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IOUS In mysterious 06
WRITTEN BY. 키드
*
'일주일정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문이 모두 훼손된 상태라, 치아검사밖에는 방법이-'
'…거의 90% 일치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닮았습니다. 백현과.'
정말 죽었을까. 아니. 그럴리가. 백현은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걸, 나는 잘 알고있다.
"아니야. 착오가 있었겠지."
"-제발 눈좀 붙이세요. 쓰러지십니다."
"설마. 그럴리가 없잖아.백현은 약한 사람이 아니야."
하- 대답대신 한숨을 쉰 오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가는 그 모습에도, 나는 세훈이 원하는 대답을 해 줄수가 없다. 한국에서의 6시간, 16시간의 비행, 차 안에서의 2시간. 그리고 지금, 준면을 기다리는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믿었으며 무엇때문에 이렇게 초조하단 말인가. 끔찍한 소식을 필두로, 두 사람은 지금까지 연락조차 되지 않았고, 그들이 머무르던 오피스텔은 며칠동안 사람의 인기척이 없었다고 한다. 마치, 신기루처럼. 백현과 경수가 사라진 것이다.
리어와 오필리아. 민석은 그들이 죽었을거라 했고, 나는 그 말을 믿지않기에 지금 뉴욕의 병원에 있다. 다시금 확인한 준면의 통화는 내게 10%의 작지만, 큰 확신을 주었다. 90%의 절망보다 내겐 10%의 희망이 있다.
"일어나세요. 수술끝났답니다."
"준면은."
"시신과 함께 영안실에 있습니다."
애초에 나는 믿지않았으니까. 백현이, 그가 죽었을리가없다. 날 두고서 절대로.
*
"확실하게 처리했지?"
"두 사람과 최대한 닮은 사람으로 구했어. 두 명 모두 고아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들이야.
지문까지 태웠으니 신원확인은 걱정할 필요 없을거야."
"-좋아. 마음에 들어."
"…하나만 물어보자."
뭘? 사뿐히 계단을 내려가던 동작을 멈추곤, 고개를 돌려 묻는다. 주말, 한적한 오전. 카이렌 궁에서의 휴일을 맞이하는 카이와 그를 지키는 가드.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돼?"
"뭘 말이야."
사뭇 진지하게 물어오는 사내에게 카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진지하게 묻잖아. 올라간 눈썹위로 불만섞인 시선이 드러났다. 그제야 알았다며, 카이가 손을 내저었고. 하늘높이 솟구치는 물줄기아래, 간이계단에서 뛰어내린 카이가 걸음을 옮긴다. 분수대를 뒤로하고, 복잡하게 얽힌 장미정원의 미로를 향해.
"설마 내가 저녀석들 말을 전부 믿었을거라 생각해?"
"…"
"적당히 거르고 걸러서 들어야지."
"…"
"찾긴 뭘찾아. 애초에 없는걸."
사방으로 뻗친 장미덩굴을 훑은 카이가 감흥없는 눈길을 거두었다. 쓸떼없이 화려하기만 한 카이렌궁에서, 그나마 봐줄거라곤 정원이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썩 구미에 당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카이를 향해 사내가 뭐라 말하려 입을 벙긋거렸지만, 이내 곧 입을 다물고 만다. 말해도 아무 소용없을테니. 평소 꼼꼼한 루한의 성격답게 흡잡을데 없이 완벽한 정원은 카이의 취향을 백프로 반영한 것이었고, 카이는 입버릇처럼 '무조건 아름답게'를 외친다. 그렇게 화려한걸 싫어하는 녀석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그의 미적취향에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제 앞에서 한뼘 앞서 걷는 카이를 향해 입을 삐죽이며.
천천히 좀 가. 어느새 제 시야에서 한참 멀어진 카이를 향해 사내가 목소리를 높였고,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본 카이가 대답없이 웃는다. 뭐가 좋아서 웃냐.
"뭐 어때. 여기선 날 죽일사람이 없는데."
퍽이나. 폭탄 설치하겠답시고 잠복했던 정원사는 잊었나봐? 불만섞인 대답에 카이가 제 이마를 탁- 짚었다.
"아아- 그녀석이 있었지. 까먹었네."
"몸 조심. 자나깨나 조심하라고. 특히- 네가 끌어들인 저 두사람."
"왜? 어때보이는데?"
"…조직 원탑 저격수에, 천재 해커. 무슨 생각으로 시한폭탄을 들인거야. 그것도 둘씩이나."
알아보니 두 사람들 모두 입이 쩍- 벌어질만한 실력파에 상상도 못할 경력을 쌓은 이들이었다. 한 명은 '일당 백'이라는 미친 저격수였고, 그의 최고의 파트너는 위키리스크에서 스카웃제의가 들어왔다는 아이큐 백팔십의 해커였다. 말도 안되는 조합이잖아.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사내가 하던 말을 흐리듯 내뱉었다. 며칠전 이바닥에서 난다긴다는 이들도 두손 내저어 포기한 '태국 라마 실종사건'을 이틀만에 해결한 것도 이 두사람, 영국 왕실에서 극비리 찾아헤맸던 '물방울 사파이어'를 찾아낸것도 이 둘. 끝없이 내려가던 스크롤바는, 결국 페이지를 넘기고 넘겨 멈췄고 놀란 사내가 당장 카이를 찾아간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다급하게 저 두사람을 되돌려보내야 한다는 말에, 정작 당사자는 뭐라 했더라.
"괜찮다니. 대체 어딜봐서 괜찮은거야."
"좋은데? 심심하지도 않고, 지루할새도 없고."
"…그 따위 이유라면 집어치워. 차라리 카지노를 매수하던가."
"도박은 질려."
하-하- 지금 그걸 말이라고. 네가 날려먹은 비자금이 얼만지는 알아? 무섭게 치켜뜬 눈을 한 사내가 언성을 높였다. 위험한 사람들이야. 당장 돌려보내.
"…한 명만 보내면?"
"무슨 소리야. 대체."
"뭐- 어차피 둘다 죽은걸로 알고 있을텐데. 한 명만 돌아가도 감사할거야. 조슈아는."
조슈아 박 성격에 퍽이나 감사하겠다. 너 잡겠다고 썬포그가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기나 해? 대대로 이어진 조직간의 라이벌의식인지, 아니면 밑도끝도 없는 복수심인지 몰라도 썬포그와 카이렌의 사이는 결코 좋지못했다. 겉으로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알고보면 꽤 응어리진 사이랄까.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항간에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조만간 썬포그가 아예 미국에 주저앉는다는 소리가 있었고. 그 이유야 카이렌을 잡기 위해서 임은 물보듯 뻔했다. 썬포그와 카이렌, 조슈아와 카이킴. 지긋지긋한 인간들. 사내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다.
"둘다 보내."
"…싫어. 차라리 둘 다 데리고 있지뭐."
"…차라리 한 명 보내. 한 명이라도 떨구자 제발."
"그럼 저격수를 보내야지."
무슨 소리야. 당황한 사내가 입을 벙긋거렸다. 야-너-
"해커를 보내야지. 막말로 그 사람이 고급정보를 다 빼내면? 무슨 수로 막을건데?"
"총은 안 위험하고?"
"상관없어. 몸보다 무서운게 이성이잖아. 잘 아는네가 왜그래."
이상해 너. 허리위로 손을 얹곤 삐딱하니 시선을 마주한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아니, 다르지 않은가. 쉬이 짐작할래야 할 수 없는 카이는, 도저히 제가 예상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남들과는 다른. 평범함의 범주에서 빗나간 사람. 그런 사내를 향해 카이가 알듯말듯하게 입매를 끌어올렸고, 이내 곧 몸을 돌린다. 대답없이 그가 가던길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찾았습니다.'
'뭘 찾았는데?'
'당신 어머니요.'
'…정말?'
'거짓말 못합니다. 저는.'
거짓말. 잘만 하면서. 한 손을 뻗어 감싸쥔 것은 탐스럽게 벌어진 장미. 천천히 그것을 그러쥔 손에 힘을준다.
'그러니까-'
'응.'
'우릴 죽이면 안된다는 겁니다.'
툭- 투둑- 힘없이 꺾인 고개가 휘청하며 추락한다. 제 손바닥위로 붉그죽죽한 물기가 퍼진다. 감흥없이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카이렌궁, 지나치게 화려해서 제 어머니가 불편해 했던. 이미 10년이 넘은 오래전의 얘기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모든 말. 자신을 마주본 흐트러짐 없던 시선. 어두운 뒷골목에서도, 화려한 불빛 아래서도.
하지만- 그가 단 한가지 놓친것.
"이미 십년전이야. 바보같긴."
어머니의 죽음은 10년 전. 제 시간이 멈춘것도 10년 전.
*
'아- 안-안녕하십니까!! 변백현입니다!'
'제 아들놈 됩니다. 이래뵈도 도련님이랑 동갑입니다. 허허-'
'마,맞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도련님!'
'아직 부족하니 잘 좀 봐주십쇼. 이놈아 허리도 굽혀야지-'
봄이었던가. 여름이었나.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를 더듬고 더듬어 너를 떠올렸다. 그 어느날, 앳된 모습을 다 벗지도 못한 네가 겁없이 나를 가로막고 섰던. 당황한 내가 뭐라 말 하기도 전에 무턱대고 인사부터 했었는데. 넌 기억하고 있을까 백현아. 나는- 아직도 전부- 네가 했던 말- 그 모두를- 기억하고 있는데.
'도련님은 왜 보스자리를 마다하세요?'
'싫어- 머리아프잖아. 그 어려운걸 왜해? 백현은 내가 힘든게 좋아?'
'아닙니다! 저는…그냥, 도련님이 보스가 아닌모습은 상상이 안되서-'
'보스가 어울린다는 거야?'
'…예. 어울리십니다. 멋있어요.'
열 아홉. 너를 만난지 2년이 되던 해. 나는 어이없게도 네 말 한마디에 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해버렸고.
'도련님- 저도 이제 썬포그에서 일할 수 있어요!'
'이제야 허락 받았네.'
'하하- 그래도 열심히 설득한 보람이 있습니다- 어머니가…입원하신 것만 빼면…뭐.'
'…효자나셨다. 으이구 백현아.'
'하지만! 도련님 모실수 있잖아요. 저는 진짜 좋은데-'
날 모셔서 좋다는 말에, 며칠간 바보같이 실실대며 웃곤했고.
'이번엔 꼭 네가 가줬으면해. 네가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없어.'
'…제가 꼭 가야합니까?'
'부탁할게.'
'그럼 가야죠. 보스 명령은 뭐든 따릅니다. 저 아시잖아요.'
널 믿기에 임무를 맡겼다. 믿음과 신뢰와 그리고 사랑하기에.
"…아직 확실하진 않습니다."
"상관없어. 걷어."
"보스- 하지만-"
걷어!! 결국 참다못한 찬열이 소리를 질렀다. 왜!! 왜 안되는데?! 확실하지 않다며!! 쾅- 찬열에 의해 밀쳐진 준면이 벽에 부딪혔고, 놀란 세훈이 찬열에게 손을 뻗었다. 손대지마- 허공에서 멈춘 손을 향해 찬열이 나즈막히 읊조렸다. 방금전의 분노는 어디가고, 무섭도록 냉정하고 차분하게 말을 잇는다. 백현부터 걷어. 손을 거둔 세훈이 차마 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렸다. 이토록 흔들리는 보스를. 지금껏 단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그럴리가 없잖아. 수없이 되뇌고 되뇌었다. 결코 백현이 제 곁을 떠날리가 없다고. 방금까지 이 곳에 들어오기 전만 해도 굳게 믿었다. 지금도 변함 없는 마음. 찬열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시신위의 흰 천을 걷어올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조심스러운 동작을 하는 동안, 부딪힌 어깨를 감싸쥔 준면이 찬열 곁으로 다가간다.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닮았네."
"백현일 수 있습니다."
"닮았을 뿐이잖아. 백현이 아니야."
"…그러기를…바래야죠."
싸늘한 망자의 냉기를 뿜는 시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올곧다. 너는 누구지. 백현을 닮은 사람, 백현일지도 모른다는 사람. 어지러이 제 머릿속을 헤집는 수많은 말들을 무시하곤, 쥐었던 천자락을 손에서 놓았다. 파랗게 질린 얼굴을 지나, 몸 이리저리 붉은 화상자국이 가득한 시신을 보며 찬열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골격조차도 백현을 닮았음을 부정할 수 없기에. 그런 찬열을 바라보던 준면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뭐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투로 제게 답하는 찬열을 향해 준면이 다시금 입을 열려했지만, 이내 곧 찬열의 행동에 다물고 만다. 보스가, 이미 식어버린 차디찬 손을 감싸쥐었기 때문에. 말없이 찬열의 행동을 바라보는 이는 준면뿐만이 아니었다. 한 뼘 뒤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세훈까지. 보스가 시신을 확인하는 동안, 이미 그는 경수일지도 모르는 이를 확인했다. 그리곤 말없이 천을 끌어올렸다. 빌어먹게도- 너무 닮았어서. 준면과 세훈의 얼굴이 착잡하게 굳는다. 빌어먹게도 백현을 닮은 시신. 어쩌면, 진짜일 지도 모르는 거짓말 같은 상황. 그런 두 사람을 뒤로한 찬열이 차가운 손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차갑네. 따뜻한 제 손과는 달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손을, 찬열은 마치 귀한 보물이라도 만지는 것 마냥 조심스레 다룬다. 그런 보스의 행동에, 세훈이 하- 얼굴을 감싸곤 한숨을 쉬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던, 그 처음과 끝은 백현이 분명한 보스의 감정. 좋아하는 상대를, 사랑하는 이를 향한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지켜봤던 자신이 아니었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꼈다는 사람도 백현이었고, 죽을때까지 옆에 두고싶은 사람도 백현이라고 했던 사람. 백현 앞에서는 작아질 수 있었고, 자신이 장난처럼 늘어놓는 백현의 취향도 모두 믿어버릴만큼- 변백현, 단 한사람을 향해 맹목적인 애정을 쏟는 사람이.
"정말…너야?"
"보스-"
"아니야. 아니라고-"
"제발…아직…전부, 확실한게 아니잖습니까."
지금 위태롭다.
*
"확실해? 소름돋게 닮긴 했어도, 백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물론. 근데, 닮은것 제외하고도 신분증은? 품안의 총은? 심지어 치아구조도 일치하다고 나올 판국이야."
"…빌어먹을-"
"나라고 좋아서 확신이니 뭐니, 그따위 소리를 지껄였을것 같아? 나도 미치겠다.
보스가 저러는것도 미치겠고, 동생같은 녀석 두명이 저렇게 누워있으니까 돌아버릴것 같아.
-그러니까 기다리자. 오세훈, 오비서 너마저 흔들리지마."
탁- 들고있던 컵을 소리나게 내려놓은 준면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보스는 아직도 영안실에서 나올생각이 없었고, 세훈은 세훈 나름대로 패닉이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자신은 지금,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던 검사를 확인하러 가야 한다. 그것마저 일치한다고 나올 경우에는- 말 그대로 거지같은 상황이 진짜라는게 확실해 지는 것이었고, 저 두 시신이 백현과 경수라는 뜻이었다. 볼품없이 갈라진 입술을 깨문 세훈이 한숨을 쉬었다. 이럴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보스를 위로하는것도, 준면을 도울수 있는것도. 그 무엇하나 할 수 있는게 없다. 이내 문 밖으로 나서려는 준면을 향해, 세훈이 입을 열었다.
"…연락줘. 일치던, 불일치던."
그래야 현실을 받아들이니까.
*
"백현아."
대답좀 해봐. 백현아.
"하- 손이 차갑네. 백현아 왜 누워만 있어."
하아- 식은 두 손을 감싼 찬열이 입김을 불었다. 춥겠다. 불빛 한 점, 따뜻한 온기 하나 없는 영안실 안을 휘감은 싸늘한 공기에 찬열이 더욱더 잡은 손을 꽉 쥐었다. 이상하지. 나는 네가 아닐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까. 백현과 닮은 사내를 바라보는 눈길이 애처롭다. 절박하게 매달리듯, 사내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보내지 말걸."
널 미국으로 보내는게 아니었는데.
"내가 바보같았어. 사랑하는 사람을- 믿는답시고- 내가-"
병신같이. 너를. 그리고 경수를. 너희 두 사람 모두를 죽여버렸어.
"나같은 놈이 무슨 보스라고. 내가..."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어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한기가 느껴지는 영안실 안에서, 유일한 온기를 내뿜는 단 한사람. 찬열은 말없이 잡은 손에 힘을 줄 뿐이었다. 부디, 네가 백현이 아니어야 할텐데. 아니, 아닐텐데. 확신과 불신사이에서 끝없이 배회하는 동안, 어느새 소리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세훈이 천천히 그를 부른다. 보스-
"…"
"연락이 왔습니다."
"…"
"…백 프로 일치한다고 하더군요."
변백현 지금 너는. 뒷말은 입에 담아둔채, 세훈이 찬열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찬열의 곁에 다다랐을 때쯤. 아무말 없이 잡은 손위로 고개를 묻은 그를 향해, 나즈막히 입을 열었다. 준면이 제게 했던말. 그리고- 보스가 꼭 들어야 하는 말. 어쩌면- 앞으로 일이 더 복잡해 질 수 있는 말을.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손 놓으세요."
탁- 언제부터 쥐고 있었던 겁니까. 잔잔히 온기마저 감도는 손을 불쾌하다는 듯 떼어낸 세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보물이라도 되세요? 짐짓 매섭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찬열이 놀란 눈을 하곤 고개를 돌린다. 어? 방금전과는 백팔십도 달라진 오비서의 태도에. 잡고 있던 손을 매몰차게 떼어내는 것도 모자라, 이번엔 까칠한 말투까지. 휙- 당황한 찬열을 뒤로 밀어버린 세훈이 이제는 아예 끌어내렸던 흰 천을 다시금 잡아올렸다. 못 볼거 봤네. 두 눈을 찡그린 모양새가 가히 썩 좋지만은 않다.
"불일치와 백프로 일치하답니다."
"…뭐?"
다,다시 말해봐- 더듬지도 않던 말을 더듬으며 입을 벙긋거린다. 당황한 제 보스를 향해 세훈이 목소리를 높였다. 잘 들으세요.
"살아있습니다."
"…"
"적어도 이 시체는."
"…"
"백현이 아니란 말입니다."
분한 목소리로 제게 소리를 지르던 닥터김. 그리고, 마지막엔 기쁜 목소리로 제게 외치던 녀석. 세훈이 찬열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에 가득찬. 볼품없이 주저앉은 찬열이 멍한 얼굴로 세훈을 올려다 봤고, 세훈은 다시금 말했다. 백현은 살아있습니다.
'처음엔 우리도 거의 넘어갈뻔 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더러운 술수를 썼더라고.'
'아예 치아를 박았더라. 그것도 애들거랑 똑같이.'
'못들었어? 백현이, 경수. 살아있다고!'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세요. 할 일이 태산입니다. 살아있다는 말에 울듯말듯 일그러지는 찬열의 얼굴을 보며 세훈이 말했다. 정말, 살아- 긴장으로 풀어진 몸을 채 가누지도 못해 아무렇게나 벽에 기댄 찬열이 말을 더듬거렸고, 그런 제 보스를 향해 세훈이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일단, 백현과 경수가 아니라는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누가, 감히 겁없이 썬포그의 남자들을 건들인단 말인가. 그것도 죽음으로 위장해서. 이번 뉴욕임무와 맛물린 이같은 사건을, 그저 넘길 수 많은 없는일. 일단은- 실종된 두 녀석들을 찾는게 급선무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스가 전면에 나서는 수 밖에 없다.
"백현과 경수를 찾아야합니다."
"…당연하지."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가볍게 몸을 돌린 세훈이 영안실을 빠져 나가고, 그때까지도 주저앉아있던 찬열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후으- 까칠한 얼굴위로 몇 번 마른세수를 하더니 이내 곧 벽을 짚고 일어선다. 한 시름 놓았으니, 얼른 두 사람을 찾아야지. 죽어가던 얼굴위로 그제야 생기가 어린다. 방금전까지도 절대 놓을 수 없을것 처럼 쥐고있던 손을 흘깃- 훑어본 그가 말없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이건 비밀이야. 절대. 나중에 백현을 만나더라도 오늘일은 입 밖에 내뱉지 않겠다며 찬열이 다짐했다. 사실, 백프로 일치한다는 말에 거의 울뻔했지 뭔가. 아마 오비서가 조금이라도 늦게 사실을 알려줬다면 아예 대성통곡을 하고 있을 자신이었다. 눈끝에 매달린 눈물을 슥- 닦아내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표정을 지은 찬열이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아- 그전에.
다시금 뒤로 몸을 돌린 찬열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부디- 좋은곳 가기를."
최소한 망자에대한 예우정도는 해 줘야 하니까. 그것도 백현을 닮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
"우린 그 손바닥안이야."
"…설마-"
"카이는 다 알고있어.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우리가 위험한 녀석들이라는 것도. 전부다."
"근데 왜 살려둔거야?"
위험한 놈들이라며. 그럼 죽였어야 하는거 아닌가. 뒷말을 이은 백현이 손에 쥐고있던 크립텍스를 내려놓았다. 심심할때 풀어나보라며 카이가 던지고 간 그것은 더럽게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두 사람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꼬박 이틀동안, 방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못나간 터라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그들이었다. 이 새끼는 취향이 참 고상해. 어딜가나 화려한 샹들리에는 기본이요, 금박벽지는 옵션이다. 카이렌궁에 입성한 첫날 봐두었던 전체적 느낌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인테리어는 돈지랄의 극치였다. 백현의 입장에서.
"글쎄. 카이가 감성적인 사람인가-"
"설마. 죽은 부모님 들먹거리는데 뭐가 좋다고, 나같으면 총을 갈겼어."
"그래도 믿었을지 몰라. 어쨌든 우리가 살았잖아?"
"그게 궁금하다니까."
막말로 너같으면 살려둘거야? 이해가 안된다는 듯 묻는 백현을 향해 경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겁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자신을 향해 카이는 뭐라고 했었나. 고맙다고? 설마, 정말 고마운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평범한 자신으로선 도저히 나올수 없는 대답에 경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그런 사고가 가능한거지. 제 머릿속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 카이의 정신력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카이렌에서 금기시된다는 카이의 혈연에 대해 언급한 자신을 살려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지 않는가.
"근데, 만약에 있지-"
으아- 답답하다며 기지개를 켜는 백현을 향해 경수가 나즈막히 입을 열었다.
"아주 만약에,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게 진실이 아니면 어떡할래?"
"뭔 소리야. 뜬금없이."
"아니- 모든 진실이 다 사실일 수는 없는 법이잖아. 그러니까, 막말로 카이의 어머니가 살아있다거나- 뭐, 이러면 어떡할거야?"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뒷말을 이으며 경수가 탁자위의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렸다. 탁-탁-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사냐. 뱀파이어도 아니고."
"…"
"…그래도 만약- 니 말대로라면."
"응."
"숨겨드릴거야. 나는."
그게 내 대답이야. 말을 마친 백현을 경수는 말없이 바라본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 시선, 그리고 덤덤하게 마주하는 백현의 눈동자. 아직 우리가 펼치지 않은 패들은 너무 많았고,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붉은 석양이 스며드는 두 사람 아래, 검은 그림자가 몸을 일으킨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저녁노을에 물들었다. 오늘이 지나면 삼일이 될것이고, 내일이 지나면 사흘이 될 것이며. 끝을 알 수 없는 이 생활은 어쩌면, 재수없게도 우리가 죽을때까지 지속될지 몰라. 백현의 눈이 경수를 담았고, 경수의 눈이 백현을 담았다.
네가 뭘 숨기던, 내가 뭘 알고 있던. 어쩌면 둘 모두, 앞으로 중요한 열쇠가 되겠지. 이곳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리고, 둘 사이의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리면-
[실례-]
두 사람만 있을수 있다는 방안으로 들어오는 누군가. 실내에서도 검은 옷만을 고집하는 그 사람이, 천천히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카이렌의 젊은 보스. 카이킴. 썬포그의 두 남자. 리어. 오필리아.서로의 시선이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칼같이 매섭게. 그리고, 그 사이를 나즈막히 가르는 목소리가 다정하게 누군가를 부른다.
"나랑 데이트어때."
상냥한 말투, 매력적인 눈웃음, 천천히 내미는 손. 연인을 부르는 그만의 제스쳐.
"오필리아. 당신한테 하는 말이야."
오필리아. 햄릿의 광기를 터트리는 단 한 사람. 햄릿의 유일한 연인.
내민 손 위로 검은 눈동자가 빛을낸다. 욕망과 광기에 물든.
다 썼다!! | ||
드디어 큐인미 6부에요 여러분!! 진짜 언제 이거 쓰나 싶었는데 벌써 6!!6!!ㅜㅜㅜㅜ 다 여러분 덕분이에요. 매번 과한 칭찬에 사랑이 폴폴 넘치는 댓글까지ㅜㅜㅜㅜ진짜 여러분 덕분에 이만큼 달려왔습니다.! 사랑해요ㅜㅜ 앞으로 더 남은 큐인미지만 끝까지 열심히 쓰겠습니다! 다시한번 너무 고마워요 진짜ㅜㅜ(오늘따라 감성폭발이야ㅜ)
그리고, 혹시나 글 읽으시는데 불편할까봐 간략하게 설명 첨부하자면. 아시다시피 백현과 경수는 셰익스피어 4대비극의 인물을 코드명으로 사용합니다.
백현=리어 경수=오필리아.
감이 오시나요...이 두인물 모두 원작에서 불행한 결말을 맞습니다. 하지만, 큐인미는 다르다는거!
백현은 찬열이 있고, 경수는 카이가 있잖아요. 백현에게 찬열은 '코델리아'가 되겠네요. (코델리아=리어왕을 진심으로 사랑한 막내딸.) 경수에게 카이는 '햄릿'이 되겠죠. (햄릿= 오필리아의 연인.)
이 점 염두해 두시고 보면 더 편할것 같습니다. 그렇게 베베꼬거나 어려운 글은 안쓸테니까 너무 염려안하셔도 돼요.^^ 어쨌든, 6부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저는 다음주에 돌아옵니다. (꽁냥꽁냥 카디커플을 메인으로 세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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