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저잣거리가 시끌벅적한 목소리로 꽉 메워졌다.
막 시끄러운소리라기보단, 모두들 의문에 가득한 수근거림의 모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여자아이가 넘어져서 다리를 좀 다쳤다 하더라. 잠깐 옆을 스쳐가던 아낙네가 흘린 말이었다.
뭐 저까짓 상처 잠깐 치료하면 낫는거 아니냐는 주막집 주모의 말 한마디에 여자아이를 붙잡고 아이구 어쩌누어쩌누. 하며 울부짖던 아이의 어미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주모를 노려 보기 시작했다. 이미 눈이 벌게 져서는, 아이를 붙잡고있느라 피와 모래가 뒤범벅된 손을 파르르 떨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술을 꼭 깨물었는데, 아마도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려 했었던 모양이었다.
주모도 주름진 미간을 천천히 쥐었다 풀었다. 세상엔 참 미친년들도 많지. 이내 어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이를 안고서 한참을 울었다. 많은 구경꾼들이 자리를 뜨고, 그 어미의 옆에서 장신구따위를 팔던 젊은 여인은 모녀를 쫓아내기라도 해야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지나가는 양반집 규수들의 눈치를 슬슬보며 쓸데없이 비녀만 천으로 자꾸 닦아냈다.
그리고 한발짝 떨어진 거리.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도 수많은 감정이 뒤섞인 시선을 두 모녀에게 쏟아붇던 소녀가, 눈물이 멎은듯 서서히 고개를 드는 어미와 눈이 마주쳤다. 그제서야 발길을 돌렸다. 몇발자국 걸었을까, 발끝에 무어라 주문이라도 걸어놓았는지 서서히 무거워져 가지말아라. 멈추어라. 하고 말하는것 만 같았다.
저기요, 반이 쉰 목소리의 어미가 소녀를 불렀다. 척 보아도 어디 데려다놓아도 조선팔도에 손꼽히는 권력가의 여식이겠거늘, 평민도 못되는 모녀의 곁을 맴도는것이 무언가 이상하다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 가엾음에 쉽게 자리를 뜨지못한 소녀가 자세를 낮춰 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품에안긴 아이는 눈꺼풀을 겨우 올린채 숨을 쌕쌕 들이쉬고있고, 어미도 소녀를보며 꺽꺽거리며 눈물을 다시 삼켰다. 살려달라고.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멀리서, 두마리정도의 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따라 고개를 돌리면, 저잣거리와 맞지않는 의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비키라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고있다. 남자가 급히 말에서 내려 소녀의 몸을 두루마기로 감췄다.
힐끗힐끗 모녀와 소녀를 쳐다보던 시선들이 남자의 눈초리에 모두 거두어지고, 어미의 고개가 떨구어진 순간,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깊은숨을 몇번 내쉬던 어미가 아이를 꼭 안고 깊은 잠에 빠져든듯 싶었다.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지못하고 억지로 머금은듯 제 어미의 얼굴을 보며 소리없이 울어댔다. 남자는 소녀를 꼭 안았다. 어떻게 된 일이십니까.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소녀는 주체할 수 없이 뛰던 심장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저 아이를 거두어라.
한손으로 소녀를 안고서 남자는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시선을 남자의 손끝에 두며 뒤를 따르던 사내 하나는 아이를 안고, 남은 하나는 어미를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머니 ㅡ
아이의 메마른 목소리. 한줄기 빛을 거스르듯, 서서히 구름과 별이 뒤엉켜진 어수룩한 빛이 그들을 감싸안았다. 남자의 허리춤을 잡고있던 소녀를 덮은 두루마기가 하늘로 날아가 달을 가렸다. 소녀의 시선이 뒤를 따라오던 아이와 맞닿고, 바람에 부딫혀서인지 아니면 아이의 애닳음을 보아서인지도모를 눈물이 흘러 남자의 등에 이마를 대었다. 아이는 울음을 그칠 줄 몰랐고, 소녀는 뚝뚝 눈물을 흘리면서도 미간하나 찌푸리지않은채 숨을 골랐다.
저잣거리를 훤히 비추던 달과 별이,
짙은 구름에 가려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