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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ody Blues - The Night







 사람이 정말 구역질 날 정도로 많았던 까닭에, 사실 그보다는 짜증 나는 기분에 와인을 권유받은 대로 다 마셔버린 바람에 홀 입구에 서있던 웨이터로 보이는 사람한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그 턱수염이 인상적인 백인 남자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 눈치길래 영어도 못 하는 직원을 이런 영미권 인사들 그득그득한 파티에 데려다 놓은 꼬라지에 속으로 한 번 욕하고 나서 짧은 독일어로 화장실이 뭐였는지 더듬거리며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토기가 치미는 것 같아서 손을 작게 들어 실례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입을 틀어막은 채 급하게 자리를 떴다. 이 거슬리는 크리스탈 장식들이 즐비한 길고 구불구불한 복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지만, 적어도 이 안에서 게워내면 장난 아니게 좆된다라는 일념으로 최대한 홀의 중심부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달렸다.


 제대로 기억해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웠던 몇 초를 지나 인적이 거의 없는 홀 뒤편의 정원으로 빠져나오자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다행히도 진짜로 토하지는 않았다. 방금 그 메스꺼운 느낌은 굉장히 멀미 같은 감각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찬 공기가 필요했던 걸까. 그러다가 왼쪽 구석 멀리서 남사스럽게 입맞춤을 나누며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는 남녀 한쌍이 의도치 않게 눈에 들어왔지만 뒤에서 숨가쁜 구두굽 소리가 들려와서 다시 별 재미는 없는 탁 트인 정원의 분수대로 시선을 옮겼다.


 "추워, 닝."


 용케도 나를 따라 나온 이 전형적인 일본 미남상의 남자가 어느새 다시 받아온 본인 코트를 나에게 걸쳐주려던 걸 팔로 쳐내는 것으로 거절의 말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기어코 나한테 자기 코트를 걸치게 만들고야 말았다. 싫다고 말을 해도 어떻게든 끈질기게 나한테 그걸 입힐 것만 같아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더구나 어지러운 게 가셨냐고 하냐면 그렇지도 않았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 코트를 억지로 어깨에 두르고 연한 바람을 맞으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다시 장이 운동하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잘도 드레스에 구두 신고 뛰었네."


 "너야말로."


 "난 바지인데요?"


 "아아주 좋겠네요."


 별로 누구랑 대화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특히 얘랑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얘는 자꾸 나한테 말을 붙이려는 눈치여서 좀 짜증 나기 시작했다.


 "드레스 예쁘다."


 그리고 진짜 뜬금없는 그 말에 솔직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괜히 심술이 나서 이 남자를 잠깐 야려봤다. 나랑 눈이 마주쳤을 때 정말 나를 올곧게 쳐다보고 있길래 피곤한 기분에 다시 심심하기는 해도 잘 가꾸어 놓은 궁전의 정원이 달빛을 받아 푸른 은색으로 보이는 풍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고마워."


 "잘 어울려."


 "응."


 "그냥 하는 말 아니니까."


 "아, 예...."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굳이 반응해 주기가 싫었기 때문에 일부러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했다. 아니, 사실은 다 알고 있는데 괜히 어색하고 미안하니까 분위기 좀 풀어보려 하는 거겠지. 근데 진짜 짜증난다. 다 알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왜 자기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지? 그건 내가 그래야하는 거 아닌가?


 "연회장 하나를 통째로 빌리고...왜 내 클라이언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화려한 걸 좋아하는 걸까? 뒤의 구린일은 전부 나같은 사람들, "


 "왜 숨겼어?"


 방금까지 신나서 재잘재잘 떠들던 청년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지 말마따나 저 잘난 입술로 인생에서 지금까지 몇 명이랑 부대끼고 다녔을까 생각하니 내 알 바가 아닌데도 갑자기 또 화나기 시작했다.


 "너도 내가 왜 너한테 화난 건지 알잖아."


 "네가 알아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내 일자리가 걸린 일인데 너한텐 내가 핫바지로 보여? 어?"


 "진짜 일자리 때문에 화난 거야?"


 갑자기 소리치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좀 울 것 같길래 놀라서 나도 모르게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너무 놀랐다. 정말이지 내가 호구가 된 건가 싶을 정도로 눈물이라는 단어가 연상조차 되지 않는 아주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래도 고등학생 때랑 그렇게 바뀐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좀 더 늙은 것 같은 면상에 대고 대놓고 욕할 깡은 없었다. 욕이라면 이미 충분히 했지 않느냐고 비난해도 좋다. 난 어쨌든 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쌍욕을 갈길 자신은 없었다. 얘가 이번 한 번만, 진짜 마지막이니까 한 번만 하면서 매달릴 때 매번 중간에서 눈감아주고 클라이언트들 설득하면서 대신 욕먹어주던 건 나였다. 항상 핫바지는 나였다.


 "...그럼 내가 너랑 얼굴 본 게 몇 년인데 걱정이 안 돼? 화가 안 나?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냐?"


 강인한 건 저쪽이었다. 겉으로는 뺀질 대는 주제에 속은 빈틈없는 사람이었다. 이십 대 초반까지만 해도 자기 말로는 스승이라던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초보자의 미숙함을 극복하면서 실수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꽤 인간적이던 남자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조차도 속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업계에서 완벽한 베테랑이 되어버린 지금은 이 남자의 맨얼굴을 본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제는 그를 마주할 때마다 꿈에 빠져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꿈속에 있는 것 같이 몽환적인 기분이 든다는 소리가 아니다. 어째서인지 이 남자가 자기 혼자 꿈속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소리다.


 "너는 네 걱정 안 해? 아니, 하다못해 네가 없어지면 슬퍼할 사람들 걱정은 안 해?"


 "...닝."


 "나는 또 사장님한테는 뭐라고 말해? 돈 들고 튀었다? 아님 새로 들어온 애 딸린 여자 고객이랑 놀아나서 사랑의 도피를 결행했다? 클라이언트가 줄을 서는 그 추출자 오이카와 토오루가 의뢰 해결 중에 꿈에 갇혀버렸다? 뭘 원해? 뭘 원하냐고."


 "...."


 "...사장님은 네 걱정 안 할 거 같아?"


 "닝."


 내 이름을 부르면서 오이카와는 나한테 한쪽 손을 정중하게 내밀었다. 이건 또 무슨 공작인가 싶어 대놓고 의심스운 표정을 지어주며 팔짱을 끼어 주니 오히려 이 남자는 더 능글맞게 손을 내쪽으로 가까이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내게 말했다.


 "여기는 다 들려."


 그렇게 다정하게 말하면서 아까보다 더 격정적으로 움직이는 남녀가 있던 곳을 흘기고는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경이로울 정도로 침착해서 나는 또 속으로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남자한테 제대로 된 얘기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뉴욕에서 잘츠부르크로 날아올 이유 따위 없었으므로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 손 위에 미심쩍다는 티를 잔뜩 내며 어색하게 손을 겹치니 오이카와가 부드럽지만 강하게 내 손을 이끌었다. 미묘한 느낌이었다. 아주 약간이지만 예전 프롬 파티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때는 좀 떨기도 하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는데 지금의 이 남자는 떨기는 하는 걸까 의문이 든다. 혹은 속으로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그걸 숨기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차라리 후자였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런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사람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범주의 인간일 테니.


 하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 이 남자는 나를 두고 홀로 몇 십 년을 더 살다 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는 어쩌면 자신이 보낸 인생의 절반 이상은 꿈에서 보냈을 지도 모른다. 밤에 눈을 감으면 잠을 자는 걸까? 꿈을 꾸는 걸까? 잠을 자는 꿈을 꾸는 걸까? 잠을 자기는 하는 건가? 막상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한 채 답답한 마음에 그를 올려다보면 오이카와는 그냥 미소 지어줄 뿐이었다. 나는 이제 그 눈동자가 과연 나를 바라보고 있긴 한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



 "널 싫어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


 "나도 알아."


 "알면서 여태까지 그렇게 공개적으로 돌아다닌 거야?"


 "그래서 이렇게 벌을 받잖아."


 성의 외관에 비해서는 수수한 편에 속했던 샹들리에들의 크리스탈이 굴절시키는 빛을 약간 고개를 들어 잠깐이지만 응시하면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온 사이에 어느새 물러간 콰르텟의 자리를 둘씩 짝을 지은 남녀들의 나른한 춤사위와 썩 나쁘지 않은 블루스풍의 기타 선율이 메우고 있었다. 넓은 홀을 한 바퀴 돌아 귓가에 울려 퍼지는 코러스 소리가 꽤 황홀하게 들려서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오이카와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정적을 때우려는 듯 오이카와가 아이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것처럼 좀 더 조곤조곤하면서 능청맞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다 이 오이카와 씨가 너-무 잘나서 그런 거지 뭐. 외모도 준수하지, 옷테도 살지, 능력도 있지, 돈도 많으니 적이 없을 수가 있겠어?"


 "그래서 잠적을 해버리시겠다?"


 아까부터 계속 교묘하게 피해다니던 주제로 정곡을 찔렸는지 이번엔 그쪽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내 느린 발걸음에 맞춰 밟던 스텝의 속도를 약간이지만 발을 바꿔 수정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전에 없이 신중한 어조에 아직도 아까의 와인때문에 약간 나른한 기분이었던 나의 주의도 한순간에 그의 목소리로 향했다.


 "저번 홍콩에서 아작 났잖아. 이쪽은 제대로 등록도 안 된 개인사업자고 그쪽은 뒤에 건달들 데리고 다니는 법인이야. 규모부터가 상대가 안 돼."


 "...네 후배는 좀 어때?"


 "최대한 아는 쪽으로...일단 붙여놨지만, 모르겠어 솔직히. ...응."


 우리가 하는 일이 딱히 착한 짓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쪽 업계에 종사하면서 평범한 처우와 4대 보험 같은 것을 바랬다면 엄청난 사치였겠지만, 막상 그런 게 눈앞으로 닥쳐오니 부조리하다고 불평할 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이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오이카와는 더 이상의 손해를 막기 위해 그저 매우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었다. 반면 나는 무척이나 비합리적인 인간이 되어버렸을 뿐이었다. 십몇 년의 정에 얽혀서.


 "어디로 가는데."


 내 말에 오이카와는 콧방구를 뀌었다. 진짜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멱살 잡고 한 대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이 남자의 등 뒤에 두른 손을 살포시 주먹 쥐는 것으로 대신했다. 바보같은 질문인 건 나도 잘 알았지만 그것보다도 또 지혼자 키득키득 웃는 게 아주 짜증 났다.


 "그걸 알려주면 잠적이야?"


 "네 브로커한테 사정 설명도 안 해주고 야반도주할 거라고 선전포고하는 거야 지금?"


 "그래도 너니까 이만큼 말해준 거야."


 순간적으로 '우리 사이가 그 정도밖에 안 돼?'하는 유치찬란한 B급 티비 프로그램 대사를 진짜 내뱉을 뻔했다. 서운했다. 내가 너무 공적인 지위만 들먹였나 싶기도 했다. 사적인 감정에 호소하면 좀 더 알아낼 수 있을까? 이 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함께 했는데 어딜 가서 뭘 하며 지낼 건지는 하나도 안 알려주고 간다, 하고 쿨한 척 통보...하지도 않았지, 참. 간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했던 게 고작 너랑 나 사이냐고, 진짜 물어보고 싶었다. 유치하지만 물어보고 싶었다. 차마 진짜로 그렇게 물어보지는 못하고 소심하게 돌려말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 아침 드라마 대사 같은 질문보다도 훨씬 유치해서 제일 얘기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걸 알코올의 용기를 빌어 물어봤다.



 "...왜 더 이상 닝쨩이라고 안 해?"


 그게 정확히 그가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전성기의 피크를 지나 어느 순간부터 감을 잃어 가는 피아니스트의 진부한 솔로를 듣는 것처럼 답답하고 서늘한 느낌을 받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내가 아끼던 그 아름다움을, 신선함을, 내가 신뢰하고 아끼던 그 사람 자체를 잃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질문했지만 곧바로 후회했다. 이제는 그의 등에 얹은 주먹이 울분이 아니라 초조함에 떨고 있었다. 이런 어린애 같은 질문을 던져놓고 안달난 꼴이라니, 창피하면서도 뭐라도 잡고 싶어지는 간절한 기분에 그 주먹은 바로 펴버렸다. 그 등이 너무 넓어서 잡히지 않을 것만 같이 느껴졌다.


 예상은 했지만 대답이 재깍 튀어나오지 않아 괜히 더 불안해졌다. 긴장한 나머지 베이스 소리보다 내 맥박 소리가 더 규칙적으로 들리기 시작했을 때 겨우 오이카와가 나에게서 조금 떨어져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피하지 않고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예전엔 헛소리로 넘겼었던 오이카와 씨는 어떻게 보면 좀 차갑게 생긴 것 같다는 야하바의 평가가 무슨 소리인지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빈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나도 생각했다. 정말로 의식적인 끊어냄이었던 걸까. 내가 그렇게 낯설게 느껴졌던 걸까. 익숙하다면 익숙했지 멀게 느껴질 건 뭐였을까. 도대체 무엇이 널 바꾸어 놓을 걸까. 너는 타인의 꿈속에서 대체 뭘 보고 겪은 것일까. 그의 입술이 말을 고르는 듯하다가 드디어 떨어졌다.


"닝."


 결국 오이카와는 끝까지 그냥 이름으로 불렀다.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한 번이나마 예전처럼 불러줄 것이라는 나의 은밀하지만 결코 작지 않았던 기대는 산산이 부서져내렸다. 겨우 힘 주고 있었던 발목에 갑자기 힘이 풀려버릴 것만 같았지만 입술 바로 안쪽 연한 살이 조금 아프다싶을 정도로 이를 꾹 물고 버텼다.


"이름 불러줘."


 내가 꽤 상처 받은 걸 분명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이어지는 그의 요구에 울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먼저 울어버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이 남자일 것만 같은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하길래 왠지 모르게 내가 더욱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불러줘, 닝."


 "...나쁜 새끼야."


 "알아, 아는데, 내 이름. 이름 뭐야."


 춤 따위는 이제 엉망으로 잊어버린 채 지가 훌쩍이기 시작하면서 오이카와는 자꾸만 자기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진짜 싫었다.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놈 부탁 들어주기 진짜 싫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우는, 정말 사람답게 우는 걔를 보니까 철근을 덧댄 콘크리트로 쌓아올린 장벽으로 절대 무너지지 않게 닫혀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내 마음이 한순간에 허물어져 버렸다. 네가 대체 왜 이 지경이 되야 하는지 갑자기 모든 게 원망스러워지고 남의 등쳐먹는 이런 일에 발을 들인 예전의 너, 그 직업군이 하필 천성이었던 너까지 미워지기 시작했다. 개같은 놈. 망할 놈. 뺀질이.


 "...토오루."


 "한 번만 더."


 "토오루."


 오이카와는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려는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대며 내 뒤통수에 자기 오른손을 가볍게 올려 나를 당겼다. 그리고는 여전히 맞잡고 있던 다른 손의 깍지를 풀어 그 어느 때보다 애정 어린 손길로 나의 볼을 쓰다듬었다. 내가 자꾸 고개를 숙이고 돌려 피하려고만 해도 그 손이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또 나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강한 사람이야."


 "...네가 만나는 여자들마다 다 그 소리 했겠지."


 "아니야.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너는. 너는, 나보다도 강한 사람이야. 정말이야."


 그리고 그는 말했다.



 날 찾아줘.









/



 그렇게 간절한 오이카와 토오루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탓인지, 정말로 마지막 순간인 걸 직감해버려서 제정신이 아니게 된 탓인지 그때부터는 정말로 꿈을 꾸는 듯 멍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 뒤의 일들은 모두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아주 잘 짜여진 대본을 연기하는 배우가 된 것 마냥 현실감 없게 왜곡되어버렸다.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은데 떠오르는 영상이 전부 석영을 통해 보는 것처럼 뿌옇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도 아주 대략적인 상황 밖에는 떠올려지지 않았다. 오이카와가 내 양손을 붙들고 여전히 이마는 맞댄 채 나에게 뭐라고 중얼댔었다. 약간 무언가의 시를 읊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말이 끝나고 나자 오이카와는 내 이마에 짧게 키스를 남기고 떠났다. 나만 두고 자기 혼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구석 자리였어도 덩그러니 버려진 나에게 옆쪽에서 어떤 여성분이 걱정스레 다가오려는 걸 눈치채고 괜히 입을 틀어막고 빠르게 성 정문으로 걸음을 옮겨 외투를 챙겨가는 것도 까먹고 더블트리로 가는 차 좀 잡아달라고 가드였는지 발렛해주는 사람이었는지한테 말했던 게 거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다음엔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내 호텔방 침대에서 눈을 떴었다.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당일 직항편을 예약해서 뉴욕으로 돌아왔다. 까맣게 잊고 있던 싼 값은 아닌 비건퍼로 된 겉옷은 매우 친절하게도 약 일주일 뒤 깔끔한 글씨의 간단한 편지와 함께 맨해튼의 사무실에서 받아볼 수 있었다.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그는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 영영 사라져버렸다. 이것저것 새로이 시작하고 일에 바쁘게 살다 보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두 바퀴 도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볼드랍을 두 번이나 봤지만 아무런 느낌도 안 들었다. 익숙해진 줄 알았던 찌린내 나는 지하철하고 벌써 몇 번째 먹는 건지 새는 걸 관둔 샌드위치와 햄버거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너의 찾아달라는 말이 생각나서 둔하게 살 수가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에 대한 대답은 차치하고 그 말이 너의 유언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자꾸만 더 지키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이제 네가 살아있는 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무리 수소문을 해봐도 조금이라도 연이 닿는 사람이 없었다. 너에게 그날 잘츠부르크에서의 파티 초대장을 너의 것과 '여자친구' 것까지 두 사람의 몫을 주었던 그 취리히에 본사가 위치한 은행의 총재도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정말로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버린 것일까? 하지만 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할 어리석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더러 강한 사람이라는 말에, 널 찾아달라는 말에 오기보다도 내쪽이 간절함이 생겨버려서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내게 그때 뭐라고 말했었는지 다시 듣기 위해서라도 널 찾아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내가 너를, 그리고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편히 잠들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네가 나보다도 훨씬 나이를 먹어서 이제는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 예에전에 시뮬 구상하다가 잘 다룰 자신이 없어서 다소 장편의 시리즈로 들고 옵니다...

- 인셉션AU(혹은 파프리카와도 비슷한...)이지만 다소 설정이 다른 부분이 존재합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도 충분히 이해 가능 (영화의 스포는 X)

- 설정 미숙함 및 캐붕 주의

- 하이큐 원작에서 같은 학년이라고 해서 나이가 같지 않음 주의

- 닝 이외의 모브캐와 하이큐캐의 관계 언급됨 주의

- 어쩌면 다소 난해할 수 있지만ㅠㅠ 브금과 함께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애니 기준 스포 캐릭터 등장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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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센세...슼 해두었다가 이제 읽었어요..인셉션 놀란감독 영화중에서도 정말 재밌게 본 영화인데 ㅠㅠㅠ심지어 파프리카도..센세 글은 늘 제 취향을 저격하네요..글에서 정말 꿈 처럼 몽환적인 향이 나요. 오이카와 그 영화 속 빨간드레스배우님..(맞나..?디카프리오 부인역 배우님..) 처럼 그러는 거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 했습니다ㅠㅠㅠㅠ센세 다음편도 기다릴게요!!
3년 전
독자3
헐 센세 이거 시뮬로 와도 너무 재미있을거같아요 사실 영화안봐서 머가먼지 모르겠지만 다음내용이 너무 궁금하네요
3년 전
독자4
기웃..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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