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 인연
"얘야."
예,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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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마을 언덕배기에 다 기울어가는 오래된 한옥집. 주인 떠난 제비둥지가 처마 아래 대여섯개씩이나 지어진, 고요하고 가빈한 저택.
짜고 비린 바닷바람 냄새가 뭍을 헤치고 올라와 마당에 은은히 고이는.
그런 어촌 시골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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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종인아. 불렀는데 나와 보질 않고."
죄송해요, 이부자리가 어지럽길래..
아무렇게나 피부가 그을려 누가 보아도 촌 소년이다 싶을 사내가 쪽마루를 비척비척 걸어나왔다. 흙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할 인물이 없는 데에도 마루에는 모래가 버석버석 밣혔다. 소년은 그것들을 발로 슥슥 쓸어 대충 바닥으로 날렸다.
"밤 사이 손님이 오셨다. 상을 좀 내어 오려무나."
손님이라니요? 소년이 의아함에 고개를 휙 돌려 노인을 바라다보았다. 분명 건넌방 디딤돌에 얹혀있는건 제 운동화와 비슷하지만 더 새것같은 신발 한 켤레였다.
"어디서 온 분이신데 오밤중에 기척도 없이.."
"우리와는 무연한 사람이다. 동도 트기전에 집 앞에서 사람을 부르기에 들였단다."
"아니, 인연도 없는 이를 할머니 주무시던 방에 재우시고 무슨..?"
노인은 여러번 소년의 말을 끊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자그마한 몸집의 노파가 기세는 여장부 못지않았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이른 시각인데도 단정하게 쪽 진 머리와 인견으로 지은 한복을 갖추어 입은 행장이 보통 노인 같지는 않았다.
"인연은 없으나 사연은 있을 법 하더구나. 너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으니 모질게 하지 말거라."
소년은 가지런히 놓인 신에 눈길을 한번 주더니 군 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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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사이에 험한 촌동네를 다니다 이 언덕집으로 올라온 용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를 가진 자였다.
조용하고, 고고하고, 샌님같은 느낌이었다. 맨입으로 묵어가는 손님인 주제에 상을 치울때까지 감사인사 한번 하지를 않았다. 그저 고개를 박고 밥을 한수저 두수저 비우고는 고개를 돌려 뚫린 창 너머의 바다를 보고 앉아 있기만 하였다. 분명 담긴 표정에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데도 어찌 답답하거나 우울하거나 분해보이지도 않았다.
상을 치우고 다시 큰방으로 들어와 곁에 앉은 소년을 손님은 잠시 놀란 듯 쳐다보았다.
종인은 머쓱하여 먼저 운을 떼었다.
"어쩌다 여길 온 거에요?"
손님은 맑은 눈으로 종인을 응시했다. 그러다 굳게 다물린 입술을 열었다.
"어쩌다 보니."
소년은 바닥을 톡톡 치며 대답을 기다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지? 소년이 불쾌한 단계까지 생각이 닿기 전에 손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멀리서부터 보이길래 여기로 오게 됬어요."
어디서 쫓겨났거나, 아니라면 도망쳤거나. 그런 일을 겪고 있는 중인가 보다.. 하고 소년은 생각했다. 손님의 말에 의미심장한 구석이 많았지만 소년은 대강 생각하기로 했다. 멀리서부터 우리 집 불빛이 보이니까. 그렇게만.
손님은 음성이 듣기 좋았다. 자기가 가진 분위기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진 자 였다. 견고하고 군더더기 없는 중저음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멀리서 치는 파도소리와 잘 어울렸다. 그런 자연스러움을 가진 낯설은 사내를,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방에 앉아 다른 어떤 것도 없이.
둘이서 작게 난 창문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 보고 있었다.
-
소년이 저녁거리를 사러 장에 다녀 온 사이. 손님은 어디론가 가고는 없었다.
풀었던 짐이 없어 남긴 것도 없고.
또 어쩌다 발길 닿는 곳으로 가는가. 소년은 눈두덩이 시큰해 괜스레 노인을 불렀다.
취한듯 만남은 짧았지만 ,
맺지 못한대도
후회하진 않죠 영원한건 없으니까 .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테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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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닉 |
데자와/갱뇨/방시혁과박하선사이/비둘기주인방시혁/레이부인 |
글 분위기상의 몰입도를 위해 브금은 꼭 들어주셔야해요
(짧아서 브금 없으면 아무것도 안남아..제발요)
마지막에 기울어진 글은 비지엠인 인연의 가사인데요, 경수 번외라고 생각해두셔도 괜찮을것같슴니당!
대뜸 나타나서 이상한 찝찝한 글 쓰고 가고.. 좀 당황스러워도 이해해주셔요
사랑합니다 하트.
+소년으로 나오는 아이가 김종인이고 손님이 경수인건 다들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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