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별 변동없이 여주가 모의고사 1등이다."
짝짝. 아무 감정도 담기지않은 박수소리가 교실안을 가득 메운다. 느린템포. 다리를 책상에 올리고 치켜올린눈으로 여주를 응시한다.
"김종대. 자세가 그게 뭐야 다리 안내려?"
"뒷배경이 더러우니까... 발악하는건가봐요"
너 이새끼 교무실로 따라와, 하는 담임의 목소리에 종대가 그러시던지, 하며 주머니에 손을 꽂고 다리를 내렸다. 조소를 흘리며 시선은 여주에게 고정시켜놓고서는. 저의 뒷자리에있는 종대를 여주는 단 한번도 쳐다보지않았다. 긴머리로 얼굴을 다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꼭 쥔 손틈으로 땀이 차올랐다. 아이들의 시선이 여주에게로 모여졌다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 누구도 여주를 위로해주거나, 관심을 내어주는 등 선의를 배풀지 않았다. 사각거리는 연필소리가 그 틈을 메울 뿐.
쟤네엄마가 창녀였데.
도경수네집 식모?뭐 그런건가?
엄마가 아빠한테 죽은거라며
술먹고 치여죽였데.
잠깐의 시간이 흘렀을까, 저가 김종대를 좋아한다는둥 이리저리 김종대의 주위를 맴돌던 여자아이들이었다. 수근수근거리는 소리가 반대편에 앉아있던 여주에게까지 들릴정도의 세기였지만, 중간에 앉아있던 반장조차 그들을 말리지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못했다라고하는게 더 맞는것이, 그 누구도 김여주의 일에 끼어들고싶지 않아했다. 가방을 뒤지던 반장이 이어폰을 꺼내 귀에다 꽂았다. 수북히 쌓인 책들을 응시하던 여주가 그 위에 볼을대고 엎드렸다. 멀리서 지우개가 날아와 긴 머리칼으로 가려진 여주의 얼굴을 툭,툭하고 맞춰댔다. 깔깔거리는소리가 귓가에울렸다.
미칠것만 같았다.
ㅡ
"여주야"
"..."
"배 안고파?"
김종대가 빵과 우유를 내 책상위에 던졌다. 여주야, 하고 부를때 온몸에 소름이 돋는것같아 대답대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 빵 봉지를 뜯어 그대로 내 입에 밀어넣는다. 먹어 여주야. 가난하잖아 우리여주.
"시발 개새끼야!!!"
쉬는시간. 이동수업이라 종이치고 몇분이 지나서야 교실에 도착했는데, 그제서야 벌어진 상황을 목격했다. 지나가던 반장한테 책을 던지다시피 건내주고 여주의 반에 들어가 김종대의 뺨을 후갈겼다. 바닥에 쓰러진 김종대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엉덩이를 툴툴 털며 일어나 경수를보고 웃었다. 아주 대단한 흑기사 납셨네요, 하고.
"너 얘한테 몸파는대신 얹혀사냐?
피는 못속인다. 그치"
별안간 경수의 주먹이 다시 종대의 얼굴을 겨냥하려 들고, 그 순간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종인이 경수의 손목을 잡아챘다.
"너 한번만 더 사고치면 답도없다.
김종대 너도"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랬잖아"
"우리가. 남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종대가 종인을 노려봤다. 종인의 말에 우습다는듯 코웃음을 쳤다. 종인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종대가 교실을 나서자 종인이 경수의 손목을 천천히 놓았다. 그리고 여주를 일으켰다. 괜찮아? 하고.
"누가보면 형제라도 되는줄알겠네. 이름도 비슷..."
"형제맞아. 이복형제"
순식간에 모두가 김종대와 김종인의 관계에 갖던 의문이 풀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수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책상에 올려진 빵과 우유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내다버렸다. 정말 속이 터져버릴지경이었다.김종대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순간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했다는것에 놀라 복도에 걸려진 거울을 보며 머리칼을 정리하던 손길을 멈췄다.
경수가 그렇게까지 여주를 감싸고도는데, 김종대가 틈만나면 여주를 괴롭히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덕분에 둘은 학생부에서 이름난 트러블메이커였고, 김종대는 조금만 더 사고를치면 정학위기를 맞기 직전인데도 저모양이다. 심지어 여주뒤를 잇는 모범생인 김종인과 이복형제라니. 무슨조합인지 참.
"괜찮아?"
"...응"
"다음에 도경수없을때 김종대가 그러면 나한테 이야기해.
뭐 조금이나마 도움은 되겠지"
보건실안으로 들어가 둘이 하는 이야가를 들었다. 김여주랑 김종인이 언제 저렇게 친했더라. 김종인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에 제압당한듯한 여주의 대답이 신경쓰였다. 뭘까, 대체.
"너 수업 안들어가?"
"가야지."
경수가 종인에게 다가가 묻자, 한참이나 도경수를 응시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니가 모든걸 해결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마."
김종인의 말에 도경수가 뭐? 하고 날카로운 대답을 내뱉자 보건실을 나가다말고 뒤를 돌아 말했다.
"지키지도 못할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