어내는 건, 종인의 사소한 이야기 하나를 전해 들은 세훈의 얼굴이 꽃처럼 예쁘고 화사해서 차마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찬열에게 보여주는 것과 분명히 질이 다른 웃음.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소녀 같은 감성이 더해지고, 그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되었다는 만족감이 더해진 웃음은ㅡ 약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찬열이 세훈을 보며 짓던 그 웃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세훈의 홍조 띤 수줍은 얼굴로 찬열은 비참해졌다.
찬열이 그런 비참함을 무릅쓰고도 종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비단 세훈의 웃음 때문 만은 아니었다. 찬열은 종인을 알았다. 오메가는 그가 죽는 그 날까지 상대하지 않으리 라는 걸, 찬열은 잘 알고 있었다. 종인은 세훈의 존재조차 알 지 못할 것이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에 무관심한지 찬열은 종인의 곁에서 일 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찬열은 안심했던 것이다. 사자에게 사슴이 섹스 어필 따위가 될 리가 없었다. 종인이 세훈에게 관심을 가질 일도, 세훈이 종인에게 고백 할 일도 없었다. 사슴이 사자를 향해 달려가더라도 사슴은 여전히 자신의 손 위였다. 그러니 그런 세훈에게 별 것 아닌 종인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 따위, 비참하고 슬프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세훈을 위해서 라면 기꺼이 해 줄 수 있다. 찬열은 여전히 여유로운 사냥꾼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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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이 학교 뒤뜰에서 세훈과 짧은 대화를 하고 돌아오니 자고 있던 종인이 잠에서 깨있었다. 세훈과 찬열은 일부러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교실로 들어왔기에 둘이 함께 교실에 들어오는 모습을 종인과 맞닥뜨리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종인은 방금 잠에서 깬 나른한 얼굴로 교실로 들어오는 찬열을 보고 있었다. 교실을 들어오자 마자 종인과 마주쳐 조금 당황하던 찬열은 평소처럼 종인에게 '일어났냐.'하고 짧게 물은 뒤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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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이 자리에 앉자 곧바로 세훈이 뒷문으로 들어왔다. 깨있는 종인을 보고 놀란 세훈이 황급히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종인은 세훈을 눈으로 쫓는다. 찬열의 눈동자도 종인과 똑같은 곳을 바라본다. 오세훈. 그 흰 몸 위에서 둘의 눈빛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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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어?"
〈!--[if !supportEmptyParas]-->갑작스럽게 종인이 뱉어낸 이름에 찬열이 당황하며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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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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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열의 목소리가 조금 떨린다. 찬열은 이런 것을 전혀 상상한 적이 없다. 김종인이 오세훈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일 같은 것은 전혀 찬열의 예상에는 없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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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어."
"....."
"오메가 주제에 아닌 척 고고한 척 얼굴 들고 다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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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사이클이면 박아 달라 징징댈 년이. 종인이 덧붙이는 말에 찬열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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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별로 신경 안 썼잖아 오메가."
"그랬지."
"....."
"근데 쟤는 좀 거슬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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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인은 의자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다. 쉬는 시간이 끝남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자가 사슴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자가, 사자가, 사슴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
찬열이 불안감으로 몸을 달달 떨며 이를 딱딱 부딪히는 그 시각, 가방을 확인한 세훈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간다. 하얀 얼굴은 더 이상 질릴 것도 없는 듯 창백하다. 그의 손이 다급히 가방 속을 뒤진다. 없다, 없어. 분명히 있어야 할 노란색 통이 없다. 가방 안에도, 사물함 안에도, 서랍 안에도. 그 어디에도 약이 없다. 세훈의 이마로 식은 땀이 흐른다. 먹구름이 몰려온다. 검은 비를 가득 담은 먹구름이 그를 덮쳐오고 있었다.
세훈은 아까 전 찬열과 얘기를 나누며 제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삼 일에 하나를 먹는 히트사이클 억제제를 먹지 않았음이 문득 떠올랐다. 찬열과 얘기를 하면서도 목이 타 제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손은 땀에 젖어 흥건했다. 분명히 이건 히트사이클의 조짐이었다. 짧아야 한 시간 뒤면 닥칠, 코 앞에 있는 히트사이클. 그러나 현재 세훈은 억제제가 없다. 오메가는 열 명도 다니지 않는 이 학교에 억제제 따위가 구비 되어 있을 리 없었다. 보건실에서 억제제를 찾는 일은 그대로 그가 오메가라는 걸 학교의 모든 이들에게 알리는 것과 다름없다. 이미 종은 쳤고 수업은 시작되었다. 세훈은 입술을 깨물며 고갤 돌려 찬열을 보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정신이 나간 사람 마냥 다리를 달달 떨며 이를 딱딱 부딪히는 찬열을. 세훈은 그가 지금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느꼈다. 세훈은 열이 오르는 제 몸을 팔로 끌어 안았다.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종인이 교실로 돌아온 건 바로 다음 시간 쉬는 시간 종이 치자 마자 였다. 여름 방학이 며칠 남지 않은 탓에 학교는 7교시를 끝으로 이른 시간에 마쳤다. 가방을 챙기기 위해 교실로 돌아온 종인은 제 코를 찌르는 비누향을 맡을 수 있었다. 전까지는 은은하게 맡아지던 향이 분명이 진했고 짙었다. 느릿하게 종인은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반 아이들이 가방을 챙겨 하나 둘 교실을 나가고 있다. 날카롭게 교실을 둘러보던 종인의 시선이 못이라도 박힌 듯 어딘 가로 고정된다. 그의 눈이 형광등 불빛 아래 번뜩인다. 전에 없던 눈빛.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가 저런 눈빛을 지을까? 씨익. 종인이 그를 보며 웃는다. 꼭 삐에로의 웃음 같은 인위적인 웃음은 비틀린 듯 보였다. 종인이 제 책상을 쾅 발로 찬다. 쾅!
우당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인의 책상이 앞자리의 책상을 밀며 쓰러진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교실 안 모두의 시선이 종인에게로 향한다. 그제 서야 정신을 차린 찬열 역시, 아이들에게 으르렁거리는 종인을 본다.
"다 나가."
"...."
"다 나가라고."
아이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힌다. 당황한 눈빛이 숨김 없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렇게 그 자리에서 당황함에 몸을 굳히고 있을 수는 없었다. 교실에 남아 있던 아이들 모두 파도에 휩쓸린 듯 순식간에 교실을 빠져나간다. 종인의 눈빛이 그들을 압박한다. 맹수를 발견한 토끼 떼가 바쁘게 꽁지를 빼며 사라진다. 뒤늦게 상황 파악이 된 찬열이 종인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미쳤어?"
종인은 찬열을 보며 빙긋 웃는다. 눈 아래 보조개가 함박 파이며 웃는 모습은 해맑아 보이기 까지 하다.
"찾았다, 쥐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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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로 접히는 종인의 두 눈은 그의 즐거움을 보여준다. 종인의 웃음은 찬열을 불안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발정난 쥐새끼를 찾았어."
"뭐?"
"쟤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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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의 턱 끝이 가리킨 곳엔 텅 빈 교실에 혼자 몸을 벌벌 떠는 어린 양이 있었다. 납작한 몸 뚱아리는 찬열도 익히 잘 아는 것이었다. 저 자리의 주인을, 찬열이 절대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까, 오세훈이 저기서 왜 저러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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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 같은 비누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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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찬열은 종인의 말 뜻을 이해했다. 코끝에 알싸하게 전해지는 비누향은 분명한 페로몬의 향기였다. 종인은 여유로운 웃음으로 세훈의 앞에 다가가 섰다. 찬열은 무언가 충격에 빠진 듯 말 없이 그를 보았다. 히트사이클. 그 다섯 글자가 찬열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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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
"세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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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나긋한 목소리로 세훈을 불렀다. 세훈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몸을 바들바들 떤다. 종인이 누군가의 이름을 저토록 부드럽게 부른 적이 있던가. 종인의 손끝이 숙인 세훈의 턱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세훈의 얼굴이 종인을 보았다. 풀린 눈매와 벌어진 입술, 갈증 어린 눈동자와 뜨겁게 뱉는 숨까지. 김종인? 종인아.... 흐린 목소리는 공기를 한층 탁하게 만든다. 온 몸에 차오르는 흥분감과 남아 있는 약간의 이성이 세훈의 눈동자에 차오른다. 종인은 투명한 갈색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정신을 지배하지 못한 불안감에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니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진다. 종인의 손이 세훈의 볼을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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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좀 어떻게 해 줘..."
"어떻게?"
"응? 어.. 좋게, 기분이 좋게...."
"구체적이게 말을 해야지."
종인의 목소리는 친절하다. 아이에게 젓가락질을 가르치는 부모처럼 자상하게 타이른다. 볼을 감싸던 손을 옮겨 세훈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느리고 느긋한 행동에 세훈이 입술을 깨문다. 머릿결을 따라 내려간 손이 귓바퀴를 스치고, 부드럽게 세훈의 통통한 귓볼을 매만질 때 세훈은 결국 남은 이성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이성이 본능을 앞설 순 없다. 종인의 페로몬마저 세훈의 발정을 독촉한다. 짙은 종인의 페로몬이 세훈의 콧속으로 훅 끼친다. 아찔하게 멀어지는 정신. 온 몸의 세포가 제발 쾌감을 달라고, 오르가즘을 달라고, 당신의 정액을 달라고 소리지르는 이 순간, 2학년 5반의 오세훈은 없고 히트사이클에 발정한 오메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넣어줘."
"뭐를?"
"네 걸로 내 뒤에 넣어줘... 세게 박아서, 내 안을 따뜻하게... 응?"
바들거리는 세훈이 종인의 와이셔츠 카라를 움켜쥐었다. 침으로 축축하게 젖은 입술이 통통하게 맞물려있다. 종인은 그에 상응하 듯 세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말 잘 듣는 강아지를 칭찬하듯이. 그러다 세훈에게 숙였던 몸을 일으키고 교실의 한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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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박찬열 봤냐?"
"......"
"어쩔 수 없는 쓰레기들."
찬열은 자리에 굳은 채였다.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종인을 보았다. 입꼬리를 끌어올려 즐거운 듯 웃고 있는 종인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사슴을 노리는 사자는 사냥꾼을 농락한다.
"뭐 하자는 거야."
"뭘?"
"미쳤어?"
"뭘 말하는 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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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미소였다. 종인은 세훈을 보았다. 몸을 어쩔 줄 몰라 허벅지를 오무리고, 당장이라도 자신의 성기를 잡고 자위하고 싶은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세훈을. 세훈의 머리를 쓰다듬던 종인이 한 순간에 그의 목을 제게로 가까이 끌어당긴다. 헉,하며 세훈이 숨을 들이킨다.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인다. 은밀하고 야한 목소리.
"그래, 이제 내가 넣고, 박고, 싸 줄게."
종인의 말에 얼굴이 잔뜩 상기된 세훈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목소리 만으로 세훈은 박히고 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서 빨리 종인이 저를 만져주었으면 좋겠다. 만져줘... 만지고, 종인의 성기로 저를 엉망으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김종인은 얼굴만큼 섹스도 잘 할까. 김종인은.... 종인의 입술이 짧게 세훈의 볼에 닿았다 떨어진다. 놀란 눈으로 세훈이 종인을 보는 순간, 종인의 혀는 부드럽게 세훈의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다. 입술이 입술에 의해 빨리고, 종인의 혀는 뭉근하게 세훈의 혀를 애무한다. 하아ㅡ 긴 숨을 내쉬며 세훈이 눈을 감는다. 타액이 만드는 소리는 노골적이다. 종인은 눈을 뜨고 세훈을 본다. 그가 주는 혀의 애무에 반응하는 세훈을 본다. 찡그리는 미간을 보고 곤히 감긴 눈꺼풀을 본다. 그러다 종인이 세훈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고 입술 틈으로 길게 숨을 내뱉자 세훈은 아주 가늘게 눈을 떴다. 두 사람의 코끝이 부딪힌다. 빨개진 두 볼과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가 종인을 향한다. 눈물을 머금어 반짝이는 그것과 통통하게 부어오른 입술. 씨발, 낮게 욕을 중얼거리며 종인이 목덜미를 잡고 깊게 제 혀를 밀어 넣었다. 종인의 손이 바쁘게 세훈의 와이셔츠 단추를 풀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세훈 역시 다급하게 손을 뻗어 종인의 와이셔츠 단추를 찾으려는 순간,
"하지 마."
강한 악력이 종인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종인이 손 쓸 틈도 없이 강한 힘이 그의 팔을 붙든다. 세훈의 와이셔츠를 벗겨내던 그 팔을. 종인은 잡힌 제 팔을 보다 고개를 들어 찬열을 본다. 마주친 검은 눈에서 종인은 찬열의 눈동자에 담긴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째서 찬열이 분노하는 지는 알 지 못했다. 단지 종인은 진심으로 궁금했다.
"왜?"
"....."
"내가 왜?"
대체 왜, 찬열이 자신의 행동을 막는 지. 오세훈은 오메가였다. 매일 같이 비누향을 흘려 제 머리를 아프게 만들던 오메가 중의 오메가. 천한 몸뚱아리다. 방금만 해도 자신에게 박아 달라며 애원 하 질 않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제 키스를 받지 않던가. 분명 오세훈 저 년의 입으로 한 말이었다. 히트사이클의 오메가가 다 그렇듯, 발정난 것이다. 그런데 대체 박찬열 너는 왜? 내가 지금 섹스 좀 하겠다는 데 왜 방해하고 지랄이야 십새끼야ㅡ
찬열의 입은 다물렸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수 만의 생각이 스친다.
왜냐고? 왜냐면, 왜냐면... 내가 오세훈을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난 오세훈을 좋아하기 때문에 너는 오세훈과 섹스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세훈에게도 고백하지 못한 이 감정을 겨우 김종인 따위에게 고백 할 수 없다.
나는 지금 김종인이 두려운 걸까? 내가 김종인과 섹스 하는 오세훈을 보기 위해 이토록 오세훈을 지켜왔나?
"얘네는 이러라고 있는 애들이야 박찬열."
"....."
"남 정액이나 받아주라고 있는 몸이라고."
"....."
그래, 오메가는 그렇다. 누가 그러지 않던가 15세가 넘은 오메가 중 처녀는 단 한 명도 없다고. 오세훈도 그렇겠지? 오세훈도 누군가에게 아다를 따였을 거다. 그러니까 오메가와 섹스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대자연. 하지만 김종인과는 안 돼. 하지만 오세훈은 김종인을 봐 버렸는 걸.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오세훈이 원하고 있는 김종인을 여기서 밀어내 버릴까.
그러나, 사냥꾼이 과연 사슴을 문 사자를 잡을 수 있을까? 사냥꾼이, 사자를. 이미 사자가 물어버린 사슴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김종인이 없어져 버리면, 그렇다면 오세훈의 히트사이클은 누가 풀어주지? 내가.. 나는 오세훈과 섹스를 하고 싶나? 하고 싶다. 그런데 나랑 섹스 한 걸 오세훈이 알면, 그 때도 오세훈은 날 보며 웃어줄까? 친구 사이에 섹스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이 모든 건 다 히트사이클 때문이다. 히트사이클을 멈춰야 한다.
찬열이 종인의 팔을 놓고 성큼 성큼 문을 향해 다가간다. 종인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초조함이 묻어 나는 뒤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찬열이 교실을 나가기 직전 차갑게 말하는 것이다.
"지금 약 먹어봐야 소용 없어. 너도 잘 알지 않나?"
"....."
그래, 사실 찬열도 알았다. 히트사이클이 찾아온 오메가가 히트사이클 후 가장 먼저 보는 상대에게 집착한다는 것 쯤은.
"허튼 수작 부리지 마. 시작 된 건 못 멈추니까.
그럼에도 이 빌어먹을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히트사이클 후 오세훈이 처음 본 상대가 김종인이라는게. 오세훈과 김종인이 섹스를 하려는 이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좆 같아서.
"알았으면 알아서 꺼지던가 닥치고 섹스 하는 거나 보던가. "
찬열이 우뚝 걸음을 멈추고 건전지가 다 된 시계 마냥 느리게 몸을 돌렸을 땐, 책상 위에 앉은 오세훈과 그의 반팔 셔츠를 벗겨 내는 종인이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밤 같은 검은 눈동자로 박찬열을 바라보면서. 잘 봐, 내가 오세훈이랑 이제 섹스 할 거니까. 그렇게 밤이 말했다.
***
카세찬인지 찬세카인지 헷갈림.txt
아무리 길어도 상하로 나눠서 글을 안 올리는 나지만 이번 편은 이렇게 먼저 상편을 올려 놓지 않으면 귀찮음에 절대 뒤는 안 쓸 것 같아서 미리 올렸다.
그리고 사실 결말 아직 안 정함ㅋ ...... 카세일지 찬세일지도 모르겠다. 막장이거나 막장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주말 안에는 써서 올렸으면 좋겠다.
초원 위의 예쁜 사슴 세훈이와 그를 노리는 사냥꾼 찬열이, 숨어있던 사자 종인이.
상하로 자르다 보니 상편은 불마크가 필요 없다. 글잡에 불마크 없는 글을 쓰려니 어색하다. 이러고 하편은 아마 섹스 밖에 없겠지...,
근데 요즘 찬세 너무 예쁜 거 같네요. 세업찬.... 찬세는 키잡.... 크면 잡아먹으려고 일부러 키우는 것도 재밌겠다. 양계장의 병아리같이... 마치 찬열이와 세훈이같이..
아무튼 카세찬 트리플은 4랑
+) 혹시 오타나 맞춤법 실수 있으면 발견한 누군가 아무나 말 좀... 해주세요... 귀찮아서 확인 안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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