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왔다! 우리 별빛이랑 같이 왔어!"
"택운이는 왜 같이 안 왔어?"
차학연이 알바하는 음식점에 도착했다.
너가 주위를 둘러보는 도중에
계산대에서 말을 나누고 있는 이재환과 차학연이였다.
재환이는 차학연의 싸늘한 반응에 주먹으로 배를 치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차학연도 웃음을 보이며 농담이라는 시덥잖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뒤에서 지켜보던 너도 이젠 익숙해진 듯 그런 두 명을 바라보았다.
차학연은 너와 이재환을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 자리로 안내했다.
너는 창문을 바라보며 물을 마셨다.
그러자 너에게 툭 메뉴판을 던지는 차학연이었다.
"주문 안 해?"
저번까지만 해도 분명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만의 착각임을 확신했다.
꽤 다정했던 모습의 차학연은 어디가고 늘 보던 차학연이 눈 앞에 있었다.
재환이는 너 앞에서 메뉴판을 뚫을 듯 심혈을 기울이며 메뉴를 정하고 있었다.
너는 한숨을 내쉬며 메뉴판을 들여다 보았다.
재환이는 곧 메뉴판에 얼굴이 파뭍힐 것만 같았다.
비싸다고 입이 삐쭉 나온 재환이를 차학연이 웃으며 반응했다.
"그러니까 일식 비싸다고 오지 말랬지, 내가."
" ...그래도 학연이 알바하는 곳 매출 올려준다고 약속했었잖아..."
언제 그런 약속은 했는지,
가만히 지켜보던 너가 이재환에게 음식을 추천해주었다.
사실은 일식 중에 먹어본 음식이라곤 추천해준 그 음식뿐이었으므로 소심하게 음식을 가리켰다.
재환이는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좋다고 그 음식을 주문했다.
차학연은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갔다.
차학연이 가고나니 다시 둘만의 시간이 찾아왔다.
재환이는 손을 닦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요즘 우리 맛있는 거 많이 먹는다. 그치, 별빛아?"
"응. 이러다가 거지 되면 어떡하지?"
너의 농담에 입을 크게 벌리며 이재환이 웃어댔다.
너는 그런 이재환에게 어떡하냐며 대답을 재촉했다.
재환이는 눈물을 닦는 척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내 몸뚱아리 하나 팔아서..!"
너는 꿋꿋이 자기 몸을 팔아서 너 만큼은 먹이겠다는 이재환을 말렸다.
먹기 전에 힘을 다 쏟아 부은 느낌이었다.
너는 음식이 나오기 전에 화장실에 다녀 온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재환은 두 손을 꼭 모은 채로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장실에 가려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1층에 오자마자 대뜸 앞길을 막는 차학연 모습에 너가 당황함을 느꼈다.
"왜 갑자기 앞길을 막아."
"이리로 와봐."
그리곤 차학연은 너의 손목을 잡고 화장실 옆 구석으로 향했다.
너는 뭐하는 짓이냐며 차학연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차학연은 심호흡을 한 번 내쉬더니
"너 뭐 이재환한테 말한 거 아니지?"
라는 말을 내뱉었다.
딱히 말한 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번에 소문에 대해 잠깐 말한 일을 차학연이 아나 싶어 마음이 찔려왔다.
일단 너는 아니라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니야. 무슨 소리야."
말을 내뱉은 후에도 너는 차학연의 눈치를 살폈다.
차학연은 눈을 찌푸리며 너를 바라보다 이내 표정을 풀었다.
"그래. 그냥 혹시나 했을 뿐이야.
절대 이재환 앞에서 대학교의 대 자도 꺼내지 마.
소문의 소 자도 꺼내지 말고.
너한테 다 털어놓은 나랑 택운이가 뭐가 되냐."
사실 차학연은 너에게 털어놓은 것도 없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홀랑 가버린 게 언젠데 말이다.
혼자 구구절절 얘기하고 있는 차학연을 바라보며 여길 얼른 빠져나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부탁 한 거는, 들어주고 있니?"
너는 대뜸 차학연의 말에 오히려 부탁이라면 더 할 얘기가 많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재환이와 마주치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고 너한테 부탁까지 했으면서
정작 그 사람이 누군지도 말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며 나가버렸지 않았는가.
뾰루퉁한 너 표정을 본 차학연이 왜 그러냐며 너를 바라보았다.
너는 뚱한 표정으로 차학연을 째려봤다.
"부탁 얘기 나와서 말하는건데 한국에 왔다는 사람이 누군지도 말 안해줬으면서
나보고 대뜸 부탁 한 건 잘 들어주고 있니? 라고 물어보면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꽤 커진 너 목소리에 차학연이 시끄럽다고 손을 휘저었다.
"나 이럴 때 아니야. 위에서 재환이 기다려."
너는 차학연을 무시하고 옆으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차학연이 다급하게 너의 손을 잡았다.
너가 깜짝 놀라 그런 차학연을 바라보았다.
차학연은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홍빈이야. 그 사람 이름이 이홍빈이라고."
*
이홍빈.
너는 아침에 만난 그 사람을 떠올렸다.
도대체 이재환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 왜 너의 대학교에 있었는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어딘가 깨름칙한 느낌이 들어 생각을 접기로 했다.
2층에 올라가자 너는 놀란 광경을 보았다.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을 것 같은 이재환이 열심히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재환이는 열심히 접은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한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해야지."
"감샤, 감사합니다."
재환이는 아빠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의외의 그런 모습에 놀라며 다가갔다.
재환이가 너의 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았다.
"어, 왔어? 음식 나왔어, 먹자."
너는 자리에 앉으며 종이비행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를 응시했다.
"아기들 좋아해?"
재환이는 너의 말에 젓가락을 들다 말고 너를 바라보았다.
아기를 힐끔 보더니 재환이가 입을 열었다.
"잘 돌보는 편이지."
재환이는 머쓱한 듯 이빨이 보이도록 히죽대었다.
그런 재환이를 보던 너가 귀엽다고 느끼며 웃음이 새어나왔다.
재환이는 먹다 말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 그리고 말인데 별빛아.
내가 저번에 집 앞에서 상혁 씨를 만난 적이 있거든."
너가 불안한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재환이는 핸드폰을 응시하며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번호교환을 했는데, 이번 주에 시간 되냐고 물어보더라고."
먹던 음식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한상혁 얘는 또 둘이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술은 잘 마시냐고 그러길래 몸이 안 좋은 편이라 되도록 조금 먹는 편이라고 했어."
재환이가 핸드폰을 보다 말고 너의 눈을 쳐다보았다.
너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점심 같이 먹기로 했어, 그냥 그렇다는 건데 별빛이한테 말하고 싶었지.
친구 분이랑 친해지고 오겠다고 약속도 할겸."
"나, 나랑 같이 가자!"
불안함에 같이 가자는 말을 내뱉었다.
재환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널 쳐다보더니 농담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별빛이가 왜 와~ 남자들끼리 만나서 얘기하는 건데. 불안해?"
응. 많이 불안하지.
이재환은 그저 너의 맘도 모르고 숨겨진 과거가 있냐며 웃어대기 바빴다.
하지만 이재환은 너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생각을 했다.
한상혁이라면 소문은 물론이거니와 이재환의 모든 과거란 과거는 다 물어볼 것이다.
자신이 잘못된 정보를 들은 건지 예전부터 궁금해 했으니까.
하지만 너나 차학연이나 정택운도
혹여 재환이의 조그만 것이라도 상처를 주지 않을까 걱정하며 얘기하지 않고 있는데
만약 상혁이가 그런 행동을 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너는 더 이상 상혁이와의 만남을 끊어놓는 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같이 가자는 건 재환이가 여전히 장난으로만 생각하고 있고.
무언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야할 것 같았다.
*
"미안해, 별빛아. 오늘은 학연이랑 택운이랑 어디 가기로 한 날이라."
가게 밖으로 나오니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이재환 옆에서 차학연이 하품을 짓고 있었다.
"나중에 별빛이도 같이 가자."
"그래. 우리가 재밌게 놀아줄게."
너가 하는 수 없이 재환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차학연은 옆에서 택운이에게 연락해 보라고 잔소리를 해댔다.
너는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단 생각에 먼저 발걸음을 떼었다.
손을 흔들며 너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재환을 웃으며 보내주었다.
버스에 올라타고 시간을 확인했다.
한 시간쯤 걸린다고 생각하니 집 앞에 가면 거리가 좀 무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가 창문 밖 풍경을 바라보며 내심 혼자 집 간다는 것에 한숨을 내쉬었다.
집 앞 거리에 도착하자 기분탓인지 오늘따라 거리가 한산한 것 같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집들은 죄다 음산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너는 걸음을 조금씩 재촉했다.
두 번만 더 코너를 꺾으면 된다는 생각에 점점 빨라지는 걸음이었다.
한 번 코너를 꺾고 빠르게 걸어갔다.
어째 여기까지 오는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지 애꿎은 길 탓을 했다.
두번째 코너를 꺾은 순간 누가 집 뒷편에서 너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너는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조용히 해."
너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어디선가 들은 낯익은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한상혁...?"
*
너는 이제 하다하다 사람 심장 터지게 할 일 있냐는 눈으로 상혁이를 바라보았다.
상혁이는 조용히 하라고 연신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대었다.
너는 조심스럽게 무슨 짓이냐고 상혁이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상혁이는 너를 빤히 보다 눈을 찌푸렸다.
"너 만나러 왔다가 너 집에 없길래 그냥 가려고 했거든?"
"근데."
상혁이는 주위를 살피다 다시 너를 바라보았다.
"근데 어떤 남자가 너네 집 건물 주위를 계속 돌아다니는 것 같은 거야.
불안해서 너 올 때까지 기다렸어.
늦게까지 안 오길래 이재환이랑 같이 오는 줄 알았네."
".....재, 재환이는 친구들이랑 어디 간대, 오늘."
너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온몸에 소름이 올라올 것만 같았다.
또 누가 우리 집 앞을 서성이고 있는 걸까 싶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상혁이에게 질문을 했다.
"설마 검은 셔츠 입고 있었니? 그 사람?
뭐, 손이 불편해 보였다든지.."
너는 아침에 이홍빈이란 사람이 검은 셔츠를 입고 온 것이 생각나 물어보았으나
상혁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전혀? 일단 이따가 내가 다시 데려다줄테니까 카페라도 가자."
너는 서두르라는 상혁이의 말에 알겠다며 카페로 향했다.
너는 이홍빈을 의심한 게 너무 앞서나갔나 생각이 들어 괜시리 민망해졌다.
*
"어, 홍빈아."
남자는 한 손에 전화기를 들고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근처가 집이 맞긴 한 것 같아.
다른 남자랑 다시 어딜 가는데?"
남자의 들고 있는 전화기 사이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그래. 고생했어, 원식아. 피곤할텐데 빨리 집 와. '
남자는 알겠다는 말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끊은 후에 남자는 나란히 맞닿아있는 두 건물을 유심히 지켜보다 걸음을 옮겼다.
"곧 너도 보겠다. 재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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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동안 폭풍같이 지내다보니 조금 글이 늦게 올라왔습니다ㅠㅠㅠ죄송해요
덕분에 시간이 조금 여유로워져서 평일에도 글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항상 댓글 고맙고 잘 읽어보고 있습니다ㅠㅠㅠ 감사드려요!
비루한 글이지만 다음편에서 뵈요~! :D