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IOUS In mysterious 07
WRITTEN BY. 키드
*
"맛이어때?"
"…"
"여기 셰프가 미슐랭 쓰리스타 출신이야. 스테이크 하나는 최고지."
"…"
"거기에- 레드와인."
챙- 부딪힌 잔위로 붉은 물결이 요동쳤다. 카이의 말마따나 스케이크는 정말 맛있었고,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와인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이 훌륭하다. 어지러이 흘러드는 뉴욕의 야경을 바라보며 경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니, 그것보다 제게 쏟아지는 질문에 혼란스러웠으므로. 집은 어디냐, 몇 살이냐, 키는 몇센치며- 등등. 지금 호구조사야? 취조해? 목끝까지 차오른 불만들을 꾹- 누르며 그는 다시금 포크를 잡았다. 옅은 핏물이 스며나오는 스테이크를 향해. 하지만, 이내 포크를 쥔 손을 천천히 내린 경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맛있는 음식과 뉴욕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최고층 레스토랑안의 손님은 단 둘. 카이와 경수. 오늘을 위해 통째로 빌렸다는 그 말에 깜짝 놀란것이 방금전의 일. 거기에다 단 한명의 가드도없이 단 두사람만 덩그라니 테이블에 앉아있는 묘한 상황까지. 대체 지금 뭐 하는거야. 데이트라니. 말도 안돼.
그러니까- 갑자기 데이트신청이랍시고 앉아있던 자신을 끌어당기더니, 그대로 차안에 골인. 그 결과가 지금 두 사람의 만찬이었다. 사각거리는 샐러드를 집은 경수가 나즈막히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은 카이가 짐짓 의아한 표정을 하고서 묻는다.
"불편해? 표정이 안 좋네."
"…아닙니다. 전혀."
"그럼 오늘같은날 그냥 즐기자. 난 기분좋은데, 오필리아가 너무 우울해 보이네."
"알겠습니다."
"근데 진짜 이름은 안 가르쳐줄 생각인가-"
오필리아도 괜찮은데, 어감이 너무 길잖아. 매번 부르는것도 불편하고. 서운하다는 듯 입술을 내민 카이가 경수를 향해 진짜 이름을 알려달라며 조르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그 모습에 당황한 경수가 헛기침을 하며 물을 들이켰고, 그런 경수를 향해 카이가 눈매를 접었다. 재밌네. 달아오른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는 모습이 귀엽기도, 꼭 애같아서. 애써 웃음을 참는다는 듯 카이가 입술을 깨물었다. 자꾸 티내면 금방 들켜버릴게 분명하다. 너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내가 맞춰볼까?"
"…편하실대로 하시죠."
싫다는 표정이잖아. 한 쪽눈썹을 올리곤 제게 못마땅한 시선을 건네는 카이에게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해라 해.
"음- 일단. 신분증에는 화교로 되었던데. 설마 진짜는 아닐테고. 한국인. 맞지?"
"…"
"오케이. 그럼 국적은 맞췄고, 이번엔 나이."
알아서 뭐할려고. 애꿎은 샐러드만 쿡쿡 찌른 경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도 모를 뿐더러ㅡ 제 앞에선 달라지는 카이의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다른 이들을 대하는 것과 달리 마치 알던 사이라도 되는것 마냥 제게 친근한 웃음을 보이는 카이를. 경수는 도통 알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분명 이 자는 알고있다. 경수 자신이 했던 말들- 그러니까 폭탄이니 부모니 뭐니 했던 그 말들. 모두 거짓임을 알고 있을것이다. 그런데 왜? 왜 자신을 살려뒀으며, 이 말같지도 않은 데이트는 뭐란 말인가. 어떤 생각을 하고서 제게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카이는. 카이렌의 카이킴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금방이라도 죽일것처럼 백현에게 총구를 들이댈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카이렌궁에 경수와 백현을 잡아두다니. 인질인가- 아니면 그 무엇?-
그리고 심각한 얼굴을 한 제게 카이가 짐짓 알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말한다.
"무슨 생각인지 알 것 같은데."
"…"
"당신이 생각하는건 전부 아냐. 전부. 무엇이 되었던 간에."
설마- 인질이니 뭐니, 편협한 생각을 하는건 아니겠지? 마치 다 알고있다는 얼굴을 하고서 그가 말을 잇는다. 그리곤 마저 하던것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냐며 다시금 경수를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했더라. 네 나이가, 당신 나이가 얼마정도 될까? 생긴것과는 영 딴판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카이를 향해 경수가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백현이 말한게 이거구나. 저,저 표정… 그리곤 이내 또다시 나오려는 한숨을 참고서 그와 시선을 마주한다. 계속해서 자신을 바라보는 카이의 눈동자를 향해. 언제부터 보고 있던거야. 저도 모르게 민망한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선 고민하는 듯 하다 - 이내 카이에게 말한다. 힌트라도 드려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인다. 흠. 데구르르- 고민하는 눈동자가 소리를 내며 굴러간다.
"스물은 넘었습니다."
"…장난해?"
지금 뭐야 방금? 제 딴엔 힌트라고 넘긴 대답을 기가차다는 듯 받아치는 카이를 향해 경수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이건 좀 심했나. 괜시리 미안했는지, 애먼 콧잔등을 두드리며 다시금 입을 연다.
"음- 그냥 이름을 맞추시는게 어때요? 나이야 뭐,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괜히 어리답시고 무시당하긴 싫거든. 뒷말은 삼키고서 카이를 향해 되묻는다. 이름이요. 차라리 이름을 아는게 나을테니. 무엇보다 자존심 상해가면서도 꼬박꼬박 말끝은 올려주는 자신과 달리, 어느새 제 아랫사람 다루듯 반말을 하는 카이가 못마땅하기도 했었고. 그런 마당에, 혹시나 자신이 카이보다 어리다면...윽. 상상조차 하기 싫다. 얼마나 날 괴롭힐거야. 반쯤 비워진 와인잔을 한번에 비운 카이가 나른한 표정을 하고서 경수를 바라본다.
"맞추면 뭐 해줄건데?"
"…뭘 말이에요. 카이께서 먼저 궁금해하셨는데."
"아니- 그것보다 일단 당신. 너 오필리아."
"…"
"그 재미없는 말투좀 버려. 툭하면 네- 다- 만-. 은근히 꽉 막혔네."
답답하긴. 퉁명스레 말해오는 목소리에 경수가 입을 다물었다. 됐다. 됐어. 이 사람에게 뭘 바라겠나 싶어 체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칠게요. 애꿎은 샐러드를 찌른 포크가 이내 곧 힘없이 테이블위로 내려진다.
"이름은 알것 같은데, 성을 모르겠어."
"…제 이름이 뭔데요?"
"그냥. 느낌상-"
"…"
"아니다. 나중에 알려줄게."
뭐야- 그럴듯하니 대답할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뒤로 빼는건 뭐람. 못내 실망한 기색을 내비치는 경수를 보며 카이가 두 눈을 접었다. 진짜. 넌 정말. 여전해. 그대로야. 숙여진 정수리가 맨드라니 둥글다. 꼭 밤톨처럼. 한번 손을 올려 만져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그랬다간 펄쩍 뛸것 같아 일단보류.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꾹- 다문 카이가 가볍게 테이블 위를 두드렸다. 그러면, 새초롬히 두 눈을 내린 얼굴이 보인다.
"다 먹었어?"
어느새 거의다 비워진 접시를 훑곤 제게 물어온다. 맛있는 음식에, 멋진 야경까지.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다만, 파트너만 제외한다면. 텁텁한 목을 물로 축인 경수가 잘 먹었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대답에 만족하다는 듯 카이가 웃었다. 다행이네. 특별히 예약한 보람이 있었어. 들릴듯말듯 혼잣말을 하며 카이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를 따라 경수가 몸을 일으킨다. 밥도 먹었고, 이젠 돌아가는건가. 혼자 남아있을 백현이 걱정되는 터라, 아무래도 당장 출발했으면 싶었다. 게다가, 카이렌궁의 요리사는 음식을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으니. 식탁을 꽉 채우는 요리와는 달리, 허탈하기 그지 없던 실력에 경수가 절로 고개를 젓는다. 생긴건 야무지게 잘할것 같던데, 왜 음식은-
"날 두고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지금 데이트 중인데?"
데이트는 개뿔. 제발 그 민망한 단어선택좀 안하면 안될까. 어느새 제 뺨을 아프지않게 꼬집은 카이를 향해 경수가 못마땅한듯 입을 열었다.
"이거 놓으시죠. 누가 보면 어쩌시려고."
"또-또. 당신은 그게 문제야. 내 말을 안들어줘. 자꾸 그러면 나도 방법이 있는데 말야."
"…무슨…"
"손 안놓는다? 어때, 로비까지 계속 이러고 갈까? 가만있어봐. 오늘 웨딩마치가 있다고 했는데-"
지금 그걸 협박이라고- 짐짓 무섭게 말해오는 투와 달리 말도 안되는 방법을 제시하는 카이를 향해 경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주름진 이마께를 꾹- 누른 카이가 불평가득한 얼굴을 향해 뭐가 좋은지 웃어보였고. 더욱 찌푸러지는 경수의 얼굴이었다. 대체 뭐야 이 남자. 단 둘뿐인 엘리베이터 안. 빠른속도로 내려가는 층수와 놓을생각이 전혀없어보이는 카이의 눈을 번갈아보던 경수가 이내 체념하듯 양 손을 들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진작에 그럼 얼마나 좋아. 괜히 힘빼긴."
"…어련하시겠어요."
"아 진짜. 또-"
"그래 어. 미안해요, 아니 미안해."
실수였어 실수. 그리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 대답에 이번엔 카이가 미간을 좁혔다. 아무렴 어쩌랴. 그렇게 무서운 눈을 하고봐도 이젠 무서운건지도 모르겠다. 처음봤을 적만 해도 그 위압감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정도였는데. 막상 밥이라도 한끼하고 보니, 꼭 그런 사람만도 아니더라. 잘 웃고, 말도 술술 풀어내고- 무엇보다 딱히 그렇게 불편하다거나 한건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카이를 적으로 두는것보다, 차라리 지금같은 상황이 제게도- 썬포그에도 이로울 것이리라.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경수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아직 뭐가됬던 아직은 아니다.
식사도 했으니까, 이번엔 쇼핑이나 할까?
쇼핑 싫어…해. 게다가 돈도 없어.
무슨 소리야. 난 애인한테 돈 안쓰게 하는데. 걱정마. 오늘 당신의 물주는 나니까.
…애인이라니-게다가 늦었잖아요-아니, 늦었어. 열시가 넘었다고 지금.
상관없어. 뉴욕은 밤낮이 없거든. 당신은 나만 따라와.
*
"크림라자냐에 세시간 동안 절인 정어리채. 그리고- 훈제연어."
"…이걸 다 먹으라고?"
"아- 애플셔벗까지. 디저트를 깜빡했네."
"먹고 뒤지라는거? 어차피 이래죽으나 저래죽으나 닥치고 먹어라?"
됐고, 난 이거 하나면 충분하거든. 제 앞으로 밀어진 접시중에서 가장 무난해보이는 라자냐를 집은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많은 음식들을 두고 왜 하필이면 이걸 골랐냐 묻는다면 군말 않고 이렇게 말하겠어. 니 음식 좆나 맛없거든. 명색이 요리사라며, 카이가 스카웃했다는 소리는 순 개뻥이다. 저 똥손으로는 뭘 만들어도 더럽게 맛이 없으니까. 이틀간 총 여섯번의 식사를 대접받았지만, 단 한번도 접시를 비운적은 없었다. 진짜 재주라면 재주야 그것도. 카이렌궁의 미스테리를 이제야 풀 수 있을것도 같다. 모두 죽어서 나갔다는건 진짜였어. 이 음식을 먹는다면. 툭- 힘없이 떨어지는 라자냐를 씁쓸한 눈으로 쳐다본 백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먹어야 사니까. 어쩔수 없이 그것을 제 입에 집어넣으며 그는 숨을 참았다. 냄새라도 안맡으면...
그리고, 얌전히 팔짱을 낀채 백현을 바라보던 상대가 입을 열었다.
"그 정도로 최악이야?"
괜찮으니까 솔직히 평가해줘. 어느새 제 앞에 와선 물어본다는 폼이 영- 깨름직하긴 했지만, 그래도 진심인것 같아 천천히 입을 여는데.
"…솔직히 말한다. 널 위해서, 인간적으로다가- 니 음식 진짜 최악-"
"뭐?"
"…아니. 최,최고라고. 최고. 내가 입이 맛이갔나봐."
번쩍거리며 손안에서 굴러다니는 나이프에 백현이 기겁을 하며 대답했다. 짱!! 대박!! 평소같으면 당장 쓰레기통으로 처박았을 요리를 백현은 정말 맛있다는 얼굴로 한 입 크게 삼킨다. 그러고선 식도를 타고 넘어가기도 전에 꿀꺽- 물을 들이마신다. 요리사라더만, 누가 저렇게 칼자루를 잡냐. 검지와 중지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나이프를 바라보며 백현이 억지로 음식을 삼키는동안, 상대편은 말없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음식은 식탁에서.
"…그러엄- 그래…음식은 식탁…에서."
"다 먹으라곤 안해. 하지만 모두 한 번씩 맛은봐."
"…"
이걸 한번씩 맛보는것보다 라자냐 한접시 먹는게 양이 적어. 지랄맞을. 부탁아닌 명령조에 백현이 뭣씹은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앞으로 가지런히 놓이는 접시를 바라보며 그가 내리찍듯이 음식을 집는동안 상대는 말없이 비워진 물잔에 물을 채워넣는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차오르는 물을 바라보다, 백현이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입을 연다. 전부터 궁금한게 있는데-
"너 이름이 뭐냐. 아니, 코드네임말고. 진짜 이름."
"알아서 뭐하게."
"정 껄끄러우면 코드네임이라도 알려줘. 계속 야, 너, 님아. 이럴까? 참고로 나는 리어."
우리같은 사람들한테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가 나와 같은 적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인간들로써 최소한 서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약점이기도 했거니와, 조직에 대해 소속감을 나타내는 것과도 같아서- 쉬이 밝힐수 있는것이 되지 않는다. 평소같으면 죽어도 먼저 밝히지 않을 코드네임을 술술 말한 백현이 힐끔거리며 상대편을 살핀다. 꼴에 요리사랍시고 앞치마까지 멨는데. 영 아니올시다-
"님아. 이건 좀 아니지. 나라고 좋아서 너한테 님아-님아 할까봐? 님아."
그러니까, 서로서로 편하고 좋게, 어? 이름이랍시고 부를건 있어야 할거 아냐. 말하면서도 요리사가 무섭긴 했는지, 손에서 포크는 절대 안놓는 백현이었다. 반도 비워지지않은 라자냐를 보며 백현이 욕지기를 삼키는동안, 상대는 그런 백현의 앞에 접시를 끌어당긴다. 그러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입을 여는데-
"이름은 말 못해."
"바라지도 않거든요. 님아."
"정말 궁금해? 네 속이 워낙 까매서. 내가 들여볼수가 있어야지."
얘가 사람을 어떻게 보고- 삐딱하니 숙인 고개를 향해 백현이 짐짓 입술을 깨무는 시늉을 한다. 그런 백현을 보며 사내가 마지못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루한이야."
"…아-"
"그냥 루한이라고 불러."
루한. 요리사 루한. 제 입안에서 감기는 어감에 백현이 잠깐 인상을 찌푸리다, 곧 제 앞의 요리사- 아니, 루한을 향해 입매를 끌어당겼다.
"루한. 그럼 나 배가 불러서-"
"먹어."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
설마. 지금. 당황한 시선이 흔들린다.
"저기- 저기 이봐요. 아니 이봐-"
"응? 왜."
아니, 그러니까. 그쪽 지금 뭐하는-
"뭐 마음에 안드는 거라도 있나? 다른 매장에 가볼까?"
제 품안으로 떠밀려오는 쇼핑백을 애써 감싸안은 경수가 황당한 얼굴을 하고서 카이를 바라봤다. 아니 그러니까- 이건 또 무슨 상황? 결코 평범하다 할 수 없는 제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며 경수가 미간을 찌푸렸고,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또 카드를 꺼내든다. 손등위에서 번쩍이는 고가의 롤렉스 시계를 바라보며 경수가 눈을 찌푸렸다. 저게 얼마야. 세상에. 명색이 로렌스맨하탄 대표면 평생 돈걱정은 안해도 된다지만, 이건 좀 심한게 아닌가. 쇼핑만 2시간째인 카이는, 그리고 얼떨결에 따라다니는 자신은. 지금 뉴욕백화점을 세 번째 돌아보는중. 차라리 쇼핑을 할거면, 딴 데를 가던가. 하지만 제 말에도 카이는 요지부동. 백화점을 휩쓸었다.
뭐로? 돈으로. 그것도 아주 거나하게.
"무슨 생각중이야?"
네 돈지랄. 게다가 꼭 취향도 한결같이 비싸고 화려하고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것들이었다. 이제야 알았는데, 이 남자. 반지도 낀다. 그것도 빨간 사파이어가 반짝거리는. 꾹 - 어느새 제 앞에와서 미간을 누르는 그 손길에 경수가 한숨을 내쉬려다 만다. 그리곤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대답한다.
"…넌 돈 많아서 좋겠다."
"줄까?"
"…뭘."
"돈. 몸에 금칠을 해줘?"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진심인양 제게 물어오는 카이를 향해 경수가 고개를 저었다. 금칠을 해도 블랙머니는 사양이거든. 피묻은 돈은 더더욱. 그리곤 자꾸만 떨어지려는 쇼핑백을 애써 붙잡고선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릿한 다리가 당장이라도 풀릴것만 같다.
"…집에 갈 생각은 없는거야?"
뜬금없는 제 물음에 카이가 감던 시계를 내려놓고서 되묻는다. 집? 손목에서 반짝- 손가락에서 반짝- 목에서 반짝거리는 장신구를 훑으며 경수가 체념한듯 고개를 끄덕였고- 근처 의자에 아무렇게나 앉으며 피곤한듯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 모습을 따라 카이의 시선이 움직이는것도 모른채. 젖혔던 고개를 다시금 세운 경수가 피곤에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넌…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백화점을 세번 돌아다닌건 처음이라."
"아아-"
"피곤해."
피곤하다 못해 아주 죽을지경이다 지금. 일일이 제게 인사하는 종업원들도 불편하고, 양말한짝 바란것도 아니지만 끝까지 제 쇼핑만 하는 카이도, 무엇보다 혼자있을 백현생각에- 마음이 편할래야 편할수가 없는 그였다. 그런 경수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카이가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더니 곧 대답했다. 알았어. 알았는데. 정작 중요한 선물은 아직 보지도 못했잖아.
"마지막으로 한곳만."
"…"
"정말 마지막이야."
그러니까 이번만. 우수수- 위태롭게 안고있던 쇼핑백위로 방금전 계산한 것들이 쏟아진다. 아- 정말! 멀쩡한 가드들은 냅두고 왜 제게 이 짐을 떠넘기냐 이말이다. 잔뜩 찌푸린 미간사이로 카이가 웃는걸보며, 경수는 바닥에 떨어진 쇼핑백을 집어든다. 정말, 왜 자신이-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며.
*
"정확히 이 주전. 뮤지컬을 봤다고 합니다. 저녁타임에 맞춰서 관람한걸로 보입니다. 표가 6시 이후였으니까요."
"그 다음은."
"없습니다. 극장 cctv에 찍힌 것 빼고는 흔적조차 없이. 게다가 cctv도 그 날 당일 것만 교묘히 훼손되있었고, 잠깐 경수 얼굴이 비춘것 빼곤 어떤 단서가 될 만한게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그 날 당일 어떤 조직도 그 근처에서 움직인적은 없었다는데- 다시 한 번 알아볼까요?"
그럼 어딜 간거야 대체- 어지러이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넘긴 찬열이 답답한듯 한숨을 쉬었다. 백현은 그렇다 쳐도, 경수가 흔적도 하나 남겨지않고서 사라질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뭔가. 교묘히 두 사람을 닮은 시신을 떡-하니 썬포그 소속 병원에 갖다놓질 않나. 게다가 경수와 백현이 브로드웨이에서 실종됐다? 제 머릿속의 퍼즐을 끼워맞추던 찬열이 씹- 나즈막한 욕을 내뱉는다. 데스크위의 서류철이 힘없이 펄럭인다. 썬포그 소속의 뉴욕지부 빌딩, 최상층. 찬열과 세훈이 저마다 미간을 찌푸린채 사라진 두 사람을 생각하는 동안,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침묵을 깬다.
"죽이려고 위장한거면. 죽이진 않았다는거네."
흰 가운위로 'Doctor Kim'. 준면이었다.
"카이렌에서 눈치를챘나? 엄한 두 사람이 왜 갑자기 사라졌겠어."
운좋게 오늘따라 오프가 났다는 준면은, 저마다 심각한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뒷말을잇는다. 나름 제 논리가 그럴듯한지 검지를 세우며.
"그럼 답은 하나지- 보스. 카이렌을 조사하는거야. 어때? 괜찮지?!"
들어봐- 경수와 백현이 카이렌의 카이킴을 죽이기 위해 간거잖아. 아, 죽이는게 아닌가? 어쨌든- 그럼 그 녀석들이 알아챘다는거네. 거기까지 말한 준면이 제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세훈의 칼같은 대답에 다시금 제 자리로 돌아가야 했지만.
"우리가 바보야? 설마, 그것도 예상안할까봐서?"
어떻게 의사가 된거야. 자신을 향해 고개를 젓는 세훈을 보며 준면이 음음- 시선을 피하는동안, 그런 두 사람은 안중에도 없던 찬열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든다. 맞아!!- 그런 보스의 행동에 깜짝놀란 세훈이 왜- 왜요?! 더듬거리며 대답했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는 찬열을 향해 의아한듯 미간을 찌푸렸다. 또, 왜 저러시지- 으레 그렇듯 걱정과 의심이 먼저였지만. 그렇게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향해 찬열이 손뼉을 맞대며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준면!!
"그래- 카이렌이 있었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설마.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방방뛰는 보스를 향해 세훈이 아- 반쯤 입을 벌렸다. 이런…바보스러운 보스같으니라고.
"두 사람 그거알아?"
그런 세훈의 태도에 아랑곳 않은 찬열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뒷말을 잇는다. 찰랑- 풀어진 와이셔츠 사이로 그의 목걸이가 반짝거린다. 보스의 1순위 애장품. 백현이 제게 준 목걸이를 매만지며 결심한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향해- 세훈이 나즈막히 묻는다. 뭘 말입니까.
"내가 카이를 좀 알거든. 근데 걔가 그걸 좋아해."
"…"
"지 얼굴은 끔찍하게도 가리는 애가."
"…"
"꼴에 안맞게- 무도회를 즐기거든."
자수정이 박힌 은목걸이. 보랏빛 투명한 결정을 띈 그것을 손안에서 굴리며, 찬열이 미소지었다. 그리곤 자신을 향해 놀란듯 크게 떠진 눈을 한 두사람에게 말한다. 아니, 명령을 내린다. 당장 움직여야겠어. 어디에선가 자신을 기다릴 백현을 생각하면- 당장 몸이 달려가야했지만, 일단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 제 할아버지에게서 귀에 익도록 들어왔던 그 말이 이럴때 떠오를 줄이야. 씨익- 시원하게 입매를 올리며 찬열이 뒷말을 이었다.
"초대장을 보내."
내가 직접. 너를 초대하노라고.
"선상위의 가면무도회. 분명 잡지안고선 못 베길거야."
걔는- 꼴에 안맞는걸 좋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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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업데이트 완료!!!ㅜㅜㅜㅜ내일 올리려고 했는데ㅜㅜㅜㅜ 많은 분들이 큐인미를 물으세요ㅜㅜㅜ흑 이렇게 사랑받고있었다니!! 감동의 쓰나미가ㅜㅜ!! 그래서 부랴부랴 어제부터 쓰기시작해서- 오늘 이렇게 땋!! 하고 올립니다.*^^*
이번화는 원래 꽁냥카디로 나가려던 참이었어요. 하지만, 큐인미를 쓰면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나아가는것 같아서 고심에 고심끝에 고쳐 적었습니다. 나름 복선을 깐다고 까는데- 아효...힘드네요..그런 면에서 작가님들은 참 대단하세요...정말bbbb
매번 마무리를 지을때마다 고민하게 됩니다;;;아- 어떻게 해야 다음화를 맞깔나게 연결할수 있겠는가?! 어떻게 끝을 내야 여러분들이 '헐-고민고민 뭐지? 다음화 궁금궁금!'이 될것인가?! 저는 항상 이점을 염두하고서 고민합니다. 아직까지는 그리 나쁜것 같지 않은뎁...그래도 더 열심히 해야겠죠??
다음화쯤엔 슬슬 주요 인물이 나올것같습니다. 카이의 가드...님의 정체도ㅋㅋ밝혀지겠죠?ㅋㅋㅋ 근데 아무도 맞춘 사람이 음슴... 전 보자마자 딱!! 이 역할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멤버인데ㅜㅋㅋㅋ 다음화에 알려드릴게요^^. 대신 요리사는 알려드렸어요;;;루한이에요;;;
큐인미 8화에서는 -
1. 선상파티. 2. 카이와 경수의 관계정의.
가 중점으로 나올겁니다. 거기에 + 백현경수 생존기. 쯤이 나오겠네요^^**.
그럼 다음화는 다음주 월요일에 찾아뵐게요.!!
(암호닉은 이번편을 기준으로 다음화에 다시 정리하겠슴다.) (참고로 미슐랭 등급은 별3개까지 있다고 하네요;; 이런...오늘 부랴부랴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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