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 일곱 개의 호크룩스
32.
“난 네가 그렇게 부를 때가 좋더라.”
“뭐가? ‘태태’?”
“응. 한 번 더 불러 봐.”
“뭐……태태.”
씩 웃는 태형을 바보 같다고 놀리던 로운은 별안간 공책과 연필을 꺼내들었다.
“가만있어 봐. 이건 그림으로 남겨야 돼.”
“…….”
“아, 뭐야. 그대로 있으라니까.”
“로운.”
“응.”
“이제 가야 해.”
“으응…….”
로운은 연필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태형이 퇴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통터치라도 한 듯 로운이 입원했다. 워낙 잔병치레도 많고 매번 천식으로 고생하던 로운이 이만큼 버틴 것도 용했다. 며칠은 병동에서 쉬어야 하는 로운은 수업이 남은 태형을 차마 붙잡을 수 없어 애써 웃으며 보냈다. 태형을 퀴디치 팀 저녁식사에 보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보내기 싫은 걸 억지로 보낸다는 건 이런 거구나. 로운은 태형의 빈자리를 멀거니 보다 고개를 돌렸다.
실은 병동에 입원하면 싫은 것보다 좋은 게 더 많았다. 식사도 매번 침대 앞으로 배달오고, 듣기 싫은 과목들은 며칠 안 들을 수도 있고, 룸메이트들의 비아냥거림과도 잠시 안녕이다. 물론 연회장과 병동의 메뉴는 천지차이였고, 빠진 수업 내용을 병동에서 독학해야 하며, 기숙사 침대보다 병동 침대가 더 딱딱했지만 싫은 것보다 좋은 게 더 많다며 애써 생각한 채 로운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동에서의 하루는 별 거 없었다. 일어나면 씻고 배달된 맛없는 조식을 먹는다. 그리고 그날 수업 시간표에 따라 교과서를 뒤적거리고, 흥미 있는 부분만 읽는다. 수업 내용에 맞춰서 공부하다가는 지쳐 잠들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 맛없는 중식을 먹을 때쯤이면 태형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주러 온다. 그렇게 점심시간을 보내다 태형이 오후수업을 받으러 가면, 태형이 주고 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쓴다. 그러다 까무룩 잠에 들면 어느 새 수업을 마친 태형이 병동에 오고, 함께 맛없는 석식을 먹다가 태형이 몰래 가져온 후식을 나눠 먹는다.
태형은 점호 직전까지 로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 전 학기까지만 해도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만 들렀는데 이번 학기에 들어서부터는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폼프리 부인이 또 왔냐며 잔소리 할 정도였다. 태형은 그날 들었던 수업내용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줬으며, 로운은 제가 들었던 옛날이야기나 아직 들려주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태형에게 들려줬다.
“그래서 칼 이름이 박지민이 된 거야.”
“나도 지어줘.”
“너도? 음……뭐가 좋을까……. 제이홉? 이안? 아니야. 넌…… ‘뷔’가 잘 어울리는 것 같네.”
“뷔?”
“응, 뷔. 영어 브이(V) 자 써서 뷔. ‘김뷔’는 좀 이상한가?”
“아냐, 괜찮아. 좋아.”
“근데 그래도 너한텐 태태가 제일 잘 어울린다.”
로운은 태형의 눈을 찌르는 머리칼을 넘겨주며 말했다. 진한 갈색 머리칼은 꼭 숲 같았다. 나무가 아니라, 나무들을 품은 숲. 언제나 그 자리에 굳건히 기다리고 있는 것들의 집합체.
로운에게 태형은 그런 존재였다.
태형이 자주 온다고는 하지만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사이의 시간은 병동에만 있기에 지루한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로운에게는 더욱. 밖으로 크게 난 창문을 보며 마음을 달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로운은 폼프리 부인에게 떼 아닌 떼를 썼다.
결국 예정보다 일찍 퇴원한 로운은 기쁜 마음으로 그 날 수업을 들었지만 금방 다시 돌아와야 했다. 아직 잔기침이 남아있어 수업시간 내내 집중할 수 없었고, 주위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 교수님의 양해를 구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돌아온 일상에 로운은 지겨운 눈으로 일기를 썼다.
“로운.”
“어? 언제 왔어?”
그마저도 인기척에 후다닥 덮었지만 인기척의 주인공이 태형임을 알았을 땐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방금. 퇴원했다길래 교실 앞에서 기다렸는데.”
“다시 입원 했어…….”
“많이 아파?”
“아니. 잔기침 하는 거 빼곤 괜찮아. 그런데 이거 때문에 수업을 못 듣겠더라. 그나저나 너 수업은?”
로운은 시계를 보며 물었다. 아직 태형이 올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꼈어.”
“뭐? 그래도 돼?”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야.”
“와, 공부 잘한다고 막나가는 거야?”
태형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로운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소매를 걷어 올려 손목에 중지와 검지를 갖다 댔다. 제가 했던 것을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따라하는 모양새가 퍽 웃겨 로운은 비식비식 비져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뭐 좀 느껴져?”
“어. 느껴져.”
“뭐가 느껴지는데?”
병동엔 아무도 없었다. 입원한 학생도 로운뿐이었고, 폼프리 부인도 자릴 비운 상태. 태형은 지팡이를 꺼내며 대답했다.
“지금이 기회인 게.”
아씨오(Accio. 멀리 있는 것을 소환하는 마법) 빗자루. 빗자루를 소환한 태형은 순식간에 뒷자리에 로운을 태웠다. 그러고는 지팡이로 로운의 자리에서 가장 잘 보이는 커다란 창을 열고 날았다. 밖으로.
로운은 난데없는 드라이브에 빽 소리를 지르다가도 태형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이 얼마만의 외출인가. 태형은 호그와트 전체를 한 바퀴 돌고 교외로 빠져나갔다. 발아래에 펼쳐진 들판은 가을맞이를 하는 것인지 건조한 색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하지만 로운은 어쩐지 그것마저도 시원해 보였다.
“어디 가는데?”
“항상 가던 곳.”
항상 가던 곳이라 함은 태형이 로운을 데려갔던 약초천국이자, 호수가 저만치 뻗어있는 들판이었다. 로운은 발에 땅이 닿자마자 숲 쪽으로 뛰어갔다. 태형은 얇은 병동복만 입고 팔랑거리는 로운에게 망토를 둘러줬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때라 제법 바람이 차다.
숲 이곳저곳을 누비며 약초와 곤충들을 보던 둘은 앉을 곳을 찾아 호수 근방으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둘은 저쪽에 난 갈대가 ‘여자의 마음 갈대’인지 ‘여자의 직감 갈대’인지 토론 아닌 토론을 했다. 로운은 ‘여자의 마음 갈대’ 편이었고 태형은 ‘여자의 직감 갈대’ 편이었다. 로운은 느슨하게 풀린 망토 끈을 동여 메고는 나무밑동에 앉으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이 ‘여자의 마음 갈대’라는 근거를 말했고 태형은 묵묵히 듣다가 그런데, 하고 운을 떼는 식이었다. 그렇게 나무 밑동에 나란히 앉았을까, 어느 새 시간은 낮의 끝자락이 되어 있었다. 하늘과 같이 호수도 노을빛으로 물드는 것을 바라보던 로운이 나지막이 말했다.
“노을 예쁘다. 호수에 비치니까 더.”
“여긴 밤이 더 예뻐.”
밤엔 별이 비치거든.
“그럼 다음엔 밤에 오자.”
태형은 로운의 시선이 저에게서 노을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태형에게 항상 다음이란 건 없었기에. 이 기분과 감정, ‘지금’이라는 것을 계속 이어갈 날들. 그런 것을 기약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태형은 처음 깨달았다. 나도. 내게도. 그런 게 있었구나.
“태태.”
“응.”
“넌 왜 나랑 다녀?”
“…….”
“난 네가 분류모자를 속인 것도 알고, 디멘터들과 싸우는 것도 봤고, 네 예전 별명들이나 보바통과 호그와트가 널 두고 싸웠다는 소문까지 들었는데.”
“…….”
“내가 싫지 않아?”
“안 싫어.”
노을이 짙어지나 싶더니 이내 호수도 짙게 물들었다. 둘은 가만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바람이 둘의 머리칼과 옷자락을 스쳤고, 갈대들이 사르르 몸을 부대끼며 웃는 소리가 났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태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촛불이야.”
위태롭게 흔들리는 촛불. 이때까지 태형의 삶은 불안정했다. 불은 폭발할 만큼 커졌다가도 꺼질 듯이 작아졌으며, 촛대보다도 크게 타올라 모든 것이 끝장날 뻔도 했다. 그러고 나면 시꺼멓게 탄 촛농이 네가 누구인지 알라며 녹아내렸다. 이는 고아원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었고, 정욱을 만난 뒤로 나아진 것 같았지만 겉으로 티가 나지 않을 뿐. 태형이 배운 것은 그것을 속으로 숨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점점 검게 타올라 제 모양을 잃어가던 불이 태형을 집어삼킬 적에, 그러니까 점점 숨기는 것에 지쳐갈 때쯤 나타난 것이 로운이었다. 마구 흔들리던 내가 올곧게 타오르게 된 건 너를 만난 후부터야. 로운이 나타나고부터 불은 뜬금없이 커지거나 사그라지지 않았다. 삼킬 듯이 검게 타오르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태형은 그렇게 느꼈다. 초는 일정하게, 붉은 모습으로 타올랐다. 마치 그게 원래 제 모습인 것처럼.
“그래서 네가 안 싫어.”
“되게 심오하네.”
“…….”
“노을 예쁘다.”
“응.”
태형의 눈은 또다시 노을이 아닌 로운의 눈을 향했다. 그 안에 담긴 노을을. 로운은 한참동안 노을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을 때, 태형이 저를 보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러고 태형의 갈색 머리칼이 노을에 조금 붉게 보이는 것을 보며 웃었다. 태형은 여전히 그런 로운을 보았다.
세상 그 어느 노을보다 붉은 것을 담은 눈동자가 태형을 향했다. 그리고 태형은 생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느껴온 감정이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굉장히 소중하다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하기로 했다. 두 볼보다 더 붉은, 입술을 향해.
해가 지는 것보다 달이 뜨는 속도가 더 빠른 이곳의 노을은 그런 둘을 오래도록 비춰주었고 둘은 오래도록 마음을 나누었다. 온통 붉은 세상에서, 온통 붉은 것을, 온통 붉은 감정으로.
“근데 태태.”
“응.”
“아까 그거 여자의 마음 갈대 맞아.”
“늦었다. 가자.”
“응? 맞다니까 여자의 마음? 어? 야. 끝이 갈라져 있는데 어떻게 여자의 직감이냐고!”
천천히 입술을 떼어내고 눈을 마주했을 때 로운이 내뱉은 첫 마디는 병동으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됐다. 하늘은 그제야 감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오래도록 숨겨둔 탓에 늦어진 감색은 로운과 태형이 보았던 노을만치 짙었다.
금요일. 날씨: 바람이 선선하게 붐
오늘은 태태랑 호수에 다녀왔다. 병동에서 심심해 죽어가는 나를 데리고 태태가 빗자루를 태워줬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들떴는지 둘 다 장난을 많아 쳤다. 노을을 보다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물어봤다. 맞다 아니다를 넘어선 대답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태태가 말한 촛불처럼 노을이 내려앉는 것을 구경하다가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병동에 대기하고 있던 폼프리 부인한테 엄청 야단맞았다. 태태는 병동 출입금지령이 떨어졌고, 나는 외출금지령이 떨어졌다.
안녕하세요 육일삼입니다 29화부터 흥미로워진다고는 했지만 아직도 간보고 빠지는 경향이 큰 것 같습니다 랄랄라...
그래도 이번 화에는 굉장한 게 있으니까요! 없는 것 같지만 잘 보면 있으니까요!
상세히 서술하기에는 감정선 표현이 안될 것 같아서 그냥 썼는데 응?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싶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있긴 있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나름대로 떡밥이 꽤 풀렸는데 티가 날지 모르겠어요,, 맨날 이 소리 하지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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