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연은 하루종일 한숨만 푹푹 쉬고있는 백현이 수상스러웠다. 어제 장에 다녀와서부터 그런거같은데.. 자신이 아끼던 노리개를 잃어버린거라면 정말 괜찮다하는데도 저렇게 한숨만 쉬고있다. 하얀 의복을 입은채 손끝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백현은 무엇을 그리 생각하는 것일까..
" 백현이 너는 어제부터 왜 자꾸 그러느냐? "
" .... 예? "
" 이것봐라! 또 정신을 놓고 있지 않느냐! 혹시 어제 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게야? "
백연의 말에 백현은 찬열을 생각했다. 다정한 미소 그 너른한 품 커다란 손까지도 모두 꿈인 것처럼 나른하게 느껴졌다. 볼이 발그레해져 고개를 푹 숙인 백현을 보곤 백연은 직감했다. 그래 어제 장에서 무엇을 본게로군.. 응큼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백연은 씨익 웃으면서 백현을 자신을 보도록 돌려앉혀서는 손을 꾹 잡았다. 그런 백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백현은 눈만 크게 뜨고 무슨일이냐는둥 입을 삐쭉대었다.
" 무슨일이 있었던게 분명하다! 무슨일인 것이냐? 혹시.. 반한 여인이라도 본게냐? "
" 예? 아니어요!! 여인이라니... "
차마 백현은 여인이 아니라 사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현나라에서 동성애는 비판받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남첩을 대놓고 두는 관리들도 있었고 남자와 사랑에 빠져 종종 혼인을 올리지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평생 이곳에 갇혀 살아갈 몸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다시는 볼 수없어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자신의 누이에게 말했다가는 그 사람을 찾아주겠다며 이리저리 돌아다닐것이 뻔했다.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손에 힘을 풀어버렸다. 제 누이에게 그냥 미안했다. 이리 행동하는 자신이 너무 답답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백현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곤 백연은 말을 안해도 알 수있었다. 무슨일이 있었군.. 얼굴에 저리 다 들어나는데 무엇을 숨기겠다고.. 쯧하고 혀를 찬 백연이 몸을 돌려 앞을 바라봤다. 백연은 참으로 백현이 좋았다. 자신의 동생은 너무나도 착하여 욕심을 내는 법이 없었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마냥 좋다좋다만 하는 백현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그 쌍생의 아이가 죽었다면 본채로 나오고싶다 하며 아버지께 떼를 써도 드러주실텐데 그냥 무슨 효자노릇을 하겠다고 이 뒷채에 갖혀있는것인지.. 어머니가 그리 아끼는 둘째 아들을 위해 만들어놓아도 밖에 나와 입어보지 못할 성인식 의복을 지어놓으시고서는 그것을 보며 매일 눈물을 지으신다 말하면 백현은 나오겠다 생각이라도 해볼지.. 백연은 조금 울컥하기까지 했다.
" 너는! 내가 시집이라도 가면 어찌하려 그러느냐? "
" 무슨 말씀을 그리하셔요 누님.. 누님이 시집을 가면 집안의 경사가 아니겠습니까.. "
" 그것이 아니라! 내가 가면 누가 너와 이리 같이 있어준단말이야.. "
" .... 아버님도 자주 오시려 하시고 어머님도 매일 저녁에 오셔서 이야기를 나눠주시는데 무엇이 걱정이시란말입니까... "
" 이 바보천치같으니라구, 아버님께 내가 떼라도 써야겠다. 너를 시집갈때 혼수로 데려가야겠다고! "
누이의 심통이 무엇을 말하는지 백현은 알 수 있었다. 이 넓은 집에 자신 혼자만 외로히 남는것이 걱정되셔서 그러시겠지.. 허나 누님.. 이 액운덩어리를 어찌 데려가라 아버님께서 그러시겠습니까.. 그러다가 소박맞으셔요.. 장난스럽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백현의 마음이 저릿하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백현은 잠에 들기전에 상상을 한적이 있었다. 자신이 쌍생이 아니라 평범한 사내아이로 태어났으면 부모님께 마음껏 사랑받고 누이와 정답게 뱃놀이도 가고 딱 한번 본것이 다였지만 자신의 남동생과도 글공부를 하며 그리 평범히 살지않았을까 하고.. 하지만 모두 헛생각일뿐이었다.
어쨌든 자신은 쌍생의 아이었고 액운을 받는 아이었다. 억울하다 생각하면 무엇을 하겠나 싶어 매일 누르고 눌렀지만 서러움은 그래도 지워지지않았다.
* * *
전하- 대장군님이 드셨사옵니다.
내관의 커다란 목소리에 들라하라는 대답을 하자 창호문이 열리며 자주빛 궁의를 입은 변중건이 들어와 몸을 숙여 인사했다. 가만히 아래를 바라만 보고있던 찬열은 백현을 생각했다. 그 아이는 피부가 하얗다 못해 창백하기까지했는데.. 아무래도 항부인을 닮은 모양이었다. 턱짓으로 인사를 받은 찬열은 가만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변중건을 보며 사람 좋게 웃었다.
" 변장군 편히 앉아 고개를 들도록 하시게. "
" 아닙니다 폐하.. 제가 어찌 감히.. "
" 어허, 그리 하래도.. "
찬열의 말에 편히 자세를 취한 변중건은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봤다. 저 수려한 외모에 천하를 호령하는 현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방탕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자신의 형제인 전대 황제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어 그 길로 전쟁에 돌입해 뛰어난 능력으로 천하를 통일해 삼년째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다. 황제에게 아직 젊은 나이는 약점이 아닌 강점이 되었고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을까도 했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다. 어릴적 그의 무예 스승으로 만나 가르칠때만 해도 그저 조그마한 아이였을뿐인데 이리 강녕해졌구나 싶어 그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런 황제가 자신에게 무슨 부탁이 있어 동이 트자마자 만나러 오라 사람을 보냈는지.. 앞에 놓여진 찻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 변장군에서 여식이 있지. "
" 예.. 여식이라면 있습니다만.. "
" 흐음.... 그 아이를 비로 들이고 싶은데.. "
" 예? "
깜짝 놀란 변중건은 들이켰던 차를 입밖으로 뱉을뻔 하였다. 백연이 언제 황제를 만나 눈에 띄인 적이 있었나, 거기다가 그 아이는 황제의 취향과는 아주 딴판이었다. 천방지축에 수를 놓는것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비라니.. 당황스러움에 찻잔을 내려놓고 변장군은 미간을 구겼다.
" 폐하.. 허나 제 여식은.. 이미 혼처를 정해두었을뿐더러 황제폐하와 맞지 않으실 것입니다.. "
" 그럴리가, 내가 본 백아 낭자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혼처가 있다는 이야긴... "
잠깐, 백아라니. 자신의 집안에는 백아라는 여식이 있지도 않았다. 여식하나에 사내아이만 둘인데 어찌하여 백아라는 아이가 있을 수 있는지.. 그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혹시나 황제가 잘못안것은 아닌지 자세히 용모를 묻자 황제는 어느 여인이나 보기만해도 반해버릴거같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고 찬찬히 백현의 용모를 읊었다.
하얀 피부에 물방울 모양의 눈이 참으로 깊고 맑았는데, 노란색이 잘 어울리고 검은빛보다는 살짝 고동빛이 도는 머리가 고왔다. 그 기색이 가녀린 것이.. 찬열은 어젯밤에 본 백현의 생김새를 그대로 읊었다. 수줍게 미소를 짓던 백현의 모습은 평생 아무에게도 보여주지않고 자신만 보고싶을 정도였다. 그런 황제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있던 변중건은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져왔다. 백아가 누군지 알 수있었다. 백현이, 다른 두 아이와는 다르게 자신보다는 제 어미를 쏙 빼닮아 하얗고 맑은 피부를 가지고 그저 웃기만하던 내 둘째 아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릿하고 안타까워 그냥 불쌍하기만 한 그 아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여식이라니 바깥은 본적도 나간적도 없을텐데 어찌하여 황제가 그 아이를 보았나 싶어 온몸에 식은땀이 절로 흘렀다.
" 폐.. 폐하.. 그 아이는 저희 둘째.. "
" 여식이 둘이나 있었나? 그런 이야기는 듣지못했는데.. 사내만 둘이라 하여서.. "
사내만 둘이옵니다. 그러니깐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그 아이가 저의 둘째아들이라는 말이 목구멍 끝에 걸려 들락날락했다. 허나 이 말을 하면 황제가 자신의 둘째 아이를 어떻게 할지 몰랐다. 그 상처가득한 아이를 위험에 처하게 할수는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인 변중건을 궁의를 부여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더듬했다. 폐,폐하.. 그.. 아이는 몸이.. 약하여.. 뒷채에.. 변중건의 말에 찬열은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약하다니 어쩐지 그때 잡았던 팔뚝이 처연하게도 말라있었다. 그리했군, 그래서 보지못했던 것이었다. 찬열이 궁금한 것이 해결되어 미소를 지었다.
" 어쩐지, 간택일날 보지못한 이유가 그것이었구나. "
" 예, 예... 그리하여 비로는 조금 무리가.. "
" 궁궐이 자네의 여식에게는 더 좋을 것이야. 좋은 약재들도 많고.. 아, 내가 장군의 집으로 약재라도 보내야되겠군. "
" 아, 아닙니다! 저희도 충분히 좋은 약재를... "
난처한 변중건은 이리저리 핑계만 대기 바빴다. 그런 행동을 바라보던 찬열은 이내 얼굴을 구겼다. 그러니 장군의 말은 내게 자신의 여식을 보내기 싫다. 이거로군. 턱을 괸채 눈을 감고있던 찬열은 손을 저으며 그만 나가보라 하니 중건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빠르게 인사를 하곤 뒤도 안돌아보고 방안을 빠져나갔다.
사실 찬열은 눈을 감으면 자꾸 생각나는 백현의 얼굴에 어젯밤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사실 눈을 떠도 아른아른 생각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가녀린 몸을 다시 한번 안고 싶었고 조근조근하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어제 장에서의 잠시뿐인 만남이었는데 왜 이리 마음이 동하여 안달이 나는지 찬열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안타까웠다. 감았던 눈을 뜬 찬열은 밖에 서있던 종인을 불러들였다. 대장군의 둘째여식이 몸이 약하다 하니 약재라도 보내주거라. 명령에 고개를 숙이곤 물러나려던 종인을 무언가 생각이라도 난듯 갑자기 불러 세운 찬열은 웃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종인의 앞으로 걸어갔다.
" 내가 가야겠다. "
" 예? "
" 그리하면 그 고운 얼굴을 다시 한번 볼 것이 아니냐, 나갈채비를 하거라. "
당황한 내관은 이내 나갈채비를 하라 궁녀들에게 명하고는 분주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찬열은 웃으며 금빛 황룡포를 벗어던졌다. 내관의 보좌에 명문가 사내의 의복을 챙겨입기 시작하는 찬열은 벌써부터 눈앞에서 웃고있는 백현의 모습에 마음이 급해져왔다.
* * *
황제의 부름이 가시자마자 재빠르게 퇴궐해 들어온 변중건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사랑채에서 시름에 빠져있었다. 항부인은 그런 남편을 보자 걱정이 들어 손을 마주잡아왔다. 무슨일이세요.. 황제께서 뭐라 하셨길래.. 조용히 물어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든 변중건은 자신의 부인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지 어미를 닮아 하도 어여뻐서 태어나고 처음은 여자인줄 착각도 했었다. 뒷채에서 그리 놓고 키워도 한번도 울지않던 아이였다. 제 누이와 성격이 바뀌었으면 하고 바랬을때도 있었다. 그래 차라리 여자였으면.. 그랬으면.. 어쩌다 황제에 눈에 띄인건지.. 미간을 구긴채로 눈을 꼭 감았던 중건은 이내 벌떡 일어나 뒷채로 빠르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왜그러냐며 종종 걸음으로 쫒아오는 부인을 뒤로한채 마당에 들어서자 예전에 작게 발이라도 담궈볼수있게 연못이라도 만들어 달라해서 만들어준 작은 연못에 백연과 백현이 나란히 발을 담그고 있었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물장난을 하는 두 아이가 너무 고와 중건은 마음이 쓰렸다. 가만히 서있던 중건은 주먹을 꽉 주고는 숨을 내쉬었다.
" 어? 아버지! 어찌 이 시간에 뒷채로.. 궁에 가셨다 하셨는데... "
백연이 먼저 제 아비를 보고 인사를 하자 맨발로 따라 일어나 황급히 인사를 하는 백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제 어미와 똑같이 고왔다. 하얀 빛깔의 의복이 참으로 잘 어울렸다. 얼굴마저도 너무 하얀거같아 이질감이 생길법도 한데 그저 곱고 또 고왔다. 찬찬히 뜯어보면 황제가 아름답다 칭송할만도 했다. 하지만 제 아들을 황제의 비로 주기는 싫었다. 그렇게 왕궁으로 들어가면 안그래도 상처 많은 아이가 얼마나 모진 말은 다 듣고 살까 싶어서 다시 한번 마음을 굳게 먹었다.
" 너희 둘이.. 어제 어디를 다녀왔느냐. "
" ... 예? "
깜짝 놀란 백연과 백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버지가 아시는지, 혹시라도 수하중에 누군가가 보고 말이라도 건낸건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또 뭐라 경을 치실까, 회초리 질이라도 하실까 싶어서 백현은 눈을 꼭 감고 길게 늘여놓은 옷소매를 꼭 잡았다. 누님이 맞기라도 하신다면 그거야 말로 백현에게 제일 큰 벌이었다.
" 백현이, 네가 여인네 분장을 하고 나갔느냐. "
" 아버님 그건.. ! "
" 백연이 너는 조용히 해라! "
" ..... "
" .... 예.. 그러했습니다... "
뒤에서 듣고있던 항부인은 깜짝 놀라 다리가 풀릴것같아 옆기둥에 기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뜬 중건이 앞장서서 뒷채로 들어가자 머뭇거리던 백연과 백현이 신을 신고 따라들어갔다. 누님.. 백현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제 누이의 손을 잡자 백연이 씨익 웃으며 백현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괜찮다 백현아, 회초리 좀 맞으면 어떠하다고 그러느냐 어제 즐거웠으니 그걸로 됬다. 제 어깨를 두드려주며 당당하게 말하는 백연을 바라보며 백현은 쓴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렇게 또 누이의 액운이 되는구나 싶어서, 언제쯤이면 이 생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건지 백현은 참으로 슬펐다.
창호문을 열고 들어가자 얼마전 어머니께 선물로 받았던 등나무가지로 길게 만든 의자에 기대에 중건이 앉아있었다. 그 모습에 마음을 다졌는데도 겁이나 백현은 입술을 꼭 물었다. 그러곤 중건의 반대편 의자에 백현과 백연이 나란히 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중건이 고개를 들어 둘의 모습을 바라봤다. 억지로 떼지지 않는 입을 떼어 뭐라고 아이들에게 설명해줘야 하는건지 너무나도 막막했다. 뒤를 따라온 항부인이 백연과 백현의 뒤에 서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지아비를 바라봤다. 제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어깨를 꾹 쥔 손이 어미의 손이었다.
" 백현이, 넌 어제 장에가서 무엇을 보았느냐. "
" ... 예? 아.. 장신구들도 보고.. 연등도 보고.. "
" 정녕 그것만 보았느냐. "
" 아버지께서 무슨말을 하시는지 소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
" 정녕 그것만 보았느냐 물었다. "
제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건지 알 수없는 백현은 그저 제 눈만 도로록 굴리며 어찌 할줄 몰랐다. 그러다 문득 찬열이 생각났다. 아.. 아버지께서 아셨구나, 내가 여인네의 복장을 하고 그 사람을 만났다는걸 아셨구나.. 당황해하는 백현의 표정이 맞다하는거같아 중건의 손이 떨려온다. 고개를 푹 숙이고 제 아버지의 떨리는 손을 바라보는 백현의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듯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다.
아,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떨리는 백현의 목소리가 중건의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했다. 그저 쓰린 마음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데 집사가 황급히 문밖에서 큰 소리를 낸다.
" 장군님! 아이고.. 좀 나와보십시오, 큰일입니다! "
" 무슨일인데 이리 소란이냐. "
비척비척 힘 없이 몸을 일으켜 문을 열어보니 집사의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다. 왜 그리 찾았냐고 묻지 않느냐, 심각한 얼굴의 제 주인을 보며 머뭇거리던 집사는 고개를 숙이며 이내 다시 황급히 물 쏟아내듯 말을 이었다.
" 황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
" 황궁에서? "
" 예예.. 둘째아가씨께 약재를 전하러 왔다는데.. 저희 집에는 둘째 아씨가 없지않습니까.. "
그래서 무르려하는데.. 집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황급히 본채로 중건이 뛰어간다. 백연과 백현은 어찌해야하는지 당황스러워하고 있는중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항부인이 다시 안채로 가려던 집사를 불러 세우고는 백연을 잡아 끌어 집사와 함께 세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 나온 백연은 제 어머니의 얼굴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깜짝 놀라 손으로 제 입을 가렸다.
" 어머니 설마... "
" 얼른 네 방으로 가서 여인네의 옷과 장신구를 가져오너라, 분과 연지도! 어서! 집사도 같이 따라가서 가져오시게. 많이 고운걸로 가져와야 할것이야."
백연이 우물쭈물 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백현을 바라봤다. 고운 제 동생.. 다 제 잘못인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바들바들 떨려 제대로 걷지못하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 백연은 자신의 방으로 힘껏 뛰었다.
백연이 나가고 항부인을 뒷채의 문을 닫고 백현을 쳐다봤다. 백현은 언뜻 제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은 듯 하였지만 항부인이 황급히 온 뒷채의 문이란 문은 다 닫아버려 어두워진 방안에서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어머니.. 작게 제 어미를 부르는 목소리에 항부인이 백현에게 걸어와 옆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고있었다. 가프게 쉬던 숨이 점차 안정이 되고 항부인의 울음소리가 커져갈때쯤 문밖에서 백연이 큰소리로 제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