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에로스가
나는 정말 연애할 생각이 없었는데, 사실은 연애할 상황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불쑥 내 인생에 누군가 입장 티켓을 흔들며 들어올 줄은 몰랐다. “안녕하세요?” 내 앞에 앉은 이 소개팅남- 아니 그럼 뭐라고 불러. -은 이름이 이제노라고 했다. 이름이 흔치 않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이었다. 더 흔치 않고 더 세련된 것은 이 사람의 얼굴이었지만. 나를 보며 짓는 눈웃음은 어설프지 않았지만 예의상하는 표정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살짝 붉어진 저 두 뺨까지 예의인 것 같지는 않았고. 여주는 제 앞에 놓인 머그잔을 살짝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가 덮쳐오는 뜨거움에 음료를 한 모금도 넘기지 않고 도로 내려놓았다. 컵의 윗부분에는 옅게 립스틱 자국이 남았다. 제노는 그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지켜보다가 여주를 따라 제 음료를 한 입 마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뜨거운 여주의 음료는 핫초코였고 얼음 소리를 잘그락거리는 제노의 음료는 라떼였다. 좀처럼 이야기가 시작할 겨를이 나지 않자 이제노는 결국 솔직하게 밀어붙이는 편을 선택했다. “이런 자리 처음이시라고 들었어요. 저도 처음이기는 한데..” “아,네..” 나를 불편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김도영이 먼저 나를 들이밀며 소개시켜 주겠느냐고 물었다고한다. 그 부분에서 이 소개팅남은 헤헤 웃더니 사실은 제가, 도영이형 폰 보다가 우연히 여주씨 사진을 봐서.. 좀 쳐다봤더니. 그래 김도영이 이제노를 왜 아끼는 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긴장한 건지 입술을 꾹 다물고 있을 때는 어디 사 자 붙은 직업도 능수능란하게 해낼 것 같은 얼굴이었는데 웃기 시작하니 거리에 지나가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잘생긴 흰 털 강아지 같았다. 좀, 커다란 강아지. 제노의 이야기가 끝나 입이 다물려지자 이번에는 여주가 몸에 힘을 조금 풀더니 편하게 자리를 고쳐잡았다. “도영 오빠한테는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맞죠?” “아,네. 올해 스물넷.” 그럼 말 놓고 시작할까요? 라는 말이 여주의 입술 끝에 매달려 나올랑말랑했다. 이 나이 들었으면 제 또래와는 물론이거니와 그 어느 나이대와도 존대를 하기에 능수능란해질 법도 하지만, 아직 격식을 차리는 것이 답답한 여주였다. 그래도 왠지, 이 남자는 말을 놓는 것보다 높이는 것이 나아 보였다. 소개팅이라는 거 해본 적도 없고 이런 자리도 처음이라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는지, 여주는 누가 시킨 것처럼 제노의 호구를 조사했다. 아니 그 호구 말고 이 호구. “혹시 외동..?” “아 아뇨 누나 있어요.” “아 그렇구나, 되게 외동처럼 생기셔서.” “그런가요?” “네.. 군대는 갔다왔다고 들었는데, 그럼 복학생?” 복학을 하기는 했는데.. 제노는 제가 최근에 하는 일을 줄줄줄 읊기 시작했다. 학교를 다니는 건 사실상 도장 찍기 정도고요, 좋은 기회로 아는 선배가 일자리를 소개시켜주셔서 거기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어요. 아, 전공이 공학.. 쪽이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나요? 이러다가 여주가 묻는다면 제 집 주소는 물론이거니와 비밀번호까지 말해주게 생겼다. 제노의 말을 끄덕이며 듣던 여주도 어느 시점에서 퍼득 그런 생각이 들어 멈칫했다. 그리고 제노가 말을 마치자 서슴없이 여과없이 그대로 내어 말했다. “정말 빠짐없이 말해주시네요.” “빠짐없이 말해드리고 싶으니까요.” 정말이지 올곧고 정직한 대답이었다. 심지어 새까맣고 커다란 눈을 단단하게 뜬 채로 여주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탓에 오히려 여주가 먼저 그 눈빛을 피했다. 아 나 이런 타입에 약한데. 타입을 운운할 정도로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은 한 손에 다 셀 수 있으면서 괜히 그렇게 중얼거렸다. *** 제노는 연애를 나서서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이 말을 들은 사람 중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이제노의 얼굴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이 일 것이다. 재수없게 말하면 제노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이 꼬였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 물론 연애에 있어서 노소는 굉장히 중요하게 따져야한다. - 제노를 사랑했다. 적당한 말투와 적당한 옷차림. 적당한 행동과 또 적당한 학력 거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특출난 외모. 그럼 이 쯤에서 들어오는 질문. 소설에서 보면 보통 그런 애들은 연애도 적당히 하다가 넌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 거니? 라는 소리와 함께 뺨 맞던데, 제노도 그런가요? 안타깝게도 제노는 그렇게 소설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인 인간이었지. 중고등학교 때 교내연애, 교외연애를 모두 해보고 대학교 새내기 때에는 CC도 했었다. 놀랍게도 뒤 끝 없이 소문 적은 CC. (그게 가능이나 한 지 글을 적고 있는 나도 의문이다.) “이제노, 뭐해?” 그런 제노가 이번엔 나서서 연애를 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술이나 까자 하고 모인 자리에서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도영이 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제노에게 물었다. 물론 기분 나쁘게 왜 남의 핸드폰을 건드리냐 라는 뉘앙스는 단 1g도 묻어나지 않는 말투였다. “내 핸드폰에 뭐 재밌는 거 있어?” 도영은 제노라면 제 간이고 쓸개고 다, 아니 제 건강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내어줄 인간이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제노가 남의 소지물을 가지고 해가 되는 일을 할 성정이 아닌게 너무 여실한 탓도 있었다. “미안 형.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우연히 화면이 켜져있길래..” 다급하게 도로 내미는 꼴을 보니 정말 재미난 거라도 보고 있었나 싶었는데 핸드폰을 건네주는 제노의 손가락 끝이 무언가를 터치했다. 받아든 도영이 본 화면에는 여주의 SNS화면이 켜져 있었다. 너 얘 보고 있었어? 도영이 내밀어 보여주자 제노의 귀 끝이 붉게 타올랐다. 올커니, 도영은 오랜만에 넷플릭스보다 재밌는 것을 찾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도영이 형의 핸드폰을 본 것은 정말 진심으로 모든 것을 걸고 단연코 우연이었다. 이 형이 왠일로 화장실을 가는데 이걸 두고 가? 라는 생각으로 살짝 본 화면이 SNS길래 아 또 우리 술 먹는 사진 올렸나보네 하고 그걸 확인할 심산이었는데. 최근 도영이 형의 게시물 아래 달린 댓글이 눈에 띄었다. ‘ㅋㅋㅋㅋ나도 술 사줘.’ 짧고 무심한 댓글이었는데 그 옆에 동그랗게 달린 프로필 사진과 그렇게 잘 어울렸다. 호기심에 이름을 누르고 그 사람의 페이지에 들어갔는데, 얼굴은 보기가 어려웠다. 온통 책이나, 영화를 보는 사진들 뿐이었는데 그게 또 분위기가 있었다. 소개시켜줄까? 먼저 물어보며 이리저리 긁어모은 사진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도영이 형의 핸드폰을 그대로 내 앞으로 끌어당겨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았다. 왜 이래 이제노, 너 겨우 사진 가지고 이렇게 사람한테 빠지는 그런 애였어? 그런 애면 뭐 어떤가 하는 나쁜 마음이 치밀었다. 응 형, 나 소개시켜 줘. 그리고 그날 술은 내가 샀다. 안 떨린다고 하면 그게 거짓말이지 별 다른게 거짓말일까. 다른 애들 얘기를 들었을 때는 여소, 남소 할 때 번호부터 교환하고, 카톡을 좀 하다가, 사진을 더 교환하고, 전화도 하다가, 날을 잡고 만난다고 했는데. 김도영은 이제노에게 진짜, 정말, 날 것의 ‘만남’을 주선했다. 제노는 여러번 거울을 보고, 제 앞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보며 심호흡을 했다. 오늘, 좋은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 “죄송하지만, 저는 연애 생각이 없어요.”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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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잘 써지길래, 충동적으로 데려왔습니다 (대책X) +) 제가 좀 많이.. 일찍 데려 왔군요.. 글은 괜찮은지.. 누가 말씀 좀.. 해주셧으면 조켓다.. ++)프롤로그 정도로 생각해주세요 뒷내용 더 있습니다
암호닉 : 동쓰 베리 딸랑이 하라하라 혀긔 메리 슈비두바 작결단1호 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