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다. 뮤지컬 ‘위키드’ 무대 위에 오른 옥주현에게 주어진 것은 초록분장 뿐이다.
팔, 다리, 얼굴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 초록칠이 되어 있다. 의상도 전부 ‘올 블랙’. 등장할 때부터 동그란 안경과 하나로 질끈 묶은 헤어스타일로 관객과 마주한다. 그야말로 ‘폭탄’의 모양새다. 그런데 옥주현은 예쁘다. 장담하건데 막이 내린 뒤 기립박수로 커튼콜을 보내고 있을 때 쯤이면 옥주현의 마력에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뮤지컬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집은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베스트셀러 ‘위키드’를 모티브로 한 작품. 우리가 나쁜 마녀로 알고 있는 초록마녀가 사실은 불 같은 성격 때문에 오해 받는 착한 마녀이며, 착한 금발 마녀 글린다는 아름다운 외모로 인기를 독차지하던 허영덩어리 소녀였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펼친다.
옥주현은 극중 초록마녀 엘파바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위키드’의 엘파바는 옥주현이 평소 가장 맡고 싶은 역할으로 꼽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옥주현은 동료 배우들과 지난 9월 연습 시작부터 매일 12시간씩 혹독한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다. 때문에 ‘연습벌레’ 옥주현도 엄청난 연습강도에 지쳐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는 후문이다.
핑클로 데뷔해 ‘아이다’ ‘캣츠’ ‘엘리자벳’ 등 쉼 없이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뮤지컬 데뷔 10년을 바라보는 지금, ‘위키드’는 그녀의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노처녀 아들레이드 역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사랑스럽고 고상한, 혹은 혼자서 삶의 무게를 이고 지고 있는 역할들이었다. 그러나 ‘위키드’는 조금 다르다. ‘뮤지컬 배우 옥주현’을 생각하면 떠올랐던 이런 이미지를 과감히 부쉈다.
옥주현은 지난 프레스콜을 통해 “배우로서 한 층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작은 정성 하나 하나가 값진 순간을 만들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라고 개막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위키드’ 무대에 오른 옥주현은 목소리만으로 공연을 압도했다. 화장발, 머리발도 필요 없다. 노래의 힘만으로 소름돋는 140분을 만들어낸다.
또한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총 350벌 40억원에 달하는 무대 의상, 54번의 무대 체인징, 12m의 거대 타임 드래곤 등 화려한 볼거리 역시 ‘위키드’의 자랑. 배우, 무대, 스토리, 딱 떨어지는 삼박자가 아닐 수 없다. 쏟아지는 연말 공연중 단 하나의 공연을 선택해야 한다면 정답은 ‘위키드’다.
최정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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