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되지 않는 동거기간을 끝으로 찬열의 집에서 나온 백현은 아르바이트로 간간히 모아둔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전과 다른 점이라고 하면 매일같이 찾아오는 찬열이었다. "저기요. 오늘도 주무시고 가실거에요?" "응. 그러면 안되나?" "저는 상관없지만. 찬열씨는 불편하시잖아요." "난 신경쓰지마." 하루가 다르게 불러와 이제는 남산만해진 배때문에 바깥활동을 못하는 백현이 오후 내내 기다리는 것은 퇴근 후 찾아오는 찬열이었다. 머리는 멀어져야 한다지만 몸은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를 기억하는지 찬열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은 언제가지?" "내일 가요. 이제 한달 뒤면 예정일이니까..." "벌써 그렇게 됐나?" "네. 근데 빨리 태어날 수도 있다고 하셔서 걱정이에요. 아이가 많이 약한데 다 못난 엄마 만나서 그런 것 같고..." 아이와 만날 시간이 가까워 질수록 몸이 많이 힘들었다. 밥은 입에도 못 대고 겨우 미음정도만 삼킬 수있었다. 화장실도 자주 가야했고 불면증으로 밤을 꼬박 세우기 일수였다. 하지만 제일 힘든건 아이가 움질일 때마다 느껴지는 복통이었는데 기뻐하기도 버거웠다. "정말 의외야. 7년 후의 나는 도대체 당신의 어떤 면이 좋았던건지 모르겠군. 세상에 그 많은 여자와 백치글래머들을 두고 당신이 선택된건 무슨 이유지?" 샤워를 마치고 나온 찬열은 쇼파에 앉아 있는 백현을 향해 진심어린 질문을 해왔다. "내가 꽃뱀인데 당신이라고 안 넘어왔을 것 같아요? 얼른 주무세요." 괜한 미운 말을 꺼내면서도 백현은 속으로 속삭였다. '내가...당신을 많이 좋아했어요. 당신은 그런 내가 좋았나봐요' 찬열은 거실에서 잠에 들고 백현은 오지 않는 잠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어느덧 선잠에 들었다. 그러나 겨우 들었던 잠은 길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복통 때문이었다. "하아...윽...흑" 평소에 찾아오던 복통과는 고통의 정도가 달랐다. 이때까지 백현은 밤에 자주 찾아오던 고통을 묵묵히 참아왔다. 거실에 있는 찬열에게 이런 모습 보이기가 싫었고 걱정을 끼치기도 싫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찬열씨... 찬열..씨" 큰 소리도 낼 수 없을만큼 아팠다. 다리엔 감각이 없는 듯했다. 침대 옆에 있는 읽다 만 책을 문을 향해 던저보았지만 힘 없이 내던저진 책은 아무 소음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서 도움을 구해야 했지만 움직이기가 버거웠다. 점점 백현의 몸은 땀으로 젖어갔고 정신을 잃어갔다. "조금만... 제발 찬열씨... 도와줘요... 살려줘요." 아이가 잘못되면 안된다는 생각 하나로 온힘을 다해 침대에서 내려왔다. 다리엔 감각이 없었고 정신도 혼미해져 갔다. 겨우 닿은 문앞에서 찬열을 향해 힘 없는 외침을 계속했다. 뭔가 부산스러운 느낌에 잠에서 깬 찬열이 본것은 뭔가를 중얼거리면 아기처럼 웅크린 백현이었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느낀 찬열이 다가갔을 때 백현은 얼굴은 하얗다 못해 질려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너무... 배가 아파요... 하아..아기가 아픈것 같아요...병원..." 찬열의 바짓단을 붙들고 힘겹게 말을 잊던 백현의 손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정신을 잃었다. 당황한 찬열은 급히 백현을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찬열은 백현을 급히 검사실로 보내고 병원 벤치에 앉았다.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는 이 일이 너무 낯설었다. "하아... 저래서 아이는 낳을 수 있는 건지..." 걱정됐다. 급하게 앉아 올린 백현은 아이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가벼웠고 자신의 바지를 잡던 손은 말라서 뼈가 도드라졌다. 그냥 상관없다고 치부하기엔 변백현이라는 존재가 신경쓰였다.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했지만 퇴근 후에 잔뜩 부른 배를 한 백현이 기다려졌고 꽃뱀이라고 하기엔 그동안에 겪은 변백현은 다소 담백했다. 자신과의 작은 접촉에도 깜짝 놀라던 백현이었다. "변백현 산모님 보호자분, 들어가실게요." "가진통이 온 것 같아요. 예정일이 한달 남았을 때부터 남자 산모들이 많이 힘들어하죠." "먹는 걸 전혀 못하던데요. 계속 그렇습니까?" "먹을 순 있어도 속이 불편하니까 피하시는 것 같은데 아이 생각해서라도 먹으셔야 해요.게워내도 먹는데 나아요." "알겠습니다. 따로 유의해야 할 점 있습니까?" "많이 신경써주세요. 체중이 너무 줄어서 아이의 미숙아 가능성이 큰 상태에요. 예정일이라곤 하지만 백현씨 상태론 내일 아이가 나온다 해도 이상할거 없으니까 항상 주의하시구요." "네, 알겠습니다." 진료실에서 나온 찬열은 곧장 백현의 병실로 향했다. 백현은 영양제를 아 맞고 막 일어난 참이었다. "의사가 뭐래요? 아기가 위험하대요? 뭐 잘못된건 아니죠?" "하나씩 물어. 너 너무 안먹는데. 몸상태가 안좋으니까 조심하라더군. 아이엄마가 이래서야 원..." "하아... 아기는요. 아기는 어떻대요?" "미숙아 가능성이 커." 찬열이 덤덤하게 건낸 말에 백현은 눈물을 터뜨렸다. 아이에게 미안했고 자신이 한심했고 너무 힘들었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감이 없었고 마음이 힘들었다. 갑작스레 우는 백현에 당황한 찬열은 어쩔줄 몰르고 가만히 서있었다. 그런 백현을 보고있자니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찬열은 자신도 모르게 백현에게 손을 뻗어 토닥여 주었고 아무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다. 자연스러웠다. 둘의 온기가. "다 챙긴건가?" "네. 저때문에 회사도 못나가시고... 괜찮은거에요?" "뭐, 잠시일 뿐이야. 바로 회사로 가봐야 하거든." 삼일동안의 입원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혹시 추울새라 꽁꽁 싸맨 백현을 찬열이 부축하여 주차장에 도착했다. 집으로 가는 동안 둘은 아무말도 없었다.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전날밤, 퇴원을 허락받은 백현을 찬열이 찾아왔다. 병원밥을 못 먹는다는 말에 큰처 죽집에 들러 죽을 사오는 길이었다. 속이 안좋다고 거절하는 백현을 붙잡고 찬열이 죽을 먹이고 있을 때였다. 묵묵히 받아먹던 백현의 입가에 죽이 묻었고 닦아주기 위해 찬열의 손이 백현의 입술로 향했다.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고 백현은 급히 눈을 피했지만 늦었다. "읍-" 찬열의 입술이 급히 백현의 입술에 닿았고 깊은 입맞춤이 계속되었다. 순간적인 충동이었지만 후회는 없다고 생각한 찬열이었다. 반면 백현은 혼란스러움에 당황했지만 익숙한 온기 때문인지 피할 수 없었다. 늦게 왔지만 나름 많은 분량으로 돌아왔어요. 과연 둘은 행쇼할까요. 앞으로 4편 안에 이야기가 끝날 것 같습니다. 갑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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