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아빠한테 받은 상처가 너무 많은데 아빠랑 대화할 틈도 없었고 평소에 일상 대화라도 하려 하면 티비 보는데 시끄럽게 떠들지 마라 핸드폰 보니까 말 걸지 마라 내가 얘기해도 대꾸도 안 해
나는 그냥 상처 덮어두고 사는 거야
근데 몇 주 전에 정말 크게 싸웠거든 아빠가 말도 없이 갑자기 새벽에 친구들 데려와서 시끄럽게 떠들고 술판 벌여서
나는 그날 몸살이 심해서 약 먹고도 머리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는데 나더러 버르장머리가 없대 손님들 왔는데 나와서 인사 한 번 안 하고 방 문 꽉 닫고 눈치 준 다고
이제는 내가 성인이 돼서 직접 때리지는 않는데 소리지르는 그 눈이 새빨갛게 충혈돼서 목에 핏대 세우고 나를 몰아붙이는데 갑자기 어릴 때 생각나서 아빠가 그러다가 나를 때릴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어
숨 안 쉬어져서 쓰러져서 살려달라고 바닥 긁는데 연기 소름 돋는다면서 그대로 엄마 데리고 나가더라
그래도 내가 잘 지내보자고 그 일 이후로 편지를 길게 써서 문자로 보냈는데 내가 아빠한테 미안한 거 아빠가 나를 이해해 줬으면 하는 거 대화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해 줬으면 하는 거 그런 것들 편지로 썼는데
엄마가 아빠 그 문자 보고 길거리에서 열받는다고 나 미쳤다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막 질렀대 사람들 다 멈춰서 쳐다볼 정도로
그렇게 보낸 지 며칠 만에 그래 알겠다 라고 다섯 글자 답장 왔어
그때부터 나는 그냥 놔버린 것 같아 대화도 안 통하고 잘 지내보려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 본 것 같은데 나만 놓으면 끊어질 사람이었던 것 같아
아빠가 날 없는 사람처럼 대하길래 나도 똑같이 그러고 있는 중이야
어제는 아빠 코고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서 잠을 못 자겠어서 문을 두드렸어 차마 말은 못 걸겠어서 어차피 내 말 들어주는 사람도 아니니까
자기 자는데 깨웠다고 정신병자 ㅈ같은 ㄴ이라고 날 낳은 걸 후회한대 저런 애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대
밤새 죽을까 말까 혼자 씨름하는데 엄마가 그래
아빠가 이만하면 됐지 뭘 더 해 줘야 하냬 좋은 집 살고 돈 잘 벌어다 주면 아빠로서 다 한 거라고 안 버리고 키워 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남들 다 부러워하는 집 살면서 감사하게 생각은 못 한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집에서
아빠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난 할 수 있는 거 다 해 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