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싶은 게 있어 (Spring Ver.) - 랄라스윗
부제 : 그래, 너.
체육대회 끝나고 상처아닌 상처도 받고, 나 혼자 뭐하는거야, 하는 생각에 허무함까지 들어서 한동안 종대를 피했었어
했던 행동들 딱 반대로 하니까 마주치지는 않았는데, 결국엔 내가 보고싶어서 다시 은근슬쩍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더라
아무도 모르게 그만뒀다, 다시 시작했다.
혼자 집에서 웃었다, 울었다.
나름 중학교 때도 남들보다 사춘기는 빨리 지나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사춘기가 두 번 올수도 있냐고 물을만큼 2학년이 짝사랑의 절정이었던 것 같아
하루는 정말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든, 뭐가 되든 눈 딱 감고 고백해볼까, 했다가도 막상 얼굴보면 ..아, 박찬열이 너 찾더라. 하는 소리나 하고 있고.
내가 바보같으면서도 되게 속상했어.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게.
또 그래서 그만둘까, 생각하면 그날따라 김종대가 나한테 잘해주는 것 같고.
그렇다고 잘해준다고 마냥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닌게, 나 혼자 호감이 있어서 잘해주는거야! 착각하기엔 한 번 친구잖아. 했던 말이 둥둥 떠오르고.
정말 조용히 좋아하는것도 힘들구나. 사람 미치는 일이구나. 뼈저리게 느끼는 동안 시간은 뭐 그렇게 빠른지, 벌써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더라
"우리도 일본처럼 축제 좀 크게 하면 안되나? 이틀이 뭐야, 이틀이"
"불만이면 일본 가시던가요"
"혼자서는 싫은데, ..같이 갈래?"
"뭘 같이가, 너 혼자가. 사요나라-"
"야, 나 혼자가면 너무 인기 많아서 안 돼. 엄청 피곤하겠지, 하, 저번에 일본 여행갔다 내가,"
"너 좋아하는 여자 많은데 내가 왜 같이가"
"피곤하니까 너랑 같이 가야지"
"참 나, 그래서 니 여친 노릇을 하라고?"
"뭔 소리야, 남자랑 남자가 다니면 게이지"
"..야!!"
축제 기간이 다가오니까 박찬열이 우리도 일본처럼 축제 크게 하면 안되냐고 투덜대는데, 저건 그냥 공부 하루라도 더 쉬고 싶어서 저러는거지
내가 얼굴 보지도 않고 할 일하면서 받아주니까 같이 갈래? 하는데, 무슨.. 시덥지도 않은 소리에 대충 대답하니까 꼭 내 열을 돋구지, 아주.
내가 열받아서 소리지르니까 어깨에 손 올리면서 난 너의 정체성에 대해 다 이해해. 이런 친구 없는거 알지? 하는데, 이걸 구울까 삶을까.
결국엔 둘이서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우리반 문 앞에서 멍하게 서 있는 종대랑 눈이 마주친거야
당황해서 나도 멍하게 쳐다보다, 손으로 박찬열 가르키면서 입모양으로 ..얘? 하니까 살짝 인상쓰면서 도리도리.
'너.'
턱짓하면서 벙긋거리는데, 어벙벙하게 쳐다보고 있다 나? 나? 하면서 나 가르키니까 끄덕이는데, 그제서야 눈치 챈 박찬열은 내팽개치고 쭈뼛쭈뼛 그쪽으로 갔어
아, 종대가 마지막으로 나 먼저 찾은게 언제였더라.
별거 아닐거 알면서도 괜히 기대하고, 떨려하면서 다가서니까 잠깐 멈칫하더니 살풋 웃으면서 조심히 ..너 요즘 바빠? 하는거야
"아, ..아니! 나 안 바빠!"
"..그럼 나 도와줄 수 있지?"
"어? ..뭐, 내 능력 안 일이라면?"
"축제 때 피아노 반주 좀 해줘, 해 줄 사람이 없어-"
"..피아노? 뭐, 너무 어려운 곡만 아니면.."
"별로 안 어려워!"
"..근데 피아노는 왜.. ..너 노래해?!"
별 것도 아닌 질문에도 어버버거리면서 대답하니까 웃더니 피아노 반주 좀 해달라는데,
아무 생각없이 고개 끄덕이면서도 자신없이 ..어려운곡은 아니겠지.. 하는 뉘앙스로 말하니까 안 어렵다고 강조하는거야
멍하게 피아노, 피아노 생각하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종대 쳐다보면서 노래하냐고 하니까 그냥 말없이 웃는데, 아, 헐..!
예전에 노래하는거 들었을 때 잘 부르기도 잘 부르는데, 목소리도 좋고 그냥 다 좋아서 집에 가서 으으, 거리면서 이불 뻥뻥 찼었거든ㅋㅋㅋㅋ
물론 내가 좋아해서 더 그런거일 수도 있지만ㅋㅋㅋㅋ
종대가 노래한다니까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설레서 신난 얼굴로 진짜? 진짜?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반주를 해줘야 한다는건, ..같이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는 거잖아
안 그래도 김종대랑 있는 것 자체에 벌벌 떠는데 전교생 앞에서 그걸 하라고..?
그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웃음이 뚝 멈추더라. ..MR도 있고, 뭐 다른 악기도 많은데 왜 하필..
"있잖아, ..꼭 내가 해야해?"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닌데, ..기타치는 박찬열도 있고, 손가락 하나만 있으면 되는 좋은 기계도 있고.."
"박찬열은 연습하기도 귀찮고 나 도와주기 싫대에, MR은 쌤 욕심에 안 받아 주실려고 하고-"
"..아,.."
"..싫으면 억지로 안해도 ㄷ.."
"아니!"
"..어?"
"아니, ..어, 열심히 한다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주먹쥐어 보이니까 빵 터져서 엄청 웃더니 진짜 열심히 할건가봐- 하는데
사실 속에서는 그럼 매일 연습하면서 얼굴 보겠네, 좋다.. 와 동시에 망했다! 어떡해!ㅋㅋㅋㅋㅋ ..머리가 지끈 아파오더라
집에 가서도 미쳤어, 미쳤어! 머리 뜯으면서 후회하고,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할까? 했는데, 결국 악보는 내 손안에 있..었지ㅋㅋㅋㅋ
걱정은 많으면서도 그 날 이후로 진짜 열심히 연습했어
매일 매일 점심시간이나 비는 시간에 음악실에 출석도장 찍으면서 연습하는데, 사실 연습하는 동안에도 내 손이 피아노를 치는지, 뭘 치는지 모르게 떨려서ㅋㅋㅋㅋ
하필이면 종대가 가져다 준 악보가 엄청 설레는 노래라서.. 아무렇지 않은척 종대 목소리 들으면서도 속은 베베 꼬이고ㅋㅋㅋㅋ
체크한답시고 녹음해놓고 집에가서 잠 들 때까지 듣고 그랬어ㅋㅋㅋㅋㅋ ..조금 변태 같나?ㅋㅋㅋㅋ
"와, 나 진짜 완벽하지 않냐?"
"야, 너 3분 전만 해도 못하겠다고 어떡하냐고 그랬어,"
"아니야,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어"
"..그냥 박찬열한테 빵 하나 사주고 기타나 치라고 할 걸,"
"그럼 후회했을걸?"
"..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그건?"
호흡도 잘 맞아서 금방 완벽하게 되는데, 내가 신나서 막 말도 안되는 소리 지껄이니까 어이없다는듯이 웃으면서 내 옆에 앉더라
계속 한 공간에 있었으면서도 갑자기 종대가 옆에 앉으니까 나도 모르게 멍해지는데, 종대도 아무말이 없는거야
눈 앞에 보이는건 피아노 뿐이라 아무거나 눌러대면서 딴짓하니까 종대가 뜬금없이 ..박찬열이랑은 어때? 하는데,
질문이 뜬금없어서 뭐가.. 하면서도 걔 생각하면 짜증나면서도 웃겨서 그냥 웃으니까 살짝 인상썼다 아, 뭐야아. 하면서 찡찡거리는거야
"왜 혼자 웃어! 뭔데에,"
"질문이 뭐 그래- 정확하게 물어야 대답을 하지-"
"그러니까, 그, ..많이 친해?"
"뭐, 내가 놀아주는거지, 그냥, 걘 조금 장단 맞춰주면 좋다고 아주,"
"..그래도 어울리지 말지.."
"...?"
"...."
"..어?"
"..어? ..야, 아, 나 아까 쌤이 불렀었는데! 깜박했어! 먼저갈게!"
내가 농담 섞여서 말하니까 멍하게 듣더니 작게 말하는데, 순간 둘 다 정적이었다 놀라서 돌아보니까 자기도 놀랐는지 벌떡 일어나는거야
갑자기 선생님이 부르셨던거 깜박했다면서 도망가듯이 가버리더라
나는 종대가 가고 나서도 한참을 멀뚱멀뚱 문만 바라보다, 생각하는데, 잠시만, 이게.. 지금..
..이정도면, 착, 착각해도 되는거겠지?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혼자 소리 질렀다 내가 놀라서 입을 틀어 막았는데, 막 새어나오는 웃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그 날 혼자 가슴에 손 올리면서 들뜨지마, 무슨 마음인지 어떻게 알아, 하면서도 하루종일 싱글벙글 정신못차렸었지ㅋㅋㅋㅋ...
근데 그 날 이후로는 너 김칫국 마셨어- 대놓고 놀리듯이 아무렇지 않게 장난치고, 연습하고. ..정말 내가 잘못들었나, 싶을 정도로 평소와 같았어
처음엔 ..정말 착각 정도만 허락하는건가, 하면서 씁쓸했는데
종대한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진 것 같아서 ..아주 착각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냥 헷갈리더라
며칠을 얼굴 맞대고 연습하니까 금방 축제날인데, 종대 앞에서는 정말 근거없는 자신감 뽐내놓고는 막상 다가오니까 눈 앞이 캄캄한거야
아침에 일어나서도 멍하게 벽 바라보면서 ..망했다,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학교와서 친구들이랑 여러 부스 돌아다니면서도 ..어떡하냐, 나, 진짜! 갑자기 울상 지었다.
해가 넘어갈수록 불안증세는 심해져서ㅋㅋㅋㅋ 멍하게 바라보다 안하던 손톱도 물어뜯고, 머리도 쥐어뜯고, 난리를 쳤는데 시간은 날 배려해주지 않더라..ㅎㅎ..
"아, 망했어, 진짜!"
"말이 씨가 된다니까아"
"어떡해? 진짜? 어? 김종대, 넌 왜 나한테 부탁해서, 어?"
"언제는 완벽하시다면서요-"
"나 틀려도 모른척 해줘, 응? 아, 망했어!!"
"..내가 모른척하면 뭐하냐, 전교생이 듣고 있는데-"
"아, 나, 손떨려서 피아노 어떻게 쳐! 미치겠다, 아, 진짜아!"
정신차려보니까 무대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막 심지어는 자아가 분열되는 기분까지 느껴지는거야
혼자 방언터진 사람처럼 막 종대한테 쏟아내니까 자기는 긴장도 안되는지 나 빤히 쳐다보면서 말 받아주는데, 그땐 짝사랑이고 뭐고, 그냥 나는 멘붕, 멘붕.
왔다갔다거리면서 발만 동동 굴리고, 어떡해에! 만 반복하는데, 나 들으라는듯이 순서를 소개하더라..ㅋㅋㅋㅋ..
그 목소리에 순간 굳어서 눈만 데구르르 굴려서 종대쳐다보니까 막 웃더니, 나랑 눈 마주치면서 잘해- 하는데, 뭘 잘해! 하려는 순간에 그냥 끌려서 나가버렸어
정신차려보니까 내가 앉아서 피아노를 치고 있고, 종대는 노래를 부르고 있고.
난 감정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그냥 기계적으로 틀리지말자, 틀리지말자- 하면서 손가락만 움직이는데, 2절이 되어서야 정신이 조금 들더라
그제서야 보고있는 애들 얼굴도 보이고, 종대 목소리도 제대로 들리고, 내 손가락 파들파들 떨리는 것도 보이고..ㅋㅋㅋㅋ..
그래도 점점 나아져서 끝날때쯤엔 종대 쳐다볼 여유까지 생겼는데, 고개 드는 순간에 종대랑 눈이 딱 마주쳐버린거야
순간적으로 굳어서 멍해졌는데, 종대는 그냥 웃어주고 계속 나 빤히 보면서 노래 했었어
"으아, 나 실수 몇 번 했는데! ..모르겠지?"
"티 안났어- 괜찮아,"
"근데 넌 왜 떨지도 않아! 나만 이상한 사람같잖아!"
"옆 사람이 하도 난리를 치니까, 나라도 멀쩡한척해야ㅈ,"
"야!"
"..아, 박찬열이다.."
끝나고 허겁지겁 내려와서 막 옆에서 쫑알대니까 먼 산 보면서 대답해주는데, ..그래, 왜 조용하나 했어.
어디서 튀어나온건지, 박찬열이 갑자기 나와서 분위기 좋은데- 하면서 웃는데 종대가 말 막으면서 야, 뭐 아까 부탁하지 않았냐? 하는거야
"뭔 소리래, ..미쳤냐?"
"아, 좀 조용히 하고 가자, 좀"
"..아, 맞다. 야, 까먹을뻔 했잖아!"
"..뭐, 뭐를, 그냥 가, 좀,"
"너 피아노 잘 치잖아. 근데 왜 쟤 시ㅋ..아!"
"어어, 나 박찬열이랑 대화 좀 하러 갈게!"
종대가 계속 끌고 가려고 하니까 박찬열은 꿋꿋하게 자기 할 말 하려고 하는데, 결국엔 종대한테 발목 차이고 질질 끌려가더라
나는 멍하게 뒷모습 보는데, 둘이서 티격태격. 나중엔 종대가 헤드록 걸려서 질질 끌려가다가도 찌르고 때리고 난리를 치니까 곧장 박찬열이 아프다고! 하면서 떨어지고.
그 모습 보면서 못말려. 픽 웃음짓는데, 박찬열이 한 말을 곱씹어보니까.. ..피아노를 잘 쳐? ..근데 나한테 부탁했어?
"..헐,"
무슨 이유라도 난 좋은 쪽만 떠올라서 배시시 웃었는데,
처음으로 영원히 혼자 할 사랑은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던 것 같아
그 이후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종대랑 마주치는 일이 많아지고, 먼저 연락도 오고. 그러더라ㅋㅋㅋ..
근데 이상한게 점점 나 혼자 짝사랑 하고 있는건 아니구나. 확신아닌 확신이 들면서도 내가 먼저 고백은 못하겠는거야
하도 맞나? 싶으면 바로 아니야. 하고 등 돌리는 상황이 많았던터라 이번에도 내가 들떠서 착각한거면 어떡하지? 싶고, ..고백해도 되는건가? 망설여졌어
차라리 종대가 먼저 고백해주면 덥석 물 자신있는데, 또 바보같은 김종대는 더 사람 헷갈리게 고백에 '고'자 비슷한것도 안 꺼내지
둘 다 머뭇머뭇하는 사이에, 우리가 고3이 되어버린거야
내가 딱 3학년 타이틀 다니까 갑자기 공부에 대한 후회도 밀려오고, 김종대도 짜증나고, 답답하고. 밤에 몰래 많이 울었었는데, 마음 추스릴 새도 없는 나이더라고..ㅋㅋㅋ..
처음엔 그래도 종대 아침에 학교 갈 때라도 마주치려고 하고, 연락도 자기전에 잠깐 하고. 그랬는데, 달력이 넘어가니까 내 생활에서 그건 사치같이 느껴지더라
물론 종대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얼굴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어졌었어
그렇다고 완전히 그만둔 건 아니었고..ㅋㅋㅋ.. 오히려 잠깐 마주치는 거에 더 설렜는데, 말을 몇마디 못하니까 그냥 편하게 종대는 마음 접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거든
뭐, 3학년은 공부때문에 전보다는 덜 앓았었어. 오히려 처음 짝사랑 시작할때보다 무뎌져서 더 조용하고 잔잔하게 좋아하고 있었어
그리고 짝사랑도 2년째 하니까 그냥 그런 생각도 들더라. 지금만 지나면 또 잊을 감정인데.
좋아하는 감정에 체념이 섞여서 그냥 나 혼자 조용히 삭히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고등학교와서 유난히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꼈는데, 급해서 그런가. 나한테 고 3은 되게 빨리 가는 시간이었어
하루 하루 지날 때마다 불안감에 입술 손톱 뜯으면서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싶고.
"야, 우산 챙겨왔어?"
"왜? 비와?!"
"야, 뉴스는 보고 살지, 좀. 오늘부터 장마거든"
"아, 헐! ..야자 끝나면 ..좀 괜찮겠..지?"
"전혀. 밤에 엄청 내린대"
"..망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데.."
딱 그 해 장마가 시작하는 날이었어
폐인인 몰골로 공부하고 있는데, 멍하게 창가 바라보던 친구가 나한테 우산챙겨왔냐고 묻는거야
약간의 희망을 갖고 되물으니까 바로 짓밟아버리는데, 막막해서 헛웃음이 나오더라
하필이면 엄마가 집에 아무도 없다고, 조심해서 들어오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던 날에.
일단 잊고 계속 공부하다, 야자 끝나고 집에 딱 가려니까 그냥 무시하고 맞고 갈 수 있는 빗방울도 아니고 안 그래도 늦어서 어두운데 비까지 오니까 음침해서 무섭고.
나랑 집 가까운애도 별로 없고, 친한애 붙잡고 도와 달라고 하자니 미안하고.
멍하게 빗방울 떨어지는거 보면서 생각하다, 아, 몰라! 일단 슈퍼까지 뛰어가서 뭐라도 얻을 작정으로 뛸 준비하는데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는거야
으억, 이상한 소리 내면서 뒤돌아보는데, 종대가 내 팔 잡고 뭐하냐아, 하더라
"아, 그,"
"우산이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어, 어? 뭐ㅇ.."
"미쳤냐아,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떻게 뛰어가려고"
내가 말하는 족족 다 자르면서 나한테 우산 씌워주더니 걷는데, 설레는 것도 설레는건데 아침에 머리 못감은게 더 신경쓰이더라ㅋㅋㅋㅋ
그래서 좀 떨어지는데, 종대가 힐끗보더니 안 그래도 좁은 우산에 젖은 자기 어깨 더 젖으면서 나한테 씌워주려는거 보고 그게 더 미안해서 그냥 원래대로 붙어서 갔어
가는 동안 친구한테 부탁해서 편의점까지만 가면 우산이야 사면 되잖아! 잔소리, 잔소리를 하는데,
그래서 당연히 편의점까지 데려다 주는 줄 알고 고맙다고 하려고 하는데 신경도 안쓰고 지나치는거야
"야, 야, 어디가?"
"..너 집 가는 거 아니었어?"
"..우리 집까지 데려다 주게?"
"매너 있는 척 하려면 끝까지 해야지-"
"에이, 됐어. 너도 피곤하잖아.."
"나 오늘 야자 열심히 안 했어, 괜찮아-"
"야! 그래도, 내가 미안해에, 어?"
"여자 혼자 보내는 것도 그림이 이상ㅎ.."
"으아!!"
나는 계속 거절하고, 종대는 고집부리고 서로 말씨름하고 있는데 종대가 말하는 도중에 하필이면 천둥 번개가 쳐서는.. 내가 괴성지르면서 종대한테 꼭 붙어버렸어
무슨 꺄아 같은 여성스러운 놀람도 아니고 목소리도 걸걸하게 소리질러서는..ㅋㅋㅋㅋㅋㅋ..
막 후회하고 있는데, 종대가 굳어서 아무말도 못하는거야
그제서야 정신차리니까 내가 종대 팔 두 손으로 꽉 잡고 있더라..ㅋㅋㅋㅋㅋㅋ..
아, 아, 미안! 하면서 급하게 떨어지니까 내 팔 잡아서 끌더니 눈 마주치면서 ..비 맞아, 하는데, 웃음기 없는 눈빛에 난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
결국엔 종대가 나 데려다 주는데, 천둥 번개 칠 때 마다 내가 움찔거리니까 처음엔 별 거 아니라고 달래주더니 나중엔 나 놀린다고 막 웃더라
그것도 잠시지 갑자기 둘 다 말이 없어지니까 빗소리만 들리는데, 종대가 조용히 ..있잖아, 하는거야
"고삼에 연애하는건, 좀 아니지?"
"..음, 사람마다 다르겠지- ..왜..?"
"아, 친구가 고민이라길래,"
"..아,"
"..자기가 지금 시점에선 잘해 줄 자신이 없대"
"..그래..?"
"..나는 남자니까 여자 입장은 어떨까, 싶어서.."
"이해해 ..나 같아도 자신 없을 것 같긴 해"
"..아,"
"서로 소홀해지기 좋은 생활 패턴이잖아-"
"..그렇지.."
"난 상대방이든 나든 뭔가 일이 잘 안풀리면, 다 내 탓 같을 것 같아. 미안하고"
"...."
"..나는 그래.. 근데 그렇다고 ..그 친구는 지금 아니면 바로 놓을거래?"
종대가 말을 시작하는데, 나도 눈치가 있지. 어색하게 말하는게, 그냥 자기가 나한테 묻는 말이더라
괜히 눈물나려는거 꾹 참고 말하니까 멍하게 듣는데, 내가 그 친구는 지금 아니면 바로 놓을거냐고 물으니까 어? 당황해하면서 나 쳐다보는거야
내가 ..거기까진 몰라? 하니까 고개 도리질치더니,
"..수능까지 몇 달 남았다고, ..참고 기다리는거지"
"..그 동안에 설마 그 여자한테 다른 남자라도 생기겠어?"
"..불안하긴 하겠지"
"..남자 없어, 바보야"
"...."
"아니, 그러니까, 그 사이에 집적댈 남자는 없을거라고!"
내가 말하니까 고개 끄덕이면서 나 보는데, 눈물 나려는거 참아서 눈이 빨개졌을텐데도 아무말 안하고 눈만 마주쳐주더라
우리 집 앞에 도착하니까 흠뻑 젖은 종대 한 쪽 어깨랑 팔이 보이는데,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니까 얼른 들어가라고 그냥 나 엘리베이터에 밀어넣는거야
자기도 남자라고 내가 힘에 못이겨서 결국 엘리베이터 문 닫힐 때 급하게 잘 가! 조심히 가고! 인사했는데, 딱 문 닫히자마자 눈물이 나더라
여태 울 때는 슬퍼서, 상처받아서 운 거 였는데, 좋아서 우는 날도 있구나. 하면서 천둥 번개 치는 날, 이불 뒤집어 쓰고 엉엉 울었었어
어떻게 보면 약속을 하고서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그 날 부터 수능 날까지는 정말 공부에만 매달렸어. 그래야만했고.
결국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날이 오고야 말았는데, 인생에서 제일 큰 시험 치려고 하니까 그렇게 수없이 쳐본 시험인데도 손이 막 떨리더라
난 수능 내 성적에 비해 그렇게 잘 치지도, 그렇다고 못 치지도 않았고. 딱 원하는 점수만큼, 예상했던 만큼 나왔었는데,
엄마가 나 수능장에서 나올 때 얼어 붙은 손으로 내 손 잡아주면서 수고했어, 엄마는 우리 딸 최선 다한 거 알아. 하는데 누가 보면 망친 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어
덕분에 붕어눈이 된 채로 내 침대에 뻗어 있는데, 그 날 밤에 종대한테서 전화가 온거야
"..여보세요?"
"..혹시 밖이야?"
"..아니..!"
"아, 그럼 나 니네 집 앞인데.. ..나올 수 있어?"
나올 수 있냐고 묻는데, 당연히 나가야지. 하면서 곧장 나가려는데 ..아, 내 눈.. 거울 보는데 진짜 가관인거야ㅋㅋㅋ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 그냥 모자 푹 눌러쓰고 나갔는데, 종대가 우리 집 앞에서 발장난 치고 있더라
내가 조심히 부르니까 웃으면서 옷 예쁘게 입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하는데,
그냥 웃으니까 ..밤인데 왜 모자.. 했다가 대충 눈치챘는지 그냥 나 벤치로 데려가서 앉혔어
둘 다 비오는 날 이후로는 정말 마주친 것도 손에 꼽아서 아무말 없으니까 조금 어색한데, 내가 먼저 ..수능 잘 쳤어? 하니까 ..뭐, 느낌은? 하는거야
"와, 좋겠다- 난 그냥, 그랬어- 딱 그럭저럭"
"..못 쳐서 운 거 아니었어-?"
"야, 눈치 챘으면 좀 조용히 해주던가, 뭐야아, 진짜"
"ㅋㅋㅋㅋㅋ와, 우리 이제 바쁘겠네-"
"그치! 막 나 시간도 많은데 드라마나 몰ㅇ.. 뭐라고?"
"뭔 드라마야, 할 일 많잖아"
종대가 놀리면서 모자 벗기려는 시늉하길래 더 고개 숙이면서 대답하니까 막 웃으면서 바쁘겠네- 하는데, 나는 반대로 듣고 막 신나서 얘기하다 순간 멈칫했어
드라마 몰아보겠다니까 종대가 어이없다는 표정 지으면서 나 보는데, 나는 멀뚱멀뚱.
내가 쳐다보니까 눈치보더니 괜히 큼큼거리다,
"내일 영화 보러 가자"
"..어?"
"왜에, 너 박찬열한테 수능 끝나자마자 볼 거라고 자랑한 거 있잖아"
"..어떻게 알ㅇ.."
"나랑 손잡고 보러 가자"
"...."
"농구도 보고, 너 하고 싶었던 거 다 해. 대신 나랑."
"...."
"두서 없는 거 아는데, 내가 바보같이 타이밍 놓치고 1년 참았던 말이라 그냥 할게"
"...."
"좋아해"
"...."
"..아마 2년 전부터. 더 일수도 있고"
종대가 손잡고 가자고 할 때부터 내 눈물샘은 터져서 대답도 못하겠더라
막, 속 시원하면서도 답답하고, 좋으면서도 슬프고, 정말 오만가지 감정이 다 섞여서 그냥 눈물만 나는데, 종대가 힐끗 봤다 내 팔 잡으면서 ..싫어서 우는거야아? 놀리는거야
끅끅대면서 아니거드은! 하니까 웃으면서 그럼 그렇게 좋아? 하는데 퍽퍽 소리나게 때렸어
내가 결국엔 엉엉우니까 ..내가 잘못했어어.. 하고 어쩔줄 몰라하는데, 또 끅끅 대면서 아니, 아니야아 하니까 웃음 참으면서 ..미치겠다, 진짜.. 하더라
김종대는 내 손 잡아주지도 못하고 안아주지도 못하고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면서 달래주는데,
내가 겨우 울음 멎고 못난 목소리로 작게 나도, 나도 좋아해.. 하니까 그냥 나 보면서 활짝 웃음지었어
"..웃지마아.."
"..그럼 너처럼 울어?"
"..웃는 거..바보같아.."
끅끅대면서도 장난치니까 표정 잠시 굳었다 야! 하는데, 내가 울면서도 웃으니까 ..내일 선글라스쓰고 나 만날거야? 하더라
그 말에 순간 표정 굳어서 ..망했다, ..내 눈.. 내 눈.. 하는데, 종대가 괜찮아- 지금도 못생겼어- 하는거야
결국 고백받는 날 마저도 티격태격하면서 끝내고 집에 들어갔는데,
그 날은 수능 쳤지, 몇 년한 짝사랑 끝냈지, 정말 세상에 있는 모든 감정을 느낀 것 같은 날이었어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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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하르방님이 두분이십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
+) 암호닉 신청 후 확인은 필수!!
+) 암호닉은 항상 받지만 신청하실때 가장 최근 편에 [신청하는 암호닉] 으로 눈이 나쁜 작가의 눈에 띄게 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합니다!
+) 큰일났어요~ 현실감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일거예요!ㅋㅋㅋㅋ큐ㅠㅠㅠㅠ
+) 댓글에 맞춤법 얘기가 있던데, 헷갈리는건 사전도 찾아보고 최대한 노력하지만 한번씩 오류가 있을거예요! 지적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배워가야죠!
+) 다음편부터는 급하게 지금으로 시간을 돌릴..것 같은데..ㅋㅋㅋㅋㅋㅋ괜찮겠죠?ㅠㅠㅠㅠ
+) 댓글과 추천은 항상 감사드려요! 하트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