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놀이공원에서 발목이 살짝 접질린 날에,집에 오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얼음팩이고 찜질팩이고 다 꺼내와 지극정성이던 재환이 덕에 금새 모두 나아버린 너야.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와. 찜질팩이랑 얼음팩을 동시에 할 생각을 했다는것 자체가 당황스러운데 어느게 먼저냐 심각하게 고민했던 재환이는 정말, "뭐가 그렇게 좋아요?" "어,언제왔어?" 언제 온건지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아 탁자에 턱을 괴고 너를 쳐다보고 있는 재환이야. "온지 꽤 됐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그냥 뭐,이것저것. 뭐줄까. 바닐라라떼?" "주문 했어요. 앉아있어요." 카운터 너머로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있는 알바가 보여. 그런데 표정이 엄청 해맑아. 아까까진 안저랬는데, 커피 두잔을 들고는 실실 웃으며 네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와. 톨사이즈 아메리카노 하나와 라떼 하나를 건네곤 재환이의 옆자리에 앉아. "자 이제 얼른 가요." 나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가라는 말이라니,혼자있는걸 싫어하는 알바인데. 얘가 오늘 뭘 잘못먹었나 싶었는데 "형님. 이 번호 가짜면 나 진짜 형님한테 찾아가서 뒤집어 엎어버릴겁니다." "내가 뭐 거짓말 하는거 봤냐? 선배한테 말하는것좀 봐." "에이,애교죠 애교. 자 그럼 다녀오세요!" 오늘따라 유난히 상큼해보이는 알바가 자리를 뜨고 재환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있는 너를 보곤 살풋 웃어. "가요.이번엔 마트 데이트." "마트? 무슨 마트?" "나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어요. 이대로 굶어죽긴 싫어서 누나랑 장보러 나왔죠." "장은 혼자서도 볼수 있지 않아?" "데이트라니까요 데이트?" "허? 나 일은?" "방금 알바 이야기 못들었어요?" "뭐 무슨 번호?" "네 번호. 쟤가 좋아하는 여자 번호. 우리과 후배거든요 그 여자애가. 그래서 넘겼죠,뭐." 그니까 지금 그 여자애 번호랑 내 근무시간을 바꿨다? 이건가. 무튼 마트엘 가자니 일단 따라나서는 너야. 다행히 아직까진 알바의 표정이 좋아보여. 한시간만 있으면 손님 되게 몰릴시간인데,잘하려나 싶다가도 알바 몇달차인데 그것하나 제대로 못할까 싶어 그냥 편하게 재환이 차에 올라타는 너야. "발목은 괜찮아요?" "응 덕분에." "앞으론 굽있는거 절대 신지 마요." "안신으면 완전 난쟁이인데?" "난쟁이 나름대로 귀여운 맛이 있거든요. 다음 데이트때도 굽 높은거 신고오면 다시 집으로 들여보낼거에요. 알았죠?" "근데 자꾸 데이트래 얘는? 내가 언제 우리 지금 데이트하는거라고 말한적 있어?" "아뇨? 대신 이때까지 아무말도 없이 따라나왔잖아요. 침묵은 긍정이지." 마침 걸린 신호에 너를 쳐다보며 헤헹 하고 웃어보이는 재환이야. 어쩜 저렇게 말을 잘 하는지. 좀 얄미워보여. 마지막 남은 커피를 한모금 마시니 신호가 바뀌고 재환이는 다시 차를 출발시켜. 근데 얘는 왜 갑자기 장을 본다는건지,이제까지 혼자 잘 봤을텐데. 싶어 운전하는 재환이를 쳐다보며 물어볼까 말까 하는데 보나마나 또 데이트라고 우겨버릴거 같아 그냥 포기하고 앞을 보는 너야. 금새 마트에 도착해 평일이라 널널한 주차공간에 주차를 해. 그러고보니 저번에 놀이공원에 갔을때도 평일이였는데. 얜 일 안하나? 갑자기 궁금해져서 재환이에게 물어봐. "재환아. 너 일 안해?" "일이요? 무슨 일? 칼럼이요?" "응. 회사 안나가?" "나 프리랜서로 일해요. 그래서 이주에 한번? 꼴로 잡지사 갔다오고 뭐. 그런 셈이죠." "어쩐지. 너무 한가해 보이더라." "에이,그렇게 시간이 남아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마감직전에 밤을 새서 그렇지." "너 그렇게 매일 날밤새다가 훅간다. 계란한판이 만만해 보이지?" "그래봤자 누나 나랑 네살차이밖에 안나거든요?" 프리랜서라,어렸을때 꽤 자유로운 영혼이였던 재환이에게 잘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카트를 끌고 일단 식료품 매장으로 향하는 둘이야. 재환이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메모장을 열어. 언뜻봐도 참 꼼꼼하게 적어온거같아. 그래도 자취 6년차라고 어렸을때보다 많이 꼼꼼해진 모습에 좀 대견하기도 하고. "나 라면 사야되요 라면." "라면? 너 혹시 인스턴트만 해먹는건 아니지?" "음... 일주일에 다섯끼 이상은 끓여먹지 않을까요?" "그렇게 많이? 라면이 몸에 얼마나 안좋은데. 밥은 왜 안먹고." "그냥 밥하고 반찬하기 귀찮아서요." 일주일에 다섯번이라니. 그런데도 저런 몸이 나오는게 신기해.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고 라면을 그렇게 많이 먹을줄 몰랐던 너는 작은 충격에 빠져. 라면 한박스를 통채로 카트에 담으려는 재환이를 겨우겨우 말리고 라면 세봉지만 카트에 담아. "반찬 하기 귀찮으면 차라리 내가 해줄게. 라면좀 줄이자." 반찬을 해준다는데도 아직도 라면에 미련이 남아보이는 재환이를 힘겹게 이끌고 식료품들이 있는 곳으로 가. "난 소세지!" 시식코너를 발견하더니 한걸음에 아주머니 앞으로 달려가는 재환이야. 걸신이 들린건지 주섬주섬 주워먹는데 아주 여기서 식사를 마치고 갈 판이야. "재환아,배고파?" "아녀. 마이써여 이거 먹어봐여" 소세지를 하나 집어 네 입에 넣어주는 재환이야. 진짜 맛있구나. 하고는 카트에 소세지를 하나 담는 너야. "둘이 애인이야? 아니면 부부?" "네?" "아 남매야? 사이가 엄청 좋아보이네~" "아 저희," "애인이에요 애인! 제 애인 예쁘게생겼죠?" 그냥 아는 동생이라고 말하려는 너의 말을 끊고는 애인이라고 말해버리는 재환이야. 어깨에 팔을 두르고 먹던 소세지를 마저 주워먹으며 뭐가 그리 재미있는건지,아주머니와 신나게 수다를 떨어. 이러다 장도 다 못보고 집에 갈까 싶어 어깨에 두른 손을 풀어내고 재환이를 두고 혼자 빠르게 계란이며 김이며 재환이가 좋아할만한것들을 카트에 담아오는 너야. "누나 어디갔다왔어요! 한참 찾았네." "전화는 뻘로 두고?" "아 맞다. 근데 뭘 이렇게 많이 샀어요?" "너 밥해줘야지. 뭐 더 살거 있어?" "빵 안샀죠. 나 빵먹을래요 빵." "빵 좋아하는건 여전하구나." 빵들이 잔뜩 쌓여있는 곳에 다다라 거의 쓸어담다시피 카트에 집어넣는 재환이야. 이러다 당뇨 걸릴까 싶어 몰래 하나둘씩 다시 진열대로 올려넣는 너야. 재환이는 눈치를 못챈건지 만족한 표정으로 카트를 밀고 생필품 코너로 향해. 간단하게 휴지와 전구를 담고 계산대로 가 계산을 하는 재환이야. 봉투 하나를 가득 채우고 두루마리 휴지 하나가 더 나와 휴지는 네가,봉투는 재환이가 나눠들어.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꽤 멀어 재환이가 이쪽으로 차를 가져오기로 하고 너는 짐들을 모두 가지고 벤치에 앉아 쉬고있어. 곧 네 앞에 검은 그림자가 하나 생겨. "...안녕." "아..." 전남편이야. 이혼하기 직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초췌한 모습이야. "잘 살고있어?" "보다시피 잘 살고있어요. 그쪽은요?" "나도 뭐.. 나 걔랑 헤어졌어." "어쩌라고요. 이미 끝났잖아. 저희가 좀 바빠서요. 먼저 가보겠습니다." 언제 온건지 네 옆에 서 네 손을 꼭 잡는 재환이야. 남은 한손으론 장본것들을 들고는 대꾸를 하려는 전남편을 그냥 지나쳐 차로 향해. 널 조수석에 태우고 네 손에 들린 휴지와 제 손에 들린 봉투를 뒷좌석에 던지다시피 두고 운전석에 앉아 빠르게 차를 출발시켜. 조수석에 앉은 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집에 도착할때까지 아무말도 하지를 않아. 집앞에 도착해서야 너에게 말을 거는 재환이야. "고개좀 들어봐요. 울어요?" "아니,안울어." 안운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눈물이 날거같아. 그렇게 파토내고 그사람을 생각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제 다시 얼굴을 마주하고 나니 그사람에게 버린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20대의 전부를 그남자에게 바쳐버렸어. 다시 되돌릴수없는 청춘을 바라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어. 그리고 이제 네옆에서 널 걱정하고있는 한 청춘이 하나 보여. 내가 네 청춘까지 앗아가는건 아닐까,무서워지기 시작해. 아무말도 하지 않는 네가 울고있다고 생각한건지 손을 들어 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재환이야.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싱그러운 청춘인 너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해.
![[VIXX/이재환] 칼럼니스트 이재환 X 카페 주인 너. 열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f/9/9f9bb1fc8ced25486222689241dba6d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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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요 ;_; 재환이를 진짜 떠나보낼까요? 전 새벽차타고 할머니댁으로 갑니다 설거지 하고 올게요ㅜㅜ 안녕! 고마운 암호닉분들 복숭아님,사채업자님,포카리님,닭벼슬님,선크림님,꽃등님,하마님 모두모두 늘 찾아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읽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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