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재현이 결혼 준비할 때,
메리지 블루 (Marriage Blue) 결혼을 앞둔 남녀들이 겪는 심리적인 불안감과 우울함을 뜻함.
5 년 연애 끝에 결혼 준비에 들어간 정재현, 행복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기에 뜻밖의 위기 찾아올 것 같다. 5 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해 잘 알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취향 차이부터 연애할 때도 부딪히지 않았던 점에서 자꾸 틀어지겠지. 하루는 집 보러 갔다가 말다툼하고 연락도 안 했을 거다. 항상 한 살 어린 예비 배우자한테 먼저 숙이고 들어가는 정재현이 이번에는 연락도 안 하는 것 보고 상대는 기죽어서 안절부절못하겠지. 다정함, 섬세함 등 벤츠의 모든 조건 갖춘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변하니까 잔뜩 겁먹은 연하는 연락 씹힐까 봐, 무작정 정재현 회사 앞에서 기다릴 것 같다. 걸어서 오 분 거리에 서로 직장 있어서 종종 출퇴근같이 하기도 했거든. 퇴근 시간도 알겠다, 끝나자마자 가서 한 십 분쯤 기다렸는데도 안 나오는 거야. 퇴근은 이미 시작했고, 익숙한 사무실 동료들도 하나둘 마주치니까 이제는 쪽팔리고 서럽기까지 한다. 그때 내려온 고등학교부터 대학 동창이자 직장 동료 서영호, 김도영 내려올 거다. 둘 연애 시작, 그전부터 지켜본 둘은 이 상황 마냥 웃기기만 할 거다. 약 일주일째 ‘예민함’ 얼굴에 달고 사는 정재현이나 건들면 바로 눈물 쏟아낼 듯한 표정으로 얼굴로 추운지도 모르고 서 있는 연하나, 이야기 안 들어도 알 것 같거든. 둘 시작부터 연애 상담해 준, 연애 고수 두 분 그냥 넘어갈 일 없지. 추우니까 들어가서 기다리자, 가자 하면서 사내 카페로 데려갈 거다. 같은 사람들끼리 친하다고 둘도 다정함 몸에 기본 탑재한 터라 제일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핫초코 하나 사서 손에 쥐여줄 거다. 손 녹이면서 눈치 보다 감사합니다, 한 마디 하고 홀짝이는 것 보고 웃음 참던 김도영이 “오늘 정재현 야근인데. 집에 혼자 가야겠다?” 이 말에 눈물 고이고 입안 헐어버릴 때까지 꽉꽉 씹어대면 서영호는 닥치라면서 김도영 옆구리 툭 치고 어깨 몇 번 토닥이겠지. 사실 정재현, 부장이 부탁한 자료 찾다가 좀 늦어진 거라 곧 내려올 건데 그거 알면서도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다. 도와주다가 홀라당 도망친 우애 깊고 의리 넘치는 두 사람 덕분에 열받은 연상은 자료 찾아서 책상에 던지듯 올려두고 내려오면 익숙한 코트 두 개에 저기서 뭐 하나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면 오랜만에 보는 얼굴 하나 있을 거다. 저 멀리서 시작된 발소리 자기 앞에서 멈추고 수군거리는 소리에 힐끗 고개 들면, 그렇게 기다리던 얼굴에 겨우 참던 눈물 한 방울 뚝뚝 떨구다 손에 쥐고 있던 휴지로 눈가 툭툭 닦을 거다.
A 여기서 뭐 해, 너.
B 오빠 기다렸지. 야근, 야근이라고 했는데 빨리 나왔네요.
애써 웃으면서 말 이어가면 둘은 폰 잡고 다른 일 하는 척하고, 정재현은 안 가냐? 하면서 쫓아낼 거다. 순순히 갈 두 사람 아닌 거 알면서도 일단, 좀 보내자.
A 연락도 없이.
B 연락하고 오면 괜히 신경 쓰일 것 같아서…
A 그래서 왜 왔어.
B 보고 싶어서요. 보고 싶어서, 할 얘기도 있고 미안해서, 말없이 와서 화났어요?
그 말 하면서 둘밖에 없다고 소리 없이 우는데, 아무리 화나고 속상해도 모질게 말할 정재현 아니거든요. 로비까지 혼자 들어올 애 아니니까 그전부터 기다렸다는 건데, 거기까지 생각 닿자마자 솔직히 어느 정도는 풀렸거든. 눈물에 다 녹아버린 터라 곧장 끌어안았을 거다. 흰 셔츠에 고개 묻고 한참 있으면 먼저 떨어질 때까지 조용히 머리만 쓰다듬겠지. 사과, 화해는 이따가 하고 저기서 염탐하고 있는 두 사람 불러내서 가볍게 저녁 먹고 들어가는 길에 미안하다고 먼저 말 꺼낼 거다. “제가 잘못했어요. 내가 양보하면 됐는데, 미안해.” 말꼬리 자꾸 늘어나는 것 보고 웃음 터진 정재현은 자기도 미안하다고 품 가득 안아 주고 그렇게 주말마다 집이며 가구며 둘러보고, 결혼식까지 성공적으로 올렸을 것 같다. 날씨 좋은 어느 날, 작게 결혼식 올리고 신혼여행은 신혼여행지로 인기 많은 곳보다는 휴양지 갈 것 같다. 그냥 이렇게 결혼 전에 위기 찾아왔다가 무탈하게, 연애하는 것처럼 결혼 생활하는 정재현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